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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레닌주의④:
《국가와 혁명》을 둘러싼 쟁점들

노동자연대는 5월 16일부터 6월 13일까지 ‘21세기 레닌주의’ 연속 공개 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자세히 보기). 레닌주의에 대한 오해가 세간에 상식처럼 퍼져 있는 가운데, ‘21세기 레닌주의’에서는 레닌주의의 진정한 의미를 살펴보고 오늘날에도 적용 가능한지를 토론한다.

이 글은 그 네 번째 주제인 ‘《국가와 혁명》을 둘러싼 쟁점들’을 위해 이수현 씨가 작성한 발제문이다. 이수현은 《레닌 평전 2~4》(토니 클리프, 책갈피)의 역자이다.

《국가와 혁명》은 레닌의 모든 저작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책이다. 이 책은 러시아 혁명의 핵심 구호였던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의 이론적 토대였고, 따라서 러시아 혁명 자체의 이론적 토대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소비에트 권력 사상은 1917년에 러시아 노동계급의 가장 중요한 염원이었을 뿐 아니라, 그들이 국제 노동계급에게 호소한 핵심 사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독일, 이탈리아, 아일랜드 등의 노동자들도 노동자 평의회를 건설했(거나 건설하려고 시도했)다.

《국가와 혁명》은 개혁주의와 혁명적 사회주의, 제2인터내셔널과 제3인터내셔널, 사회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날카롭게 분리했다. 물론 그 분열은 제1차세계대전 발발로 이미 일어났지만, 그 분열을 완성하고 확실히 못 박은 것은 《국가와 혁명》이다.

그러나 오늘의 주제는 이런 역사적 중요성이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다. 이 책의 핵심 주장은 여전히 타당한가? 그리고 지금뿐 아니라 장래에도 그 주장을 우리의 행동 지침으로 삼을 수 있는가? 이런 물음에 답하려면 먼저 《국가와 혁명》에서 레닌이 주장한 바를 간략히 살펴봐야 한다.

먼저 레닌은 국가가 결코 영원불변의 제도가 아니라, 계급으로 분열된 사회의 산물이라는 주장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여기서 레닌이 끌어내는 결론은, 현대 국가는 자본가 계급의 이익에 봉사하는 자본주의 국가라는 것이다. 레닌은 이런 주장이 보통선거권이 완전히 보장되는 가장 민주적인 부르주아 공화국에도 적용된다고 강조한다. “현대 국가에서 대다수 노동 대중의 의사가 보통선거권을 통해 진짜로 표현될 수 있고 실현될 수 있다는 생각은 틀렸다.” 또, “모든 부르주아 국가는 그 형태가 어떻든 간에 부르주아지의 독재다.

여기까지는 제2인터내셔널의 이른바 ‘정설’ 마르크스주의 국가관을 요약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카를 카우츠키(독일 사회민주당의 중간주의 지도자)조차 “국가가 계급 지배의 도구라거나 계급 적대 관계는 결코 화해될 수 없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파리코뮌의 경험을 바탕으로 노동계급이 단순히 기존 국가기구를 장악해서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이용할 수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이렇게 노동계급이 기존 국가기구를 그냥 인수할 수는 없고 오히려 파괴해야 한다는 생각이 《국가와 혁명》의 핵심 사상이다.

물론 이 사상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도 이미 있었지만, 레닌이 강조하고 입증하듯이 그것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당시까지 잊히거나 무시당했던 이 요점을 ‘발견하고’ 그 중요성을 강조해서 결코 피하거나 무시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든 사람이 바로 레닌이다.

이 점이 중요한 이유는 당시까지 국제 사회주의 운동을 지배하던 전략과 완전히 모순되기 때문이다. 그 전략인즉 의회 다수당이 돼 정부 권력을 획득하고 기존 국가기구를 이용해 사회를 변혁한다는 것이다.

의회를 이용해 국가기구를 인수하는 전략에서는 국회의원 같은 상층 지도자들이 능동적·지배적 구실을 하고 노동계급 대중은 수동적으로 그들을 지지하는 구실만 한다. 이와 달리 국가를 분쇄하는 전략에서는 아래로부터 대중 행동과 주도력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다수의 힘으로 경찰을 거리에서 물리치고 경찰서를 점령하고, 병영으로 가서 사병들을 설득해서 우리 편으로 만들고, 지역위원회를 구성해서 각 지역을 통제하고, 버스와 기차를 징발하는 일 등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해내려면 봉기한 노동계급이 작업장과 지역사회에서 능동적으로 행동해야만 한다.

이런 혁명 과정에서 부르주아지의 저항을 분쇄하려면 프롤레타리아 독재(노동자 권력)라는 국가가 필요하다. 이 새로운 노동자 국가의 핵심 특징은 마르크스가 파리코뮌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상비군을 폐지하고 노동자 시민군으로 대체했다. 정부의 도구였던 경찰도 코뮌에 책임을 지고 언제든지 소환될 수 있는 코뮌의 도구로 변모했다. 코뮌은 파리의 각 구區에서 보통선거로 선출된 자치위원들로 구성됐고 그들은 언제든지 소환될 수 있었다. 행정부의 다른 모든 관리도 언제든지 소환 가능했다. 고위 관리의 특권·특전 등은 폐지됐다. 모든 공무원의 임금은 노동자 임금 수준을 넘지 않았다. 등등.

그러나 이 새로운 국가는 소수 착취자가 아니라 다수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그 다수를 국가의 일상적 업무에 점차 끌어들일 것이기 때문에, 이미 시들어 죽기 시작하는 국가일 것이다. 국가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이 국가는 계급 분열이나 계급투쟁이 없는 완전한 공산주의가 실현되면 완전히 시들어 죽을 것이다. 그래서 레닌은 “우리의 궁극적 목적은 국가를 폐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이 《국가와 혁명》의 주요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한 것이다.

레닌의 이론을 비판하는 주장들

레닌의 국가 이론에 대한 명시적·암시적 비판이자 그 ‘대안’으로 거론되고, 오늘날 여러 사회운동에서 일정한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통용되는 주장 다섯 가지를 살펴보고, 오늘날의 투쟁에서도 레닌의 견해가 적절한지를 얘기하겠다. 첫째, 보통선거가 민주주의를 가져다준다는 견해. 둘째, 미셸 푸코의 권력 이론. 셋째, 자율주의자들과 아나키스트들의 레닌 비판. 넷째, 이른바 그람시주의자들의 비판. 다섯째, 니코스 풀란차스의 비판.

보통선거

레닌의 국가 이론을 비판하는 주장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은 보통선거와 의회정치가 존재하면 민주주의 체제이고 경찰·군대·법원 같은 국가기구가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거의 ‘상식’에 가까워서, 여기에 찬성하지 않으면 단지 견해가 다른 사람 정도가 아니라, 아예 민주주의를 반대하는 사람 취급당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먼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떤 선거도 공평한 경쟁의 장에서 치러지지 않는다.

선거 때는 홍보물 제작, 신문·방송 광고, 거리 유세 등에 많은 돈이 든다. 부자와 기업들을 대변하는 정당은 주로 노동계급과 서민의 지지에 의존하는 정당보다 엄청나게 많은 돈과 자원을 쓸 수 있다. 따라서 선거운동은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런 엄청난 불균형을 어느 정도 바로잡을 수 있는 유일한 자원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후원하는 노동조합의 돈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불충분하고, 또 이런 돈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노동조합의 정치적 후원을 받게 되면 노조 상층 지도자들의 영향을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다.

또, 선거에 강한 영향을 미치는 대중매체는 대부분 좌파와 사회주의에 대해 심각한 편견을 갖고 있다. 이런 편견은 각종 교육기관 등을 통해 작용하는 더 광범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한 측면일 뿐이다. 이미 1845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언제나 지배계급의 사상이 지배적 사상이다. … 물질적 생산수단을 지배하는 계급이 동시에 정신적 생산수단도 지배하므로 정신적 생산수단이 없는 사람들의 사상은 대체로 지배계급의 사상에 종속된다.”

이 모든 요인들 때문에, 진짜로 반자본주의적인 좌파 정당이 선거에서 승리하기는 매우 어렵다. 물론 그리스 시리자의 선거 승리가 보여 주듯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후 시리자 정부의 운명이 또 보여 주듯이, 선거에서 승리한다고 해서 이야기가 끝나는 것도 아니다.

반자본주의 정당이 선거에서 승리해도 단지 정부 사무실을 차지했을 뿐 진짜로 권력을 장악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국민경제를 통제할 수 없다. 나라의 경제생활을 지배하는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은 대부분 적대 세력의 수중에 있을 것이다. 하물며 세계경제는 더 통제할 수 없다. 많은 다국적기업이 그 나라에 상당한 투자를 했을 것이고, IMF와 세계은행 같은 기구들이 온갖 종류의 유대 관계, 부채 등을 통해 그 나라와 얽히고설켜 있을 것이다. 또, 다국적기업이나 국제기구들과 협력하는 매우 강력한 외국 정부들도 좌파 정부에 적대적 태도를 취할 것이다.(시리자와 트로이카, 독일·프랑스 정부)

그들은 힘을 합쳐서, 좌파 정부가 버티기 힘들게 만들 능력이 있다. 예컨대, 투자 ‘파업’을 벌일 수도 있고 그 나라에서 영업을 중단하고 더 기업 친화적인 나라로 사업체를 이전할 수도 있다. 또, 은행의 예금 인출 사태나 외환 투기를 촉발할 수도 있다. 더욱이, 그들은 이런 짓을 하면 대부분의 대중매체가 그에 따른 경제적 곤경을 이유로 좌파 정부를 비난할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좌파 정부는 자국 내에서 영업하는 기업과 금융기관에 대해 법적 구속력이 있는 법률을 제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법률을 어떻게 집행하고 시행할 것인가? 합헌적 정부로서 기능하려면 기존 국가기구를 이용할 것이다. 정부 부처와 공무원 조직을 이용할 것이고, 필요하다면 법원과 경찰, 최후의 수단으로 군대를 이용해 사람들이 법률을 지키게 할 것이다. 이론적으로 그런 국가기구들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의 명령을 따라야 할 헌법상 의무가 있다. 그러나 과연 실천에서도 그럴까?

먼저 국가기구는 거의 예외 없이 위계적 조직이다. 민주적 선출 원칙은 의회에만 적용되고, 군대·경찰·법원·감옥 등은 임명·규율·복종에 바탕을 두고 있다. 기층에서 반란이 일어나지 않는 한, 국가기구의 행위는 그것을 운영하는 자들이 결정한다. 그런 자들은 고액의 보수를 받는데, 정치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사실 하나는 고소득자들이 흔히 우파적이거나 보수적 견해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전 세계의 투표 행태에서도 관찰할 수 있는 현상이다. 또, 이런 국가 관리들은 특권층 출신인 경우가 압도적이다.

그리고 1936년 스페인과 1973년 칠레의 역사적 경험을 보면, 국가기구의 일부인 군대가 ‘국가의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는 보통선거의 결과를 폭력적으로 뒤집어 버렸다. 최근 영국에서도 익명의 현역 군 장성이 만약 제러미 코빈의 노동당 정부가 들어선다면 반란이 일어날 수 있다고 위협했다.

1973년 9월 칠레 군부 쿠데타

이 모든 이유들, 즉 돈과 자원이 선거운동 과정에 미치는 영향, 부르주아지의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 국가기구의 위계적·특권적·보수적 성격, 분명한 역사적 경험 때문에, “현대 국가에서 대다수 노동 대중의 의사가 보통선거권을 통해 진짜로 표현될 수 있고 실현될 수 있다는 생각은 틀렸다”는 레닌의 말은 지금도 여전히 진실이다.

푸코의 비판

주류 정치 담론에서 레닌을 비판하는 지배적 주장이 보통선거론이라면, 지난 수십 년 동안 학계에서 유력했을 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좌파적 실천에도 영향을 미친 주장이 미셸 푸코의 권력 이론이다.

푸코는 결코 자신의 입장을 체계적으로 제시하지 않았고, 전형적 레닌 비판과도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그 비판은 주로 다른 사람들이 푸코의 저작들에서 추론한 내용을 반反레닌주의적 결론과 결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푸코에 근거한 비판의 핵심은, 권력은 국가(기구)에 집중돼 있는 것이 아니라 학교·사무실·감옥·병원 등 사회 어디에나 있고, 권력은 장악하거나 분쇄할 수 있는 ‘사물’이 아니라 사회관계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첫째, 레닌을 잘못 읽고 해석한 것에 의존하는 듯하다. 레닌은 국가(기구)를 총이나 자동차 같은 ‘사물’이나 ‘도구’로 여기지 않았다. 이 점은 레닌이 국가를 인수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국가를 분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는 사실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왜냐하면 총과 자동차 같은 ‘사물’은 노동계급이 인수해서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를 분쇄해야 한다는 레닌의 전략도 이 점을 보여 준다. 왜냐하면 그 전략은 군대 안에 계급 분열을 일으켜서(즉, 사회관계를 변화시켜서) 일반 병사들이 장교에게 등을 돌리고 혁명을 지지하도록 만들어 국가기구의 핵심을 해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레닌은 국가권력이 사회의 유일한 권력 형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레닌 이론의 핵심은 국가권력이 상대적 자율성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생산수단과 생산과정을 통제하는 것에 바탕을 둔 계급 권력의 표현이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권력 관계가 모든 작업장에 있다는 말은(병원·학교·사무실·감옥은 모두 작업장이다) 레닌을 비롯한 진지한 마르크스주의자 어느 누구에게도 결코 새로운 소식이 아니다.

여기서 푸코와 레닌의 진정한 차이는 푸코가, 예컨대 병원 전문의의 권력을 자본주의 경제와 자본주의 국가에서 단지 상대적으로만 자율적인 것이 아니라 완전히 분리된 것으로 본다는 점이다. “의사들이 비판받는 주된 이유는 이윤 추구에 몰두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의 신체에 대한 통제받지 않는 권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라는 푸코의 말은 틀렸다. 한편으로 전문의, 교도소장, 교장, 대학 총장 등의 권력 지위나 행동과, 다른 한편으로 부르주아지의 계급 권력 사이에는 (인원과 기능의 측면 둘 다에서) 분명한 연관이 있다.

또, 권력이 도처에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이런 권력들이 정도나 중요성 면에서 모두 똑같은 것은 아니다. 교사가 학생에게 또는 의사가 환자에게 권력을 휘두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권력은 결코 국가기구의 권력과 비교할 것이 못 된다. 파리코뮌을 진압하고, 히틀러에게 권력을 넘겨주고, 스페인 혁명을 패배시키고, 아옌데의 민중연합 정부를 전복한 것은 의사들이 아니라, 각각 프랑스·독일·스페인·칠레의 국가권력이었다.

푸코의 권력 이론은 실천적·전략적 함의라는 면에서 정체성 정치나 지역사회 운동과 잘 맞는 듯하다. 그런 맥락에서 푸코의 권력 이론은 이런 운동들에 ‘혁명적’ 색칠을 해 줄 수 있는 동시에 모종의 급진 개혁주의와 잘 맞기도 한다. 그러나 전국적 노동조합 투쟁이나 국제적 반전운동, 세계적 기후변화 문제, 무엇보다 거대한 혁명적 상황과는 맞지 않는다. 이런 경우에는 정부와 국가권력의 문제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푸코의 영향을 받은 전략은 실제로는 개혁주의가 지배하는 틀 안에서 부차적·종속적 구실을 하는 데 그치기 쉽다.

아나키스트들과 자율주의자들의 비판

바쿠닌 이래로 아나키스트들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을 권위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이라고 비판했고, 레닌만큼 이런 비판을 심하게 받은 사람도 없다. 아나키스트들의 핵심 주장은 모든 형태의 정부와 국가에 원칙적으로 반대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본주의 국가를 새로운 노동자 국가, 즉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교체해야 한다는 레닌의 주장도 격렬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아나키즘의 주장에서 근본적 문제는 한 도시나 한 나라에서 노동자 봉기가 성공한다고 해서 적어도 5000년 동안 국가가 존재한 물질적 근거가 됐던 계급투쟁이 즉시 중단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모든 혁명의 역사가 보여 주듯이, 국제 자본가 계급이 반격을 가해서 혁명을 무너뜨리려 하기 때문에 계급투쟁이 아주 격렬하게 계속된다. 국가기구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면, 자본가 계급의 이런 시도에 어떻게 대항하고 사회주의 경제 건설을 어떻게 시작할 수 있겠는가?

이런 기본적이고 간단한 물음에 답변한 아나키스트는 거의 없지만, 드문 사례 중 한 명이 1919~1921년에 러시아에 살았던 알렉산더 버크먼이다. 그는 러시아 혁명의 경험을 바탕으로 “필요하다면 무력을 써서라도 혁명을 방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자기방어는 모든 강압 행위, 박해나 보복 행위를 배제한다. … 공장·광산·들판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혁명의 병사다. 그는 필요에 따라 [공장의] 작업대나 논밭에서 일하거나 아니면 전쟁터에서 싸운다”고도 말했다.

물론 이 숭고한 주장은 어느 정도 사실이지만, 노동자 국가를 반대하는 논거로서는 별로 설득력이 없다. 버크먼은 자기방어와 ‘강압’ 행위를 대립시키지만, 혁명이나 내전 상황에서는 자기방어와 강압 행위가 대립될 수 없다. 어떤 혁명이라도 성공하려면 무장봉기 자체에서든 아니면 이후의 이행기 때든 어느 정도의 강압은 불가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모든 노동자가 “혁명의 병사[이고] … 필요에 따라 [공장의] 작업대나 논밭에서 일하거나 아니면 전쟁터에서 싸운다”면 정말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그러나 모든 혁명의 경험은 노동계급, 더 광범하게는 ‘민중’의 의식과 헌신이 불균등하게 발전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만약 어떤 노동자도 경찰이나 군대에서 복무하거나 반혁명 편에서 싸우지 않는다면 바리케이드나 노동자 시민군은 전혀 필요없을 것이고, 만약 정당이나 국가가 조직하지 않아도 모든 혁명적 노동자가 그냥 “필요에 따라 전쟁터에” 알아서 도착한다면 혁명은 매우 쉽고 간단한 문제일 것이다.

버크먼은 이 문제를 어느 정도 의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혁명을 군사적으로 방어하려면 최고사령부, 규율, 명령에 대한 복종이 필요할 수 있다”고 썼다. 그러나 이 문제를 충분히 생각하지 않았거나 바로 그 때문에 국가기구가 필요하다는 것은 깨닫지 못했다. 오히려 그는 최고사령부와 명령에 대한 복종이 “노동자와 농민의 헌신에서” 비롯한다는 모호한 공식으로 다시 후퇴한다.

이른바 ‘강령 아나키즘’ 경향도 버크먼과 비슷한 주장을 했다. 그 경향의 지도자 네스토르 마흐노 등은 러시아 혁명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모든 전쟁과 마찬가지로 내전에서도 노동자들은 모든 군사작전의 근본 원칙인 작전 계획의 통일성과 지휘 체계의 통일성을 적용하지 못하면 승리할 수 없다.”

여기서도 아나키스트들은 사실상 마르크스주의 노동자 국가론의 핵심을 인정한다. 그들은 “권위와 … 국가라는 원칙”을 거부한다고 말하면서 이 점을 부정하지만, 그들의 부정은 허사가 되고 만다. 좋든 싫든 “공통의 지휘 체계를 갖춘” 혁명적 노동자 군대는 어느 정도의 “권위”를 함의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국가를 함의한다. 아무리 많은 말장난을 하더라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문제는 혁명 후 내전에서 가장 날카롭게 제기되지만, 혁명 후의 경제 운영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지역사회 전체나 전국이나 전 세계의 모든 노동자가 완전히 단결해 있고 공산주의 의식이 균등하다면 국가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완전한 공산주의가 즉시 건설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철도 같은 기간산업을 운영하려면 노동자 통제 아래 철도가 운영돼야 하고, 중앙 당국(노동자 국가)이 철도를 ‘소유’해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는다면 대안은 오직 각각의 기업(각 철도역이나 철도선로 구역들)을 그곳 노동자들이 소유하는 것뿐이겠지만, 그러면 기업들이 서로 분열해서 경쟁할 것이고 그것은 분명히 재앙으로 가는 지름길일 것이다.

자율주의 경향의 레닌 비판은 존 홀러웨이의 주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사회주의 운동의 근본적 약점이 국가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즉, 개혁주의적이든 혁명적이든 사회주의 운동은 “모두 국가권력을 획득하는 것이 목표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지금 여기의 ‘자율적’ 공간(예컨대,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 주의 사파티스타가 해방시킨 지역)에서 비자본주의적 사회관계들을 발전시키자는 것이 홀러웨이의 주장이다. 추구하는 전략의 면에서 점거하라 운동은 홀러웨이의 주장과 비슷한 점이 있다(비록 멀리 떨어진 정글 속이 아니라 도심 한복판의 광장에 자율적 공간을 창출한다는 차이는 있지만).

이 문제에서 홀러웨이의 중대한 결함은, 개혁주의와 레닌주의가 모두 국가권력 장악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고 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결정적 차이를 놓치는 것이다. 《국가와 혁명》에서 봤듯이, 레닌은 자본주의 국가를 인수할 수 없고 분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홀러웨이의 비판은 과녁을 빗나간 화살과 마찬가지다.

월스트리트 같은 공간을 점거하는 것은 혁명적 투쟁에서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자본주의 국가를 분쇄하고 노동자 국가를 수립하려는 투쟁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잘못된 전략이다. 물론 이런 점거는 엄청나게 고무적일 수 있다. 그러나 사회의 주요 생산력이나 부의 축적을 통제하는 일은 결코 하지 못한다. 따라서 점거 자체로는 경제적·사회적 생산관계를 변혁할 수 없다. 더욱이, 그런 전략에 따라 ‘점거자들’이 국가와 대결하지 않으려고 해도 국가는 그들을 그냥 무시하거나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한동안 그럴 수는 있다. 특히 운동의 활력이 저절로 가라앉도록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할 때는 그럴 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분쇄’되지 않는다면, 조만간 경찰과 군대를 활용해서 ‘자율적’ 공간을 되찾으려고 할 것이다.

그람시 대 레닌?

이른바 그람시주의자들은 무장봉기나 폭력혁명 개념, 국가를 분쇄한다는 목표를 철저히 거부한다는 점에서 반反레닌주의적 정치 전략을 추구한다. 그들은 자본가들의 지배에서 강제보다는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의 구실을 훨씬 더 강조하고, 국가와 결정적 대결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제도들을 이용해 국가와 사회를 점진적으로 변혁한다는 관점을 지지한다.

그러나 이른바 그람시주의자들은 무엇보다도 역사적 그람시를 근본적으로 곡해하고 악용하고 있다. 그람시는 1921년 이탈리아 사회당에서 분열해 나와 분명하게 레닌주의적인 토대 위에 공산당을 창립한 매우 투철한 혁명가였다. 1926년의 《리옹 테제》는 그람시가 투옥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쓴 중요한 저작인데, 거기서 그는 다음과 같이 레닌주의를 분명히 재확인했다.

공산당을 … 볼셰비키 같은 정당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코민테른의 근본적 과제다.

부르주아 국가를 전복하는 무장봉기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한 투쟁의 문제를 프롤레타리아와 그 동맹 세력들 앞에 제기하는 것이 … 이탈리아 공산당의 근본적 과제다.

그람시주의자들의 근거는 순전히 그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혁명적 무장봉기의 전망을 버렸다는 생각뿐이다. 그러나 그람시의 생애를 아무리 살펴봐도 그런 생각을 입증하거나 심지어 진지하게 뒷받침이라도 할 만한 증거는 없다. 오히려 그람시주의자들은 《옥중수고》에서 발견되는 모호하고 흔히 불분명한 표현들이 사실은 그람시가 교도소 당국의 검열을 피하려고 일부러 그런 ‘이솝 우화식’ 용어를 사용한 결과라는 잘 알려진 사실을 무시한다.

그리고 《옥중수고》에서 그람시가 실제로 쓴 내용을 봐도 개혁주의자들의 그람시 해석과는 모순된다. 그람시가 기동전과 진지전을 구별해서 쓴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들은 모두 계급 전쟁의 형태들이었다. 그람시는 강제와 동의, 권위와 헤게모니, 지배와 도덕적 지도 등을 아우르는 ‘이중의 관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변증법적 상호작용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른바 그람시주의자들은 헤게모니나 이데올로기적 지도를 일면적으로 떼어 내서 강조했다. 그들이 암시하는 것과 달리 그람시는 헤게모니 문제에 관한 자신의 통찰과 논평들이 레닌의 국가론과 혁명론을 대체하거나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레닌주의를 보충하거나 레닌주의의 토대 위에서 레닌주의를 발전시킨 것이라고 봤음이 분명하다. 이 점은 그람시가 명시적으로 “당대 최고의 실천철학 이론가[레닌]가 … ‘힘으로서 국가’ 이론에 대한 보충물로서 [그리고 1848년 연속혁명 이론의 현재적 형태로서] 헤게모니 이론을 수립했다”고 진술한 사실로도 입증된다.

이런 문헌 논쟁과 역사적 논쟁을 제쳐 놓더라도, 아주 분명한 사실은 오늘날의 자본가 계급이 이데올로기적 동의와 물리적 강제를 결합해서 자신들의 통치·지배·헤게모니를 유지하고, 동의와 강제는 모두 그들의 경제 권력에 의지하고 경제 권력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모든 사상도 강제에 의해, 즉 경찰·법원·감옥 등에 의해 끊임없이 뒷받침된다. 그러지 않는다면, 그래서 법을 어겨도 처벌받지 않는다면, 법률과 소유(권)에 대한 존중이 얼마나 유지될 수 있겠는가? 역으로, 이데올로기적 동의 없이 강제에만 의존하는 자본가들의 지배도 매우 취약할 것이다.

사실, 강제와 동의 사이의 균형은 끊임없이 변한다. 사회가 비교적 평화로운 일상적 시기에는 동의의 요소가 전면에 나서고 강제는 배후에 남아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해서 강제의 중요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동의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강제가 더 많이 사용되고 우세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그람시주의자들이 주장하듯이 오로지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 투쟁에 초점을 맞추고, 자본주의 국가를 분쇄하는 강제의 문제를 무시하는 전략은 레닌 이전의 개혁주의로 돌아가는 것이고 매우 무책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풀란차스와 유러코뮤니즘

유러코뮤니즘의 국가관을 가장 분명히 발전시킨 풀란차스는 그리스 시리자에 미친 영향 때문에 특히 중요해졌다. 그는 국가가 “지배계급의 도구”라는 주장을 “순전히 도구주의적인 국가관”이라며 거부하고, 국가를 “계급 세력 관계가 물질적으로 압축된 것”으로 규정한다. 그래서 “국가 구조 자체에 계급 모순이 각인돼 있고 “국가기구 자체가 정치투쟁이 벌어지는 전략적 장소”이므로 계급 세력 균형의 변화와 중요한 민중 투쟁들을 토대로 해서, 국가를 분쇄하지 않고 변혁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게 풀란차스의 주장이다. 이런 전략은 이중권력을 거쳐서 낡은 국가기구를 소비에트 권력으로 대체하는 레닌주의 전략과 정면으로 대립한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든 강압적 국가기구든 국가기구 안에서 좌파가 헤게모니를 구축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대학의 특정 학과나 학부 전체가 ‘마르크스주의’나 ‘좌파’ 비슷한 경향을 띠게 될 수 있다. 특히 1960년대 말 같은 대중투쟁과 반란의 시기에는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대학 수준에서든 국가의 행정 관료 기구 수준에서든 교육제도의 사령탑은 여전히 좌파의 통제를 완전하게 벗어나 있을 것이다.

또, 대중매체 전체, 즉 전 세계의 뉴스와 엔터테인먼트 시장을 지배하는 다국적기업들과 유력한 공영방송 등은 아마 자본과 자본주의 국가가 버티고 있는 한 좌파가 장악하거나 변혁할 수 없을 것이다.

이데올로기적 기구가 그렇다면, 강압적 국가기구는 훨씬 더 그럴 것이다. 그런데 풀란차스의 전략이 실현되려면 무엇보다 강압적 국가기구들이 변혁돼야 한다. 그 전략이 환상이라는 것을 알려면 실제로 존재하는 강압적 국가기구 몇몇을 살펴보기만 하면 된다. 프랑스의 시위 진압 경찰이나 인종차별적이고 걸핏하면 사람을 살해하는 미국 경찰, 선거에서 황금새벽당을 지지하는 그리스 경찰 같은 기구 안에서 점진적으로라도 좌파가 헤게모니를 확립하는 것이 가능할까?

모든 국가기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군대는? 물론 군대가 민중의 압력에 면역돼 있지 않고 대규모 민중 투쟁이 군대 내부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군대는 노동계급 출신의 일반 사병들이 많은 ‘대중’조직이므로 민중의 압력에 가장 ‘오염’되기 쉬운 국가기관이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군대는 결코 민주적이지 않다. 오히려 군대는 권위와 규율, 상명하복이라는 원칙을 바탕으로 설립되고 구성되며, 명령을 내리는 최고사령부는 지배계급과 완전히 유착돼 있고 좌파의 압력에 전혀 물들지 않는다.

따라서 군대의 일반 사병들이 민중 투쟁의 영향을 받아서 급진적 사상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순간 그들은 만약 그런 사상을 바탕으로 행동하고자 한다면 상관의 명령을 따를지 말지 선택해야 한다. 상관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은 곧 반란에 가담하는 것이고, 이것은 항상 가혹한 처벌을 받는 범죄이며, 이 범죄는 그 본성상 진짜 레닌주의 방식으로 국가를 파괴할 위험이 있다. 이런 아래로부터 혁명적 행동이 일어나지 않는 한 육해공군의 장성들은 계속 군대를 이용해 민중의 반대를 억압하고 급진적 변화를 방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국가기관들의 성격을 변혁하려는 시도라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좌파 정부를 선출해서 그 정부가 자기 지지자들을 국가기관의 우두머리로 임명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따라서 유러코뮤니즘 전략은 아무리 마르크스주의 용어를 사용하더라도 실천에서는 좌파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추구했으나 결코 성공하지 못한 낡은 노선, 즉 사회주의로 가는 의회적 길을 재탕하는 데 그칠 뿐이다.

풀란차스의 이론적 약점은 국가기구의 변혁 가능성에 대한 구조적 한계들을 과소평가할 뿐 아니라, 지배계급이 적극적으로 저항할 것이라는 사실도 무시한다는 점이다. 단지 자본주의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점진적으로 변혁해서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삼는 진정한 좌파 정부에 직면한다면, 지배계급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저항할 것이고, 유러코뮤니즘 전략이 그토록 피하려고 하는 결정적인 물리적 충돌을 좌파 정부와 민중 운동에 강요할 것이다.

또, 풀란차스는 서구의 의회제도가 “민주적 사회주의의 본질적 조건”이라며 인정하고 지지한다. 이런 주장은 인디그나도스 운동 당시 “저들은 우리를 대표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 진정한 민주주의!”라는 구호를 외친 스페인 대중의 본능적 반란이나 ‘점거하라’ 운동의 일반적 정신보다도 덜 진보적이고 오히려 더 우파적이다.

현재와 미래의 투쟁

이제 레닌의 국가 이론이 오늘날의 중요한 투쟁에도 적절한지를 살펴보겠다.

먼저 21세기의 가장 크고 강력한 혁명적 투쟁이었던 2011년 이집트 혁명은 국가의 핵심인 군대가 중립적이라는 환상 때문에 결국 패배했다. 많은 좌파가 무슬림형제단에 대한 적대감 때문에 이집트 국가기구의 계급적 성격과 심각한 반동적 성격을 얼버무리거나 못 본 체하다가 군부독재의 복귀를 막지 못했다. 또, 무슬림형제단 정부 자체도 혁명이 계속되는 것을 막으려고 군부와 협력하고자 애쓰다가 결국 자기 무덤을 팠다.

2015년 1월 시리자 정부 선출은 유러코뮤니즘 계통의 정당이 거둔 최초의 선거 승리였기에 자본주의 국가를 ‘변혁한다’는 풀란차스의 전략도 시험대에 올려 놓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시험은 실현되지 않았는데, 시리자가 그리스 국가를 변혁하려는 시도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시리자가 그리스 심층 국가의 우선순위에 즉시 양보하고 일체의 반자본주의 전략도 처음부터 포기하는 바람에 시리자 정부와 그리스 심층 국가가 전면 충돌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유럽연합과 국제 자본주의의 초국적 ‘기관들’, 즉 ‘트로이카’로 불린 유럽중앙은행,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IMF와 전면 충돌하는 일은 결코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시리자 장관들은 유럽연합과 그 지도자들을 한결같이 “우리의 파트너”라고 부르며 유럽연합과 유로존에 남아 있겠다고 약속했다.

그리스 총리 알렉시스 치프라스와 유럽의회 의장 슐츠 ⓒ출처 유럽연합

시리자의 에피소드는 트로이카 같은 지배계급의 기관들을 ‘인수’하거나 ‘활용’해서 반자본주의 정책들, 심지어 자본가 계급의 이해관계와 만만찮게 충돌하는 정책들조차 실행할 수 없다는 간단한 진리를 가르쳐 준다. 만약 시리자가 저항하고 대결하는 길을 선택했다면, 그리스 국가기구는 시리자 정부와 그리스 노동 대중에 맞서서 트로이카와 같은 편이 돼 움직였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 상황에서는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것은 고사하고 단지 긴축을 끝내려고만 해도 권위주의적이고 반동적인 그리스 국가기구를 물리치고 해체하기 위한 그리스 노동계급의 혁명적 동원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런 사례들이 보여 주는 것은 100여 년 전에 레닌이 《국가와 혁명》에서 한 주장, 즉 기존 국가는 자본가 계급의 지배 기구이므로 노동계급은 그것을 그냥 ‘인수’할 수 없고 오히려 분쇄해서 노동자 평의회에 바탕을 둔 새로운 국가로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오늘날에도 완전히 적절하다는 것이다. 사실, 투쟁 수준이 높아지고 격렬해질수록 이런 분석은 더 중요해지고 핵심적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