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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계급, 정체성

[재게재] 거대한 인종차별 반대 운동이 분출한 지금, 인종차별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맞서야 할지에 대한 모색이 많아지고 있다. 이에 영국의 혁명적 사회주의자 유리 프라사드의 2019년 글을 재게재한다. 이 글에서 프라사드는 인종차별에 맞선 투쟁에서 정체성 정치가 갖는 강점과 약점, 한계를 다룬다. (2020.6.15)
유리 프라사드는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당원이며, 국내에 아직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삐딱이들을 위한 마틴 루터 킹 가이드》, 《인종차별에 맞선 투쟁과 마르크스주의》 등 인종차별 문제에 관한 많은 글과 책을 써 왔다.
2019 세계인종차별 철폐의 날 공동행동 “모두의 목소리! 모두를 RESPECT!”가 서울 보신각 앞에서 열리고 있다 ⓒ조승진

정체성은 우리의 본질에 내재하며 중요한 물음을 던진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누구인가? 무엇이 나를 규정하는가? 나는 내가 누구와 함께라고 믿는가? 이 물음들만큼이나 중요한 다른 물음도 있다. 나는 무엇이 아닌가? 나는 내가 누구와 함께가 아니라고 믿는가? 이런 관념들이 인종·공동체·민족·국민 개념과 뒤얽히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우리는 정체성 덕분에 삶을 약간 통제한다는 면(혹은 자신의 어떤 부분을 강조할지 선택하고 자신이 중시하는 것을 부각하려는 욕망)만 보기 쉽다. 물론 자신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인식은 마땅히 자기가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정체성을 둘러싼 투쟁이 차별받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이로운 것은 아니다. 정체성을 둘러싼 투쟁은 다문화주의를 지지하는 운동들을 결속시킬 수 있지만, ‘백인의 권리’와 순수 혈통을 부르짖는 다문화주의 반대자를 고무할 수도 있다.

이처럼 정체성 개념이 좌파와 우파 모두에게 이용된다는 점은 정체성 개념이 결코 진공 속에서 구성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사회 자체가 인종차별적이므로 우리가 스스로를 어떻게 규정하느냐는 기껏해야 부차적이다. 우리가 아무리 자신의 어떤 면을 무시하거나 부차화하겠다고 마음먹어도,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무시하려는 바로 그 요소로]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할 것이다. 역으로 우리를 어떤 정체성, 예컨대 ‘진정한 영국인’으로 쳐달라고 요구해도, 어떤 사람들은 우리에게 그럴 자격이나 능력이 없다고 여길 것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는 인종차별적 편견이 만들어낸 범주로 스스로를 규정하게 된다. 스스로를 규정하는 데에서 그런 범주가 가하는 제약은 우리의 뇌리에 워낙 깊게 뿌리 박혀 있어서 마치 항구적 삶의 조건처럼 보인다. 그러나 인종 관념, 특히 인종 서열 최상층에 백인이 있다는 관념은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졌다. 《백인(白人)의 발명》이라는 획기적인 책에서 시어도어 앨런은 아프리카인들이 아메리카 대륙 버지니아 지방에 처음 도착한 1619년에는 ‘백인’이라는 개념이 없었다고 쓴다. 식민 시대의 기록에 따르면 그 후 60년 동안에도 마찬가지였다. 버지니아의 플랜테이션[대농장]에 끌려온 아프리카인들은 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식민지화 하는 유럽인들이 사고 파는 노예[였지 ‘흑인’이 아니]었다. 유럽인들은 스스로를 ‘백인’으로 여기지 않고 잉글랜드, 네덜란드, 아일랜드 등 출신지로 스스로를 규정했다. 당시만 해도 ‘백인’이라는 개념은 없었다. 백인 개념이 만들어지자 이 개념을 토대로 온갖 사회적 분열·통제 이데올로기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몇 세기 후 백인 개념은 인종 간 차이에 관한 [사이비] ‘과학’이 탄생하는 데 일조했다.

이처럼 스스로 선택한 것이든 남이 부과한 것이든, 인종 구분은 ‘자연적 질서’가 아니라 인종을 구별하는 체제를 반영한다. 인종차별이 없다면 피부색이나 머릿결은 전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인종 개념은 허구임이 과학적으로 입증됐지만 인종차별은 여전히 도처에서 활개친다. 이런 인종차별의 경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정체성 정치’라고 알려진 방식으로 조직된다. 정체성 정치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변화를 위해 투쟁하고자 특정한 차별을 경험하는 사람들을 모두 결집하는 것이다.

강점

‘정체성 정치’가 뜻하는 바가 언제나 분명한 것은 아니다. 이 말은 여러 상이한 정치적 관점을 포괄하는데 체제에 혁명적으로 도전하는 관점이 있고 그보다는 타협적인 관점도 있다. 조직 방식으로서 정체성 정치는 몇 가지 뚜렷한 강점이 있다. 바로 공통된 정의감과 분노로 사람들을 모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변화를 요구하는 투쟁에 참여하면, 자신들이 단결해 있다는 느낌은 더 강해진다. 그 때문에 운동 참가자 사이에 있는 목표나 전략의 차이가 가려질 수도 있다.

단순히 함께 모이는 것만으로도 차별은 개인적 어려움에서 집단적 경험으로 바뀐다. 개인은 차별을 경험하고 무력감을 느끼기 쉽지만 집단은 행동에 나설 잠재력이 크다. 이런 집단 행동은 연대의 기반이 된다. 여성·흑인·성소수자가 20세기에 얻은 큰 성과는 1960~1970년대 가장 심각한 차별을 당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조직되기 시작한 대중 운동의 결과였다. 물론 그 운동이 발전한 것은 더 넓은 층의 지지를 끌어내면서였지만 말이다.

그러나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운동에는 몇 가지 중대한 약점이 있다. 인종차별에 맞선 투쟁에서 그런 사례가 분명하게 나타난다. 이런 운동에 깔린 핵심 가정은 인종차별을 당하는 모든 사람, 최소한 인종차별을 당하는 특정 인종 집단의 모든 구성원들이 단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매우 유사한 형태의 차별을 겪더라도 그에 대한 해석은 사람마다 상이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에게 인종차별은 체제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본보기여서 그에 대한 분노가 정치적 행동으로 쉽게 이어질 수 있다. 이들 중 많은 수가 인종차별 경험을 계기로 처음으로 정치 집회와 시위에 참가하고, 급진적 세계관을 경청할 것이다. 그러나 인종차별로 어떤 사람들은 더 비관적인 결론에 도달하기도 한다. 차별이 인간 본성을 고스란히 반영한다고 여겨 차별을 끝낼 방법이 사실상 없다고 절망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피해자인 자신을 탓하는 보수적 편견에 빠져서, 더 열심히 노력하고 잘 처신하면 인종차별이 틀렸음을 입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영국 내무장관 사지드 자비드는 아시아계 영국인이라 분명 인종차별을 겪을 텐데 그는 차별을 당할수록 더 우경화하는 것 같다. 마치 자신도 인종차별적일 수 있음을 온 힘을 다해 보여 주려는 듯이 말이다. 이주민 배척을 의도적으로 조장하는 정치인이 인종차별 반대 운동의 일부라고 주장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상이한 관점에서 온갖 전략적 차이가 발생한다. 어떤 흑인이나 아시아인들은 대립을 지양하고 경제적·정치적 성공에 집중해야 한다고 본다. 이들은 우리의 목표가 소수인종 사람들을 높은 자리에 더 많이 보내는 것이라고 여긴다. 한편 어떤 사람들은 국가와 인종차별주의자를 직접 공격하는 거리 운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체성과 공통된 차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조직 방식은 정치적 차이를 가릴 수 있지만 오히려 더 두드러지게 할 때도 많다. 인종을 바탕으로 조직하는 운동에서는 ‘공동체 지도자’를 자처하는 능력 있는 중간계급 인사들이 득세하는 경우가 흔한데, 많은 경우 그들은 그들 나름의 어젠다를 추구한다.

정체성 정치는 차별을 개인적 피해로 여기게 해서, 사람들을 집단적으로 조직할 때에도 알게 모르게 집단적 조직의 효과를 떨어뜨린다. 개인적 피해를 가늠하려면 사회적 지위나 세계에 대한 경험을 ‘정상적인 사람’과 비교해야 한다. 그런데 ‘정상’이란 무엇인가? 미국 언론인 아사드 하이더는 저서 《정체성 착각》에서 ‘정상’은 백인-중산층-남성과 동일시된다고 주장한다. “주변적·종속적 집단의 요구를 정체성 정치로 표현해, 백인 남성 정체성에는 중립성·일반성·보편성이 부여된다. … 이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으면, 유색인종 등 피억압 집단은 부르주아적 남성우월주의 이상에 편입시켜 달라는 식으로 정치적 요구를 표현할 수밖에 없다.”

개인의 피해를 기준으로 불평등 문제를 제기하면 투쟁은 체제 편입을 추구하게 되고, 우리를 부당하게 대하는 독특한 방식을 하나하나 성토하게 되면서 초점이 미시적 차별로 간다. 그러다 보면 문제의 중심은 점점 ‘나’가 된다. ‘나는 승진해야 마땅한데 왜 못했지?’, ‘나는 왜 이사회에서 제외됐지?’처럼 말이다. 이런 지극히 협소한 기준으로 보면 인종차별 반대 운동의 성공은 돈으로 측정된다. 세계 10대 아시아인 부자, 세계 10대 아프리카계 권력자 같은 목록이 수도 없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미국의 흑인 혁명가 앤절라 데이비스는 2019년 초 런던에서 열린 세계여성대회에서 연설하면서, ‘감옥-산업복합체’[군산복합체에 빗댄 용어]의 상당수 경영자가 여성임을 지적했다가, 청중 일부가 이를 환호할 일로 여긴 것에 경악했다. 데이비스가 하려던 말은 인종차별과 폭력으로 얼룩진 사설 교도소의 수장이 여성이라는 사실로 여성 해방을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영국 인종차별 반대 투쟁의 역사를 보면 해방에 대한 집단적 요구와 개인적 요구 사이의 긴장을 이해할 수 있다. 1970~1980년대에 ‘흑인’이라는 말은 협소하게 인종 정체성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인종차별에 시달리는 모든 사람을 단결시키려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쓰였다. 이런 용법은 아시아인·아프리카인·카리브인과 그들이 영국에서 낳은 2세를 모두 포괄한다는 중요한 장점이 있었다. 또 인종차별에 맞서 싸우고자 하는 그 외의 많은 사람들을 하나의 기치 하에 모은다는 장점도 있었다. ‘흑인’은 이주 규제와 인종차별적 사법 체계 같은 국가 기구의 인종차별이나 거리의 인종차별주의자, 특히 파시스트 국민전선(NF)과 그들이 고무한 깡패들에 맞서 투쟁하는 사람들을 묶는 범주였다.

1981년 브릭스톤 봉기가 일어나 영국 도시 곳곳에서 항쟁이 벌어지자 영국 정부는 흑인 중간계급의 성장을 지원해서 정부와 흑인 노동계급 사이에 완충 지대를 만들려 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저항자들 사이에 분열의 씨앗을 뿌렸다. 정부는 흑인 정치 지도자와 기업가들을 회유하기 시작했고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갖가지 ‘소수 민족’ 사업들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자칭 공동체 지도자들과 그들이 주도하는 사업들은 정부의 자금과 인정을 두고 경쟁을 벌이며 정부의 손에 놀아났다. 정부가 평등이라는 미명 하에, 한때 ‘흑인’으로 포괄된 여러 인종 집단에게 돈을 뿌리자 단결은 산산조각 나기 시작했다. 아시아인 단체와 카리브인 단체가 회관이나 청년 클럽 같은 사업에 쓸 자금을 두고 서로 경쟁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인종 구분은 더 자잘한 범주로 쪼개졌다.

표현

한때 단결했던 사람들이 점차 서로를 경쟁자로 봤다. 그리고 많은 지도자가 공동체의 유일한 진정한 대변자를 자처했다. 한편, 야심 있고 영리한 자들은 지방의원이 되거나 정부가 돈을 대는 기구의 고위직에 앉았고, 소수 엘리트는 더 높은 자리에도 앉았다. 보수당은 일부 정체성 정치 신봉자들이 체제 분쇄가 아니라 체제 편입을 원한다는 것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듯했다.

오랫동안 마르크스주의는 인종차별에 맞선 투쟁에서 더 급진적인 관점을 찾는 사람들에게 매력을 주었다. 마르크스주의는 차별이 개인·공동체·인종 간의 불평등한 권력 관계에서 비롯한다고 보지 않는다. 마르크스주의는 인종차별이 구조적이라는, 즉 자본주의에 내장돼 있다는 주장에서 출발한다. 인종차별은 서로 경쟁하는 계급들의 위계로 조직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분열 지배해야 할 필요성에서 비롯한다.

인종차별은 빈부를 떠나 사회 전체를 분열시키지만, 더 중요하게는 노동계급을 분열시켜 사용자와 부자들에 득이 된다. 경제학자 마이클 라이시는 1970년대 미국의 소득 분포를 분석해 흑백 간 소득 격차가 클수록 백인 간 불평등도 심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다른 수많은 연구들도 인종차별이 흑인 노동자에게 당연히 훨씬 큰 고통을 주지만 백인 노동자의 이익 또한 해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인종차별의 기원과 기능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이해에는 여러 함의가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인종차별에 맞선 투쟁에 백인 노동계급을 끌어들일 수 있고 끌어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종차별적 편견은 단지 소득 불평등을 낳는 데 그치지 않고 삶의 모든 측면으로 침투한다. 교육 제도는 흑인 아이들을 거듭 좌절시키고, 사법 제도는 체계적으로 흑인들을 죄인으로 몰고 처벌한다. 뿐만 아니라 흑인에 대한 고정 관념은 사회 각계 각층에 끈질기게 남아 있으며, 시민권은 언제든 빼앗을 수 있는 특전으로 취급된다. 이런 그칠 줄 모르는 공격의 목적은 분열을 심화시키고 ‘백인 노동계급’을 ‘타자(他者)‘와 분리시키는 것이다.

인종차별이 분열 이데올로기 구실을 하려면 사회의 최고 권력자들, 즉 지배계급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인종차별적 관념도 그 나름으로 대중의 의식 속에 퍼져서 자체적인 생명력을 지녀야 한다. 노동자들을 인종차별에 물들게 하려면 그들이 겪는 고통과 어려움을 그럴싸하게 설명해야 한다.

이 비참한 상태를 벗어날 유일한 방법은 인종차별이 지탱하는 체제를 끝장내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노동계급을 주목한 것은 노동계급만이 자본주의를 전복할 물질적 이해관계와 잠재력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전복이 필연적이라고 보지 않았다. 분열된 노동계급은 이 과업을 수행할 수 없다고 마르크스는 봤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영국 노동자가 아일랜드 노동자를 차별하는 것이 “영국 노동계급을 무기력하게 하는 비결”이라고 묘사했다. 마르크스는 노동계급을 체제에 묶어 두는 후진적인 관념을 깨부수는 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투쟁이라고 했다.

투쟁은 캠페인·파업·시위의 형태로 벌어지곤 한다. 이런 투쟁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을 확신하고 다른 사람들을 속죄양 삼는 주장에 귀기울이지 않게 된다. 그러나 노동계급의 전투성은 엄청난 가능성을 열어 주지만 인종차별 문제를 자동으로 해결하지는 못한다. 그러려면 특히 노동자들 사이에서 편견을 분쇄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하며, 행동과 끊임없는 사상 투쟁을 결합해야 한다. 그 임무는 전적으로 사회주의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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