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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 시위대와 중도계 시위대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거리로 나갔었나:
노동계급은 여야 모두로부터 독립적이어야

조국 논란이 우파와 중도 세력 간 거리 동원 대결로 일어나고 있다. 이런 양상이 공식 정치 내 두 주류 정당 간 진영논리를 계속 강화시키고 있다.

발단은 조국 법무부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에 항의해 친문 인사들이 주도해 열린 9월 28일 서초동 “조국 수호, 검찰 개혁” 집회였다.

이 집회를 공식 정치에서의 우위를 점하는 데 이용하려고 문재인과 친문 정치인들은 참가 규모를 여러 곱절 뻥튀기하고, “제2의 촛불”, “국민의 뜻” 운운하며 검찰을 비난하며 수사 검사 고발 등 수사를 방해하고 있다. 덕분에 조국 장관의 아내 정경심 교수는 포토라인에 서지 않고 비공개 조사를 받았다.

우파도 반격에 나섰다. 10월 3일 자유한국당 집회를 중심으로 수십만 명이 광화문 광장과 사거리 일대를 메웠다. 60대 노년층이 다수였지만, 서초동보다 더 많이 모였다. 고무된 우파는 심지어 “문재인 퇴진”을 주장했다.

이에 자극받아 10월 5일 서초동 집회도 더 커졌다. 우파의 극성스런 동원에 반감과 위기감을 느낀 사람들이 가세한 듯하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정경심 교수가 소환조사를 받는 날이었다.

공식 정치의 분열

민주당과 한국당은 모두 현 국면을 차기 총선·대선의 전초전으로 본다. 박근혜 정부가 중도 퇴진으로 끝난 이후 벌어진 공식 정치 양극화의 틈이 더 벌어지고 있다.

지배계급은 박근혜 정부를 헌법적 수단으로 중단시켜, 거대한 퇴진 운동을 공식 정치 안으로 수렴시키고 상황을 ‘정상화’하려 했다.

그 덕분에 신뢰를 회복한 듯했던 자본주의적 민주주의가 다시 불안정해지고 있다. 청와대가 적폐세력 중 가장 미움받는 소수의 숙청에 앞장서 온 검찰과 갈등을 빚고, 국회·법원·검찰 등이 모두 대중의 불신을 받고 있다.

권력형 부패를 저지른 정부를 대중 운동이 몰아낸 덕분에 집권할 수 있었던 정부에서 신흥 권력형 부패가 드러난다면, 정부 자체는 물론이고 공식 정치의 불안정도 더 심화될 것이다.

이런 공식 정치 양극화와 불안정 심화는 본질적으로 지배계급이 세계 경제 위기와 제국주의 강대국 간 갈등 속에서 한국 자본주의가 처한 난관들에 대한 해법을 못 찾고 있는 것에서 비롯한다. 반도체 등에서 미·중 간, 한·일 간 무역 갈등 등에 얽혀 있고 미국 시장에서 LG와 기술 소송전을 벌이는 SK 회장 최태원은 9월 말 이렇게 토로했다. “회장이 된 20년 동안에 이런 종류의 지정학적 위기는 처음 … 지정학적 리스크는 30년은 갈 것[이다.]” LG 회장 구광모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위기”라고 했다.

그래서 지배계급도 초조하고 신경질적인 듯하다. 그들의 정치인들은 상호 부패 폭로, 누가 더 뻔뻔한지를 경쟁하는 식(막말, 내로남불)의 진흙탕 싸움을 벌인다.

경제 대책 문제는 물론이고 미국·일본·중국·북한을 대하는 문제 등 거의 모든 쟁점에서 서로 불신하고 분열해 있다. 노동 문제를 제외하면 말이다.

최근 기업인들은 공개적으로 문재인을 향해 “경제는 버려진 자식”(상공회의소 회장 박용만), “경제가 이념에 발목 잡힌 상황”(경총 회장 손경식)이라고 불평했다. 상공회의소는 탄력근로제 개악 등 22개 법안을 조속히 입법해 달라고 국회에 ‘건의’했다.

사실 경제적·지정학적·정치적 위기가 심화되자 문재인은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을 통해 검찰 등 권력기관을 단속하려다가 검찰의 반발과 우파의 반격을 맞은 것이다.

우파가 얼토당토않게 문재인을 좌파 독재라고 비난하는 건 그만 진보 염원 지지층 눈치보기를 끝내라는 압박이다. 그래서 (본지가 거듭 강조해 왔듯이) 문재인은 위기 탈출을 위해 기업주와 중도우파층을 붙잡으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문재인은 10월 4일 경제단체장들을 청와대로 불러 비공개 오찬을 함께했다. 10월 8일에도 국무회의 발언 공개를 통해, 기업 지원을 위한 규제 완화와 노동법 개악을 거듭 강조했다. 한반도 평화의 조정자가 되겠다면서 군비를 계속 늘리고, 국군의 날에는 북한이 경계하는 전투기 F35A 비행으로 무력을 과시했다.

기업주들의 공개 불만과 입법 요구를 의식해 두 주류 정당들은 이번 주부터는 장외 대결 확대에 다소 신중한 모습이다. 5일 집회에 민주당 정치인들이 참석을 자제한 것이나, 한국당이 12일 주말 당 주최 집회를 취소하는 대신 9일 우파 집회에 개별로 참석한 것은 국회가 제 구실을 하라는 기업주들의 요구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반 문재인 정부와 검찰의 2년 반 유착에 금이 갔다 ⓒ출처 청와대

검찰은 본질적으로 개혁이 아니라 해체 대상이다

10월 8일 오후 조국 법무부장관은 “검찰 개혁이 시급하고 절실하다는 국민의 뜻”을 받들겠다며 검찰 개혁 과제를 발표했다. 핵심은 검찰의 직접수사 축소다. 그밖에도 피의사실 공표 금지, 검찰 소환조사 최소화 등이 포함돼 있다.

직접수사 축소를 위해 특별수사부를 축소(일부만 남기고 반부패수사부로 명칭 변경)하고 검사 파견을 최소화하겠다고 한다. 특수부가 중요 수사를 할 때는 일선 지방검찰청에서 검사들을 파견받아 수사 인력을 보강해 왔다.

친동생이 검찰에 강제 구인되고, 처가 소환조사를 받는 시간에 자신의 일가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특수부를 축소하고 소환조사를 줄이겠다고 발표하는 모양새가 볼썽사납다.

검찰의 직접수사 축소는 문재인이 진작부터 내놓은 검찰 개혁안의 핵심이었다. 사실, 검찰이 역량을 동원해 벌이는 직접수사는 모든 정치인들이 두려워하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여야 둘 다에게 유(불)리하게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은 적폐 청산 명목으로 윤석열이 이끄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가 방대한 인력으로 박근혜·이명박 등을 수사할 때는 검찰을 찬양했다. 이 수사 덕분에 문재인 지지율도 도움을 받았다. 검찰은 또한 청와대 민간인 사찰 의혹에서 조국을 무혐의 처분했었다. 결국 문재인은 윤석열을 극찬하며 검찰총장에 파격 임명했다.

그러나 검찰의 칼끝이 자기 사람들을 겨누자 검찰의 직접수사 축소를 ‘개혁’이라며 다시 내놓은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임기 첫해에 검찰에게 여당을 포함해 성역 없이 불법 대선자금을 수사하라고 했었다. 그때 문재인과 친노 정치인들도 타격을 받았다. 이들은 그 일로 오히려 검찰 개혁의 명분이 실추됐다고 종종 후회했다.

그런데 정작 문재인 정부의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서도 “부패범죄·경제범죄·공직자범죄·선거범죄·방위사업비리” 등에 관해서는 검찰의 ‘직접수사’가 허용된다. 이미 검찰에 매우 타협적인 것이다. 조국의 발표안도 윤석열이 발표한 개혁안과 대동소이하다.

무엇보다 공수처가 기존의 검찰과 경찰을 견제한다면, 공수처 검사들은 누가 수사하고 견제하느냐는 물음이 던져진다. 별장 성접대 의혹의 김학의 전 법무차관(검찰)이나 버닝썬 의혹의 윤규근 총경(경찰)에 대해서 검찰·경찰 모두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던 일을 보면, 당연히 나올 의문이다.

체제 수호 기관

검찰·경찰 등이 자본주의 국가에서 핵심 권력기관인 것은 이 기관들이 아래로부터의 도전에 맞서 체제를 수호하는 억압 기능을 담당하는 기구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선출된 정부에 어떤 때는 충성하고, 어떤 때는 그와 충돌하는) ‘정치검찰’의 진정한 의미다.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결합해 그런 힘을 발휘한다면, 경찰은 수사권과 치안·경비 기능을 맡아 그렇게 한다.

이런 본질적 성격 때문에 설령 기능 조정·이관으로 한 기관을 약화시킨다고 해도 이런 기능들 자체가 자본주의 국가 안에서 사라지거나 축소될 수 없다. 검찰에서 수사권을 떼어 낸다고 해도, 경찰이나 특별경찰 등 새로운 기관들의 권력이 그만큼 강화될 뿐이다.

조국이 2018년 발표한 ‘권력기관 개혁안’을 사례로 들 수 있다. 구체적으로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 폐지 건이었다. 조국은 대공수사권 폐지의 대안으로 경찰 안보수사처 신설을 내놨다. 애초에 국정원과 연계된 경찰 보안수사대가 국정원 경력직을 채용해 계속 합법적으로 대공 수사를 이어간다는 것이다.

사실 그조차 실행되지 않았다. 국정원이 민중당 쪽에 끄나풀(첩자)을 침투시킨 일, 문재인 정부에서도 국정원 특수활동비가 늘어난 일 등이 버젓이 벌어졌다. 최근 국정원 첩자 건을 최초 보도한 〈머니투데이〉 기자는 보도 전에 관련 제보를 청와대에 전달했으나 묵묵부답 반응이어서 보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미디어 오늘〉).

대공수사권 이전이나 검경 수사권 조정은 모두 사실상 경찰 수사권 강화 조처다. 경찰의 본질(부패와 만행)과 그 역사를 볼 때, 이것이 도대체 어떤 의미에서 진보적 개혁이겠는가. 최근 국정감사에서는 지난해 공무원이 저지른 범죄의 거의 절반이 경찰청 공무원 짓임이 공개됐다. 강력·절도·폭력·지능 등에서 모두 월등히 앞섰다.

또 다른 사례는 검찰 공안부 폐지 건이다. 이 계획에 따라 최근 이름을 공공수사부로 바꿨다. 하지만 이름만 바뀐 채 노동사건, 집단행동 사건은 그 부서의 소관이다.

검찰의 체제 수호 성격은 노동자가 피해자인 사건만 봐도 알 수 있다. 가령 2017년 산재 사망자만 1957명이나 됐는데, 기소된 건은 185건이고 그 흔한 구속기소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부당노동행위 사건의 기소율은 일반 형사범죄 평균인 45.7퍼센트의 5분의 1에 불과한 9.5퍼센트에 불과하다.

어리고 힘없는 서민층 소년들을 고문하고 협박해 자백을 받아내어 살인죄로 억울한 옥살이를 시킨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 사건이나 전북 완주 나라슈퍼 사건을 봐도 검찰의 계급 차별을 보여 준다.(최근 경기 남부 연쇄살인 사건도 그런 일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런 검찰 수사의 계급 편향은 검찰 개혁안 어디에서도 거론되지 않는다. 법원의 고위 판사와 검찰 고위 검사들은 (가족 배경과 혼인 관계 등을 통해) 평균 재산이 25억 원이 훌쩍 넘는 자산가들이다. 게다가 이들은 퇴직 후 대기업과 대형 로펌 등으로 옮기면서 전관예우를 누린다. 따라서 사법 과정 전체에서의 계급 편향성은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는 바뀔 수 없다.

고위 검사·판사들은 자본주의 지배계급의 일부다 표 중 맨 아래 1가구 순자산의 중간값은 전체 조사 대상 중 50퍼센트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값을 뜻하는 용어. 소수 부유한 사람들 때문에 전체 평균이 올라가므로 실제 다수의 일반적 삶을 묘사하기엔 부족함이 있어서, 평균과 함께 중간값도 포함했다 ⓒ일러스트 김준효

한편, 검찰이 사법 절차인 형사소송절차(수사-기소-재판-형벌)의 일부이므로 검찰 개혁을 사법 개혁의 일부로 접근할 수 있다. 되도록 불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하거나 검·경 수사 과정의 진술(조서)보다는 재판에서의 진술을 우선하기, 배심제 도입, 노동계나 좌파에 대한 편향적 수사와 기소·처벌 완화하기, 재심 기회 확대 등등.

그러나 이 과정을 지배하는 검사, 판사, 변호사의 상층 계급 편중성은 바뀌지 않는다. 심지어 현대차 비정규직 판결처럼 대법원에서 어쩌다 한 번 노동 친화적인 판결이 나와도 행정부가 기업주들을 강제하지 않으면 그만이다.(게다가 사법 과정은 법 집행 과정의 일부인데, 애초에 나쁜 법은 사법 개혁으로 해결할 수도 없다.)

진실이 이런데도, 조국 일가의 위선과 특권을 묵인하자는 위선적 ‘검찰 개혁’ 기치가 진보적 성과로 이어질 리가 없다.

이처럼,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억압기구로서의 성격을 완화시킨다는 의미에서 검찰 개혁은 어느 면으로 봐도 공상이다. 오로지 국가기관 바깥에서 노동계급이 독립적으로 대중 투쟁을 벌이며 체제를 위협할 때만 그것의 간접적·정치적 효과로서 부분적 절차 개선이나 일시적 견제가 가능할 것이다.(결국엔 민주적 노동계급 기관들에 의해 다른 자본주의 국가기관들과 함께 해체돼야 한다.)


2004년 노무현 탄핵과 지금의 차이

적잖은 사람들이 조국 일가에 대한 전방위적 수사, 우파의 공세를 2004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 탄핵과 유비하는 주장을 한다.

서초동 집회의 인기 팻말이 앞면에는 “이번엔 울지 말자, 이번에 지켜내자, 우리의 사명이다”라고 쓰여 있고, 뒷면에 노무현·문재인·조국의 얼굴이 그려진 것도 이런 추론과 관계 있다.

그러나 조국을 둘러싼 갈등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당시 한나라당(지금의 한국당)과 민주당(노무현이 열린우리당을 만들 때 분리한 당)이 국회에서 노무현을 탄핵한 것은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반동적 의회 쿠데타였다.

당시에 사람들은 우파 국회의원 200명이 매우 사소한 일로 맘에 안 든다며 직접 선출된 지 1년 된 대통령을 제거하도록 내버려 둔다면, 1987년 항쟁으로 얻어낸 대통령 직선제 같은 민주적 절차가 무력화되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순식간에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25만 명이 “탄핵 반대, 민주 수호” 시위를 벌인 것이다. 국민 4분의 3이 이 투쟁을 지지했다. 이는 당시 노무현 지지율의 두 배였다. 우파는 역풍을 맞고 완전히 찌그러졌다. 민주노동당도 총선에서 두드러진 성적 향상을 거뒀다.

지금은 문재인 대통령의 제거가 문제가 되고 있지 않다. 조국을 장관에서 해임하라고 요구할 뿐이다. 정권이 우파 쿠데타로 좌지우지되는 위급한 상황이 아닌 것이다.

더구나 조국은 개혁성 때문이 아니라 계급적 특권 행사와 위선적 언행, 권력형 부패 의혹 때문에 지탄을 받고 있다.

문재인 지지율이 하락하는 것도 우파의 위선적 포퓰리즘 선동이 먹히는 것 때문인데, 우파는 교활하게도 계급적 특권에 대한 불만에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파로부터 문재인과 조국을 변호하는 것이 아니라 조국을 비판하고 폭로하면서 계급적 불만을 대변해야 오히려 우파의 강화를 막을 수 있다.

2004년 노무현 탄핵 반대 시위는 반동적 의회쿠데타를 막고자 한 것이다 〈노동자 연대〉 자료 사진

우파 포퓰리즘의 위험

정경유착과 권력형 부패의 원조이자 군사독재 정권의 후예인 우파 정치인들이 독재 타도, 특권과 부패 처벌을 외치는 것은 역겨운 일이다.

조국 임명에 실망한 층이 다수이고 문재인 지지율이 하락해도 한국당 지지율이 쉽게 오르지 않은 이유다.

그런데도 우파는 중도파 집권세력의 계급적 특권과 위선을 쟁점 삼아 서민 대중을 동원하는 포퓰리즘적 행태를 보였다.

이런 우파 포퓰리즘이 통하는 것은 장년·노년층에서도 (새삼스런 말이지만) 계급 불평등과 불만이 심각하다는 뜻이다.


촛불의 정치적 분화

서초동 집회 참가자들은 반우파 정서가 공통 분모일 것이다. 민주당과 친문 정치인들은 바로 이 점을 이용해 우파 야당들과의 권력투쟁에 이들을 동원하고 있다. 한국당과 적폐 세력의 복귀를 막으려면 문재인 정부를 지지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우파 집회가 감히 ‘촛불’을 참칭하고, 서초동 집회가 태극기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서로의 상징을 훔쳐오는 것은 두 집회에 지속적인 확장 동력을 창출할 진정한 대의와 명분이 없음을 보여 준다. 둘 다 지배계급에게 인정받고 투표를 위해 중도층에게 호소력을 발휘하려 한다.

뿐만 아니라 상징 훔치기는 우파(박근혜) 정부 반대로 모였던 촛불의 정치적 분화를 보여 준다. 박근혜 퇴진 운동 때도 박근혜 지지 태극기 집회로부터 태극기를 되찾아야 한다며 태극기를 들고 촛불집회에 참가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대중적 호응을 전혀 받지 못하고 조용히 사그라들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서초동 집회 주최 측이 이를 준비했다.


대안은 무엇인가?

애석하게도 노동자 운동의 대표적 조직들인 민주노총, 정의당, 민중당의 지도자들이 진영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민중주의(좌우와 계급을 초월한 국민 연합) 전략을 추구하는 바람에 문재인 정부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한 것이다.

이 지도자들은 민주당과 동맹을 해서 한국당의 재집권을 막는 한편, 선거제 개혁을 이용해 선거에서 성장하겠다는 계산일 것이다. 아마 그렇게 해서 연립정부에 유리한 구도도 만들고 싶을 것이다.(다른 한편으로는 정부를 위기에서 구해 준 대가로 노동계 현안 해결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헛된 계산도 있을 것이다.)

양당 구도와 강요되는 진영논리 속에서 군소 진보정당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고 해도 자신들의 지지 기반에 책임지는 정치를 하지 않는 것은 문제다.(※ 관련 기사: 본지 299호 민주당 vs 한국당 식 진영논리가 해로운 이유, 조국 편든 정의당 비판)

민중주의적 국민 연합 전략에서 비롯하는 두길보기 정치는 단지 실책인 정도가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노동운동 자체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민중주의 전략은 진보적 개혁의 진정한 동력을 약화시켜 오히려 반동적 우파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첫째, 민주당 정부의 개혁 배신에 분노한 수백만 명을 대변하길 거부하는 것이다. 정치적 경험이 적은 분노한 청년 세대 중 일부가 정의당 등의 태도를 보고는 진보·좌파 모두가 그런 걸로 여기고 “무당파” 또는 심지어 우파 쪽으로 후퇴하고 있다. 학생들의 조국 임명 항의 집회도 주최측의 정치만 보며 거리를 두지 말아야 했다. 오히려 집회에 단순히 참가하거나 암묵적 지지를 보내는 보통의 학생들의 정서에 공감해야 했다.

둘째, 사회 전반에서 계급 양극화가 벌어지는데, 이것이 공식정치에서 우파와 중도파의 진영 대결로 대변된다면, 양극화가 제대로 대변되지 않는 것이다. 이는 우파에게 유리하다.

셋째, 민주당과 친문 정치인들은 정의당 등을 이 국면에 이용하고 총선에서 지지는 자신에게로 결집해 달라고 호소할 것이다. 심지어 패스트트랙 선거법이 반드시 통과된다는 보장도 없다.

문재인 정부의 개혁 배신에 대한 분노를 대변하고 정부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 2018년 6월 30일 비정규직철폐 전국노동자대회 ⓒ조승진

사실 지금 우파와 중도파 각각의 대중 동원에 대응할 노동자 투쟁 동원이 어려워 보이는 것은 민주노총 지도부가 2년 전부터 문재인에 정면으로 맞서는 투쟁을 회피해 온 결과다. 그런 소심한 방식으로 이미 운동의 잠재력이 억제돼, 현 정세에서도 주변부로 밀려나, 정세의 종속 변수 취급을 받고 있다.(그런데 일부 좌파들은 조국 대전이 저들만의 싸움이니 당면한 노동자 투쟁에나 집중하자는 식으로 핵심적인 정치 문제를 회피해 결과적으로 노동계 지도자들의 약점에 침묵한다.)

좌파가 조국 논란에서 취해야 할 입장을 공식화(정식화)하면, 한국당에 반대해 민주당을 편들어야 한다는 진영논리를 거부하고 정치적 독립성을 추구해야 한다. 좌파적이고 투쟁적인 양비론을 취해야 한다. 한국당의 위선적인 조국 사퇴 요구를 지지하지 않으면서 공상적인 검찰 개혁 요구도 지지하지 않아야 한다. 조국 등 문재인 정부의 위선을 폭로하며, 정부의 경제 위기 고통 전가 공격에 맞서 독립적인 노동자 투쟁을 확대해야 한다. 이 좌파적·투쟁적 양비론은 물론 우파에 반대함을 먼저 분명히 한다는 점에서 차등적이다.

특히, 조국 본인의 비리 연루나 권력형 부패 사실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우파와 똑같이 조국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우파를 혐오하는 대중의 오해를 살 것이다. 그러나 권력형 부패에 조국 본인이 연루된 것이 드러난다면 조국 사퇴를 요구하는 것으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부정부패가 드러났음에도 조국을 비호한다면 평등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저버렸다 해서 엄청난 불신을 받게 될 것이다.

이런 공식은 두 진영 가운데에 서서 민감한 논쟁을 회피하는 회색 양비론과는 다른 것이다. 우파를 분명히 반대하면서도, 중도파 정부의 왼쪽에서 현재 권력을 쥐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 맞선 아래로부터의 투쟁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친자본주의 정당들로부터 노동계급 운동의 정치적 독립성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거듭 노동개악을 강행하려고 하는 상황에서 정부에 맞서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올해 초에 보인 잠재력에 비하면 투쟁들이 파편적으로 벌어지며 존재감을 못 드러냈지만, 노동운동의 사기는 괜찮은 편이고 진보적 정서도 여전히 강하다. 자본주의 자체의 위기로 지배계급이 분열해 있는 만큼 그들에게 책임을 물으며 싸우기에도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