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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앞둔 21대 국회 개원 :
민주당이 개혁에 나설까

21대 국회 개원일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민주당이 ‘슈퍼 여당’이 됐으니 21대 국회는 이전 국회와는 달리 우파 야당의 방해 없이 개혁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들이 나온다.

5월 초 민주당은 “개혁 과제”를 완수할 것이라고 했는데 실제 강조한 것은 검찰 개혁이었다. 민주당의 계획은 검경 수사조정권을 더 확실히 분리하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본격 가동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계획은 기존에 검찰에 집중됐던 권한을 조금 줄이고, 또 다른 억압 기구인 경찰에 그 일부를 넘기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이를 통해 국가 기관 간 권력을 분산시키고 통치 효율화를 꾀하려는 것이다. 또한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고, 울산시장 선거 개입 등 총선 뒤로 일단 미뤄졌던 청와대 연관성을 의심받는 정치 부패·비리 의혹 수사에도 압력을 미치려는 듯하다. 이런 일들은 노동계급에게 필요한 진보적 ‘개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혁신 성장과 규제 완화

오히려 민주당은 코로나19를 내세워서 규제 완화를 정당화하고 있다. 예컨대 민주당은 코로나19 이후 대책으로 비대면 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 완화를 언급하고 있다.

최근 민주당의 새 원내대표 김태년은 새 산업에 맞는 “제도개선과 규제 혁신”을 말했다. 김진표는 “규제 완화는 21대 국회의 소명”이라며 개원하는 대로 규제 완화 입법에 착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장 이낙연도 ‘한국판 뉴딜’ 성공을 위해 바이오헬스 산업 강화가 병행돼야 한다고 했다. 올해 초 정부는 ‘바이오헬스 핵심규제 개선방안’을 발표했었는데, 의료 영리화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런 방향은 이들이 이번 총선에서 “혁신 성장”을 제1과제로 꼽은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번에 민주당은 4차 산업혁명을 명분 삼아 제조업의 경쟁력 강화와 시스템반도체·전기수소차·바이오헬스 육성을 혁신 성장을 실현할 핵심 정책으로 내세웠다. “경제 활력”을 위해 여러 규제를 완화하고 기업들에게 세제 지원을 하겠다고도 했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촛불의 눈치를 살펴 국정 100대 과제 중 첫째로 적폐 청산을 내세웠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경제 과제에서 소득 주도 성장, 공정 경제, 혁신 성장 순서로 배치했었다.

물론 문재인 정부 집권 3년을 돌아보면, 진짜 강조점은 오히려 규제 완화와 노동 유연화를 중심으로 하는 혁신 성장에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시간 단축 유예, 최저임금 인상 무력화, 말뿐인 공공부문 정규직화, 의료 영리화, 안전 관련 규제 완화 등을 추진했다. 그럼에도 개혁 염원 지지층이 이탈할 것을 우려해 소득 주도 성장과 공정 경제가 정부의 3대 경제 정책이라고 덧붙였는데 코로나19와 경제 위기의 이중 위기 앞에 좀 더 노골적으로 본심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총선 직전인 4월 8일에 열린 대통령 주재 4차 비상경제회의에서도 수출 활력 제고방안으로 유해화학물질 시설 인허가 단축, 신규화학물질 시험자료 제출 생략 품목 확대 같은 각종 안전 규제 완화 조처가 발표됐다. 5월 12일 열린 국무회의에서도 문재인은 “규제 자유특구, 규제 샌드박스 등을 통해 규제 혁파의 속도를 내고 있으나, 더욱 속도감 있는 업무 추진이 필요”하다면서 규제 완화에 더 속도를 내야 한다고 했다.

문재인이 이렇게 채찍질을 해대는 것은 세계경제 침체와 한국 경제 위기가 날로 심각해지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계경제가 1930년대 대불황 이후 최악의 침체를 맞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은 마이너스가 되리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래서 정부와 여당은 더욱 확실하게 기업주의 이윤 보호의 편에 서려고 한다. 이들은 한국 자본주의를 위기에서 구출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을 삼고 있고, 이를 위한 각종 ‘개혁’을 추진하려 한다. 민주당의 개혁이 노동계급에게 이롭지 않은 것 투성이인 까닭이다.

총선에서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국가의 구실을 강조했지만 정작 공공의료 강화엔 소극적인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선거 이후에는 방역을 완화하면서 개인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무엇보다 공공의료 강화를 외면하고 있다. 당장 필요한 공공병상 확대는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그나마 약속한 감염병 전문 병원 설치도 불길하게도 누가 운영하는 것인지를 명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참에 감염병 연관 산업을 더 키우겠다고 했다.

자신들이 어긴 공약 재탕

총선 압승 직후, 민주당 지도부는 개혁에서 신중하고 야당과 협치를 해야한다면서 2004년 경험을 언급했다.

이것이 개혁 후퇴를 뜻한다는 것이 5월 20일 국회에서 드러났다. 민주당은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전 국민 고용보험 적용대상에서 제외하기로 미래통합당과 합의했다. 민주당의 총선 공약에는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과 사회보험 적용 확대(고용보험 적용확대 포함)도 있었는데 개원 전부터 헌신짝이 되고 말았다.

이번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은 노골적으로 최저임금제도를 더 개악하겠다, 유연근로제를 확대하겠다고 하면서 노동 개악을 노골적으로 주장했다. 그 탓에 “노동 존중”을 말하고 한국노총과 정책 협약도 맺은 민주당이 좀 더 친노동적으로 비쳐졌다. 하지만 기업주의 부담 줄이기를 더 중시하는 데서는 합심한 것이다. 결국 민주당의 “노동존중 사회”도 문재인의 대선 공약이 그랬듯이 공염불에 그칠 것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노동자 해고를 모른 척하는 것도 한 예가 될 것이다. 민주당은 정리해고 요건 강화를 공약에 포함시켰었다.(사실 쉬운 정리해고는 김대중 정부에게 원죄가 있다.) 그러나 오히려 문재인 정부는 5월 18일 아시아나 본사 앞에 설치한 아시아나케이오 해고노동자 농성장을 강제 철거해 버렸다. 이 노동자들은 항공업 위축을 이유로 한 희망퇴직과 무기한 무급휴직 강요에 응하지 않았다가 해고됐다. 정부는 항공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선정했지만 기업들이 쉽게 무급휴직을 추진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줬다.

얼마 전 이천 물류창고 화재 참사가 벌어지자 민주당은 재발 방지 대책을 약속했지만, 작업중지권 강화와 중대재해기업처벌, 안전 규제 강화 등 노동자들의 오랜 요구를 외면한 것은 정부·여당이었다. 이들이 기업주의 이윤 보호를 노동자들의 안전보다 우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21대 국회에서도 노동 안전 관련 법안들이 순탄하게 통과하기 쉽지 않을 공산이 크다.

민주당의 산재 대책은 산재 다발 대기업에 대해 일정 기간 산재 보험료 할인을 조정하고, 산업 안전 교육 후 산재가 감소한 사업장에 산재보험료를 할인한다는 것 등으로 인센티브와 페널티를 활용한다는 것인데, 산재 후진국에서 이런 대책은 크게 미흡하다.

집권 내내 말뿐인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로 노동자들의 저항에 직면해 놓고도, 어떤 반성 없이 상시·지속적 업무, 생명·안전 직접 관련 업무 정규직 고용 원칙 확립을 공약한 것도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민주당은 ‘정부가 직접 고용해 정규직화’하라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핵심 요구를 수용하지는 않고 정규직 고용 원칙이라고만 표현해 여지를 뒀다. 믿을 수 없는 공약(空約)인 것이다.

민주당은 “포용”이라는 이름으로 상생형 지역일자리도 확산하겠다고 하는데, 광주형 일자리에서 보듯이 이는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대폭 낮춘 일자리를 강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이번 총선 공약에서도 좋은 말들 뒤에 있는 진정한 강조는 “노동 양보”에 있다. 코로나19와 고용 위기 등을 명분으로 한 노사정 대화를 가동했고,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은 노동조합의 양보를 주장하기도 했다.

개혁 제스처

최근 정의기억연대와 윤미향 당선자 논란으로 다시 주목되는 ‘위안부’ 문제 해결은 어떨까? 민주당은 위안부 피해자 명예 회복이 힘쓰겠다면서 여성인권평화재단 설립 추진을 공약했지만 위안부 문제 해결의 핵심인 일본 국가의 공식 사과와 배상은 결코 말하지 않았다. 사실 문재인 정부가 한일 위안부 재협상은 없다고 못 박으며 뒤통수를 쳤었다.

5월 20일 문재인이 ‘한국판 뉴딜’에 포함시키겠다고 한 민주당의 그린뉴딜도 내용이 꾀죄죄하다. 친환경과는 거리가 먼 민간주도 투자 확대, 세제 감면 등 이윤과 시장을 중시하는 정책들이 그린뉴딜에 포함돼 있다. 탄소 배출 감소에 대한 구체적 이행 방식도 없이 대부분 ‘사회적 논의’를 하겠다는 수준이다. 문재인 정부가 공론화위원회 권고 수용 방식을 이용해 신고리 5·6호기 공사를 재개하며 탈핵 공약을 파기한 경험을 떠올려 볼 때 민주당의 기후 위기 공약을 믿기 어렵다.

오죽하면 민주당 정부에 대체로 우호적 태도를 취해 온 엔지오들도 민주당 총선 공약들의 개혁성 점수를 높게 매기지 못했다.

그럼에도 반우파 정서가 여전히 높다는 것이 총선에서 드러난 만큼 민주당의 개혁 제스처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그러나 진정한 강조는 기업주 지원에 있을 것이다. 사상 최악이라는 경제 상황이 이런 방향을 가속화하고 있다. 노동운동이 정부·여당을 개혁 파트너로 삼아선 안 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