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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더스와 오카시오-코르테스의 바이든 지지는 청년들을 헛갈리게 만든다

바이든 지지는 노동계급의 정치적 독립을 훼손시키는 악수 ⓒ출처 Joe Biden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예비경선에 도전했던 버니 샌더스가 그 당의 권력층 후보 조 바이든에 적극 협력하고 있다.

5월 13일 바이든은 샌더스와 함께 “통합” 정책(공약)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했다고 발표했다. 바이든은 이 팀이 기후변화·보건의료·사법·경제·교육·이민 등 6개 부문에서 세부 공약을 다듬을 것이라고 했다.

샌더스의 추천으로 미국 민주사회당(DSA) 당원이자 민주당 하원의원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가 기후변화 분과 공동의장에, 전국민 단일건강보험(“메디케어 포 올”) 법안 발의자이자 미국 원주민 출신 하원의원인 프리말리 자야팔이 보건의료 분과 공동의장에 선임됐음이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공화당은 바이든이 “사회주의의 기수”가 됐다고 비아냥거렸다.

샌더스는 이런 행보로 “민주당을 전환적·진보적 방향으로 이끌”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민주당은 “전환적·진보적” 공약을 새로 만들 필요가 없다. 2020년 샌더스 캠프의 연설문 작성자였던 〈자코뱅〉 부편집자 데이비드 시로타가 5월 14일에 지적했듯, 민주당은 “‘기후변화 태스크포스’, ‘보건의료 태스크포스’를 새로 꾸릴 필요가 없다. 이미 있는 정책인 ‘그린 뉴딜’, 전국민 단일건강보험을 민주당 대선 후보가 주저앉히지만 않으면 된다. … 하지만 바이든이 아주 의식적으로 그렇게 할 것이다.”

실제로 예비경선 당시 바이든은 이미 많은 나라에서 시행 중인 전국민 단일건강보험을 “헛된 꿈”이라고 냉소했고(코로나19 감염이 미국에서 폭증하는 와중에 말이다), ‘그린 뉴딜’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콧방귀를 뀌었다.

바이든은 오바마 정부 시절 국무장관이었던 존 케리를 기후변화 팀의 공동의장으로, 오바마 정부 시절 공중보건위생국장이었던 비벡 머시를 보건의료 팀의 공동의장으로 선임했다. 이들은 이 팀들의 정책을 “현실적인 수준”으로 낮추는 구실을 할 것이다.

바이든은 신자유주의를 옹호하고 대자본·권력층의 이익을 수호하는 정치 활동을 해 왔다. 지난 본지 기사에서 지적했듯, 이런 바이든에 “진보적 강령[공약]을 이식하겠다는 (헛된) 노력은, 권력층 후보 바이든에 대한 온전한 지지로 서서히 이동하는 징검다리가 될 것이다. … [바이든은] 그런 강령[공약]에 전혀 연연하지 않고 미국 자본주의 수호에 매진할 것”이기 때문이다.

샌더스는 “미국뿐 아니라 세계 전체가 함께 진보”해야 한다고 했지만, 태스크포스팀 구성을 발표하면서 중국과의 무역 협정을 미국에 유리하게 재협상해야 하며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를 포함한) 미국 권력층과 별다르지 않은 이 입장이 “전환적·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위배

오카시오-코르테스의 바이든 캠프 참여는 소속 정당인 DSA의 결정을 위배한 것이다.

5월 12일 DSA는 전국정치위원회를 열어 “DSA는 바이든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채택했다. “바이든이 총선 선거운동 당시 반(反)중국 혐오를 적극 수용한 것이나, 바이든에 믿을 만한 [성추행] 혐의들이 제기된 것은, 친기업적 민주당이 극우·인종차별·성차별의 부상을 저지하지 못할 것임을 보여 주는 우려스런 사례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당의 결정을 무시하고 오카시오-코르테스가 바이든 캠프 합류를 결정했다. 유감스럽게도 DSA는 이에 대해 아직 논평하지 않고 있다. ‘한 지붕 여러 가족’인 DSA에서 바이든 지지 여부를 둘러싸고 격론이 벌어졌던 이전 상황이 재현될까 우려하는 듯하다.(DSA 내 여러 경향이 그간 민주당 내 활동에 관해 대개 비슷한 전술을 공유해 왔던 것도 봐야 한다. 이에 관해서는 본지 322호 기사 ‘미국 민주사회당(DSA)의 민주적 사회주의’를 보시오.)

오카시오-코르테스(와 샌더스, 그리고 미국의 적잖은 진보 활동가들)는 도널드 트럼프가 “현대 미국 역사상 가장 위험한 대통령”(샌더스)이기 때문에 트럼프 재선을 저지하려면 민주당 권력층과도 동맹해야 한다고 보는 듯하다.

그러나 그런 동맹에서 진보파들이 수행하는 정치적 구실은 민주당 권력층에 진보적 외피를 씌워, 대자본 정당 민주당이 노동계급을 대변할 수 있다는 환상을 부추기는 것이다. 이렇게 노동계급의 정치적 독립성이 희생되면 계급투쟁이 대가를 치르게 된다.몇몇 사례만 봐도 분명히 알 수 있다.

1930년대 후반부터 미국 공산당은 민주당 루스벨트 정부를 지지했다. 그 결과 고양되던 노동자 파업 물결이 좌절을 겪었고, 미국 노동운동은 이후 80년 넘도록 민주당에 종속된 상태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960~1970년대 흑인 평등권 운동과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상당수 진보 활동가들이 ‘인종차별·전쟁 정당’ 공화당에 맞서 대선에서 거듭 민주당을 지지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베트남 전쟁을 앞장서 수행했고, 흑인 차별 철폐에 끝까지 주저했던, 공화당과 다를 바 없는 정당이었다. 민주당 지지의 대가는 두 운동 모두 방향을 잃고 민주당 투표 부대로 전락한 것이었다.

2003년 공화당 대통령 조지 부시 2세의 이라크 전쟁에 맞서 반전운동이 등장했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당시 많은 미국 진보 활동가들은 ‘부시만 아니면 누구든 좋다’(Anybody but Bush)는 생각에, 대선에서 권력층 후보 존 케리에 투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운동이 민주당에 투표할 것이 확실시되자 민주당은 자신들이 부시보다 미국 제국주의를 더 잘 대변할 것이라고 나섰다. 오히려 미국 반전 운동이 분열해 타격을 입었다.

미국만의 일이 아니었다. 이탈리아 급진좌파 정당 재건공산당은 전임 총리였던 추악한 언론 재벌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에 맞서 중도파와 연립정부까지 구성한 뒤, 중도좌파 정부가 실시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극 지지했고 마침내 아프가니스탄·레바논 파병에 찬성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유럽에서 가장 강력했던 이탈리아 반전 운동은 사기 저하에 빠졌고, 재건공산당은 몰락했다.

코로나19 위기와 경제 위기가 함께 덮쳐 사회 전반에서 계급 양극화가 심해지는 지금, 이 위기에 직접적 책임이 있는 양대 자본가 정당에서 노동계급 정치가 독립적일 필요가 더한층 절실하다. 미국 반자본주의 단체 ‘마르크스21’의 지적처럼 좌파는 “바이든에 협력하며 선거 정치에만 연연하지 말고, 기층의 노동계급 투쟁을 우선에 두고 작업장과 지역에서 지금부터 운동을 조직해야 한다.”

따라서 DSA는 자당 ‘간판 스타’ 오카시오-코르테스의 바이든 캠프 참여를 강력히 비판해야 할 것이다. “수많은 노동계급을 정치 영역으로 끌어들여 극우 부상을 완전히 저지”하자는 DSA의 공언(12일 전국정치위 성명)을 공문구로 만들지 않으려면 말이다. 그래야 막 다시 움트기 시작한 미국의 노동계급 투쟁을 더 전진시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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