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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사퇴 논란:
윤석열 부상은 문재인 정부의 부패와 위선이 초래한 것

윤석열이 3월 4일 검찰총장에서 자진 사퇴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등 현 집권 세력의 부패 혐의 수사 때문에 불거진 청와대-검찰 간 갈등이 새로운 국면으로 발전한 것이다.

핵심 국가기관을 책임진 임명직 관료가 자신을 임명한 집권 세력을 부패한 법치 파괴 세력이라고 규탄하고 직을 던진 것이나 그럼에도 사퇴 후 윤석열의 몸값이 오히려 오르는 현상 등은 문재인 정부의 위기를 잘 보여 준다.

지난해 말 윤석열 제거에 실패하고 청-검 갈등이 정부 위기를 촉진하자, 문재인은 법무부 장관을 교체하고 신년 기자회견에서 “윤석열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봉합을 시도했다.

그러나 오히려 신임 법무부장관의 검찰 인사가 청와대 내 갈등으로 번졌다. 여권의 주요 인사들, 특히 민주당의 유력 차기 대선 후보군 일부가 기소됐거나 검찰 수사 대상인 상황에서 여권 내에서 검찰 대응 문제로 합의를 이루기가 어렵다는 점과 문재인의 여권 통제력이 약화되고 있음만 드러냈다.

이런 배경에서 민주당이 중대범죄수사청을 신설해 검찰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결국 문재인도 이번엔 사표를 즉시 수리했다. 동시에 질질 끌던 민정수석 신현수의 사표도 수리했다. 신현수는 검찰 대응 문제에서 여권 내 강경파와 입장이 달랐다. 그리고 즉시 임명한 후임 민정수석의 경력(노무현 청와대에서 문재인과 근무 등)을 보면, 전형적인 임기 말 친위대 인사다.

윤석열 사퇴 시점이 정권에게 매우 불리했기 때문이다. LH와 가덕도 등에서 부정한 투기 의혹이 터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택적 부패 척결

지난 4년 동안 문재인에게 적폐 청산은 주로 정적 제거를 위한 명분이었지 대중이 바란 부패 척결 과정이 전혀 아니었다. 현 집권 세력은 검찰이 박근혜와 이명박을 구속하고 중형을 선고받게 하는 것은 찬양했지만, 자신들이 연루된 권력형 부패 수사는 방해하고 억눌렀다.

눈치 없이 정부 요인을 수사하면 좌천되거나 징계받고, 심지어 기소까지 될 수 있다고 검사들을 협박했다. 부패하고 억압적인 기관인 검찰에 대한 대중의 반감을 이용해 이런 추접한 짓을 검찰 개혁이라고 포장했다. 그것을 위해 추미애 같은 막장 인사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해 일 년 내내 소동을 벌였던 것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권력형 비리 의혹, 옵티머스·라임 등 금융 사기와 정권 유착 의혹, 대통령 연루 의혹까지 있는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같은 것들이 노골적인 수사팀 해체나 협박 속에서 수사가 어렵거나 지연되고, 재판이 잘 진행되지 않고 있다. LH 비리 건도 검찰 수사 피하려고 자체 조사와 조사 대상 범위 따위로 사람들을 현혹하며 시간만 끌고 있다. 투기 대상인 토지를 전수 조사해야 할 일을 말이다.

검찰이 아무리 난다 긴다 하는 권력기관이라고 하더라도 의회 다수당이 뒷받침받는 청와대를 이기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정권이 원하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도 설립됐다.

그러나 검찰이 아무리 부패했다고 해도 현 집권세력의 권력형 부패가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권력형 부패 수사를 개혁 방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만약 현 집권 세력에 대한 검찰 수사가 누명을 씌우는 수사였다면, 문재인은 왜 윤석열이 아니라 조국과 추미애를 사퇴시켰는가?

결국 문재인의 행보는 정권이 한 일에 어떤 대의명분도 없었고, 검찰 개혁 슬로건을 헛되게 지지했던 사람들을 집권 세력의 이익을 위해 그저 이용하고 배신해 왔음을 보여 줄 뿐이다.

윤석열이 부패한 권력에게 박해받는 투사 이미지를 갖게 된 것도 문재인 정부가 벌인 추한 일들의 결과다. 민주당이 지금 윤석열은 총장 임기를 다 마치지 않았으니 정치 검사였고 그의 지휘하에 벌어진 수사는 불의한 수사였다고 비난하는 것이 통하지 않는 이유다.

윤석열의 반란은 문재인 정부의 위선과 부패한 통치 행위에 대한 환멸과 이반이 누적돼 온 상황에서 벌어지면서 문재인의 위기를 드러냈다.

반부패 공정에 대한 염원을 누가 대변할 것인가

진실이 이런데도, 진보·좌파 일각이 검찰 개혁 구호를 그저 ‘좋은 게 좋은 것’ 식으로 지지하거나 문재인 정부를 무비판적으로 감싸, 결과적으로 권력형 부패를 저지른 지배계급 정부를 옹호한 행태는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렇게 정치적 자해를 계속한 결과, 지금 노동운동과 진보 정치의 존재감이 더 약화됐다.

개혁 배신이 초래한 문재인 정부의 위기가 가속화되는 지금, 노동운동과 진보·좌파는 자기 원칙과 방향을 찾아야 한다. 문재인과의 협력이 아니라 문재인의 위선과 배신에 분노한 대중을 대변해야 한다.

윤석열은 사임의 변에서 “정의와 상식”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최근 인터뷰에서는 특권층 부패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으면 서민층이 피해 본다고 했다. 윤석열의 반부패 정치가 내세운 화두도 문재인이 취임 때 강조한 반특권·공정인 셈이다.

지난 2년간 여권과 갈등하면서 오히려 윤석열의 인기가 올랐다는 사실은 부패 척결과 공정 약속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배신·위선에 대해 환멸이 커진 것과 연관돼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진보진영 상당수가 문재인을 감싸는 것이야말로 문재인의 위선과 부패, 개혁 배신에 대한 환멸을 오히려 윤석열 같은 인물이 대변하도록 방관·방치하는 것이다.

윤석열이 반부패와 공정을 대의명분으로 내세우고 포퓰리즘적 지지를 받지만, 노동계급 대중의 개혁 염원을 그가 대변할 수는 없다. (구체적인 정치 행보와 성공 여부를 미리 점치긴 어렵지만) 윤석열이 국민의힘에 곧장 입당할 정도로 어리석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 길은 자신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인 ‘정권을 가리지 않은 정권 부패 수사의 진정성’을 해칠 것이고 결국 지지율도 추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국민의힘 내부도 윤석열 문제에선 분열해 있다. 한편, 민주당 이탈파까지 포함한 반문재인 범중도·보수 야권 단일화 주장이 있고, 민주당은 필사적으로 이를 막으려 한다.)

국민의힘에 합류하지 않는다하더라도 (10년 전의 안철수처럼) 윤석열 자신이 자산가(2019년 법무부·검찰 내 재산 1위)로서 기득권 질서에 얽혀 있다. 지배계급 일반이 바라는 경제 위기 고통전가 기조를 그가 거스를 것 같지는 않다. 실제로 검찰 수뇌부일 때도 기무사령부에 대한 수사, 국정원·기무사·검찰 등을 뒤져야 하는 세월호 수사에도 별 열의가 없었다(그래서 결과도 형편없다). 이재용 구속수사에 적극 찬성하지 않았다는 의혹도 있다.

노동운동과 진보·좌파의 중심 지키기

한편, 부패 척결은 중요한 문제이지만, 유일하거나 가장 중요한 개혁 목표는 아니다. 부패한 지배자들을 증오하는 것은 계급의식의 출발이고, 권력형 부패가 노동자·서민을 괴롭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부패 처벌은 그 고통의 아주 작은 일부만 해결할 뿐이다. 사회 구조가 정치적 부패를 필연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박근혜 탄핵 이후에도 문재인 정부에서 권력 농단 부패가 이어지는 이유다. 따라서 노동계급의 반부패 민주주의 염원은 자본주의 사회 구조에 항의하고 반대하는 투쟁으로 발전해야 한다. 그런 운동의 성장·발전 속에서 대중의 염원이 실현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지금 같은 위기의 시대에는 조금이라도 개혁을 쟁취하려면, 체제의 수혜자들을 압박해 양보를 얻어 내야 한다. 윤석열의 반부패 정치는 이런 방향이 아니다. 시범적인 부패 처벌로 시장 자본주의 질서에 대한 정당성과 신뢰를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2017년 박근혜 퇴진 운동의 약점은 부패한 정권에 대한 불만을 사회·경제적 불만에 대한 투쟁으로 확장시키지 못한 것이다. 운동 안팎에서 민주당과 엔지오들이 그런 방향으로 운동이 성장하는 것을 필사적으로 가로막았다. 그들은 지금도 노동운동이 문재인 정부와 결별하는 것을 막으려 한다.

그런데 당시 운동이 더 급진화되지 못하고 민주당의 개혁 제스처에 지지를 보내는 수준에 멈췄기 때문에 대중 투쟁이 아니라 윤석열이 적폐 청산(개혁)의 아이콘이 된 것이기도 하다. 자기 발등을 찍은 온건한 개혁주의 전략의 어리석음을 노동운동과 좌파가 반복할 이유가 전혀 없다. 노동운동과 진보·좌파가 체제의 위기가 가하는 고통에 맞서는 데 성공하려면 문재인과 결별부터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