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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체제 위기 속에 악화되는 성소수자들의 처지

5월 17일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일명 아이다호)이다. 1990년 5월 17일 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질병분류 항목에서 동성애를 삭제한 것을 기념해 시작됐다. 오늘날 130개 나라에서 이 날을 기념한다. 이 날을 맞아, 오늘날 성소수자 차별의 현실과 차별의 근원을 살펴본다.

동성애가 국제질병분류 항목에서 삭제된 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성소수자는 여전히 차별과 혐오 속에서 살아간다.

일부 나라에서 몇 년 새 법제도적 진전이 있었지만, 그런 나라조차 계속된 경제 위기와 긴축 속에서 대다수 성소수자들의 삶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법제도적 권리마저 일부 후퇴한 곳도 있다. 오늘날 “성소수자 모두를 완전히 수용하고 보호하는 곳은 없다(국제 아이다호 위원회).”

개혁이 불충분하고 일관되지 않을 뿐더러, 차별이 체제에 깊이 뿌리 박혀 있기 때문이다.

일부 나라에서 우파의 공격이 강화되다

특히 지난해 팬데믹 위기 속에서 가뜩이나 취약한 성소수자의 처지가 더 악화했다. 많은 성소수자가 평균보다 높은 실업률, 적대적인 가족 내 폭력 증가, 호르몬 치료 등 의료 서비스 지연 등으로 고통받았다.

게다가 체제의 위기와 정치적 양극화 속에서 일부 나라에서 성소수자가 우파의 표적이 되고 있다.

폴란드에서는 지난해 가톨릭 보수 정당인 ‘법과 정의당’이 성소수자 혐오를 주요 선거 운동의 소재로 삼아 근소한 차이로 집권했다. 안드레이 두다 대통령은 “동성애는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보다 더 파괴적”이라고 공공연히 말했고, 당선하자마자 동성애자의 결혼과 자녀 입양을 금지했다. 또, 도시 100여 곳을 ‘성소수자 프리존(성소수자 없는 곳)’이라고 선언했는데, 성소수자를 공식적으로 배척하겠다는 것이다.

3월 8일 서울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잇따른 성소수자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이미진

헝가리에서도 지난해 출생증명서의 성별 변경을 금지하는 법이 제정됐고, 헌법에서 결혼 규정을 “남성과 여성의 것”으로 개정해, 동성 커플의 자녀 입양을 막았다(헝가리는 동성 간 시민 결합을 인정한다). 이는 보수 집권당인 페데스와 오르반 빅토르 총리가 수년 동안 성소수자를 공격해 온 것의 일환이다.

미국에서는 바이든이 집권하면서 트럼프의 악랄한 공격을 일부 되돌렸다. 바이든은 트랜스젠더 군 복무를 다시 허용했고,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가 다시 전국민건강보험법(‘오바마 케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성소수자 다수(대부분 노동계급이다)는 팬데믹으로 처지가 더 열악해졌다.

무엇보다 트럼프 집권 시기 성장한 극우와 파시스트들이 지역적 수준에서 성소수자, 특히 그중에서도 취약한 10대 트랜스젠더를 공격하고 있다. 휴먼라이츠캠페인에 따르면, 놀랍게도 올해 5개월 동안에만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성소수자 적대 법안이 통과됐거나 추진 중이다. 공화당이 우세한 주들에서 잇따라 트랜스젠더 여학생의 스포츠 경기 출전 금지와 미성년자 성전환 금지 법을 추진하고 있다. 텍사스에서는 부모가 자녀의 성전환을 도우면 ‘아동 학대 혐의’로 강제 분리시킬 수 있는 법안이 발의됐다.

권위주의적 억압

팬데믹 기간 여러 국가가 권위주의적 억압을 강화했다. 국제 성소수자단체 ILGA 유럽은 지난해 벨라루스와 불가리아, 프랑스, 그리스, 러시아 등지에서 성소수자를 포함한 사람들의 집회의 자유가 심각하게 공격받았다고 지적한다. 성소수자 활동가들은 경찰에게 공격받고 체포·구금됐다.

우파들은 오늘날 소위 “젠더 이데올로기”를 문제 삼는다. 이는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1990년대 라칭거 추기경으로 있을 때 처음 사용한 말로, 얼마 전 염수정 추기경도 ‘생명주일 담화’에서 동성애자들을 공격하며 같은 용어를 사용했다. (성소수자 혐오 우파는 대개 보수 가톨릭·개신교를 기반으로 하거나, 그들과 협력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헝가리 오르반 빅토르 총리의 말에 잘 요약돼 있다. “[헝가리인들은] 누가 남자고, 누가 여잔지, 가족이 무엇이고, 기독교인이 무엇인지 불분명한 세계에 저항해야 한다. 저들은 제3의 성을 창조하고, 신앙을 비웃고, 가족과 국가를 쓸모 없다고 여긴다.”

전통적으로 우파들은 경제적·정치적 위기 속에서 보수적 가족 가치를 옹호해 왔다. 그리고 때로 거짓된 도덕적 논증을 이용해 성소수자를 속죄양 삼곤 했다. 예컨대 1930년대 초 나치는 동성애를 속죄양으로 삼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배자들은 대중의 불만을 딴 데로 돌리고 노동자들과 차별받는 사람들을 이간해서 위기의 책임을 더 쉽게 노동계급과 차별받는 집단에게 전가할 수 있었다.

문재인 정부 4년 — 아무 개선 없는 성소수자 차별

한국에서는 개신교 우파들이 성소수자 공격을 주도해 왔다. 개신교 우파의 반(反)동성애 운동이 그동안 다수 대중의 공감을 얻은 것은 아니다. 미국 여론조사 전문기관 퓨 리서치 센터 조사를 보면, 한국은 동성애 수용 정도가 2002년에 25퍼센트에서 2019년에 44퍼센트로 증가했다. 젊은층(16~29세)은 79퍼센트가 동성애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반동성애 개신교 우파들은 압력을 조직해 성소수자 권리 개선을 가로막는 데서 주도적인 구실을 해 왔다. 2007년 노무현 정부가 처음 발의한 차별금지법을 무산시킨 이후, 성적지향·성별정체성을 포함한 차별금지법이 십 수 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처음부터 성소수자 쟁점에서 우파와 타협했고, 지난 4년 동안 차별 개선을 위해 무엇 하나 하지 않았다.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기존 입장을 바꿔 한기총 소속 목사들에게 차별금지법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수립한 국가인권기본계획(NAP)(2018~2022)에는 박근혜 정부 때도 있던 ‘성적 소수자 인권’ 항목이 사라졌고, 여성가족부는 ‘제2차 양성평등 기본계획’에서 ‘성평등’ 용어가 동성애를 허용한다는 우파들의 억지에 타협해 ‘성평등’ 용어를 공식 폐기했다.

2017년 2월 ‘차별금지법 반대하는 문재인과 민주당 규탄 기자회견’ ⓒ조승진

단지 우파의 눈치를 보기 때문만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도 지배계급의 일부로서 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유엔의 고 변희수 하사 복직 권고를 거절하며 “북한과의 대치 상황과 같은 고유한 안보 환경에서 전투 준비 태세” 운운했다. 육군과 국방부는 이미 고인이 된 변 하사의 사후 명예회복을 위한 유가족의 복직 요구조차도 매몰차게 거부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의 복직 권고도 ‘불수용’했다.

문재인 정부는 ‘국가 안보’ 능력에서 우파 못지않다는 점을 확인시키고자 하고, 군대 내 규율이나 ‘국방력’을 우선하면서 군대에 존재하는 성소수자를 골칫거리로만 여긴다. 대표적 악법인 군대 내 동성애 처벌법(군형법 92조의6)을 존치시키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최근 정부가 ‘제4차 건강가족기본계획’을 발표하며 “다양한 가족”을 인정한다면서도 동성 결혼은 언급조차 하지 않는 것도, 자본주의 국가의 통치자로서 노동력 재생산 구실을 하는 이성애 중심의 가족제도를 유지할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고 변희수 하사의 말처럼, 정말이지 문재인 정부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인권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절과 전혀 다를 것이 없다.”

성소수자 차별의 근원 — 자본주의 가족 제도

나라마다 종교·문화적 특징, 위기의 수준, 투쟁의 역사 등에 따라 차별의 형태와 정도는 다양하지만, 성소수자 차별은 자본주의의 고유한 특징이다. 성소수자 차별은 자본주의 체제의 가족 제도에 근원을 두고 있다.

가족이 자본주의에서 하는 핵심 기능은 노동력 재생산이다. 현재와 미래의 노동력 재생산이 개별 가족 단위에 맡겨져 있다. 개별 가정에서는 양육, 간병, 노인 돌봄 등이 주로 여성에게 맡겨져 있는데, 이런 여성의 무보수 돌봄을 통해 지배계급은 막대한 비용을 절감한다.

또, 가족 제도는 노동계급을 체제에 순응하게 만드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한다. 가족은 사람들에게 자녀를 먹이고 입히는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여기게 하고, 만약 가난하다면 사회가 아니라 부모나 자신의 능력 부족 탓이라고 믿게 만든다.

가족의 경제적·이데올로기적 기능 때문에 지배계급은 가족을 강화하는 데 이해관계가 있다. 그래서 지배자들은 보수적 가족 가치와 성 도덕을 유포하고, 그에 맞지 않는 성정체성과 성적지향, 관계들을 체계적으로 배제하고 차별한다. 심지어 동성 결혼을 용인할 때조차 일대일 관계에 대한 헌신 등을 강조한다.

물론, 사람들이 가족을 이루고자 하는 것은 단지 지배자들의 강요 때문은 아니다. 팬데믹 기간 많은 사람에게 가족은 거의 유일하게 비빌 언덕이 돼 줬다. 사람들은 냉혹하고 살벌한 세상에서 가족을 유일한 안식처로 여기곤 한다.

그러나 동시에 가족은 사람들을 옥죄는 곳이며, 여성·성소수자 차별의 근원지이기도 하다. 팬데믹 시기 일부 여성·성소수자·아동에게 가족은 끔찍한 학대의 장소이기도 했다.

가족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여겨지건, 어떻게 바뀌건, 자본주의에서 하는 핵심적 기능이 그대로인 한 성소수자 혐오·차별도 지속될 것이다.

한편, 차별은 소수가 다수 대중을 지배하는 계급사회 지배 방식의 하나이다. 특히, 지금처럼 체제가 위기에 빠지고 정당성을 잃어갈 때 지배자들은 대중을 이간해 일부를 속죄양 삼고, 사회 문제의 책임을 애먼 희생자들에게 돌린다. 이것이 먹힌다면 위기의 책임을 더 쉽게 모든 노동자들에게 전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소수자 혐오·차별을 완전히 없애려면, 그 근원인 자본주의 체제의 우선순위와 작동 방식에 도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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