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와 제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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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캘리니코스가 폴 메이슨의 IST 입장 비판에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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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서방과 러시아의 대립이 첨예해진 가운데, 국내에도 저서가 번역·소개된 바 있는 영국의 노동당 인사 폴 메이슨이 얼마 전 우크라이나 사태에 관한 국제사회주의경향의 성명을 비판하는 글을 냈다. 그는 러시아의 호전성과 서구 민주주의의 진보성 등을 이유로 러시아에 맞서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국제사회주의경향이 우크라이나 위기에서 미국 제국주의를 규탄한 것은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중앙위원장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메이슨의 비판을 반박했다. 한국에서도 미국·서방보다 러시아의 공세를 주로 문제 삼는 주장들이 있기에, 이 글이 유용할 것이다.
친애하는 폴에게.
제가 당신을 존중한다는 것을 알 겁니다. 저는 당신의 최신작 《파시즘을 멈추는 방법How to Stop Fascism》을 높이 평가합니다. 비록 현대판 인민전선, 그러니까 자유주의 세력과 좌파가 동맹을 맺는 것이 파시즘을 물리칠 길이라는 주장에는 반대하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 위기에 대한 국제사회주의경향
그 수고에 비해 다소 간략하게 답변하더라도 양해 바랍니다. 실제로 전쟁이 목전에 닥친 상황일 수도 있어서, 그래서 논쟁이 시급해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 사이의 진정한 쟁점이 제가 보기에는 꽤나 단순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러시아 — 유럽 유일의 제국주의 국가?
그런 점에서 먼저, 레닌과 작별 인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당신의 글 제목이 다소 쟁점을 흐리는 것 같다는 점을 지적해야겠습니다. 당신이 오래 전에 레닌주의를 버렸다는 것은 당신도 저도 아는 바입니다. 당신이 어떻게 레닌주의자일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에서 좌파 개혁주의였던
레닌은 제국주의가 지나간 시대의 잔재가 아니며 단지 강대국이 약소국을 괴롭히는 것도 아니라고 지적했습니다.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적 지배·경쟁 체계입니다. 소수의 강력한 자본주의 국가들이 세계적인 수준에서 경제적·지정학적 경쟁하는 세계적인 체제인 것이죠. 그렇다면 물음을 하나 던질 수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해당하는 것일까요? 당신 말에 따르면 그렇지 않은 듯합니다. 다음과 같은 놀라운 정식을 제시했죠. “오늘날의 갈등은 세계화를 추구하고 민주적이며 예전에는 제국주의였던 미국·유럽연합 등의 국가들과, 권위주의적이고 반
이 정식에는 온갖 기이한 점이 있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의 러시아가 이데올로기적으로 “반
그러나 이런 문제점은 미국과 유럽의 동맹국들
이처럼 우리는 러시아 제국주의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의견이 같습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연합, 영국이 “예전에 제국주의였던 국가들”이라고요?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요? 물론, 제국주의 열강을 정확히 어떻게 정의할 것이냐는 논쟁 거리일 수 있습니다. 토니 노필드는 《시티The City》에서 경제력, 재정 능력, 군사력의 상대적 비중을 토대로 유용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저는 이 기준을 근거로 대략 6개의 제국주의 국가가 있다고 봅니다. 미국, 중국, 독일, 영국, 프랑스, 러시아죠. 그 외에 더 작지만 위험한 역내 강국들이 여럿 있습니다.
정말로 미국이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보는 것입니까?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국주의 국가를요?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중동에서 벌인 전쟁과 그 전쟁이 그곳 사람들에게 몰고 온 재앙을 잊었습니까? “테러와의 전쟁”은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지배를 확고히 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오히려 미국은 거기서 역풍을 맞았습니다. 버락 오바마는 중국을 견제하려고 “아시아로의 회귀”를 시작했고, 트럼프와 바이든 모두 이를 계승했습니다.
제국주의 열강을 나열해 보면 유럽 국가들이 매우 두드러집니다. 중국을 제외한 브릭스
나토와 미국의 힘
1949년에 결성된 나토는 유럽에서 소련의 군사력을 억제하기 위해 고안됐습니다. 냉전이 한창일 때조차 서유럽에 대한 소련의 위협이 과연 얼마나 실질적이었는지는 따져볼 만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어찌 됐든 소련은 붕괴했는데, 그렇다면 나토의 존재 목적은 무엇이었을까요? 1990년대에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 행정부가 그 답을 내놨습니다. 이제 나토는 미국이 유럽에서 지배력을 유지하고 동쪽으로 영향력을 확장하기 위한 것이 됐습니다.
1999년 나토가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일부를 폭격한 것은 이런 목적을 염두에 둔 것이었습니다. 그 후 나토와 유럽연합은 중부 유럽과 동유럽으로 확장됐습니다. 이를 주도한 것은 클린턴이었고 이는 1990년에 소련의 마지막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에게 한 약속을 깨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이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렇게 둘러댑니다. “소련은 … 이제 없다. … 동유럽의 신생 자본주의 지배층과 대부분의 그곳 주민들은 대부분은 나토와 유럽연합 가입을 혼돈에 빠진 러시아 제국에 다시 흡수될 위험에 대비하는 보험 정책으로 여겼다.”
이는 맞는 지적일 수도 있지만, 요점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나토와 유럽연합의 확장은 폴란드나 발트 3국이 아니라 미국이 만든 정책이었습니다. 고
이 정책의 설계자는 지미 카터 행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내고 오랫동안 민주당의 주요 지정학 전략 사상가였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였습니다. 《거대한 체스판》에서 그는 미국을 제국으로, 그 동맹국들을 “속국, 조공국, 보호령, 식민지”로 솔직하게 묘사하며, 유럽연합을 “미국의 패권을 위한 유라시아의 교두보이자, 민주주의 세계 체제를 유라시아로 확장시키기 위한 잠재적 발판”으로 봅니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은 효과가 있었습니다. 확장된 나토는 미국 정부의 출격 명령에 따라 리비아를 폭격하고,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고, 중국 포위를 도와 왔습니다. 그리고 나토는 미국이 유럽에 거대한 군사 기지망을 유지하는 것을 정당화해 줍니다.
유럽연합은 전 세계에서 시장의 규율을 강요하는 데서도 중요한 미국의 파트너입니다. 2010년대에 유럽연합과 독일이 강요한 긴축에 맞선 그리스 노동자들의 투쟁을 열정적으로 지지했던 만큼, 이를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당신의 친구 야니스 바루파키스
우크라이나의 곤경
따라서 나토와 유럽연합의 확장은 서방 제국주의의 세계적 지배력을 유지하고 확장하기 위한 것입니다. 당신은 바이든이 푸틴의 요구에 응하지 않는 것에 지지를 보내지만, 푸틴의 가장 중요한 요구인 우크라이나의 나토 불가입 보장에 대한 얘기는 슬쩍 피해 갑니다. 물론 우리는 푸틴이 무력을 동원한 위협으로 요구를 관철하려는 것에 반대합니다. 그러나 “공허한 구호”에 매달리지 않는 현실주의적 정치가를 자처한다면, 우크라이나 나토 불가입 보장 요구를 무조건적은 아니어도 러시아에도 일정한 양보를 받아내는 식으로 들어주는 것을 고려하지 못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실 이런 식의 주고받기로 존 F 케네디와 니키타 흐루쇼프는 쿠바 미사일 위기를 해결했습니다.
이는 우크라이나 자체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집니다. 당신이 인정하듯, IST의 성명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전쟁의 주요 희생자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며 그들의 자결권을 지지합니다. 우크라이나인들에게도 자위권이 있습니까?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이 자위권은 당신이 말하듯 우크라이나 정부와 그 군대의 항전을 뜻할 것입니다.
그런데 2014년 이후 우크라이나 의회는 초등학교에서 우크라이나어로만 수업을 하게 하는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어 모두를 일상 생활에서 쓰고 있고, 이런 법이 헝가리계, 유대계, 타타르계와 같은 소수민족의 권리를 침해함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또한 2015년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의 분리 독립 지역에서 전투를 끝낸다면서 조인한 제2차민스크협정을 이행하지 않았으며
물론 우크라이나 정부만이 여기에서 유일한 악당은 아닙니다. 러시아도 어마어마하게 많은 부정직과 더러운 속임수를 썼습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를 재통합시키지 못하는 배타적 민족주의를 견지하면서, 서방의 군사 지원에 의존해 이런 정책을 계속 추구하려 하는 우크라이나 정부에 많은 신뢰를 보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국제 좌파가 이 정부를 지지하되, “인민 전쟁을 요구해 그 과실로서 사회·경제적 정의와 올리가르히 권력의 종말을” 쟁취하자고 제안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공허한 구호”입니다. 매우 있음직하지 않은 일이기는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을 물리친다면 우크라이나 정부는 배타적 정책을 더 밀어붙이고 러시아에 우호적인 상당수의 우크라이나인들을 탄압할 것입니다.
사실 유혈 사태와 파괴, 대규모 피난, 경제 붕괴를 제쳐놓더라도,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을 반대하는 주된 이유 하나는 러시아 점령군이 우크라이나의 반러시아파를 분쇄하려 함에 따라 양측에서 인종 청소와 대규모 탄압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유럽은 야만으로 몇 걸음 더 떠밀리게 될 것입니다.
진보적 제국주의와의 인민전선
당신은 레닌의 말을 인용하며 “진실은 구체적”이라고 말합니다. 맞는 말이지만 그람시의 《옥중수고》에 나오는 멋진 구절로 보완해야 합니다. 그람시는 마르크스주의가 “통치의 기예를 스스로 익히고 싶어하고, 심지어 불쾌한 것일지라도 모든 진리를 알고자 하고, 상층 계급의
자기 기만에 대한 그람시의 논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 상황은 러시아의 군홧발에 용감한 우크라이나가 짓밟히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제국주의 간 갈등입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독립 이후 인민의 기대를 등진 수많은 정부들의 최신 사례에 불과하며, 이 갈등에서 졸개 구실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크라이나의 자기 방어 문제로 초점을 흐리고 미국과, 유럽에 있는 “조공국”들을 “예전에 제국주의였던” 민주주의 국가로 묘사하면서 당신은 그저 자신을 기만하고, 당신의 영향력을 통해 잠재적으로는 다른 사람들도 속이고 있을 뿐입니다.
물론, 이 갈등의 본질을 인식한다고 해서 곧 해결책을 손에 쥐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좌파가 국제적으로 너무나 약해서 이번 위기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특히, 지금 같은 위기가 앞으로 더 많이 벌어질 것이고, 여기에는 미국과 미국의 진정한 도전자인 중국이 연루될 것이라서 더 위험할 것이기에 진실을 말하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당신은 “예전에 제국주의였던” 서방의 편에 선 듯합니다. 비록 당신의 전망은 더 급진적이고 주장은 더 정교하지만, IST에 대한 당신의 비판은 본질적으로
새로이 발전
동지애를 담아, 알렉스 캘리니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