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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대한통운 택배 파업 결과:
사용자의 과로 노동 강요를 막아 내다

전국에서 모인 택배노조 CJ대한통운, 우체국, 한진, 롯데, 로젠 등 택배 노동자들이 2월 21일 청계광장에서 택배노동자대회를 열고 있다 ⓒ이미진

전국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 노동자들이 65일간의 파업 끝에 사용자 측의 완강한 공격을 저지했다. 지난해 체결한 ‘과로사 방지 합의’를 뒤틀어 도로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려는 사용자의 시도(‘부속합의서’ 관철)를 막아 낸 것이다.

3월 2일 전국택배노조와 CJ대한통운택배대리점연합은 이 같은 내용의 합의안을 도출했다. 노동자들은 부속합의서 없이 표준계약서(과로사 방지 합의에 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를 작성하고 업무에 복귀하기로 했다. 부속합의서 문제에 관해서는 오는 6월 30일까지 노사가 논의해 나가기로 했다.

대리점연합은 각종 고소고발, 계약해지 등을 취하하도록 지원·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CJ대한통운 본사가 제기한 고소고발(본사 점거 농성, 곤지암터미널 앞 출차 방해) 문제는 남아 있다. 또, 쟁의 시 ‘합법적 대체인력’을 노동조합이 수용하기로 했다.

다음 날 오전, 파업 조합원의 90퍼센트 참가, 90퍼센트 찬성으로 합의안이 가결됐다.

65일 동안 파업에 참가한 한 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 “[CJ대한통운 원청이] 부속합의서를 들이밀면서 강요하다가 3개월 뒤에 협의하기로 한 발 물러난 것입니다. 자부심을 느낍니다.”(권감 전국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 이천지회 조합원)

또 다른 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 “부속합의서를 유예시킨 것이 가장 큰 성과입니다. 향후 숙제도 남아 있습니다. 현장에서 싸워야 할 부분입니다. 복귀 후 힘 대 힘으로 해야 합니다.”(배철윤 전국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 김포지회장)

두각

전국택배노조 조합원들은 지난 2년간 노동조합 투쟁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지난해 초에는 광범한 지지·응원을 끌어내며 사용자들로부터 분류인력 투입을 약속 받았고(1차 사회적 합의), 6월에는 기세 좋게 대규모 파업 투쟁을 벌여 인력 충원 시기를 못박았다(2차 사회적 합의).

그 뒤로 사용자들은 택배 노동자들의 기를 꺾으려고 혈안이었는데, 지난해 8월 말 한 대리점주의 자살을 계기로 대대적인 비난을 퍼부은 것이 대표적이었다.

그 사이 CJ대한통운 사측은 문제가 된 부속합의서를 스리슬쩍 꺼내 들었고 12월 초 국토부의 승인까지 받아 냈다. 사회적 합의를 이행하기 위해 인상한 택배 요금의 절반 이상을 회사가 가져가겠다고 나선 것도 이 즈음이었다.

부속합의서는 명백히 사용자 측의 반격이었다. 당일 배송, 주 6일제, 터미널 도착 상품의 무조건 배송 등 노동강도를 대폭 강화할 독소조항들이 담겼다. 지난해 하반기 더욱 노골적으로 친기업·반노동 행보를 강화하던 문재인 정부는 부속합의서를 승인해 주면서 CJ대한통운 사용자를 편들었다.

CJ대한통운 택배 노동자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저항에 나섰다. 과로사한 동료들의 목숨과 투쟁을 통해 쟁취한 성과를 지키기 위해 12월 28일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전국택배노조 소속 CJ대한통운 조합원은 약 2700명으로, 이 중 쟁의권이 있는 조합원 1700여 명이 파업에 나섰다. 쟁의권이 없는 노동자들은 태업(규정 외 상품의 배송 거부)으로 투쟁에 동참했다.

노동자들은 생계 부담이 상당했음에도 두 달 넘게 파업 대오를 유지하는 투지를 보여 줬다. 민주노총과 서비스연맹 등 상급 노조가 연대를 거의 조직하지 않았음에도 열정적으로 투쟁을 지속했다. 대선을 앞둔 정치 상황을 이용해 본사 점거 농성 등을 벌이며 싸운 결과, 사용자 편에 섰던 정부·여당도 압력을 받았다.

파업 기간 내내 친사용자 언론과 우파 대선 후보들의 비난 공세가 컸지만, 사회적 분위기는 택배 노동자 투쟁에 대체로 우호적이었다. 특히 조직된 노동계급의 정서가 그랬다. 파업 농성장엔 컵라면과 생수 등 지지 물품이 가득했다. 청년·학생들의 응원 메시지도 곳곳에 부착됐다. 택배 파업 지지를 호소하며 주요 도심과 대학가에서 진행된 〈노동자 연대〉 거리 판매에서도 비슷한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전국택배노동자대회 개최 등 다른 택배사 노동자들의 연대도 조직됐다. 특히 1월 중순 울산과 거제의 한진택배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내걸고 함께 파업을 하기도 했다. 노동자들은 “CJ대한통운에서 부속합의서가 도입되면 우리에게도 공격이 들어올 수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이후 투쟁 과제

택배 노동자들은 이번에도 다시 한 번 만만찮은 저력을 보여 줬다. 사측은 기존 합의를 무로 돌리며 노조의 기를 팍 죽이고 싶어했지만, 노동자들의 완강한 저항에 밀려 또다시 한 발 물러서야 했다.

합의 후 노동자들은 “파업 대오가 거의 흔들림 없이 이 정도 싸웠으면 잘 했다”며 서로를 격려했다.

파업 기간에 비조합원들의 노조 가입과 지회 창립도 이어졌다. 울산 등에선 터미널 파업 집회에 비조합원들도 함께했다. 투쟁 속에서 결속력과 조직이 성장한 것이다.

물론, 노동자들의 말처럼 앞으로 싸워 나가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6월 말까지 논의하기로 한 부속합의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파업 기간 계약해지와 고소·고발 문제를 원상 회복하기 위한 싸움도 남아 있다.

적잖은 대리점들에서 벌써부터 합의를 뒤집고 부속합의서를 요구하는 시도가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현장 투쟁으로 좌절시켜야 한다.

이번 투쟁의 성과를 디딤돌 삼아 앞으로 남은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투쟁에서도 성과를 낼 수 있기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