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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각한다 대우조선 하청노조 파업:
정치적 파장을 일으키며 생계비 위기의 대안을 보여 주다

대우조선 하청노조(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파업이 어제(7월 22일) 마무리됐다. 노동자들은 정부와 사용자, 친기업 언론들의 온갖 비난과 압박을 무릅쓰고, 찌는 무더위에 무려 51일간 전투적으로 싸웠다.

타결 직후 1도크 점거 농성을 해제하면서 파업 참가자들이 서로에게 보낸 환호와 눈물에는 힘겹지만 뜨거웠던 투쟁과 그 속에서 맺힌 동지애가 서렸다.

파업을 마무리하며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노동자들 ⓒ출처 금속노조

이번 투쟁은 물가 앙등으로 노동계급 대중의 생계비 위기가 심각해진 상황에서 벌어졌다. 안 그래도 임금이 크게 깎인 처지였음에도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들은 싸울 자신이 있었고, 그래서 노동계급 생계비 위기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전 세계가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지금, 서민 대중의 생활수준이 크게 하락하고 노동계급의 실질임금이 깎인 데 대한 불만과 저항이 (스리랑카를 비롯한)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6월 초 화물연대가 저항의 포문을 열었다. 유가 폭등의 직격탄을 맞은 화물 노동자들은 단지 8일간의 파업으로 경제적·정치적 효과를 내는 위력을 보여 줬다.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들이 바통을 이어받은 것이다. 하청노조 조합원들은 임금 인상과 노조 인정을 요구하며 끈덕지고 대차게 투쟁했다.

치솟는 물가는 특히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고통스럽다. 특히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들은 조선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무더기 해고되거나 무급휴업으로 떠밀리고, 임금이 크게 깎이는 고통을 겪었다. 2016년 이래로 상여금 550퍼센트가 삭감되고, 각종 수당이 사라지고, 잔업·특근이 축소돼, 임금은 30퍼센트나 줄었다.

최근 2년여간 조선업 수주가 늘고 경기가 회복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열매는 노동자들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사용자 측은 원자재 가격 인상 등을 이유로 거기에 아무 책임도 없는 노동자들을 쥐어짜기 바빴다. 올 들어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24년 만에 6퍼센트를 돌파하면서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더 떨어졌다. “임금 깎아 인플레 버티기, 취약 노동자 숨통 쥔다”는 〈한겨레〉의 기사 제목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사용자 측은 걸핏하면 하청노조의 교섭 요구를 거부하며 협상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단체협약도 없고, 노동조합 활동도 사실상 보장받지 못했다.

대우조선 하청노조가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다”며 투쟁에 나선 것은 당연했다.

투쟁은 수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지지를 끌어냈다. 미친 듯 뛰는 물가에 신음하는 많은 노동계급 사람들은 이 투쟁을 남의 일로만 여기지 않았다. 파업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며 투쟁할 수 있도록 돕자고 제안된 모금에 며칠 만에 2억 8000여만 원이 걷혔다.

정치적 효과

대우조선 하청노조 파업 투쟁은 정치적이 됐다. 정부가 고물가 시기에 노동자 등 서민층의 생계를 지원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는 가운데 대우조선 하청노조 투쟁이 초점을 모으며 첨예한 정치적 문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대우조선의 도크 점거 농성이 길어지면서 배 4척의 인도가 연기되는 등 생산 차질이 빚어진 것은 정부와 사용자들의 걱정을 키웠다.

대우조선 하청노조 파업이 막판에 체제의 이윤을 상당히 파괴하는 효과를 내자 파업은 여야 정치권을 흔들고, 새 정부가 각료들을 파업 현장에 직접 파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 만큼 정치적 효과를 냈다. 윤석열은 여름 휴가도 연기하며 개입해 사태를 해결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노동쟁의에 ‘노사 자율, 정부 불개입 원칙’을 내세우던 윤석열 정부의 신조는 이번에도 깨졌다. 화물연대 파업에 이어 2연타다.

그리고 화물연대 파업에 이어 이 파업도 윤석열 정부의 지지를 떨어뜨렸다.

정부는 이 투쟁이 더 많은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열망과 투쟁에 미칠 자극을 차단하고 싶었을 것이다.

노동부(통영 노동지청)는 7월 초부터 자신의 중재 하에 원하청 노사를 모아 5자 간담회를 하려고 공을 들였다. 얼마 뒤, 산자부 장관 이창양은 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데는 신중한 모양새를 취하면서도 “협상을 지원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정부는 파업 47일 만에 긴급 관계장관 회의를 열고, 다음날 바로 노동부·행안부 장관과 경찰청장 후보자를 농성 현장에 보냈다. 윤석열은 물리적 진압을 시사하며 경찰 병력을 배치하고 농성장 위로 헬기를 띄우는 등 협상 타결을 강하게 압박했다. 임기 초부터 “노동쟁의에 끌려다닌다”는 기업인들의 볼멘 소리에 자신의 존재 이유를 어필해야 했을 것이다.

이제, 이전 정권이 벌인 조선업 구조조정에 책임이 있는 민주당까지 파업 노동자들의 편을 자처하며 국회의원들이 줄줄이 농성장을 찾았다. 물론 민주당은 농성 해제를 제안하며 기본적으로 화해를 설득하는 입장에 섰다. 핵심적 기반을 자본가들에 둔 정당의 본질적 한계 때문이다.

정의당은 투쟁 막바지에 거제 대우조선소 앞에 천막 당사를 차렸고, 수백 개 사회단체들이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매우 온건한 단체들조차 파업을 응원하고 나섰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경찰력 투입을 반대하는 집회를 파업 농성장 인근에서 열었다.

결국 정부는 실제 경찰력 투입에 나서지 못했다. 물리적 충돌과 거센 정치적 반발을 부를 일을 단행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취임 두 달여 만에 지지율이 20퍼센트 포인트가량 곤두박질친 상황에서 자칫 정권의 위기를 심화시킬 자책골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투쟁이 대안이다

위와 같은 점들을 볼 때, 대우조선 하청노조 파업은 노동자 투쟁이 생계비 위기에 맞서며 정치적 효과를 낼 능력도 있음을 보여 준다.

특히, 지난 수년간 노동운동 안팎에 적잖이 퍼져 있는 회의론, 즉 “노동이 녹아내리고 있다”는 식의 주장은 틀렸음을 보여 준다.

그렇기는커녕 노동자들은 우파 정부의 위기를 재촉하며 진정한 대안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고 있다.

대우조선 하청노조의 투쟁은 협상 타결로 일단락됐지만, 파업 참가자들은 이번에 얻은 투쟁 경험과 결속력을 바탕으로 앞으로 또 싸워 나아가야 할 과제가 있다고 소회를 밝혔다.

금속노조의 발표에 따르면, 이번 협상의 결과는 임금 4.5퍼센트 인상, 파업 기간 폐업된 업체 조합원들의 고용 승계, 손해배상 문제 추후 논의 등으로 요약된다.

김형수 하청노조 지회장은 “초라한 합의서이지만 금속노조의 이름을 넣을 수 있게 됐다”며 어렵사리 노조를 인정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조합원 누구도 만족하지 않는 잠정합의안”이었음에도 “90퍼센트가 넘는 조합원들이 찬성해 주셨다”고 밝혔다.

사용자 측의 제안이었던 4.5퍼센트 임금 인상이나 손해배상 미해결은 마지막까지 헌신적으로 싸운 파업 참가자들에게 불만족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이번 투쟁에 걸린 임금 인상 폭은 노동계급과 자본가 계급 사이에 첨예한 이해관계가 있는 정치적 문제였다. 즉, 그 사업장의 다른 노동자들뿐 아니라, 관련 산업부문과 이를 뛰어넘는 더 넓은 노동계급의 임금 문제와 체제의 이윤(과 개별 기업들의 수익성)에 미칠 영향이 상당한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정치’를 통념과는 다른 식으로 이해해야 한다. 흔히 사람들은 정치를 정당들이 의회와 공직 선거에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치를 이렇게 (개량주의적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 마르크스에게 정치는 광범한 연대로 전 계급적 투쟁을 건설해 정부와 모든 사용자들에 맞서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응원이 있었음에도 이번 투쟁에 필요한 만큼 연대 파업이 동원되지는 못했다. 흔히 그랬듯, 그런 저항을 하겠다는 위협에 그쳤다.

그럼에도 대우조선 하청노조 파업이 노동계급 전체에 미친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 일부는 그 투쟁에서 용기와 희망을 발견했을 것이고, 일부는 실제로 투쟁에 나설 자극도 받았을 것이다.

가령 지금도 임금 인상 등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대학 청소·경비 노동자, 하이트진로 화물 노동자의 일부는 뜨겁게 솟구친 대우조선 하청노조 투쟁을 응원하며 거기서 힘을 얻었다고 말한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부의 임금 억제 시도를 규탄하며 시위에 나섰고, 경기지역 버스 노동자들은 최근 임금 등 조건 개선을 위한 준공영제 시행을 요구하며 파업을 결의했다.

물가는 지금도 고공 행진하고 있는데 정부와 사용자들은 노동자들의 임금을 억제하려고 혈안이다. 이런 상황에서 하반기 노동자 투쟁은 활기를 얻을 수 있다.

이런 투쟁을 위해 개방적이고 폭넓은 연대를 구축하는 것이 진정으로 필요한 정치다.

정규직 노조의 금속노조 탈퇴 총투표가 보여 준 것

대우조선 하청노조 파업이 정부와 미디어의 강한 압박을 받고 있을 때, 정규직 노조는 우파 대의원들이 발의한 금속노조 탈퇴 총투표를 진행했다.

형식적으로는 정규직 노조의 상급단체 탈퇴 여부를 묻는 투표였다. 하지만 실내용은 정규직 노조가 하청노조를 밀어낼지 여부를 묻는 것이었다.

투표 결과는 최종 공표되지 않았다. 개표가 3분의 1가량 진행된 상황에서 부결이 확실해지자 우파 측이 (무더기 표를 이유로) 제동을 걸고 나서 (현재까지) 개표가 중단됐기 때문이다.

하청노조 파업 기간 내내 우파가 극성으로 파업 비난과 비방에 나서며 사용자 측과 협력해, 수천 명의 맞불 시위를 벌이고, 여성 노동자에게 상해를 입히며 농성장을 부수는 등 난동을 부렸다.

이런 행위가 매우 시끄럽고 조직적이어서 정규직 노조 내의 세력관계는 마치 우파 쪽이 주도하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았을 뿐, 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용한 다수’는 하청노조를 밀어내자는 선동에 동의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청노조 파업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금속노조 윤장혁 위원장은 대우조선 정규직 노조 정상헌 지회장을 “특별히” 추켜세우며 “원하청 공동 투쟁을 위해 노력했다”고 칭찬했다.

정규직 노조가 협상 중재에 나선 것을 치하한 것일 테다. 그러나 이는 노조 상층 지도자들이 노동자 단결을 고취하고 효과적인 연대 건설에 힘쓰기보다 어떻게든 협상을 중재해 타결 짓는 데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사실 정규직 노조 집행부는 하청노조에 농성 해제를 압박해 오히려 우파 조합원들의 기를 살려 줬다.

협상에서도 사용자 측의 압박을 전달하는 벨트 구실을 하며 후퇴를 압박했다고 한다.

이런 점들을 노조 지도자들이 비판하지 않고 오히려 추켜세운 것을 본 하청 노동자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무엇보다 이런 물음을 던져 볼 수 있다. 적당한 타협을 촉구하는 이들을 정규직 좌파 활동가들이 추수하지 않고 기층에서 발벗고 연대 건설에 나섰더라면 어땠을까?

만약 그랬다면 하청노조 투쟁에 훨씬 더 유리한 정치적 지형이 사회적으로 형성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우파들이 감히 물리적 폭력까지 써 가며 난동을 펴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일부 정규직 활동가들은 하청노조가 “너무 세게 싸워,” 자신들은 갈등을 키우기보다 적당히 타협하는 게 낫다고 봤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청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과 노조 인정 요구를 성심껏 지지한다면 필요한 것은 점거 농성을 굳건히 방어하며 사업장 안팎에서 노동자들의 광범한 연대를 구축하는 일이었다. 협소한 노동조합주의의 관점에서 볼 일이 아니다.

노동조합주의에 갇히지 않는 진정한 계급 정치가 훨씬 더 중요해지고 있다. 그러려면 그것을 구현하려고 애쓰는 혁명적 정치가 필요하다. 개량주의적 노조 관료를 추수하는 것이 아니라.

박설(노동자연대 편집팀을 대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