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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기무사 계엄 문건 폭로자들 고발:
사찰과 보안 수사 강화 신호탄?

국민의힘이 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 이석구 전 기무사령관,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을 기무사(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 계엄 검토 문건 폭로와 관련해 직권남용과 군사기밀 누설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군인권센터는 2018년에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문건을 공개했다. 박근혜 정권 퇴진 촛불 운동이 한창이던 때 계엄 선포 후 무력 진압을 검토했다는 내용이었다.

군 기무사가 박근혜 퇴진 촛불 진압을 위해 2017년 모의했던 쿠데타 계획 ⓒ출처 군인권센터

우파는 문재인 정부 하에서 일단의 좌파 무리들이 음모적으로 기무사 등에 누명을 씌워 국가 안보 기능을 약화시킨 폭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기무사에 대한 수사는 전직 기무사령관들의 자살(이재수)과 도망(조현천), 그리고 우파의 반대 탓에 제대로 진행되지도 못했다.

그런데도 국민의힘과 기무사가 전직 국방장관·기무사령관을 고발하고, 때맞춰 계엄 문건의 핵심 책임자로 지목돼 4년간 해외 도피 중이던 전 기무사령관 조현천이 귀국 의사를 밝혔다. 국민의힘이 고발한 수사에 협조해 ‘진실’을 밝히겠다는 것이다.

계엄 검토 의혹에 대한 수사와 진실 규명을 방해하려고 해외에서 도망 생활을 하던 자가, 우파 정권이 등장하고 국가정보원-기무사-보안경찰 등 정보·보안 기관들이 기능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귀국을 선언한 것이다.

우연이 아니다. 경제와 안보 등 복합 위기에 대한 우파 정부의 대응들과 잇닿아 있는 상황이다.

박근혜 퇴진 촛불 운동으로 표출된 개혁 염원에 잠시 양보하는 시늉을 했던 것들을 모두 되돌리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약화된 적이 없는 대공 수사권을 재강화하겠다는 것이 뜻하는 바다. 또 윤석열 정부가 국가보안법을 애용하기 시작하는 맥락과 일맥상통한다.

윤석열은 대통령 집무실을 국방부 청사로 옮기고, 정보·보안 경찰 출신들을 경찰 조직 최고 수뇌부에 중용하고, 공안검사들도 요직에 등용했다.

국가정보원은 내부 숙청을 단행하며 전 국정원장들을 고발했다. 전 기무사령관 고발은 이 시나리오를 재연하는 것이다. 안보지원사는 이미 8월에 보안·방첩 업무역량 강화를 위한 태스크포스를 꾸려서 가동 중이다.

무력 진압 음모와 박근혜 퇴진 촛불

계엄 검토가 실행을 위한 음모가 아니라 단순한 검토였을 뿐이라는 주장은 가당찮은 말장난이다.

고발당한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9월 15일 “‘국군조직법’ 및 ‘합동참모본부 직제’에 따르면 계엄 사무는 합동참모본부 소관 임무인데 군 정보기관인 기무사가 임무 범위를 초과하여 계엄령 시행 계획을 작성한 것은 그 자체로 문제”라고 반박했다.

절차만이 아니라 내용이 중요한 문제다. 검토 문건을 보면, 당시 기무사는 쿠데타 과정에서 벌어질 온갖 변수들을 예상해 가며 위수령·계엄령·계엄사령부 구성, 병력 배치 등을 세세하게 계획했다. 심지어 자신들의 거사가 성공할 수 있도록 편법적으로 군 통수권자인 계엄사령관에 자신들 라인인 육군참모총장을 앉힐 방도도 궁리했다.

당시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이 계엄령 검토를 지시했고, 박근혜나 황교안도 알고 있었을 개연성이 높다.

기무사의 검토가 실행 단계로 가지 않은 것은 순전히 그것이 성공할 가망에 대한 확신을 저들이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는 대중의 반정부 열기와 분노가 너무 강해 자칫 섣부른 무력 진압 시도가 오히려 혁명적 상황으로 발전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여러 가능성을 검토한 끝에 부르주아 정당들은 12월초 국회 탄핵소추, 3월 초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등 헌정 질서를 통해 박근혜를 버리고 기존 정치 질서를 방어했다.

이 맥락 속에서 군부도 모험을 포기한 것이다. 그 점에서 보면, 쿠데타 모의의 진정한 목적은 단순히 박근혜를 구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만에 하나 혁명적 상황이 조성될 것에 대한 대비였던 것이다.

따라서 당시 군의 계엄 모의야말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하에서도 체제 수호를 위해 군부가 대중 저항에 대한 무력 진압에 나설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어쩌면, ‘계엄 검토가 그저 통상의 업무였을 뿐’이라는 군의 해명 자체가 사태의 본질을 더 잘 보여 주는 것일 수 있다.

역사를 보면 군대가 체제를 수호하려고 ‘내부의 적’을 공격하는 일은 많았다. 한국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미국에서도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을 진압하는 데 군대가 투입됐다. 1973년 칠레 군부는 미국 CIA의 도움을 받아 선출된 좌파 정부를 전복했다.

그러므로 헌정 절차를 통한 박근혜 탄핵으로 마무리된 당시 정치 상황에서 남겨야 할 교훈에는 저항을 체제 내로 흡수하는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강점만이 아니라 그 이면의 허약함도 포함돼야 한다.

억압 기관 강화

〈조선일보〉는 “[기무사] 해체에 가까운 탈바꿈 과정”에서 “군의 방첩 기능이 크게 약화됐다”며 문재인 정부 탓을 한다(9월 15일 자 사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시절 기무사령부가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해편’한 것은 이름만 바꾼 것에 불과하다. 특무부대가 보안사령부를 거쳐 기무사령부가 되고, 중앙정보부가 안전기획부를 거쳐 국가정보원이 된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당시 군인권센터·민주노총·참여연대도 “군사안보지원사령부는 기무사와 다를 것이 없다”고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을 요란하게 떠들었지만, 정작 수사는 성의 없이 하다 중단했다.(당시 수사 총괄은 서울중앙지검장 윤석열이었다.)

결국 문재인은 기무사 계엄 문건 폭로를 지지율을 끌어올릴 기회로 삼았지만, 결코 이 기관들을 약화시키거나 군장성들의 권력에 도전할 생각은 없었다. 문재인의 개혁 염원 배신 탓에 목소리를 낮췄던 이들이 이제 다시 목소리를 키울 기회가 온 것이다.

그러므로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 등 여권이 약화된 적도 없는 공안 기관들의 재강화를 주장하는 것은 이 기관의 정당성을 회복해 사찰과 수사 기능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경제·안보 위기의 고조를 배경으로 집권한 윤석열 정부가 군·경찰·국정원·검찰 등 억압 기관의 힘을 늘리면서 동시에 이에 대한 통제력도 늘려 온 것도 위기 대응 전략의 일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