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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노동운동가가 말하는 시간제 일자리의 진실:
“정규직 일자리가 시간제 일자리로 바뀌었다”

박근혜 정부는 독일과 네덜란드의 시간제 일자리가 총 고용을 늘렸다고 주장한다. 독일 좌파 정당 ‘디링케’와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정간물인 ‘마르크스21’에서 활동하는 다비트 마이엔라이스가 독일 시간제 일자리의 진실을 전해 왔다. 다비트 마이엔라이스는 디링케의 헤센주의회 경제 고문이다.

2002년부터 독일의 사민당·녹색당 연립정부는 노동과 조세 관련 법규를 대대적으로 개혁하기 시작했다. 그 전 몇 년 동안 독일 기업주들이 ‘개혁이 지체’된다며 불평을 토로하던 상황이었다. 독일 기업주들은 이 ‘개혁 지체’ 탓에 독일 경제가 다른 OECD 국가들보다, 그중에서도 미국(클린턴 집권기에 미국의 GDP 성장률은 독일의 거의 곱절이었다)보다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고 불평했다.

노동시장 개혁의 핵심에는 ‘노동시장 선진화 법’이라고 불린 여러 법안들이 있다. 이 법은 당시 총리 슈뢰더가 설치한 위원회의 권고를 바탕으로 했는데, 폭스바겐의 인사부장을 지낸 하르츠가 그 위원회의 의장이었다. 그래서 이 개혁안은 보통 ‘하르츠 법(Ⅰ~Ⅳ)’이라고 불리게 됐다.

이 개혁안의 목표는 이른바 “경직된 구조”인 독일 노동시장을 대폭 “유연화”하고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었다. 독일 노동시장의 상당 부분에 규제가 심하고, 이른바 정규직(흔히 종신 고용이 보장되고 사회안전망이 제공되는 일자리)에 유리하다는 이유였다.

독일 ‘하르츠 개혁’은 시간제 일자리가 낳을 재앙을 보여준다 — ‘하르츠 개혁’에 반대한 독일 노동자들 ⓒ사진 출처 Udo54 (플리커)

정부는 이 개혁안이 누구에게 어떤 도움을 줄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지만, 여러 목표의 하나로 독일 노동시장에 저임금 부문을 창출하겠다는 점은 밝혔다. 그러면 특별한 기술이 없거나 오랫동안 실업 상태에 있던 사람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가로막는 장벽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인기가 없었던 것은 하르츠 Ⅳ법이었다. 하르츠 Ⅳ법은 기존의 실업급여 체계를 폐지하도록 규정했다. 하르츠 Ⅳ법 시행 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이제 직장에 다닐 때 벌던 순소득의 64퍼센트만을 최대 1년간 실업급여로 받게 됐다. 1년 뒤부터는 급여액이 형편없어져서, 법정 빈곤선 이하로 떨어진다.

여러 자선단체와 종교단체는 하르츠 Ⅳ법이 규정한 급여를 최소 25퍼센트는 올려야 한다고 계산했다. 그래야 사람들이, 특히 아이들이 있는 사람들이 식비 등 필수적 지출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르츠 Ⅳ법에 따라 급여를 받는 사람들은 합법적으로 박해받고 있고, 계속해서 “사례관리자”[급여 대상자에 대해 수급 자격 등을 심사·관리하는 사람]들에게 감시당한다. 실업자들은 소개 받은 일자리를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 자격 조건이 어떻든, 이전 직업이 무엇이든, 전에는 임금을 얼마를 받았든 상관없이 그래야 한다.

저임금 노동자의 급증

이런 상황은 전반적인 임금 수준에 커다란 압력으로 작용했다. 실업자들은 하르츠 Ⅳ법에서 빠져나오려고 아무리 낮은 임금이라도 감수할 태세가 됐고, 일자리가 있는 사람들은 직장을 잃으면 하르츠 Ⅳ법의 제물이 될까 봐 두려움에 떨었기 때문이다.

이전의 국영 고용보험과 달리 하르츠 Ⅳ법에 따른 급여는 더는 사람들이 생활수준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안 됐고, 고용보험과 임금을 대체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국가의 ‘도움’을 받기 전에 개인적으로 저축해 놓은 돈을 몽땅 써서라도 민간 노령연금 같은 것에 가입해야 할 판이다. 즉, 일자리를 잃고 1년 안에 취직하지 못하는 불행한 사람들은 완전히 빈곤해져서 저축한 돈을 죄다 써야 하고, 부동산·자동차·보험금 등 돈 될 만한 것은 뭐든 헐값에 팔아 치워야 한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실시한 한 연구의 결과가 보여 주듯, 하르츠 Ⅳ법의 가혹한 정책은 장기 실업을 낮추지 못했다.

그보다는 덜 알려져 있지만 하르츠 Ⅰ~Ⅲ법도 전체적인 임금 수준과 노동조건에 결코 덜 해로운 것이 아니었다. 하르츠 Ⅰ~Ⅲ법은 합법적 고용의 기준을 엄청나게 완화시켰다.

1990년대에 처음 도입된 시간제 고용 형태인 ‘미니잡(Mini Job)’에 대한 제약을 대폭 풀었는데, 특히 주당 노동시간 제한 완화가 중요했다. 원래 미니잡은 일주일에 15시간 이하, 월급은 4백 유로[57만 원] 이하로 제한됐다.[그 이상 일하면 미니잡으로 인정받지 못해 세금을 더 내야 한다.] 원래 미니잡은 성수기 등 짧은 기간에 추가 노동이 필요한 기업들과 부업으로 돈을 벌고자 하는 주부·학생·연금 생활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겠다는 미명 아래 도입됐다.

독일 ‘하르츠 개혁’은 시간제 일자리가 낳을 재앙을 보여준다 — ‘하르츠 개혁’에 반대한 독일 노동자들 ⓒ사진 출처 Björn Kietzmann(플리커)

최근의 연구 결과를 보면, 하르츠 개혁을 비판했던 사람들의 경고(심지어 하르츠 개혁이 시행되기도 전에 한 경고)가 옳았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독일 일자리의 거의 4분의 1이 미니잡이다. 미니잡 노동자들의 약 3분의 1(31퍼센트)은 일주일에 19시간 이상 일하고 월급으로 4백 유로를 받는다. 미니잡 노동자의 겨우 32퍼센트만이 시간당 8.5유로를 받고, 50퍼센트는 시간당 7유로도 못 번다.(시급 8.5유로는 독일 노동조합들이 요구하는 최저임금 수준이지만, 그걸 받고 주당 40시간을 일해 봐야 빈곤선을 겨우 넘는 수준이다.)

하르츠 개혁 이후 저임금 노동자(임금 중간값의 60퍼센트 이하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비중이 전체 노동자의 22퍼센트(!)로 급격히 늘었다.

미니잡 노동자들의 3분의 1은 임금 수준이 너무 낮은 나머지 직업 하나만으로는 공과금도 못 내 또 다른 일자리를 찾으려 한다. 미니잡 노동자 중 4분의 1만이 비숙련 노동자이고, 나머지 4분의 3은 숙련 노동자이거나 학사 학위가 있는 사람들이다.

또한, 미니잡 노동자의 약 3분의 2는 여성이다. 이 여성들은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대가로 극도로 낮은 임금을 받고, 흔히 불편한 시간에 일하고(특히 서비스업과 소매업에서), 대개는 자기 ‘스펙’에 못 미치는 일을 한다.

임금 몫은 줄고 자본 몫은 늘고

10년 전 하르츠 개혁이 도입될 때 정부가 떠들던 주장과는 상반되게, 고용 보장 제도를 파괴했지만 독일 노동자의 총노동시간이 늘지는 않았다. 다시 말해서, 하르츠 개혁은 일자리의 창출(과 소멸)은 촉진했지만 전체 일의 양을 늘리지는 않았다. 독일 노동자들이 일한 노동시간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정체해 왔다. 새로운 유형의 일자리가 기존의 정규직을 대체했을 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노동시장 개혁은 독일 경제의 동력을 그다지 강화하지 못했다. 독일의 경기 순환은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므로 세계경제의 영향을 직접 받는다.

노동시장 개혁은 임금 수준을 떨어뜨렸고, 노동조합의 조직력과 투쟁력을 압박했다. 왜냐하면 미니잡 노동자 등 규제 완화로 생겨난 일자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자기가 일하는 기업과 그 기업에서 일하는 다른 노동자들과의 연계가 느슨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국민소득의 분배를 끊임없이, 그리고 급격하게 바꾸었다. 즉, 하위 80퍼센트의 몫이 상위 5퍼센트의 몫으로 갔고, 임금 몫이 자본 몫으로 갔다.

미니잡에 대한 규제 완화뿐 아니라, 하르츠 개혁의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은 하청 노동의 자유화였다. 아직은 하도급이 전체 일자리의 2.5퍼센트 정도밖에 차지하지 않지만 확실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고, 청년들의 생애 첫 일자리가 하청업체 일자리인 경우가 흔하다.

하청 노동은 보통 자동차 생산이나 화학산업처럼 수익성이 가장 높고 가장 수출지향적인 산업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위협을 가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이용된다. 하청 노동자들의 실제 임금은 그들이 고용된 산업 부문 표준 임금보다 약 40퍼센트 정도 낮다.

미니잡, 미디잡(Midi Job, 월급이 최대 8백 유로인 일자리), 파트타임, 기간제 하청을 비롯한 각종 비정규 일자리는 현재 독일 전체 일자리의 38퍼센트를 차지한다. 경제 위기의 즉각적 타격에서 회복한 이후 독일에서 새로 생겨난 일자리 중 겨우 15퍼센트만이 정규직이었고, 42퍼센트는 기간제였고, 43퍼센트는 하청 계약직이었다.

한때는 정규직 일자리로 여겨지던 직업들이 점점 더 비정규직으로 바뀌고 있고, 사람들이 임금을 가지고 괜찮은 삶을 살아갈 가능성은 줄어들고 있다.

독일노동조합총연맹(DGB)은 지난 몇 년 동안 노동시장 개혁의 악영향과 과도함을 비판했다. 2000년대 초 국회에서 이 개혁안이 논의되고 있을 때 DGB는 노동시장 개혁이 낳을 예측 가능한 악영향에 대해서 경고했다.

독일노총 지도부의 잘못된 대응

그러나 DGB 지도부는 개혁안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삼갔다. 왜냐하면 DGB 지도부는 개혁안을 발의한 사회민주당과 밀접한 동맹을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들은 개혁에 반대하는 시위를 거의 조직하지 않았고, 시위를 할 때도 개혁의 과도함만 비판했지 개혁 자체를 비판하지는 않았다.

노동시장 개혁과 그로 인한 고용 구조의 변화 때문에 노동조합에 속한 노동자들이 40퍼센트가량 줄었는데도 그랬다.

여전히 노조 지도부는 자본가나 정부 같은 권력자들과의 협력에 희망을 걸고 있다. 그들은 이를 통해서 가장 잘 조직되고 수익이 높은 산업의 노동자들만큼은 고통스런 긴축에서 지켜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독일에 노사정 위원회는 없지만 노사정이 협력해 온 전통은 있다. 그러나 오래전에 자본은 이를 무력화했는데 노조 지도부와 사회민주당은 이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뿐 아니라, 노사 간의 합의가 쉽게 이루어지던, 이윤율이 높고 꾸준히 성장하던 호시절이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는다.

오늘날 자본가들은 자기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 때만, 즉 정부의 지원과 개입이 아쉽고, 노동자들이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도록 해야 할 때만 협상을 하고자 한다.

경제 위기가 가장 심각할 때 이 전략은 어느 정도 먹히는 듯했다. 노동자들이 노동시간을 줄이는 대신 줄어든 임금의 일정 부분을 정부가 보조하기로 합의했던 것이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이 일단 급한 위기를 넘기자 기업주들은 결코 호의에 보답하지 않았다. 그들은 계속해서 정규직을 비정상적인 고용으로 대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