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1월 15일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 ‘《팔레스타인의 저항》 저자 초청 강연: 팔레스타인 해방은 어떻게 가능한가?’(영상 보기)의 발제와 마플릿의 토론 정리다. 영상에서는 전문 통역사인 천경록 동지의 순차 통역이 제공된다.

안녕하십니까? 저를 발제자로 초청해 주신 노동자연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는 오늘 크게 세 가지 주제를 다루려 합니다.

ⓒ노동자연대TV

첫째, 현재 팔레스타인 상황. 둘째, 이렇게 된 과정. 셋째, 팔레스타인 해방의 전략.

첫째, 현재 팔레스타인 상황은 어떨까요? 가자지구 사람들은 야만적이기 이를 데 없는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적개심 가득하고 잔인한 공격은 그 유례를 찾기 어렵습니다. 이스라엘군은 자기 보호 수단이 거의 없는 사람들에게 세계에서 제일가는 최첨단 무기를 퍼붓고 있습니다.

가자지구는 오랫동안 이스라엘 국가가 통제하는 수용소와 다름없는 상태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좁은 땅을 드나드는 모든 움직임을 통제하고, 경제 활동을 옥죄고, 가자지구 주민들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마저 부정해 왔습니다.

지금 가자지구는 과거 남아공의 ‘반투스탄’(흑인 분리 거주 구역)을 떠올리게 합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은 ‘아파르트헤이트 국가’로 불리곤 하는데, 마땅히도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남아공에 빗댈 만합니다.

오랫동안 이스라엘 지지자들은 이런 비교를 거부해 왔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을 인종차별 국가로 규정하는 것이 유대인 배척의 한 형태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세계 주요 인권 단체들도 이스라엘이 인종차별 국가라는 똑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예컨대 휴먼라이트워치나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이스라엘이 종족적·종교적 배타성에 기초한 사회이자 삶의 모든 핵심 영역에서 비유대인 주민들의 권리를 부정하는 것에 기초한 사회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오늘날 가자지구의 참상은 팔레스타인인-아랍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증오가 커진 것과 궤를 같이하는데, 이는 이스라엘 정치가 꾸준히 우경화한 것을 반영합니다.

현재 네타냐후 정부 인사 중에는 스스로를 파시스트로 규정하는 정치 지도자들도 있습니다. 올해 초 이스라엘 재무장관 베잘렐 스모트리치는 스스로를 파시스트이자 성소수자 혐오자로 묘사했습니다. 이런 자들이 네타냐후와 함께 가자에 대한 공격을 주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정치에서 발전해 온 인종 학살을 추구하는 흐름의 일부입니다.

저는 “인종 학살”이라는 말을 굉장히 신중하게 사용한 것입니다. 유대인이야말로 현대사에서 가장 흉포한 인종 학살, 즉 유럽 파시즘이 자행한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였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주도해 가자지구를 공격하며 인종 학살의 의지를 보이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정착민 식민 국가라는 이스라엘의 성격은 계속된 인종 학살 범죄로 드러나고 있다 ⓒ출처 Carlos Latuff

시온주의와 서방 제국주의

여기서 둘째 주제로 넘어가겠습니다. 어쩌다가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일까요?

이스라엘 국가의 인종차별적 어젠다는 유대교나 유대인 자체와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이는 정착민 식민 국가라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비롯한 것이고,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영국의 식민 지배와 맞닿아 있습니다. 거듭된 팔레스타인 위기의 역사적 책임은 결국 영국에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알려면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당대의 다른 식민 지배 강대국들과 마찬가지로 영국도 과거 로마 제국이 추구한 분열 지배 전략을 신조로 삼았습니다.

당시 영국은 이라크, 이집트, 페르시아만 연안, 팔레스타인 등 중동 지역 전역을 식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이곳들은 영국 제국주의의 중요한 전략적 자산이었고, 제1차세계대전 즈음 이곳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 이 지역의 가치는 더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제1차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당시 영국 외무장관은 “연합국은 석유의 파도를 타고 승리할 수 있었다”고 으스댔습니다. 그 석유는 페르시아만 연안에서 나온 것이었고, 영국은 그곳 석유와 더 넓게는 중동 전체에 대한 지배력을 계속 유지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 땅에서 현지 아랍인들은 영국의 식민 지배에 맹렬히 저항하고 있었습니다. 동시에 그들은 유럽에서 온 유대인 정착자들의 땅을 늘리고 세를 키우던 시온주의 운동에도 격렬히 맞서 싸웠습니다

1920~1930년대에 영국은 아랍 민족주의 지도자들과 시온주의 운동 중 어느 쪽을 포섭할지 신중하게 저울질했습니다. 당시 영국령 팔레스타인 총독은 여러 전략적 이익 때문에 영국이 결국 시온주의자들을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썼습니다.

그는 시온주의 프로젝트가 영국에 도움 되는 이유를 이렇게 썼습니다. “시온주의 프로젝트는 적대적인 아랍 세계라는 바다 한복판에 영국에 충성하는 유대인들로 이뤄진 작은 ‘얼스터’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얼스터는 아일랜드 독립 투쟁 이후 영국이 아일랜드에 대한 전략적 영향력을 유지하려고 만들어 낸 지역이었습니다.

그래서 영국은 1930년대에 팔레스타인인들의 항쟁을 탄압해 시온주의자들이 이스라엘 국가의 기초를 닦을 수 있게 해 줬습니다. 영국은 시온주의자들의 핵심 목표를 지원함으로써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을 약화시키는 데에 도움을 얻고자 했던 것입니다.

한편 시온주의자들도 영국의 아랍 저항 진압 노력을 지원해 득을 보려 했습니다. 이렇게 시온주의자들과 영국 제국주의 사이에 공생 관계가 형성된 것입니다.

시온주의 운동은 영국 식민 당국과 사실상 똑같이 행동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1948년에는 75만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들을 몰아내고 유대인만의 배타적 민족 국가의 기틀을 닦게 됩니다.

영국이 식민지를 지배할 기력을 소진해 중동에서 물러나자, 이스라엘은 영국 다음으로 중동을 지배한 제국주의 강대국인 미국의 후원을 받으려 했습니다. 1950년대 이후 이스라엘은 서방 제국주의의 일부가 됐습니다.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미국으로부터 2600억 달러가 넘는 원조를 받았다는 사실은 매우 시사적입니다. 이 액수는, 이스라엘 다음 순위인 1960~1970년대 남(南)베트남의 두 배가 넘습니다.

미국도 페르시아만 연안의 석유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려 했고, 이를 위해 이스라엘을 제일 중요한 동맹국으로 삼았습니다.

이런 미국의 지원은 시온주의 운동에서 가장 극렬한 부위의 자신감을 크게 북돋았습니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이스라엘의 가자·서안지구 식민 점령을 지지한 것은, 네타냐후와 그의 동맹인 이스라엘 정부 내 우익이 더 많은 팔레스타인인을 몰아내도록 부채질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마치 19세기 식민 지배 국가처럼 행동해 왔습니다. 이들은 건국 초기에는 영국의 행태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그 후에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행태를 배웠죠.

식민 지배의 역사는 인종 학살로 점철돼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북아프리카에서 프랑스가, 호주에서는 영국이, 북아메리카에서는 미국이 원주민을 학살했습니다. 나열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현재 가자지구의 참상은 그런 역사적 사례들을 떠오르게 합니다.

팔레스타인과 아랍 국가들의 대중 투쟁

그럼 여기서 세 번째 주제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어떻게 이런 엄혹한 상황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해방을 이룰 수 있을까요?

앞서 지적했듯, 이스라엘은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중동 지배 전략에서 핵심적 구실을 합니다.

이스라엘이 건국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인 1950년에 이스라엘의 주요 신문 〈하레츠〉는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서방의 “경비견” 구실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중동 지역에서 서방 강대국들의 이익을 위협할지도 모를 아랍 국가나 급진적 운동을 응징하는 구실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중동에서 거듭된 전쟁과 충돌에서 이스라엘은 이런 구실을 했습니다.

여기에는 심대한 함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중동 지역의 가장 반동적인 세력들과 협력해 왔습니다. 예컨대 1970~1980년대에 이스라엘의 가장 긴밀한 동맹 세력은 레바논의 파시스트 운동 ‘카테브’였습니다. 또, 이스라엘은 이집트·요르단, 보다 최근에는 페르시아만 연안국들 등 미국과 동맹 관계인 매우 반동적 아랍 정권들과 협력 관계를 구축했습니다.

그러나 1948년의 ‘나크바’(대재앙) 이후에도 팔레스타인인들은 끈질기게 저항했습니다.

1987년, 2000년, 더 근래에는 2015년에 일어난 팔레스타인 항쟁을 가리키는 “인티파다(항쟁)”라는 아랍어 단어가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인티파다라고 불리는 그 항쟁들은 제국주의에 맞선 운동으로서, 아랍 세계 전역에서 연대를 일으키고 비슷한 류의 항쟁들을 촉발했습니다. 예컨대 1987년 가자지구에서 시작된 인티파다는 이집트·요르단·알제리·레바논·시리아·쿠웨이트에서 대중적인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이 대중 운동들은 자국 정권과도 대결했습니다.

1987년 가자지구에서 시작된 인티파다는 중동 전역에서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낳았고, 이 운동은 자국 정권과도 대결했다 ⓒ출처 Efi Sharir

그런데 팔레스타인 민족 운동에는 전략적 문제가 있었습니다.

수십 년 동안 팔레스타인 저항 운동은 야세르 아라파트와 그의 조직인 파타의 지도하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파타는 팔레스타인인들을 다른 아랍 국가에서 일어난 운동들과 분리시키려 했습니다.

아라파트는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국가에게서 돈과 무기를 지원받고, 그 대가로 다른 페르시아만 연안국들에 사는 팔레스타인인들이 그 나라의 정치에 관여하지 않게 하겠다는 합의를 맺었습니다.

이것은 재앙적인 전략이었습니다. 특히, 나크바로 인해 치명적으로 약화된 팔레스타인 사회에는 조직된 노동계급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팔레스타인 사회에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봉기 인티파다를 승리로 이끌 정치적 힘을 갖춘 세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아라파트의 지도하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이 결국 실패했고, 이것이 하마스가 부상한 핵심 배경입니다. 하마스와 그들의 정치에 대해서는 뒤에서 더 자세히 논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나 지금이나 팔레스타인인들의 투쟁이 승리하는 데서 관건은 아랍 국가들에서 벌어지는 대중 투쟁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중동 내 제국주의적 네트워크의 핵심적 일부로 통합되면 될수록,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이 이집트·시리아 등지에서 일어나는 혁명적 격변의 일부가 되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배를 종식시킬 전략

이제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지금 가자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은 팔레스타인인들의 투쟁을 중동의 더 광범한 투쟁과 결합하는 과제를 시급하게 제기하고 있습니다.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을 마구 짓밟고 있는 이스라엘 국가는 중동의 가장 반동적인 정권들과 관계를 유지한 덕분에 계속 존속할 수 있었습니다.

2011년 이집트 혁명은 이집트의 독재자 무바라크를 타도했습니다. 무바라크 정권은 서방의 가장 중요한 동맹이자 이스라엘 지배자들의 가까운 친구였습니다. 무바라크를 타도한 이 고무적인 이집트 대중 항쟁의 중심에는 이집트 노동계급이 있었습니다.

이 이집트 혁명을 두고 2011년 당시 전 이스라엘 총리 에후드 바락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험한 사건”이라고 했습니다. 바락은 무바라크 같은 반동적 통치자들에 맞선 혁명적 격변이 아랍 전역으로 확산되고 그것이 팔레스타인인들과 이스라엘 안보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까 봐 크게 우려했습니다. 매우 타당한 우려였죠.

지금도 노동계급이 중심적 구실을 하는 저항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특히 현재 이집트에서 벌어지는 일을 예의 주시해야 합니다. 이집트는 갈수록 불안정해지고 있고, 또다시 투쟁이 분출할 공산이 큽니다.

우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어깨 걸고 연대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그 밖에 팔레스타인인이 사는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의 지배를 종식시킬 전략을 제시해야 합니다.

팔레스타인 해방은 이집트 등 중동 국가들에서 일어나는 대중 운동과 밀접하게 엮여 있습니다. 중동 지역에서 일어나는 대중 운동은 이스라엘이 의존하는 제국주의적 네트워크의 일부인 자국 정권들과 대결할 것이기 때문이죠.

이 거대한 국제 운동의 일부로서 팔레스타인인들을 지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집회와 오늘 토론회 같은 행사들이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바깥 세계를 보면서 누가 자신들을 지지해 주는지 궁금해하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그렇죠.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팔레스타인인들을 지지하면서, 혁명적 변화와 팔레스타인 해방을 가져올 더 광범한 운동이 성장하기를 바라야 합니다.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은 팔레스타인인들뿐 아니라 중동 지역의 대중 운동을 고무할 것이다 ⓒ이미진

발제자의 정리

훌륭한 주장과 질문이 너무 많아서 모두 다루지는 못하겠지만, 먼저 미국과 동맹국들이 왜 그토록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한사코 유지하려 하느냐는 질문에 답해 보겠습니다.

일반적이고 역사적인 논점을 먼저 짚겠습니다.

몇백 년 전 영국을 비롯한 소수 유럽 국가들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저렴한 석탄을 기반으로 했습니다. 고도로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이 채굴한 석탄은 산업 자본주의를 성장시키는 핵심 동력이었습니다.

19세기에는 훗날 세계 패권을 쥐는 미국에서 자본주의가 성장했는데, 저렴한 텍사스산 석유가 그 동력이 됐습니다.

20세기가 되자 서방 자본주의는 중동 지역 석유에 기대어 안정적인 성장을 구가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는 화석연료에 중독돼 있습니다.

세계의 주요 석유 회사, 특히 북미와 유럽의 석유 회사들은 중동 석유에 막대한 투자를 했습니다. 지금도 중동의 총 석유 생산량은 막대하고 중동은 여전히 세계의 가장 중요한 에너지 생산지입니다. 그래서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한사코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것입니다.

1979년 이란에서는 미국의 중요한 동맹 세력인 샤 왕조를 타도하는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악명 높은 당시 미국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란을 잃었다. 하지만 그만큼 이스라엘이 두 배로 중요해졌다.”

앞으로도 미국은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쏟아붓는 미사일들도 미국의 공장에서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미국은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를 약화시킬 어떠한 기미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하마스의 뿌리, 부상, 모순

그다음으로 하마스에 관한 중요한 물음에 답해 보겠습니다.

하마스는 사실 이슬람주의 운동입니다. 이슬람주의는 20세기 초 이집트에서 출현한 운동이고,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으로 시작된 이 운동은 처음부터 모순적인 운동이었습니다.

무슬림형제단은 1930~1940년대 영국의 이집트 식민 지배에 반대하는 운동으로 출발했습니다. 무슬림형제단은 매우 영향력 있었고, 1940년대의 특정 시점에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은 중동 최대의 대중 조직이 됐습니다.

그러나 무슬림형제단은 이집트를 자신들이 집권한 이슬람 국가로 만들기를 꿈꿨고, 아래로부터의 독립적인 투쟁, 특히 노동자들의 독립적인 투쟁에 반대했습니다.

무슬림형제단에는 진보적인 요소와 반동적 요소가 혼재해 있었던 것입니다.

이 점은 오늘날 팔레스타인의 하마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마스는 아라파트가 이끄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실패에 대한 팔레스타인인들, 특히 가자지구 사람들의 대응으로 1970년대 말에 등장했습니다.

하마스는 2006년 총선에서 다수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이 선거 결과는 PLO의 실패뿐 아니라 PLO가 이스라엘과 맺은 재앙적인 합의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아라파트는 1993년 오슬로 협정으로 합의된 이른바 ‘평화 프로세스’의 팔레스타인 측 파트너였습니다. 이 협정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독립 국가를 약속했죠.

하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이 약속은 헛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팔레스타인 독립국 수립이 보장되기는커녕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의 식민 점령이 가속화됐습니다. 그 결과 현재 서안지구에 거주하는 이스라엘 정착민이 50만 명이 넘습니다.

한편,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거대한 감옥처럼 취급했습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하마스가 가자지구, 오늘날에는 서안지구에서도 유력한 정치 세력으로 부상한 것입니다.

하마스도 자신의 기원인 무슬림형제단처럼 모순적인 조직입니다. 한편으로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폭압과 제국주의에 적극 저항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하마스는 대중 투쟁을 건설하는 전략이나 팔레스타인의 투쟁을 다른 아랍 세계의 대중 운동과 연결시키는 전략을 추구하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가자지구 내부에서 하마스는 주민들을 꽤나 억압적으로 대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사회주의자이지 이슬람주의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팔레스타인 투쟁의 현 국면에서 이스라엘에 맞선 반제국주의 투쟁을 주도하는 것이 하마스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정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마스에게 온갖 위선적인 비난을 퍼붓는 이스라엘측 주장과 세계 언론들의 관점에 단호히 맞섭니다. 이들은 하마스와 하마스의 이런저런 활동을 문제 삼지만 현시점에서 하마스가 억압에 맞선 투쟁을 수행하고 있음을 보지 않습니다.

하마스 창립 35주년 기념 집회 이스라엘에 맞선 반제국주의 투쟁을 주도하는 하마스를 지지해야 한다 ⓒ출처 The Palestinian Information Center

PLO의 전략과 문제점

그다음으로 저는 수십 년간 팔레스타인 운동을 지도했던 PLO의 전략 문제를 다루고자 합니다. 이에 관해서는 시청자 토론에서 한 발언자가 아라파트의 전략에 관해 굉장히 정확하고 중요한 지적을 했습니다.

야세르 아라파트와 PLO 지도부는 페르시아만 연안에서 1950~1960년대에 등장한 신생 팔레스타인 부르주아지의 일원이었습니다. 이들에게는 중동의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과 비슷한 국가를 팔레스타인에 건설하려는 야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집트, 시리아, 페르시아만 연안국 정권들을 자신의 우방으로 여겼죠.

그런데 PLO가 1960년대 중반에 무장 항쟁을 시작했을 때 이를 수행한 게릴라 전사들은 팔레스타인 부르지아지 구성원들이 아니었습니다. 요르단·레바논·시리아의 난민촌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라파트와 그의 동료들은 이 난민촌의 젊은이들을 이스라엘에 맞선 게릴라 투쟁에 기꺼이 활용했습니다. 하지만 한 시청자 발언자가 잘 지적했듯이, 이 무장 투쟁이 성공하고 팔레스타인 저항 운동의 위상이 높아질수록 그 운동이 아랍 정권들과 충돌하는 것은 필연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1970년 요르단에서 “검은 9월” 위기를 낳았습니다.

당시 요르단에서 팔레스타인 저항 운동에 대한 지지가 엄청나게 커지면서 요르단 정권은 커다란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이로 인해 충돌이 벌어지자 PLO는 마비됐습니다. 아라파트와 그의 동료들은 요르단 정권을 다른 아랍 정권들과 같은 자신의 우방으로 봤기 때문에 요르단 정권에 정치적으로 맞서지 못했습니다.

비극이게도 PLO는 그 위기 이후 다시는 그 위세를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나고 지금에 이르는 동안 PLO의 전략보다 훨씬 급진적인 팔레스타인 해방 전략이 필요해졌습니다.

이집트 혁명과 팔레스타인 해방

이 점은 제가 다룰 마지막 논점과 이어집니다. 이는 청중 토론에서 발언한 이집트인 동지의 주장과 통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2011년 이집트 타흐리르 광장에서 일어난 혁명은 실로 이집트의 혁명적 운동과 팔레스타인인들을 연결시킬 전망을 열었습니다.

이집트 혁명에서 팔레스타인 문제는 핵심적인 쟁점이었습니다. 저는 수많은 이집트 시위대가 카이로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으로 몰려가던 장면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그때 굉장히 용감한 시위 참가자들이 대사관 건물에 올라가 이스라엘 국기를 떼던 모습도 기억합니다.

그리고 같은 때 많은 이집트 활동가들이 가자지구 남부의 라파흐 검문소로 몰려가서 가자지구에 물질적 지원을 제공하고 연대를 표하기도 했습니다. 이집트인들은 가자지구와 이집트 사이의 이 국경 검문소를 “이집트의 수치”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2011년 선거로 선출된 무슬림형제단 정권도 라파흐 검문소를 개방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을 맞이하라는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이집트 혁명은 팔레스타인인들과 중동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이스라엘의 안전을 위협한 사건이었습니다.

2013년에 압델 파타 엘시시가 유혈 쿠데타를 일으켜 많은 혁명 투사들을 살해하자 이스라엘 지배자들은 뛸 듯이 기뻐했습니다. 그때부터 엘시시는 엄청난 탄압을 지속하고 있고, 그 때문에 이집트인들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연대를 온전히 표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모순으로 가득한 체제입니다.

엘시시 정권은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세계 곳곳에 퍼뜨리려 애쓴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공격적으로 추진했습니다. 2011년에 수많은 이집트인들을 반란에 나서게 한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집트 혁명 당시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이스라엘 국기를 불태우고 있는 이집트인들 ⓒ출처 기기 에브라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병원을 지지 방문한 이집트 활동가들 ⓒ출처 기기 에브라힘

그리고 이집트에서는 극도로 불안정한 시기가 다시 시작되고 있습니다.

다시금 반정부 시위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우 흥미롭게도, 이 시위대는 2011년 혁명 때 무바라크 정권을 타도하면서 외쳤던 바로 그 구호를 외치고 있습니다. “민중은 정권 타도를 원한다!”

앞으로 이집트에 더한층의 격변이 올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식민 지배와 제국주의의 역사 때문에 중동 지역 전반이 기본적으로 불안정합니다.

그리고 이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도 희망을 주는 일입니다. 중동 전역에서 광범한 투쟁이 벌어지면, 그동안 점점 이스라엘과 긴밀해져 온 아랍 정권들의 통제력을 약화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럴수록 서방 제국주의를 주도하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긴밀히 유지하려 애쓸 것입니다.

더 큰 투쟁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오늘 발언하신 이집트 혁명가 동지를 포함해 중동의 혁명가들은 앞으로 중요한 구실을 하게 될 것입니다. 특히 그 동지들이 지난 혁명의 성공과 실패에서 교훈을 얻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국제적 연대의 중요성

이처럼 팔레스타인 문제가 국제적으로 중요하고 현재 가자지구에 세계의 관심이 집중돼 있는 상황에서 전 세계적으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있는 영국은 이 문제에 특별한 책임이 있죠. 이스라엘을 건국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의 권리를 박탈하는 데서 역사적인 책임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난주 영국에서는 10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에 참가했습니다.

그리고 모두 알다시피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로써 팔레스타인의 형제자매들이 자신들이 혼자가 아님을 느끼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한국에서 여러분이 벌이는 활동도 그런 연대의 중요한 일부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팔레스타인 위기의 역사를 이해하고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연대를 표할 태세가 돼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사회자, 통역자, 모든 참가자 여러분, 특히 발언해 주신 이집트 동지에게 감사드리면서 제 발언을 맺고자 합니다. 하루빨리 가자지구의 고통이 끝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