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신문 편집팀의 주]

도덕주의와 무분별한 급진주의 때문에 곡해되고 혼란스러워진 ‘피해자 중심주의’(그리고 ‘2차가해’)를 바로잡는 데 큰 도움이 될 듯해 이 글을 추천한다. 타당하고 건전한 논증이 돋보인다. 재게재를 허락해 주신 저자 박경신 교수와 문학동네 출판사에 감사드린다. 각주를 미주로 바꾸는 편집 디자인을 했다. 출처는 계간 《문학동네》 2018년 여름 통권 95호이다.


“미투 운동 언론 보도, 피해자 중심주의 부족”
—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은 피해자일 때만 주체가 되므로
여성은 피해자 정체성에 매력과 유혹을 느낀다”
— 정희진

미투 운동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걱정이 들려온다. ‘성폭력은 그 수위에 따라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형사처벌이나 인사상 징계를 받거나 정치적 실각 또는 사회적 매장도 될 수 있는 심각한 문제인데, 성폭력의 특성상 피해자의 진술을 우선 신뢰하는 여론 재판의 분위기 속에서 사실 확인 작업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죄가 없거나 적은 것으로 밝혀진 사람은 가해 사실을 부인하는 것만으로도 비난받게 될 뿐 아니라 폭로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거나 낙인이 찍히게 된다.’ 한 단계 더 나아간 걱정은 ‘이와 같은 작은 불공정함 때문에 남성들의 거부 반응이 커져 미투 운동이 개선하고자 하는 직장 내 성폭력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걱정의 중심에는 ‘피해자의 진술을 중심으로 사실 확인 작업을 진행한다’거나 ‘피해자에게 피해 상황에 대해 설명을 요구하거나 가해자의 해명에 동의를 표하는 것마저 2차 가해로 몰아 입을 막는다’거나 그리고 ‘여론 재판 때문에 죄 없는 사람이 피해를 본다’는 등의 논점이 있다. 이 글은 이와 관련해 법학자로서 몇 가지 정보를 제공하여 논의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국내의 논의

2000년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 뽑기 100인 위원회’(이하 100인위)는 ‘피해자 중심주의’를 “성폭력 사건의 의미 구성과 해결 과정에서 피해자인 여성의 주관적 경험에 진실의 권위를 부여하는 것1이라고 정의하였다. 이에 따라 100인위는 일부 사건들의 경우 진상 조사 없이 ‘피해자의 진술만으로도 가해 사실은 성립할 수 있다’는 입장하에서 소위 ‘가해자’들의 실명을 온라인에 공개했으나 이중의 몇몇 사건들은 성폭력이라고 볼 수 없다고 100인위 스스로 자성하면서 피해자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과 논란이 있었다.2

이후 피해자 중심주의가 적어도 ‘성폭력 피해 주장자의 말을 모두 믿어주는 것’은 아니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으나, 2011년 소위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흡연 이별 사건’3이 일어났을 당시 피해자 중심주의에 입각하여 ‘흡연’을 ‘성폭력’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서울대 내 학생들이 조직한 성폭력대책위의 요구하에 학생회장이 사퇴하면서 다시 한번 논란이 일었다. 이듬해 10월 대책위가 “피해자의 말만 듣고 ‘피해자 중심주의’를 잘못 적용해 〔학생회장인—인용자〕 유씨에게 피해를 입힌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사과한다”고 하며 논란은 일단락되었으나 그 이후에도 관련 당사자들에 의해 피해자 중심주의는 다음과 같이 옹호되었다.

〔무죄추정의 원칙이 피의자를 우선적으로 보호하는 것을 가리켜—인용자〕 형사법 분야에서 국가가 권력을 독점하기 때문에 피고인을 유리하게 다루듯, 다른 법 분야에서도 권력의 편향이 나타날 경우 증명 책임을 수정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의료 분야나 기업을 상대로 하는 환경 소송이나 제조물 책임 소송 등은 한쪽에 권력이 편향되었기 때문에 도리어 기업이나 의사를 상대로 소송하는 측의 증명 책임을 완화시켜주는 법리들이 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 진술을 1차적으로 신뢰해야 한다는 원칙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합니다. 남성 중심주의가 사회를 지배하는 현실 속에서 남성인 가해자측에 권력이 편향되기 쉽기 때문에 그에 대한 보정으로서 피해자 진술을 1차적으로 신뢰한다는 차원입니다. 형사 절차라면 무리가 있겠지만 자치 규약에서 이런 원리를 도입할 수 없다고 단정지을 수 없을뿐더러, 피해자 중심주의에 의한 증명 책임의 보완 내지 수정은 오히려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권력관계를 시정한다는 점에서 필요합니다.4

2016년 발생한 이자혜 사건, 즉 페미니스트 투사로 불리기도 했던 유명 웹툰 작가가 자신의 십대 팬을 지인에게 소개했는데, 십대 팬이 지인에게 ‘강간’을 당했으며 작가가 이를 부추겼다고 주장한 사건으로 작가는 온라인상의 집단적인 공격을 받고 직업적 생명까지 파국으로 치달았었다. 이에 작가가 십대 팬이 지인과 성행위를 한 후에 나눴던 카톡 메시지 등을 공개하면서 피해자 중심주의에 대한 자성의 움직임이 보였다.5

그후 2016년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 사건이 터지면서 나타난 소위 ‘페미니즘 리부트’ 현상을 거치며 성폭력 고발 전반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고, 2017년 5월 ‘2017 공동체 내 성폭력을 직면하고 다시 사는 법—‘2차 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 토론회’에서 피해자 중심주의에 대한 본격적인 토론이 이루어진다. 당시 논의를 주도했던 권김현영은 피해자 중심주의의 출현을 “2000년대 (……) 가해자 중심 문화에 대응하며 사용된 ‘맥락적 지식’의 결과”라고 평가하지만6 피해자의 주관적 감정에 지나치게 독점적인 권위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오용되었다고 지적한다.7 ‘2차 가해론’에 대해서도 “언론이 (……) 가해자 입장만을 전달해 사실상 꽃뱀 취급하거나, 선정적인 표현으로 사건 자체의 초점을 흐리게 하는 (……) 피해자를 비난하는 문화” 속에서 “성차별주의와 잘못된 성 통념으로 인해 피해자가 겪게 되는 부당한” 2차 피해를 막는 것에 그쳐야 하는데, 피해 여부의 조사나 가해자의 해명 행위까지 가해로 규정하면서 모든 윤리적 판단의 기초가 되어야 할 사실 확인 절차를 저해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8

2017년 5월 노동자연대(전신 ‘다함께’)는 『‘피해자 중심주의’와 ‘성폭력 2차 가해’ 논쟁,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소책자를 발간하면서 민주노총 전 울산 지역 본부장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민주노총의 여성 국장이 가해자로 지목된 자에게 ‘피해자의 의사에 반한 성행위였음’을 인정하는 내용의 자술서를 쓰도록 강압하였다는 사실이 재판중에 밝혀져 1심, 2심 무죄로 귀결되었던 일을 피해자 중심주의의 패착의 사례로 제시하였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피해자 중심주의’(……)는 ‘피해자의 피해 경험에 집중하고, 그 경험을 가부장적·남성적 태도가 아닌 온전히 피해자의 시각으로 바라보고자 함’입니다./‘노동자연대’는 성폭력 피해자를 ‘진정한 성폭력 피해자’와 ‘주관적 성폭력 피해자’로 구분함으로써 (……) 왜곡과 축소가 발생합니다. 이는 (……) ‘2차 가해’에 해당하므로” 노동자연대와의 연대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9

피해자 중심주의의 원류

성폭력10, 미성년자 학대11, 국가 범죄12, 인신매매13, 수용 시설 내 성범죄14 등과 같이 가해자—피해자 사이의 권력관계와 연관하여 발생하는 범죄를 처리할 때 자주 등장하는 ‘victim-centered justice’ 또는 ‘victim-centered approach’라는 표현은, 사법절차를 주도하는 국가기관들이 가해자의 엄벌보다는 자신들의 서비스의 “고객들”15의 요구와 처지를 최우선에 두기 위해 시도하는 다양한 조치들을 일컫는다.

이중 성폭력과 관련되어서는 “피해자의 보호를 최우선시하고, 피해자가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도록 하는 장애물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각 피해자의 독립적인 자율성을 승인하고, 피해자의 비밀을 유지해주며, 절차 개선 노력에 피해자의 의견을 포괄하는 것”16으로 정의되기도 하고,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피해자가 사법절차 때문에 겪는 ‘고통(trauma)’을 예방하여 성폭력 신고 빈도를 높이는 것에 초점을 맞춘 조치를 칭하기도 한다.17 실제로 성폭력에 대한 사법제도에 있어서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은 스스로 피해자 중심적임을 자임하는데 그 주요 요소는 “피해자들 스스로 자신의 경험을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이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받을 수 있어야 하며, 정당한 피해자로서 인정받아야 하며, 가해자가 자신의 가해행위에 대해 뉘우치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하며, 격리와 자책으로부터 벗어남에 있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자신의 피해 해결 방법에 있어서 선택과 의견 제시를 할 수 있어야 한다”18는 것이다. 이렇게 “피해자에 공감하는 사법절차(victim-sensitive justice)”는 “피해자를 독립적인 사람으로 존중하고 이들의 필요 및 지역사회의 지원을 각 피해자에게 개별화하며 (……) 피해자의 육체적 안전을 보호하고 재가해의 위험을 줄일 수 있어야 하고 가해자의 약속이 최대한 실천되도록 할 수 있어야 한다”.19

비교를 위해 국가 범죄에 대한 victim-centered justice의 정의를 살펴보자면, “가해자 처벌만을 목표로 해서는 안 되고 피해자 가족들과 지역사회의 필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20는 뜻으로 통용된다. 인신매매에 관련되어서는 “피해자의 필요와 관심에 대한 체계적인 집중을 통해 〔피해자에게—인용자〕 다정하고 감각적인 사법 서비스를 단죄적이지 않은(nonjudgmental) 방법으로 제공하기 위해 (……) 피해자 옹호 및 기타 서비스의 지원을 제공하고 피해자들이 형사 사법절차에 참여하고 자신들의 매매자들이 응징되는 과정에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함”을 의미하며 형사 사법절차에서 발생하는 ‘2차 고통(retraumatization)’을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21 성폭행 가해자 교화 프로그램에 있어서는 “피해자를 사법제도의 1차 고객으로 생각하고 이들의 안전, 권리 및 이익을 우선 고려하여 가해자 관리 전략을 디자인하고 실행하는 것”22이라고 한다.

페미니즘이 victim-centered justice라는 구호하에 성폭력 처리에 대해 요구하는 것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피해 여성이 스스로 발언을 하고 자신이 당한 피해를 말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을 ‘피해자 중심적’이라고 지칭한다.23 최근의 미투 운동과 관련되어서도 “피해자를 우선시하는 사법제도”로서 “회복적 정의”가 제시되는데24 “싸움이 절대로 공평하지 않은 권력 비대칭 상황”에서 “회복적 정의가 내재적으로 페미니즘적”이기 때문이라고 한다.25 기존의 형사 절차는 양측이 자신의 서사가 옳음을 최대한 강하게 주장하는 경험만을 가지게 되며 결국 가해자는 자신의 잘못을 이해하지 못하고 피해자는 더욱 고통받게 되고 사회는 재범 가능성에 더욱 두려워하게 된다는 것이다. 회복적 정의 절차의 예로는 “피해자—가해자 면담(victim-offender conferencing)”에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사과하는 과정을 든다. 회복적 정의는 결과적으로는 가해자에 대한 엄벌이나 입증책임 가중보다는 덜 ‘단죄적인’ 절차를 거치게 되므로 일부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나 꾸준하게 회복적 정의를 재해석하는 노력은 이어지고 있다.26

종합해보건대 victim-centered justice는 권력관계를 원인으로 발생하는 범죄 등에 있어서 가해자의 처벌을 맹목적으로 중심에 두면 그 권력관계하에서 계속해서 살아가야 하는 피해자의 사후 회복 및 권력관계로부터의 해방이 도리어 저해될 수 있으니 피해자의 욕구와 관심을 중심에 두고 사법절차 및 모든 사건 해결 절차를 진행하려는 경향을 통칭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국내에서 통용되는 피해자 중심주의 즉 범죄 발생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우선적으로 피해자의 말을 가해자의 말보다 신뢰해야 한다거나 성폭력 발생에 대한 입증책임을 가해자에게 전환하여 성폭력을 저지르지 않았음을 입증해야 무죄가 되는 법리와는 거리가 있다.

대안: 권김현영의 ‘피해자 관점’

최미진은 “‘피해자 중심주의’는 세계적으로 모든 나라의 여성운동에서 쓰이는 개념도 아니거니와, 이 개념을 사용한 미국의 피해자학에서조차 피해 호소 여성의 인식과 감정을 중심으로 사건의 진상을 판단하고 해결한다는 의미로 사용한 것이 아니다. 여기서 ‘피해자 중심주의(victim-centered approach)’는 피해자 치유의 과정에서 피해 여성의 회복을 돕고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따뜻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27라고 하여 국제적인 이해에 가장 부합한 입장을 제시하고 있다.

권김현영은 ‘피해자 중심주의’를 ‘피해자 관점’으로 대체해야 페미니즘 운동을 지속하면서도 전자의 패착을 피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28 여성 피해자의 주장에 우선적으로 증거력을 부여하지 않더라도 1991년 미국 연방항소법원의 엘리슨 대 브래디 사건29의 판결처럼 남성의 행위의 부당성을 ‘합리적인 남성의 입장’이 아니라 ‘합리적인 여성의 입장’에서 평가하자는 것이다. 피해자 관점이라는 표현은 판결문에 나오는 “victims’ perspective”를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법원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여성들이 압도적으로 강간과 성추행의 피해자이기 때문에 여성은 성적 언행에 대해 우려해야 할 동기가 더 강하다. 경미한 성희롱을 당한 여성은 그 희롱 행위가 폭력적인 성추행의 전조인지를 걱정해도 놀랍지 않다. 남성이 성추행의 피해자가 되는 건 드물기 때문에 여성이 인지할지 모르는 폭력의 위협이나 사회적 배경을 충분히 체감하지 못한 상황에서 성적 언행을 평가할 것이다. (……)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채택하는 ‘합리적 여성 관점’은 가해자가 자신의 행위가 상대의 직장 환경을 적대적으로 만들었는가를 인지하는지를 고려하지 않는다.”30

그러나 권김현영의 제안은 실제 사건을 합리적으로 처리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피해자 중심주의’나 ‘피해자 관점’ 모두 ‘피해자 관점을 중심으로 사실판단을 한다’는 하나의 명제에서 방점만 다른 것으로 이해될 가능성이 높다. ‘피해자 관점’은 ‘합리적 여성 관점’이라고 부연하더라도 ‘피해자 중심주의’ 역시 ‘합리적인 여성’을 전제로 주장되어왔기 때문에 다를 게 없다. 서울대 사회과학대 흡연 이별 사건의 경우 ‘합리적 여성 관점’이 ‘흡연이 성적 굴욕감을 준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가’라는 질문을 지렛대 삼아 구체적인 역할을 할 수는 있겠지만, 피해자 중심주의가 문제가 되는 대부분의 사건들은 성관계가 있고 피해자의 합의 의사 표명 여부가 중요해지는 성폭행 사건들이다. 피해자 자신의 행위의 평가 기준으로 ‘피해자 관점’이 작동할 경우 사건 처리 방식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실 엘리슨 대 브래디 사건의 피해자 관점의 진보적 가치는 ‘피해가 있었는가’를 묻는 단계에서 작동하면서 나타난 것이었다. 승진을 대가로 한 성행위 요구나 반복적인 언어 성희롱 모두 물리적이지 않기 때문에 피해 존부 여부가 다투어질 수 있는데 이때 피해 당사자의 관점에서 대가성(quid pro quo)이나 적대적 환경(hostile environment)을 체감할 수 있었다면 피해 존재를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이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에서 피해자 중심주의가 논란이 되는 성폭행의 경우, ‘물리적 접촉이 있었는가’라는 1단계의 질문이 아니라 ‘피해자가 거부하였거나 거부했을 것이라고 보이게 행동하였는가’라는 2단계의 질문에서 피해자 중심주의가 작동하고 있다. 엘리슨 판결은 2단계의 질문이 아니라 1단계의 질문을 피해자 관점에서 물으라는 것으로서 국내의 피해자 중심론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는 없다.

문화급진주의적 페미니즘과 피해자 중심주의

페미니즘은 성차로 구성된 사회가 부당하다는 신념을 중심으로 구성된 세계관이면서 사회운동이다. 급진주의적 페미니즘은 자유주의적 페미니즘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났는데, 자유주의적 페미니즘이 기본적으로 기존 사회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지위를 획득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급진주의적 페미니즘은 기존 사회 자체가 남성에 의한 여성의 지배를 전제로 구성되어 있어 남성의 지배 수단인 남성의 육체적 우월성과 여성의 ‘출산 중심의 섹슈얼리티 통제’31로부터 여성을 해방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32 여러 가지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자유주의적 페미니즘과 급진주의적 페미니즘의 관계는 빈부 격차 해소를 위해 강력한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개혁주의와 자본주의의 해체 즉 자본가에 의한 노동자 착취의 수단이 되는 자본의 국유화를 통해 노동자 해방을 요구하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와의 관계와 유비되는 면이 있다.33

급진주의적 페미니즘은 다시 해법의 차이를 두고 자유급진주의(radical-libertarian feminism)와 문화급진주의(radical-cultural feminism)로 구분할 수 있는데, 자유급진주의는 남성에 의한 여성의 지배를 막기 위해서는 여성도 자유로운 섹슈얼리티를 추구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문화급진주의는 남성의 섹슈얼리티 자체가 생물학적으로 여성 지배를 전제로 진화했기 때문에 남성의 섹슈얼리티 통제를 통해서만 여성해방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34 문화급진주의자 일부는 심지어 이성애 자체가 남성의 섹슈얼리티의 발현이기 때문에 일대일의 여성 동성애만이 유일한 해방적 사랑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35

문화급진주의적 페미니즘은 강간 등 여성 피해자가 대부분인 폭력적인 범죄가 바로 남성이 여성을 힘으로 지배하는 방법이라며 이를 용인하는 문화에 대해 변화를 요구한다(고로, ‘문화’급진주의). 예를 들어 대부분의 포르노그래피가 여성이 학대나 비하를 즐기는 것처럼 묘사하여 실제로도 남성에 의한 여성 학대와 비하를 조장한다며 금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서는 폭력에 대한 여성의 경험을 광범위하게 살펴보아야 하며 위협이나 강요를 포함해 여성에 대한 사회적 지배 전체를 아울러 폭력으로 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여성 중심적으로 폭력을 정의”해야 한다는 것이다.36

이렇게 보았을 때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말은 문화급진주의적 페미니즘의 ‘여성 중심적인 폭력 정의’가 우리나라에서 착근하면서 의미가 왜곡된 것일 수 있다. 문화급진주의적 페미니즘이 사회적인 폭력의 범위를 여성 중심적으로 설정하자는 것과 우리나라에서 개별 성폭행 사건의 사실 확인을 할 때 일차적으로 개별 여성 피해자의 진술에 의존하자는 것의 차이는 크다. ‘여성 중심적인 폭력 정의’는 정치적인 것이지 사법적인 것이 아니다. ‘성매매, 포르노그래피처럼 물리적 폭력이 없어도 사회 전체의 남성 지배를 떠받치는 폭력을 조장하기 때문에 규제되어야 한다’라는 주장에 호명되는 것이지 ‘강간 사건에 있어서 합의가 있었는지의 사실적 다툼에 있어서 피해 주장자의 진술을 우선 신뢰한다’라는 주장에 호명되는 것이 아니다. 성매매와 관련된 외국의 페미니즘 구호 중에 ‘성매매는 강간이다’라는 구호가 있긴 하다. 그러나 문화급진주의적 페미니즘이 자유급진주의적 페미니즘과의 대결에서 승리하여 얻게 된 2014년 유럽의회 성매매 결의문37을 보더라도 구매자 처벌의 이유는 개별 성매매가 실제 ‘폭력’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발적 성매매가 성에 대한 인식을 타락시켜 명백한 범죄인 강제 성매매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된 것은 문화급진주의적 페미니즘의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38라는 구호가 섹스라는 매우 개인적인 관계에도 남성 우월주의가 침투해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는 경고문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개인의 행위에 대해 사법적 판단을 받을 때도 정치적으로 싸워야 한다는 의미로 오해된 때문이 아닌지 궁금하다.

피해자 중심주의와 성 순결주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피해자 중심주의의 중심에는 ‘오죽 그랬으면 성교 사실을 밝혔겠는가’ ‘성행위를 당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낙인인데 사실이 아니라면 이를 밝혔겠는가’라는 통념이 작동하고 있다. 실제로 저항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루어진 성관계가 강간으로 인정된 사례가 있었는데 법원은 여성이 적극적 동의 표시도 저항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평소 친분이 없던 세 명의 남성과 간음한 사건에 대해 1심 무죄판결을 파기하고 유죄 선고를 내리며 다음과 같이 판시하였다.

성관계의 구체적인 내용에 비추어 당사자들이 속해 있는 사회·문화적 맥락과 일반적인 성생활 자유의 영역 내에서 통상 예상할 수 있는 범위를 상당 정도 벗어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는 특수한 유형의 성관계 즉, 가해 남성 또는 일반인의 제3자적 시각에서 보더라도 당사자들의 사회·문화적 지위와 성도의 관념, 성관계가 이루어지기까지의 경과, 당사자 사이의 친소관계, 면식관계, 교제 기간, 성행위가 이루어진 시간적·공간적 여건 등 제반 정황에 비추어 상대방 여성이 그러한 성관계를 양해해주기란 좀처럼 용이하지 아니한 유형의 성관계에 있어서는 상대방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대체로 소극적·방어적인 방향을 지향하여 그러한 성관계를 일단 거부할 것이라는 인식을 기본으로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이때 가해 남성으로서는 상대방 여성으로부터 적극적, 명시적으로 동의 의사를 얻기 전까지는 보수적으로 행동할 것이 기대되고 만일 이러한 적극적 동의를 얻지 못한 채 내심으로는 여전히 거부적 입장이 분명함에도 반항이 억압된 채 마지못해 성관계에 순응하고 있는 피해자의 태도를 추정적 동의로 간주하고 비전형적 또는 일탈적 성관계에 돌입한 경우라면, 가해 남성 내심에는 피해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가 있음을 알고 있거나 적어도 미필적으로나마 이를 알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39

사실 강간 관련법의 가장 큰 문제는 피해자가 강하게 저항을 해야 강간으로 인정하는 ‘최협의설’이며 이를 변경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위와 같이 사실판단의 기준을 여성에 대해서 변경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여성이 낙인 위험에도 불구하고 삽입 사실을 공개할 경우 합의 여부에 대해서도 우선은 믿어주자’라는 식의 피해자 중심주의는 페미니즘이 철폐하고자 했던 남성에 의한 여성 섹슈얼리티 통제의 일환이었던 성 순결주의와 결탁하는 것과 다름없다. 미투 운동이 여성 중심주의에 빠져 성 순결주의로 빠져서는 안 된다. 이미 미투 운동과 관련하여 해외에서는 예술품의 성 표현에 있어서 성 순결주의에 대한 강조가 나타날 조짐이 보이는데40 이는 결국 여성 섹슈얼리티 통제의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자유급진적 페미니즘의 입장에서는 최악의 결과이다.

여론 재판과 무죄 추정의 원칙

반면 ‘여론 재판’에 대한 공포는 과장된 면이 있다. 혹자는 무죄 추정의 원칙을 내세우며 “피해를 당했으면 법이 정한 절차에 의해 진실을 밝힐 수 있도록 검찰에 조용히 고발을 해야지 왜 여러 사람에게 알리느냐”고 하는데, 서지현 검사의 미투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 사회정의를 몽땅 검찰에 맡기자는 논리에는 허점이 있다.

국립대학교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 내에서 제자인 여학생을 성추행했다는 내용의 글을 지역 여성단체가 인터넷 홈페이지 및 소식지에 게재한 사안에 대해 법원은 “범죄 사건의 공표와 관련하여는 헌법상 형사 피고인에 대한 무죄 추정의 원칙이 인정되므로 객관적이고도 충분한 증거나 자료를 바탕으로 범죄 자체에 관한 사실을 공표하여야 할 것이며, 범죄 자체를 공표하기 위하여 반드시 범인이나 범죄 혐의자의 신원을 명시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며, 범인이나 범죄 혐의자에 관한 공표가 범죄 자체에 관한 공표와 같은 공공성을 가진다고는 볼 수 없다”고 하였다.41 그러나 무죄 추정의 원칙은 국민에 봉사해야 할 국가가 자신의 주인인 국민을 법적 절차 없이 공격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지, 국가의 주인인 국민들에게 적용되는 원리가 아니다. 쉽게 얘기해서 당장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사실을 동료들과 공유하여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할 권리는 법적 절차와 관계없이 행사될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 무죄 추정의 원칙을 위반하고 있다면 죄가 입증되지 않았음에도 수사 및 재판을 하고 있는 국가이지 수사와 재판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동료들에게 알린 국민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법적 고발과 달리 사회적 고발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현대사회는 잘못을 저지를 자유를 허용하고 있어 불법과 부도덕 사이에 넓은 윤리적 재량을 허용하고 있다. 이에 따른 수많은 행위들이 불법은 아니지만 도덕적 논의의 대상이 된다. 간통이나 혼인 빙자 간음이 대표적인 예다. 현대사회의 헌법은 이런 부도덕을 법으로 규제하기보다는 국민들의 토론과 이에 따른 자율 규제로 해소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결론

해외에서 논해지는 victim-centered justice는 가해자의 엄벌이나 피해자에게 유리한 사실판단이 아니라 성폭력 여성 피해자들의 요구와 처지를 중심에 두고 피해자들이 사건 이후 지속적인 리더십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절차이다. 급진주의 여성운동에서 말하는 ‘여성 중심적인 폭력 정의’ 역시 정치적이고 통시적인 규범이지 사법적이고 개별적인 규범이 아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과거 100인위, 서울대 사회과학대 흡연 이별 사건, 이자혜 사태와는 달리 최근 2015~2016년의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진행되고 있는 미투 운동에서는 피해자 중심주의나 2차 가해 개념의 오류를 극복한 것으로 보여 사실 필자가 이 글을 쓸 필요가 있었는지 후회스럽기도 하다는 점이다.

운동이 선행이나 적선과 다른 것은 운동은 주체를 세우는 일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주체는 억압적인 과거에 속해서 살아왔던 사람이고 그 과거를 변화시켜 덜 억압적인 미래로 바꿔가야 할 구체적인 사람이다. 주체는 억압의 피해자이고 그 억압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사람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그 억압을 떨쳐내야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에 맞서는 노동운동의 주체들은 스스로 자본주의 속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노동자임을 거부하고서는 운동을 할 수 없다.

페미니즘도 운동이다. 페미니즘은 가부장제 속에서 살아온 구체적인 여성들이 주체가 되어 여성들에게 억압적인 제도와 사회를 탈바꿈하려는 운동이다. 페미니즘이 성차별 철폐 운동과 다른 것이 바로 이 점이다. 차별 철폐의 주체가 누구이어야 하는가에 있어서 결국 여성의 역량으로 성차별이 철폐되지 않는다면 그 결과로 얻는 성평등은 매우 불안할 수밖에 없다. 강대국에 의해 광복을 ‘선물’받은 우리 민족의 불안했던 지난 칠십 년의 현대사를 돌아보라. 어떤 페미니즘도 여성을 피해자화해서 성공할 수 없는 것은 어떤 노동운동도 노동자를 피해자화해서 성공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1. 이미경 외, 『성폭력 뒤집기—한국성폭력상담소 20년의 회고와 전망』, 이매진, 2011, 65쪽. 강조는 인용자.

  2. 전희경, 「100인위가 한 것과 하지 않은 것」, 『2017 공동체 내 성폭력을 직면하고 다시 사는 법—‘2차 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 토론회 자료집』,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2017, 장임다혜, 「‘피해자 중심주의’와 ‘2차 가해’ 개념 속에서 말해지지 않은 것: 절차의 문제」, 같은 책.

  3. 「남친, 줄담배 피우며 ‘헤어지자’… 성폭력?」, 경향신문, 2012. 10.

  4. 김푸른솔, 「피해자 중심주의를 옹호하며」, 2014. 1. 4. 강조는 인용자. http://blog.jinbo.net/kimpoo88/89

  5. 양효실 외, 『당신은 피해자입니까, 가해자입니까—페미니즘이 이자혜 사건에서 말한 것과 말하지 못한 것』, 현실문화, 2017.

  6. 권김현영 엮음,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 교양인, 2018, 44쪽.

  7. 권김현영, 같은 책, 29쪽.

  8. 최미진, 『성폭력 2차 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 논쟁』, 책갈피, 2017, 78쪽.

  9. http://nodong.org/statement/7211091 강조는 인용자.

  10. Amanda Konradi, “Creating victim-centered criminal justice practices for rape prosecution”, New Approaches to Social Problems Treatment (Research in Social Problems and Public Policy, Volume 17), Emerald Group Publishing Limited, pp. 43~76.

  11. David Finkelor, et al., “How the justice system responds to juvenile victims: A comprehensive model”, Juvenile Justice Bulletin, December 2005.

  12. Simon Robins, “Towards victim-centered transitional justice: Understanding the needs of families of the disappeared in postconflict Nepal”, The International Journal of Transitional Justice, March 2011, pp. 75~98.

  13. Office for Victims of Crime(OVC) Training and Technical Assistance Center(TTAC), US Department of Justice, “Human Trafficking Task Force e-Guide” 1. Understanding Human Trafficking, 1.3 Victim-Centered Approach.

  14. Office on Violence Against Women(OVW), US Department of Justice, “Providing a Victim-Centered Response to Sexual Assault in Confinement Facilities”, 2013. 8. 12. https://www.justice.gov/archives/ovw/blog/providing-victim-centered-response-sexual-assault-confinement-facilities

  15. Kurt Bumby, Karen Baker, and Leilah Gilligan, “Advancing a victim-centered approach to supervising sex offenders: A toolkit for practitioners”, Kensington, MD: The Center for Effective Public Policy, 2018.

  16. “Standards for providing services to victims of sexual assaults”, New Jersey Attorney General, 2004.

  17. Konradi, op. cit.

  18. Ibid.

  19. Mary P. Koss, Mary Achilles, “Restorative justice responses to sexual assault”, VAWnet: The National Online Resource Center on Violence Against Women, 2008.

  20. https://www.ipinst.org/2015/10/civil-society-and-transitional-justice-processes#6

  21. OVC TTAC, op. cit. 강조는 인용자.

  22. Bumby, op. cit.

  23. https://peaceisloud.org/womens-court-feminist-approach/

  24. Sara Davidson, “My ex was just #MeTooed. He had it coming. But it’s complicated”, Los Angeles Times, 2018. 1. 21.; Anne K. Ream, “To turn the #MeToo moment into a lasting movement, we can’t just demand. We need to Plan”, Chicago Tribune, 2018. 1. 18.

  25. Anna Dorn, “The inherent feminism of restorative justice: Unpacking the legal model that puts victims first”, Medium,

  26. C. Quince Hopkins, Mary P. Koss, “Incorporating feminist theory and insights into a restorative justice response to sex offenses”, Violence Against Women, vol. 11, no. 5, May 2005, pp. 693~723.

  27. 최미진, 같은 책, 49~50쪽.

  28. 권김현영, 같은 책.

  29. Ellison v. Brady, 924 F.2d 872 (9th Cir. 1991). 가해자 1인이 순수하게 언어적으로만 구애를 반복한 사건에서 법원은 합리적인 여성의 시각에서는 그러한 행위만으로도 적대적 업무 환경이 조성되었다고 본다고 판시하였다.

  30. 강조는 인용자.

  31. 섹슈얼리티는 성행위, 성적 감정, 성적 언행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32. Sally S. Simpson, “Feminist theory, crime, and justice”, Criminology, vol. 27, no. 4, November 1989, pp. 605~632.

  33. 급진주의적 페미니즘 운동가의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캐서린 매키넌과 게일 루빈 모두 마르크시즘적 변혁을 여성해방 내에서 이루기 위한 지향을 가졌었다. 다음 글 참고. Brooke M. Beloso, “Sex, work, and the feminist erasure of class”, Signs: Journal of Women in Culture and Society, vol. 38, no. 1, September 2012.

  34. Rosemarie Tong, Feminist Thought: A More Comprehensive Introduction, Westview Press, 2009. pp. 51~52.

  35. Ibid, p. 67.

  36. Simpson, op. cit., p. 611.

  37. http://www.europarl.europa.eu/sides/getDoc.do?pubRef=-//EP//TEXT+TA+P7-TA-2014-0162+0+DOC+XML+V0//EN

  38. Kate Millett, Sexual Politics, London: Rupert Hart-Davis, 1971.

  39. 서울고등법원 2014. 7. 24. 선고 2014노242 판결. 강조는 인용자.

  40. “Banning artworks such as Hylas and the Nymphs is a long, slippery slope”, The Guardian, 2018. 2. 2. https://amp.theguardian.com/artanddesign/2018/feb/02/banning-artworks-such-as-hylas-and-the-nymphs-is-a-long-slippery-slope ; “In The #MeToo Era, Do These Paintings Still Belong In A Museum?”, Huffpost, 2017. 12. 14. https://www.huffingtonpost.com/entry/museums-me-too-sexual-harassment-art_us_5a2ae382e4b0a290f0507176

  41. 대구지법 2003. 4. 11. 선고 2002노3684 판결. 강조는 인용자.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위원. 전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 사단법인 오픈넷 이사. 저서로 『사진으로 보는 저작권, 초상권, 상표권 기타 등등』 『진실 유포죄』 『표현·통신의 자유』가 있다.

원문 제목: 미투 운동이 극복해야 할 ‘피해자 중심주의’(계간 《문학동네》 2018년 여름 통권 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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