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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정원장 남재준·이병기 가석방:
이것이 윤석열이 말하는 “법치와 공정”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에 ‘국정원 특활비’를 상납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돼 있던 전 국정원장 남재준과 이병기가 내일(5월 30일) 가석방으로 출소한다.

윤석열 정부가 이 둘을 풀어 준 것이다. 같은 혐의로 복역 중인 이병호 전 국정원장은 남은 형기가 가석방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제외됐다.

공안 탄압

죄값도 다 안 치른 전직 국정원장들을 5월에 취임한 윤석열이 5월이 끝나기 전에 풀어 주는 것이다. 사실 특활비 상납은 남재준과 이병기가 저지른 여러 악행에서 일부일 뿐이다. 둘은 국정원장으로서 악랄한 공안 탄압과 교활한 공작을 기획하고 지시했다.

남재준은 전형적인 고위 장성 출신 강성 우파다. 노무현 정부에서 육군참모총장을 지냈던 그는 2007년 대선 때부터 박근혜를 도왔고, 박근혜 첫해에 국정원장에 임명됐다. 그의 임기 중 악명 높은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이 벌어졌다. 남재준은 2017년 “유우성 간첩사건은 간첩이 증거 부족으로 무죄 판결 받은 사건”이라는 파렴치한 주장을 했다.

남재준은 국정원의 대선 개입 규탄 촛불 집회에 대항해 맞불 집회를 벌인 우익 단체 ‘대한민국 재향경우회’(전직 경찰 단체)를 지원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이에 국정원은 현대자동차그룹에게 경우회 지원을 요청했고, 그 결과 2년 동안 26억 원이 경우회에 지원됐다.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을 내란음모 혐의로 수사한 것도 남재준 국정원이었다. 당시 공안 검사의 시조새 격인 김기춘이 대통령비서실장, ‘미스터 국가보안법’ 황교안이 법무부장관일 때였다. 그들은 대량 구속과 통합진보당 해산까지 성공시켰다.

이석기 전 의원은 정치 토론한 일로 8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다가 형기 만료가 얼마 남지 않은 지난해 말 가석방됐다. 이석기 전 의원의 누나 고(故) 이경진 씨는 동생의 무고함을 애타게 호소하다가 암을 얻어 안타깝게 세상을 떴다. 그런데 남재준은 미약한 죄값조차 다 안 치르고 풀려나는 것이다.

이병기는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이 폭로돼 물러난 남재준의 뒤를 이어 국정원장이 된 자다. 이병기는 외교 관료 출신으로 노태우의 비서, 김영삼 시절 안전기획부 고위직 등을 거쳤다. 안기부 시절을 다룬 영화 〈공작〉으로도 유명한 ‘북풍 조작 사건’에 가담했다고 알려져 있다.

2002년 한나라당의 대선 승리를 위한 불법 자금 공작에 연루됐고, 2004년 총선에서 박근혜를 도우며, 그의 측근이 됐다. 이병기는 박근혜 정부 아래서 주일대사, 국정원장,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던 심복 중 심복이다. 세월호 문제 등에서 인터넷 여론 개입을 지휘하기도 했다.

이렇듯 남재준과 이병기는 박근혜 정권 시절 공작과 공안 탄압으로 체제 수호를 명분으로 민주적 권리 억압에 앞장섰다.

그들만의 ‘법 질서’

윤석열은 그런 자들을 풀어 주고 있다. 사실 2017년에 남재준·이병기·이병호를 구속 수사한 것이 서울중앙지검장 윤석열이었다. 그 수사를 실무적으로 이끈 것이 한동훈이었다.

우파는 입만 열면 법과 정의, 법질서 수호 운운한다. 그리고 넓게 보면, 검찰이나 국정원 모두 법 질서 수호 기관이다. 그런데 그런 기관의 장이 법으로 제한된 범위를 넘어서 권력을 휘두르고, 그들을 수사했던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은 임기 첫 사면으로 그들을 풀어 주는 것이다.

이런 사면은 ‘정의’(에 대한 염원)를 개똥 취급하는 행위일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도 권력과 부가 곧 정의라는 계급차별적 메시지를 주는 효과를 낸다. 법치주의 운운은 물론이고, 윤석열이 말해 온 ‘공정’과 ‘정의’도 가당찮은 사기극이고 위선임이 드러난 것이다.

윤석열은 자신이 수사·기소하고 도합 45년형을 구형했던 박근혜의 사면을 지난해 주장하고, 문재인이 사면해 준 뒤에는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 박근혜를 대통령 취임식에도 초대했다.

앞서 윤석열 정부는 유우성 간첩 조작에 가담한 공안 검사 이시원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에 앉히기도 했다. 이제는 한술 더 떠서 공안 탄압을 일삼던 전직 국정원장들을 풀어 준다. 이는 이런 기관들이 하는 구실이 윤석열 정권하에서 커질 것이라는 신호다. 따라서 예의주시하면서 경계해야 할 일들이다.

억압 강화에 맞서야

윤석열 정부는 경제 위기가 계속되고 지정학적 불안정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집권한 우파 정부다. 세계적 다중 위기 속에서 윤석열 정부는 한국 자본가계급의 이윤과 경쟁력을 위해 노동계급을 쥐어짜고자 한다.

그런데 노동자들의 불만과 사기가 호락호락하지 않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택배 노동자들이 사용자에 맞서 싸우고 있고, 5월 28일 화물 노동자 1만 2000여 명이 서울 도심에서 위력적인 행진을 했다.

윤석열 정부는 엄중하고 불안정한 국내외 정세 속에서 난관들을 해결하고자 여러 수단을 강구해야 하는 처지다. 모종의 사회적 대화는 물론, 차별과 이간질을 이용할 것이다. 억압과 탄압도 준비할 것이다. 이시원 중용과 남재준·이병기 가석방은 그런 준비를 이미 시작했음을 보여 주는 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