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미국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한·일 정상회담

11월 2일 한·일 정상회담이 열릴 예정이다. 한·중·일 정상회담에 맞춰 방한하는 일본 총리 아베가 박근혜를 만날 것이다. 지금 한·중·일 3국 사이에는 과거사, 영토 분쟁 등 여러 난제들이 놓여 있지만, 이번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한·중·일 3국이 충돌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런 난제들을 다루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세간의 이목은 한·중·일 정상회담보다는 한·일 정상회담에 쏠리고 있다.

한·미·일 동맹을 강화하고자 하는 미국이 한국과 일본이 정상회담을 하라고 촉구한 것도 이번 한·일 정상회담이 열리게 된 주요한 배경이다. 박근혜의 10월 방미 과정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기정사실화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한·일 정상회담에 미국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는 얘기가 나오는 까닭이다.

한·일 군사 협력

미국은 자신의 패권을 위해 동아시아에서 한국과 일본의 협력을 촉구해 왔다. 그리고 일본의 ‘보통국가화’가 한국의 안보 이익에도 부합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의 핵 ‘위협’과 중국의 군사적 부상에 따른 위험에 대처하는 데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방한한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는 미국 지배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저명한 대외정책 전문가인데, 그는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한반도 주변의 위협은 일본이 아니라 중국’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은 일본의 보통국가화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중국을 봉쇄하기 위한 억지력이 더 생긴다는 점에서 좋은 일이다.”

박근혜 정부는 중국을 의식하면서도 미국의 요구에 부응하는 방향을 선택해 왔다. 북한 ‘위협’을 핵심 고리로 삼아, 한·미·일 동맹을 강화하는 데 협력한 것이다. 사실, “국내 정치적 부담” 때문에 한·일 정상회담만 미뤄 왔을 뿐, 박근혜 정부는 한·일 군사 협력을 계속 진전시켜 왔다.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기 위해 안보법제를 제·개정했는데, 박근혜 정부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반대하지 않았다. 단지, 자위대의 한반도 출병은 한국 정부의 동의가 없다면 불가능하다고 되뇌었을 뿐이다. 도리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북한 ‘위협’에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얘기도 우파들 사이에서 많이 나왔다.

결국, 최근 박근혜 정부는 자위대의 한반도 출병 문제에서도 여지를 열어놓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안보법제가 통과됨에 따라 국내에서는 유사시 자위대가 한반도에 출병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특히 미군이 한국의 전시작전통제권을 여전히 갖고 있기 때문에, 그 문제는 충분히 우려할 만한 쟁점이었다. 그런데 지난 9월 해군참모총장 정호섭은 “대북 억지 차원에서 [자위대와] 협력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하며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그리고 10월 20일 한·일 국방장관 회담에서 일본 방위상이 유사시 자위대가 북한에 진입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박근혜 정부가 이 사실을 쉬쉬하다가 뒤늦게 들통이 나기도 했다. 심지어 자위대의 북한 진출 문제마저 이제는 ‘한·미·일 안보 토의(DTT)’에서 논의하기로 결정해, 한·미·일 동맹의 틀에서 한반도 문제에 공동 대응하는 구조가 더 강화됐다.

이 밖에도 지난 한·일 국방장관 회담에서 양국은 “안보 현안에 관하여 한·일 및 한·미·일 협력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을 같이 하였[다]”고 합의해, 향후 한·미·일 동맹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한·일 군사 협력도 더 진전될 것으로 보인다.

‘위안부’ 문제

청와대는 박근혜가 아베를 만나 ‘위안부’ 문제 등에서 할 말을 다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때 박근혜는 ‘위안부’ 문제가 해결돼야 한·일 정상회담이 가능하다고 공언했지만, 이제 그 ‘원칙’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미 6월 22일 박근혜는 ‘과거사의 무거운 짐을 화해와 상생의 마음으로 내려 놓자’며 ‘위안부’ 문제 해결에서 크게 후퇴했다. 따라서 설사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 박근혜가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더라도, 그것은 국내 여론을 의식한 제스처 수준을 넘지 않을 것이다.

반면, 아베는 8월에 내놓은 담화에서 과거 식민 지배에 관해 명확하게 사과하지 않았다. 그리고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전장의 그늘에서 명예와 존엄에 상당한 상처를 입은 여성들이 있었[다]”고만 밝히며 제대로 된 사과와 배상을 거부했다. 11월 정상회담에서도 아베의 태도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기껏해야 박근혜의 체면을 살려 주는 선에서 형식적인 유감 표명만 내놓을 공산이 크다.

그리고 이미 “역사 문제보다는 안보 문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위안부 문제, 부족하지만 만족하라” 등 ‘위안부’ 문제 해결에서 기대치를 낮춰야 한다는 얘기가 국내 보수 언론에서 슬슬 나오고 있다.

남중국해

한·일 정상회담은 미국이 남중국해에서 중국 인공섬을 겨냥한 무력 시위를 진행하는 와중에 열린다. 오바마는 한국이 남중국해 영토 분쟁에서 미국의 입장을 확고하게 지지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한·중·일 정상회담과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이 남중국해 문제를 어떤 식으로든 거론해 박근혜 정부의 입장을 물을 것이란 소식이 있다. 그만큼 동아시아에서 점증하는 제국주의간 경쟁 속에 한국 또한 그 한복판에 놓인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미국과의 동맹을 중시해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용인하고 ‘위안부’ 등의 과거사 문제에서도 한국인 다수의 바람을 외면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촉구 끝에 열리는 이번 한·일 정상회담은,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에 악영향만 줄 것이다. 우리가 아베의 방한과 한·일 정상회담을 반대해야 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