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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성매매처벌법 21조 1항 합헌 결정 비판:
성매매 여성들을 더 옥죄지 말라

지난 3월 31일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이하 성매매처벌법) 제21조 1항이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21조 1항은 '성매매를 한 사람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는 것으로 강요나 폭력에 의해 성을 판매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판 사람(과 산 사람) 모두를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성매매방지법(성매매처벌법과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통칭)은 제정된 이래 끊임없이 논란의 대상이 돼 왔다. 2004년 성매매방지법 시행이후 성 구매 남성이나 성매매 업자가 7차례 헌법소원을 내 전부 각하 또는 합헌 결정이 내려졌지만, 성매매 여성이 처벌의 위헌성을 주장한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헌재는 성매매가 "사회 전반의 건전한 성풍속과 성도덕을 해"치는 행위이며 성매매처법법이 성매매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는 점을 합헌의 핵심 이유로 들었다. 성매매의 "수요 억제"를 위해 성구매자를 처벌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하는 한편, 성 판매 여성에 대한 처벌도 여전히 필요하다고도 했다. 결국 성매매를 국가 형벌로 금지해야 한다는 기존 법의 내용을 재확인한 것이다.

헌재가 성매매 처벌이 합법임을 발표하자마자, 정부는 다시금 성매매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성매매방지법 시행 10여 년의 경험은 성매매 단속·처벌이 결코 성매매 문제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헌재의 주장과 달리 성매매가 줄어들었다고 할 만한 근거는 없다. 전통적인 성매매 집결지가 소폭 감소했지만, 단속과 법망을 피해 신·변종 성매매 업소들이 크게 늘며 음성화했다. 룸살롱·노래방·다방 등에서 이뤄지는 성매매는 여전히 성행하고 있고, 마사지 업소와 키스방·대딸방·화상방 등 변종 성매매 업소도 크게 증가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이용한 성매매 규모도 상당해졌다.

경찰 단속은 이처럼 성매매를 줄이지도 못하면서, 이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고통받는 성매매 여성들을 더 위험에 빠뜨렸다. 지난해 아버지와 어린 딸을 부양하며 살아가던 20대 여성이 단속 과정에서 투신자살한 사건은 잘 알려져 있다. 성매매 여성들이 처벌받을까 봐 두려워 강간, 폭력, 괴롭힘 등 부당한 일을 당해도 신고하지 못하는 일도 벌어진다. 성 구매자들이 "신고를 빌미로 환불을 요청"하거나 성매매 여성과의 "(거래 사항에 포함) 안 되는 행위를 억지로 한다거나", "콘돔을 중간에 뺀다거나", “처음부터 '신고'로 위협하면서 콘돔 사용을 거절하기도 한다.”

“성매매 여성이 임신과 성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취하는 조치인 '콘돔사용'이 손님으로부터 거절당하는 것은 여성들에겐 매우 위험한 일[이다.]"(박순주, '성매매 여성의 '노동' 경험 인식과 그 맥락에 관한 연구')

이런 상황은 성매매 여성들이 계속해서 업주에 의존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법이 성매매 여성들을 보호해 주지 않기 때문에, 여성들이 '보호자'로서 업주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업주들이 여성들의 돈을 갈취하고, 통제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고 있다.

성매매 단속은 이주 여성들을 특히 더 힘들게 한다. 추방 위협 때문이다. 성매매 사실이 알려지면, 해당 여성은 관련 기간에 입소한 뒤 3개월 후에 본국으로 송환된다.

헌재와 정부는 "성판매 여성의 인권 향상"을 말하지만, 이렇듯 성매매처벌법은 성판매 여성들을 가장 큰 고통에 빠뜨렸다. 반면, 경찰과 포주·업주 사이의 더러운 유착 관계는 별로 변한 것이 없다.

성매매처벌법은 성매매 '피해자'와 그렇지 않은 이(이른바 '자발적' 성판매자)를 구분하고, ‘피해’가 인정되면 처벌하지 않고 있다. '피해자'로 인정받으려면 여성 스스로 성매매를 강요당했음을 입증해야 한다. 헌재는 이것이 “성판매자에 대한 형사처벌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보완장치”라고 했다. 그러나 '강요'를 입증하는 일은 상당히 어렵다.

‘자발적’ 성판매자라 해도 처벌은 부당하다. 성매매를 하는 여성 다수는 생계가 막막한 절망스러운 처지에서 성매매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낳은 끔찍한 가난과 불평등, 그리고 여성 차별의 희생자인 이들을 국가가 지원하기는커녕 범죄자 취급하는 것은 그 자체로 정의롭지 못한 일이다. 헌재에서 유일하게 조항 전체 위헌 의견을 낸 조용호 재판관은 “국민에 대한 최소보호의무조차 다 하지 못한 국가가 오히려 생계형 자발적 성매매 여성들을 형사처벌하는 것은 또 다른 사회적 폭력”이라고 지적했다.(물론 조용호 재판관이 ‘성매매자의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를 처벌 조항의 문제점으로 지적한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

애초에 자본주의 국가는 독재 정권 시절에 ‘기생 관광’을 유치하는 등 스스로 ‘포주’ 노릇을 했었고, 일상적으로 포주·업주들과 은밀히 유착해 성매매가 온존하는 데 한몫해 왔다. 일선의 경찰들만이 아니라 이 사회 지배층 상당수는 앞에서는 ‘성도덕’을 말하면서도 뒤에서는 성매매에 연루돼 있거나 성매매를 비호해 왔다. 고위 공직자들의 추악한 성접대 사실이 폭로되는 일이 어디 하루이틀 일인가.

또한 박근혜 정부는 여성들에게 저임금·불안정 일자리를 강요하고, ‘쉬운 해고’를 추진하고, 복지를 삭감하는 등 빈곤과 양극화를 키우는 정책을 추진해 왔다. 이런 정책들은 빈곤층 여성들을 더 벼랑 끝으로 내몰아 성매매로 이끌리도록 만든다.

대규모 빈곤과 불평등, 소외 등 성매매를 낳는 사회적 요인들은 놔둔 채 가장 열악한 처지에 있는 성매매 여성들을 속죄양 삼는 처벌 조항은 즉시 폐지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의당 여성위원회가 성매매 처벌 합헌 결정에 환영 논평을 낸 것은 진보·좌파 정당 중 하나로서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새누리당이나 국민의당이 보수적 성도덕에 기초해 합헌 결정을 환영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물론, 정의당 여성위원회는 논평 내용에서 성판매 여성들에 대한 비범죄화를 주장했다. 그렇다면 성판매 여성 처벌을 명시한 조항 합헌 결정을 “환영”할 게 아니라 조항을 폐기하라고 요구하는 게 일관될 것이다.

성구매자 처벌 강화, 어떻게 봐야 할까?

헌재는 “성매매에 대한 수요는 성매매 시장을 유지·확대하는 주요한 원인”이라면서 “성구매자의 수요 억제” 위한 성구매자 형사 처벌은 정당하다고도 밝혔다.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 소속 여성 단체들도 이런 입장을 공유한다. 여연 소속의 여성 단체들은 성판매 여성은 비범죄화하고 성구매 남성은 처벌하는 이른바 ‘스웨덴 모델(또는 노르딕 모델)’을 주장해 왔다.

노르딕 모델이 성매매 여성들을 더 안전하게 만들고 성 산업을 축소시켰다는 주장은 스웨덴 정부가 부풀린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자 연대〉 155호 ‘성노동과 성매매 비범죄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 정진희가 지적했듯이, 1999년 스웨덴 성구매자 처벌법 도입 뒤 스웨덴에서 성매매가 대폭 감소했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강화된 단속은 성매매를 더 은밀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그래서 스웨덴에서 성 판매자들의 처우가 더 악화됐다는 불만은 당사자들로부터 많이 제기되고 있다. 성 판매자들은 경찰의 협박을 받을 뿐 아니라 구매자 보호를 위해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경찰에게서 스스로 보호하려고 포주에게 더 의존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국가를 지렛대로 삼아 여성 해방을 이루려는 발상도 위험하다. 자본주의 국가는 여성의 빈곤과 저임금화를 낳고 개별 가정(특히 여성)에게 육아 부담을 떠넘기며 구조적 차별을 유지하고, 성을 상품화해 이윤을 얻으며, 왜곡된 성 의식을 확산시키는 핵심 주체다. 국가와 지배계급은 성 산업 번성에서 평범한 남성 개인들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구실을 한다.

물론 성구매자 개인의 의식은 왜곡돼 있을 가능성이 크고, 바뀌어야 한다. 성구매 처벌 주장은 처벌로 성매매가 ‘폭력’이자 ‘범죄’임을 인지시킴으로써 ‘수요’를 차단하려는 듯하다. 그러나 사람들의 왜곡된 생각을 변화시키는 데서 처벌이 능사인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모순된 의식은 스스로 착취적이고 억압적인 체제에 맞서 투쟁하는 과정에서 변할 수 있다.

성매매는 반드시 사라져야 할 폐단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여성의 성과 몸을 돈으로 사는 행위에 비판적이다. 여성의 성을 사고파는 사회에서 여성의 존엄성이 존재할 수 없다. 성매매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여성차별적인지를 보여 주는 증거다. 따라서 성매매가 다른 직업과 다를 바 없는 일이라거나, 자유로운 개인들의 ‘성적 자기결정권’ 행사일 뿐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성매매 문제는 간통죄 문제와 다르다.

한편, 종종 성매매 비범죄화가 합법화와 구분되지 않고 사용되곤 하는데, 둘은 의미하는 바가 다르다. 성매매 비범죄화는 성매매 당사자들(구매자와 판매자)을 형사 처벌하지 말라는 소극적 의미인데 반해, 합법화는 성 산업을 허용하라는 더 적극적인 의미를 띤다. 성매매 합법화는 성매매 여성의 처지 개선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남녀 노동계급을 분열시킨다. 여성의 성이 합법적으로 팔리는 사회에서 여성 동료가 동등한 인격체라는 주장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성매매 단속·처벌 강화는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성매매 여성들이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있으려면 처벌이 아니라 이들에 대한 지원이 대폭 확대돼야 한다. 여성들을 가난으로 내모는 정책들을 중단하고 안정된 양질의 일자리와 사회복지를 확대해야 한다. 나아가 성을 왜곡시키고 상품화하는 자본주의 논리와 사회 곳곳에서 여성이 이등시민 취급받는 뿌리 깊은 여성차별이 사라져야 한다. 따라서 성매매의 뿌리가 사라지기를 바란다면 자본주의 체제에 도전하는 운동을 촉진시키는 데 앞장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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