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노동당 당 대표 재선거 ― 동학과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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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올해 여름은 노동당 대표직을 놓고 격렬한 전투로 점철됐다. 노동당 의원단(PLP) 다수는 제러미 코빈을 맹공격하는 데 브렉시트 투표 결과를 활용하기로 도박을 걸었다. 코빈이 보수당의 [영국의 EU] 잔류파와 함께 [잔류 지지] 투표를 독려하는 것을 거부했을 뿐 아니라 완전히 정당한 유럽연합 비판 입장도 거둬들이지 않았으니(올바른 행동이었다), 유럽연합 잔류 문제에 열성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는 구실이었다. 애초 그들은 당원 투표라는 모험을 감수하지 않고 코빈이 사퇴하도록 압력을 넣었다. 하지만 노동당 의원 2백30명 중 1백72명의 불신임 투표로도, 예비내각 성원들의 연이은 사퇴로도, 노동당 의원단 회의에서 코빈에게 빗발친 (한 보고서에 따르면 “코빈의 인간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계획된) 모욕으로도 코빈을 물러나게 만들 수 없었다.

거대한 대중이 즉각적으로 코빈을 방어하려고 모인 것은 코빈의 결의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코빈은 그에게 혹독했다는 노동당 의원단 회의 후 국회에서 나와 곧바로 국회 앞 광장에 모여 있던 5천 명이 넘는 대중(집회가 불과 24시간 전에 호소됐는 데도 결집한 사람들이었다)에게 연설하러 갈 수 있었다. 대중은 노동당 의원단의 계략을 매우 경멸하며 코빈에 대한 지지를 보여 줬다.

△코빈은 평범한 사람들의 지지에 힘입어 당내 우파에 도전하고 있다. 리즈에서 지지자들과 만나는 코빈. ⓒ<소셜리스트 워커>

이후 몇 주 동안 이런 패턴이 반복됐다. 노동당 의원단이 계략을 부리고 대중매체가 그 계략을 열심히 부풀리면, 거대한 아래로부터의 대중집회가 코빈을 방어하는 식이었다. 지난해 당 대표 선거 운동 중 코빈이 연설한 집회 규모도 충분히 인상적이긴 했지만, 이번 여름 집회 규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잉글랜드 북부 도시를 주말에 돌아다니면서 코빈은 리즈에서 2천 명, 헐에서 3천 명, 리버풀 전역에서 5천~1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참가한 열광적 대중 집회에서 연설했다.

대중집회의 규모는 노동당 열세 지역에서도 인상적이었는데, 밀턴케인스에서 1천5백 명이, 콘월주 레드루스에서는 수천 명이 집회를 벌였다. 노동당 당원 수도 급증했다. 불과 몇 주 만에 10만 명이 노동당에 가입했다. 노동당 당원 수는 이제 55만 명 정도로, 블레어 지도부 시절 1997년 총선에서 승리한 직후 찍었던 정점(40만 5천 명)보다도 높다.

토니 블레어* 시절과 얼마나 많이 달라졌는지 보여 주는 한 가지 사례가 있다.

토니 블레어

1994~2007년 노동당 대표로서 ‘제3의 길’을 주장하며 우경화를 이끌었고,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함께 했다.

노동당 우파들은, 존 스미스 지도부 시절[1992~94년] 처음 사용했고 이후 토니 블레어가 1990년대에 당내 좌파를 성공적으로 격퇴하는 데 이용했던 “1인 1표”라는 무기를 ­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조합원 수에 비례하는 표를 노조 지도부에게 주던 블록투표제 대신에] “1인 1표”를 도입하자는 요구는 노동당 내 노조 지도자들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간접적으로나마 노조 지도자들이 반영하던) 계급 정치의 영향력도 약화시키며, 노동당 좌파를 민주주의 반대파인 양 수세로 몰아넣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 원자화된 새로운 당원들은 1980년대 대처 집권기와 이후 1992년 보수당 존 메이저를 상대로 노동당이 겪은 연이은 선거 패배와 대중매체의 [주장에] 영향을 받았는데, 그 덕에 토니 블레어는 자신의 뜻대로 당을 바꾸고 선거 승리를 위한 길을 닦을 수 있었다.

강행

1인 1표제 요구 전술은 성공한 듯했고 이후 노동당 우파의 단골 전술이 됐다. 그래서 2013년까지만 해도 노동당 우파는 1인 1표제를 활용해 ‘콜린스 개정’을 성공적으로 강행 통과시켰다. ‘콜린스 개정’은 ‘명부등록 지지자’ 자격으로 비당원들에게 당내 투표권을 부여하고, 노동당 연계 노조 소속 당원들에게는 당내 선거에서 투표권을 얻으려면 직접 “사전등록”해야만 하도록 강제하며, 노동당 대표 선거에서도 의원·노조·당원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이 선출하는 기존 방식을 버리고 1인 1표제를 도입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당규 개정안이었다. 이런 개정을 추진한 데는, 유권자들이 노동당 의원단(과 대중매체)의 영향력에 더 많이 휩쓸릴 것이고 나아가 대표 선출에서 노조 지도자의 영향력은 약화할 것이라는 가정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노동당 좌파가 치명상을 입기는커녕 ‘죽었다 살아난 나사로’처럼 코빈을 중심으로 부활하는 것을 목도한 노동당 우파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노동당 우파는 1인 1표제에서 황급히 후퇴해야 했다. 법정에서 값비싼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당 기구를 움직여 당 대표 선거에서 신입 당원을 배제시켰다. 또한 규정을 바꿔 투표인단 등록비를 3파운드에서 25파운드로 대폭 올렸고, 등록 기간도 이틀로 줄여 버렸다. 또 코빈의 후보 등록 자체를 차단하려다 실패했다.

이 모든 것은 코빈 지지자들을 막말꾼·폭력배·유대인혐오로 모는 끈질긴 비방 운동과 결합됐는데, 가장 최근 있었던 말도 안 되는 주장으로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노동당에 침투했[기 때문에 당이 혼란스럽]다는 것이었다. 마치 코빈에 대한 광범한 지지가 그 때문이기라도 한 듯 말이다.

노동당 우파의 이런 전술은 그들이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다. 또 다른 증거는, 노동당 의원단이 당 대표 선거를 피할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서 후보로 내세운 (평범하기 그지없는) 오언 스미스가 정작 블레어와 거리를 두려고 한다는 것이다. 또한 스미스는 자신이 사회주의자라고 다소 어설프게 주장하며 코빈의 정책 상당수를 베끼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지난해 코빈의 놀라운 승리를 가능케 한, 해결되지 않은 모순이 분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급진 좌파적 대안에 대한 열망이 그리스의 시리자처럼 주류 사회민주당 바깥의 더 작은 좌파 세력으로 가거나 스페인의 포데모스처럼 완전히 새로운 정당에 갔지만, 영국에서는 껍데기만 남은 듯했던 노동당 내부에 자리잡았다. 당 대표가 의원 80퍼센트의 지지를 잃으면 사퇴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정치인과 논평가들 사이의 상식이다. 그러나 코빈은, 의회주의 정당에서 통상적으로 의원단의 이해관계를 가장 잘 추진할 수 있는 인물이 당 대표로 선출되는 것과 다른 경로로 대표가 됐다. 오히려, 코빈은 노동당 의원단이 보수당의 복지 국가 공격과 긴축에 아무런 실질적 반대를 내놓지 못한 것에 대한 반발을 등에 업고 선출된 것이다.

그 때문에, 코빈이 노동당 의원단 내에서 지지가 약해지면 코빈 지지자들은 그를 방어하기 위해 대중집회를 거듭 벌일 수밖에 없다. 노동당 선거구 모임에서, 대중 집회에서, 그리고 거리 시위에서까지 말이다. 그 과정에서 코빈 지지자들은 노동당 우파, 대중매체, 법원 등 지배계급 권력 핵심 방어물 중 적어도 일부에 맞서 싸워야 했다. 그러면서 더 큰 정치적 쟁점이 제기됐고, 노동당 좌파들 사이에서 더 큰 조직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노동당 의원단 다수와 노동조합 관료 다수 사이의 분열이, 현재 노동당 내 세력 관계에서 좌파들이 우세한 데에 (9월 24일 발표될 대표 선거 결과에서 코빈이 승리할 것이 분명해 보이는 데서도 이를 알 수 있다)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노동당 연계 노조 중 네 군데만이 오언 스미스를 지지한 반면, 코빈은 노조 여덟 군데의 지지를 받았다. 특히 가장 규모가 큰 노조들인 유나이트(UNITE)와 공공서비스노조(UNISON)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코빈을 지지했다.

주요 노조 지도자들이, 노동당 정부가 토니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 때보다 코빈 하에서 자신들의 요구에 좀더 우호적이 되길 바라며 코빈을 지지한 것이 코빈에게 큰 보탬이 됐다. 그러나 이 지지는 무조건적이지도 균등하지도 않다. 유나이트 위원장 렌 맥클러스키는 <가디언>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코빈이 당 대표가 되더라도 득표력 면에서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코빈은 대안적 조처를 시행할 수 있는 능력을 얻고자 합니다. 그에게 기회가 주어져야 합니다. … 지금 코빈을 제거해야 한다는 발상은 완전히 틀렸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맥클러스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장차 바뀌지 않으면 지지를 철회할 수도 있다고도 암시했다. “만약 새 당 대표를 뽑아야 한다면, 총선을 불과 한 달여 남겨 놓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다음 총선까지 2년 남는 시점인] 2018년을 거론하는 것입니다.”

공공서비스노조 사무총장 데이브 프렌티스는 좀 더 직설적이었다. 공공서비스노조 명의로 코빈 지지를 선언하는 자리에서 프렌티스는 [노동당 우파] 국회의원·지방의원·당 간부들에 대한 “마녀 사냥”[노동당 우파에 대한 코빈 지지자들의 비판을 주류 언론이 매도할 때 사용하는 용어]도 비판하며 전당적 단결을 요구했다. 공공서비스노조 지도부는 실질적으로 우파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민 것이자 우파를 공천 탈락 등으로 징계하는 그 어떤 시도에도 반대한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노동당 연계 노조 중 각각 셋째와 넷째로 큰 일반노조(GMB), 상업유통노조(USDAW)는 오언 스미스를 지지했는데, 이는 노동당 우파가 노조 관료 중에 여전히 동맹을 두고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행여 나중에라도 거대 노조인 유나이트와 공공서비스노조가 코빈에게서 등을 돌리게 된다면 코빈의 입지는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다.

구호

노동당 우파는 이렇게 을러댄다. “좌파는 선거에 이길 수 없다”, “제러미 코빈은 마이클 풋*의 재탕이다”, “노동당은 1983년 수준으로 재앙적인 지지나 받던 처지로 돌아가기 직전이다” 등.

마이클 풋

1980~83년 노동당 대표로 당시 언론은 그를 극좌로 묘사했으나 실제로는 주요한 문제에서 번번히 우파와 타협했다.

이들이 간과하는 것은, 약 10년 전부터 노동당 우파 자신도 득표력을 잃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내 우파인] 톰 왓슨 같은 사람들이 토니 블레어(이 자는 적어도 2006년부터는 노동당이 표를 잃는 데 기여했다)를 밀어내는 쿠데타를 감행하고는 (토니 블레어와 함께 신노동당 계획의 핵심 설계자였던) 고든 브라운을 다음 당 대표로 추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위기를 막을 수 없기로는 고든도 블레어와 다를 바 없었다. 정말이지, 신노동당 지도부는 이미 2010년에 노동당 지지율을 1983년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1983년 노동당은 8백45만 6천 표(전체의 27.6퍼센트)를 받았는데, 2010년 노동당은 그보다 고작 15만 표 많은 8백60만 6천 표(전체의 29퍼센트)를 받았다. 게다가 1983년을 제외하면 노동당이 1935년 이래 총선에서 1천만 표 이하를 받은 것은, 토니 블레어·고든 브라운·에드 밀리밴드가 지도부로 있던 2005년, 2010년, 2015년뿐이었다. 그 기간에 스코틀랜드 의회 내 노동당 의석 수도 41석에서 1석으로 폭삭 주저앉았다.

그렇다면, 코빈을 지지하며 노동당에 들어온 수십만 명은, 총선 승리를 위해 [노동당 지지 편으로] 설득해야 할 수백만 명과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 시장에 도전하고, [민영화에 맞서] 재국유화를 제시하고, 이민자를 탓하는 온갖 괴담에 맞서는 등 급진적인 노동당 강령을, 지도부가 앞장서서 효과적으로 제시한다면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또, 노동당이 대중 정당으로 되살아나면, 오랫동안 노동당이 연계를 맺지 않아 온 지역 공동체와 작업장들에서 이런 주장을 전파할 활동가 네트워크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급진적인 노동당 강령을 지지하게 하려면, ‘시장을 거스를 수는 없다’고 주장하는 지배계급 사상에 도전할 만큼 자신감이 전반적으로 고양되는 것이 사활적이다. 그리고 이는 투쟁 수준에 결정적으로 달려 있다. 고립되어 있고 수동적인 노동자보다 집단적 투쟁에 활발히 참여하는 노동자들이 대중매체가 유포하는 주장을 거부할 가능성이 훨씬 높은 것이다. 이런 지적에 수긍한다면 그런 투쟁을 건설할 필요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당이 분열할 수도 있을까? 분명, 코빈에 반대하는 의원들이 당을 쪼개 나갈 것이라는 추측이 많다. 1981년에는 벤 좌파가 반대파를 공천에서 탈락시키겠다고 위협한 데서 분당 움직임이 촉발됐다. 그러나 그러고서도 겨우 의원 28명만이 사회민주당으로 떠났을 뿐이다. 사회민주당은 당시 여론조사에서 놀라운 지지를 얻으며 (옛 자유당과 동맹을 형성한 뒤) 1983년 [총선에서] 거의 8백만 표를 득표했는데도, 결국 노동당을 대체해 제1야당이 되기는커녕 결정적인 돌파구조차 만들지 못했다. 사회민주당을 만들었던 야심 있는 국회의원들은 이후 다시는 장관직을 맡지 못했다.

코빈에 반대하는 의원들의 관점에서 봤을 때 최소한으로 말해도 분당은 상당한 도박일 것이다. 공천 탈락 이야기가 현실이 되면 몇몇 의원들이 분당을 시도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코빈 반대파 의원들이] 코빈에 맞서 소모전을 벌이면서 코빈의 정치를 온건하게 하려 압박하고, 노동당 의원 중 적어도 일부와 동맹을 맺고자 하려 들 것이라는 전망이 더 가능성 있다.

거부

다시 말해, 지난해의 패턴이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코빈에 반발하는 노동당 우파와 의원단 다수가 코빈의 지도를 거부하면서도 코빈을 내쫓을 수는 없는 상황 말이다. 코빈은 노동당 의원단과 협력하려 시도했었다. 지난 12월, 힐러리 벤이 의회에서 시리아 폭격 찬성 연설을 했음에도 예비내각 외무장관에서 파면하지 않기로 한 코빈의 결정은, 대표적 사례이지만 비슷한 사례는 더 많다. 힐러리 벤은 이후 코빈에 충성하기는커녕 코빈에 맞서 예비내각 내에서 반란을 조직하는 데에 그의 지위를 이용했다.

코빈 지지 단체 ‘모멘텀’ 내 다수는, 코빈의 지시를 따르길 거부하는 의원들과 노동당 우파들에 대해 더 분명히 선을 긋는 것을 바라 마지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코빈이 반대파와 단결을 유지해야 한다는 압력도 상당하다. 코빈을 지지하는 일부 노조 관료들도 이런 압력을 보내고 있다.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은 반대파로부터 코빈을 단호하게 방어하는 데서 출발한다. 하지만 계급투쟁 수위가 높아지면 코빈의 지위도 훨씬 강화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코빈이 선거를 승리로 이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그러려면 노동당 내부 싸움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노동계급 저항을 북돋기 위해 뭉친 사회주의 조직이 필요하다. 그리고 노동당의 오랜 전통이었던 정치와 경제 사이의 분리를 거부하기도 해야 한다. 노동당 좌파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중요하게로는, 노조 관료가 싸우려 하지 않을 때 코빈을 지지하지 않는 관료들뿐 아니라 코빈 측 관료들에도 도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혁명가들은 이런 주장을 인종차별 반대, 파업 연대 건설, 전쟁 반대 운동 등에서 새로운 세대의 노동당 좌파들과 함께 행동하면서 참을성 있게 펼쳐야 한다. 또한 혁명적 좌파는, ‘지배계급은 지금도 정치적으로나 언론을 이용해서나 코빈을 이토록 물어뜯는데, 코빈이 총리가 됐을 때는 어떻겠는가?’ 하는 단순명료한 질문 또한 던져야 한다. 여지껏 지배계급은 자신들의 무기 중 극히 일부만 활용해 왔다. 역사를 돌아보면, 지배자들은 개혁적 성향의 노동당 정부가 들어서면 영국 자본주의의 안정성과 수익성에 해를 끼치지 않게 하려고 투자 파업, 통화 위기, 고위 공무원과 사법부의 사보타주, 첩보 기관 등을 이용한 계략을 부렸던 바 있다.

[그런 점에서] 한때는 자율주의자였지만 지금은 코빈 지지자인 폴 메이슨(과거 트로츠키주의자이기도 했다)이 지난달 <가디언>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 건 실수였다. “[1980년대 초반보다 오늘날] 법치가 강화되었기 때문에 … 노동당 좌파가 홀로 혹은 좌파 민족주의자들과 연립해서 권력을 잡으면 통치하는 데 있어서 국가의 정치적 사보타주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에서] 시리자에게 긴축을 수용하도록 한 공격만 봐도 알 수 있듯, 자본주의를 보호하는 방벽은 예나 지금이나 건재하다.

지금은 영국 좌파들에게 흥미진진한 시기다. 그러나 코빈을 중심으로 한 운동은 향후 수개월에서 수년 내에 거듭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이다. 종파주의적이지 않으면서도 독립적인 혁명적 좌파가 그 운동의 궁극적 발전에서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다.

번역: 김동욱
출처: 영국 반자본주의 월간지 <소셜리스트 리뷰> 2016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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