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노동자당 소속 대통령의 탄핵:
노동계급의 이익을 못 지켜 우파의 정치 공세도 못 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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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31일 브라질 대통령 지우마 호세프 탄핵 표결이 상원을 최종 통과했다. 그 후, 10월로 예정된 지방선거를 앞두고 브라질 정치는 여전히 격랑에 휩싸여 있다. 호세프 탄핵 후 내각이 교체되면서, 호세프의 전임 대통령이자 호세프 내각의 일원이었던 룰라가 부패 혐의로 다시 연방검찰에 의해 기소됐다.
여당이었던 노동자당
호세프 탄핵 후 대통령직을 승계한 브라질민주운동당
이를 두고 일부 좌파들은 ‘미국이 후원하는 우파들의 헌법 쿠데타’
△2013년 7월 11일 반긴축 총파업. ⓒ사진 출처 Ben Tavener
노동자당 정부의 배신
브라질 자본주의의 구조조정은 노동자당이 집권하기 전인 1990년대부터 시작됐다. 1980년대 라틴아메리카를 강타한 외채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엔히키 카르도주 정부
룰라가 이끄는 노동자당 정부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노동자 대중의 반감을 업고 2002년 말 집권했다. 그러나 룰라는 전임 정부의 경제 정책을 계승해 대자본의 이익을 보호했고, 민관협력에 기초한 민영화 정책을 도입했다.
노동자당 정부는 조세·노동 정책에서도 친기업적이었다. 룰라의 뒤를 이어 2010년 당선한 호세프 정부는 법인세를 대폭 인하하고 노동자들과 연금 생활자들에게 더 높은 세금을 부과했다. 호세프 정부 1기 동안 소득이 최저임금의 3배 이하인 저소득 노동자층이 세수의 절반 이상을 부담할 정도였다.
룰라 정부는 노동법에 보장된 권리보다 노사정 협약이 더 우위에 설 수 있도록 노동법을 개정했다. 그러나 이 때문에 브라질에서 고용 불안정이 더 심화됐다. 호세프 정부는 2003~13년 10년 동안 “중산층”이 4천4백70만 명 늘었다고 발표했는데, 그 중 2천7백만 명 이상이 저임금·외주화·하청 노동자들이었다. 이들 중 대략 1천5백만 명은 고용 계약을 맺지 못하거나 노동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한 채로 일했다.
고용 불안정이 너무 심해지자 노동자당 정부는 사회적 빈곤 수준을 낮추기 위한 조처를 취했다. 하지만 불평등 수준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노동자당 정부가 이런 정책을 추진한 것은 우파들과 의회에서 협력해 브라질 자본주의를 잘 관리해야 한다는 배신을 가리기 위해서였다.
룰라 집권 이래 노동자당은 민주운동당을 비롯한 여러 중도우파 정당들과 선거연합 및 거국 내각을 구성했다. 이들 중도우파 정당 지도자들의 상당수는 군부독재 시절
중도 우파 정당들과의 연정으로 정부를 운영하면서 노동자당은 신자유주의 어젠다를 대폭 수용했다. 그러다가 근래에 중국 경제 성장이 둔화하고 원자재 가격이 하락해 브라질 경제가 1929년 대공황 이후 사상 최대 불황에 빠지자, 호세프 정부는 교육·의료·주택·대중교통에 대한 대규모 긴축 정책을 시행했다.
노동운동의 혼란 때문에 우파들에 기회를 빼앗기다
이 같은 정책은 노동자·서민의 반발을 샀다. 2013년 6월 긴축에 반대해 전례없는 규모의 거리 시위가 벌어졌다.
운동이 확대되면서 1백만 명 규모의 반긴축 하루 총파업도 벌어졌다. 노동자당 정부와 긴밀하게 연결된 브라질 노총
대중적 반발에 직면한 호세프 정부는 긴축 정책을 철회·완화하겠다는 공약을 걸고 힘겹게 재선에 성공했다. 상대 후보가 노골적으로 긴축을 요구하는 우파 후보였던 것도 당선에 한몫했다.
그러나 호세프는 재선하자마자 우파 정당들과 밀실 합의해 대규모 긴축 정책을 다시 추진했고, 그 때문에 대중의 신뢰를 크게 잃게 됐다.
페트로브라스 부패 스캔들을 이용한 우파들의 노동자당 공격이 먹힌 것도 이 같은 대중적 반긴축 정서 때문이었다. 교활하게도 우파들은 부패 문제를 호세프 정부의 반서민 정책과 연결시켜 호세프 정부를 공격했다.
환멸
물론 우파들 자신도 부패에 깊이 연루돼 있다.
대자본과 우파 언론의 후원을 받는 우파적 시민단체들이 부패 항의 시위를 조직하겠다고 나섰다. 2016년 3월 13일 브라질 전역에서 2백만 명이 참가한 반부패·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부르주아 야당 브라질사회민주당
2013년 대규모 반긴축 운동에서 활력을 얻은 노동자 운동이 긴축 정책 반대 요구와 반부패 요구를 결합해 투쟁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브라질 노총 지도부는 반부패·반정부 시위에 맞선 ‘맞불’ 시위를 조직하면서도, 그저 노동자당 정부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에서 정부에 대한 비판을 삼갔다. 그리고 우파들의 호세프 탄핵 시도에만 반대했다. 이 때문에 우파들이 정부에 대한 대중적 반감을 이용할 여지가 생겼다.
한편, 호세프 정부는 우파 정당과의 의회 내 밀실 합의로 탄핵 시도를 잠재우겠다는 허망한 시도에 매달렸다. 그러나 노동자당이 우파들과 타협해 긴축 정책을 더한층 추진할 때마다 노동자 대중 사이에 반정부 정서는 더 커졌고, 우파는 더한층 기세 등등해졌다.
무주택노동자운동
결국 다급해진 브라질 노총 지도부와 노동자당은 탄핵안 하원 표결 직전 대규모 거리 시위를 조직해 상황을 뒤집어 보려 했지만, 이미 승기는 우파들에 넘어간 뒤였다.
요컨대 노동운동과 좌파들이 긴축 정책에 일관되게 도전하는 운동을 건설하는 데 실패한 탓에, 노동자당보다 더 노골적인 신자유주의자들이 경제 불황, 공식 정치의 부패, 긴축 정책에 대한 반감에서 득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호세프 탄핵 이후 수천에서 수만 명 규모의 탄핵 규탄 거리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테메르 정부는 이 거리 운동을 강경 탄압하고 있다. 이 시위에는 노동자당을 지지하는 노동조합들과 청년들뿐 아니라 급진좌파들도 동참한다. 이들이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들에도 맞서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다.
10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노동자당과 우파에 맞설 뚜렷한 좌파적 대안이 부상하고 있지는 않다. 이런 상황에서는 노동운동가들이 노동자당에 대한 무기력한 지지로 회귀하거나 우파가 더한층 득세하는 것에 의해 사기 저하될 우려가 있다. 우리는 브라질의 노동운동 좌파들이 2013년 반긴축 운동에서 이끌어 낸 교훈과 함께, 거리와 작업장에서 긴축에 맞서 일관되게 투쟁하는 세력이 되기를 바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