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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이라크 제재를 통해 대북 제재 보기:
경제 제재는 ‘폭탄 없는 전쟁’이다

북한 5차 핵실험 이후 유엔은 추가적인 대북 제재 결의안을 채택하려 한다. 미국은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듯 더 강경한 독자 제재를 추진하면서 훙샹그룹 등 북한 핵개발에 연루됐다고 의심받는 중국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다. 보수 언론들이 “이제 남은 건 군사 행동뿐”이라고 호들갑을 떨 만큼, 지난 수십 년간 북한에는 수많은 경제 제재가 가해지고 또 가해졌다.

유엔과 미국, 그리고 박근혜 정부는 대북 제재가 “불량 국가”의 독재자를 궁지로 몰아넣어 북한 주민을 구해 내고 국제 평화에 기여할 수단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1990년대 미국과 유엔이 같은 논리로 이라크에 가했던 경제 제재를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역사상 가장 철저했던 이 경제 제재(1991~2003년)는 이라크 민중의 삶을 통째로 파괴했다.

걸프전

1991년 1월, 미국은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응징한다는 이유로 전쟁을 일으켰다. 아버지 부시 정부는 (북한 김정은에 대한 묘사와 비슷하게) 사담 후세인이 ‘악마 같은 폭군’ 이라고 말했다. 언론에는 “전쟁의 종교, 이슬람의 위협”이라는 인종차별적인 광기가 논평을 지배했다. 미국 지배자들은 이라크에 사담 후세인이라는 ‘미친놈’ 한 명만 살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따라서 잔인한 군사 행동과 경제 제재 또한 오직 한 사람에게만 영향을 미칠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진정한 속내는 다음과 같았다. “아라비아 반도와 페르시아 만의 석유는 전략적 힘의 원천이자 세계 역사상 가장 큰 물질적 보상이다.”(미국 국무부) “이 전쟁은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이 아니다. 우리의 사활적인 경제적 이익이 걸린 전쟁이다. 따라서 사과할 필요가 없다.”(미국 전 대통령 리처드 닉슨)

전쟁이 벌어진 42일 동안 이라크에는 폭격이 끊임없이 계속됐다. 대규모 공습의 목표는 군사 시설뿐 아니라 이라크 국민의 생활 시설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물을 배급받는 여성들 이라크 제재는 민중의 삶을 통째로 파괴했다. ⓒ사진 출처 유니세프

미국이 투하한 열화우라늄탄은 땅과 음식들을 오염시켰고, 독성 잔류물들은 강과 하수도로 스며들었다. 석유 시설, 정유 공장 등이 파괴되면서 유독성 물질 수천 톤도 대기, 토양, 수자원으로 쏟아졌다. 세계식량농업기구는 도시 지역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식수의 양이 전쟁 전의 절반밖에 안 될 것으로 추정했다.

이라크는 전쟁으로 너덜너덜해졌지만, 미국 정부는 여전히 “대량살상무기의 해체”를 요구하며 이라크에 강력한 경제 제재를 가했다. 13년 동안이나 이어진 경제 제재는 전쟁의 연속이나 다름없었다. 황폐해진 땅과 사회기반시설들은 복구되기는커녕 더욱 악화됐다. “현재 이라크는 이렇다 할 대량 파괴 무기를 전혀 갖고 있지 않다”(유엔 수석감시위원 스콧 리터)는 조사 결과도 나왔지만 미국은 깡그리 무시했다.

미국과 유엔경제제재위원회는 이라크로 들어오는 모든 물품과 돈줄을 검열했다. 유엔 안보리는 “의료용 물품과 인도주의적 조건의 식량 수입은 허락하겠다”고 했지만, 미국이 만들고 유엔이 승인한 금지 목록인 “레드 리스트”는 수백 장에 이르렀다. “민군 겸용 가능성”을 이유로 금지된 물품(이른바 “이중용도 물품”) 목록은 전구, 양말, 손목시계, 바늘, 못, 직물, 곡물제분기, 쌀, 담요, 고무, 위생 수건, 주사기 등 끝이 없었다. 심지어 “연필에서 탄소를 추출해 비행기에 덧칠하면 레이더에 걸리지 않을 수 있”다는 황당한 이유로 연필도 금지 물품이었다!

특히 물 부족 문제가 심각했다. 경제 제재로 물을 정수하는 데 사용하는 염소가 수입이 금지돼 오염된 물이 정화되지 않은 채 수로를 흘러갔고, 병에 담겨 팔리는 물조차도 오염돼 있었다. 이 때문에 콜레라와 장티푸스가 풍토병이 됐지만 병원에는 응급 약품은커녕 전기도 안 들어왔다. 유엔은 화학무기 제조 가능성을 차단한다며 거의 모든 약품 반입을 금지했다.

1991년 전쟁 전의 이라크는 세계에서 유아 사망률이 가장 낮은 나라 가운데 하나였고, 전쟁 전 이라크 소아과 의사들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영양실조가 아니라 소아 비만이었다. 그러나 1999년 유니세프는 “1997년 5세 이하 아동 약 1백만 명이 만성적 영양실조 상태”라고 추산했다. 의사들은 마취제와 항생제가 부족해서 항상 환자들 중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죽일지 결정해야만 했다.

결국 매달 이라크인 5천~6천 명이 죽어 나갔다. 경제 제재 기간 동안 총 1백만 명이 넘게 사망했고, 그중 절반인 50만 명은 아동이었다.

그런데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도 부유한 이라크인들은 식량과 의약품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다. 오히려 신흥 밀수업자들, 위기에서 이득을 챙기는 교활한 투기업자들은 돈벌이가 되는 지하 시장을 통해 더 많은 권력을 얻었다. 후세인 정권도 1990년대 내내 권좌에 남았고, 오히려 미국 정부에 대한 반감을 이용해 권력을 유지했다.

결국 경제 제재는 후세인을 제거한 것이 아니라 무고한 이라크인들만 죽이고 불구로 만들었다. 그리고 경제 제재는 2003년 아들 부시 정부가 이라크를 점령해 더 끔찍한 지옥문을 열 때까지 지속됐다.

불량 국가

이라크에 화생방 무기 제조 능력이 없다고 유엔이 선언했지만, 빌 클린턴은 “경제 제재는 후세인이 권좌를 유지하는 한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오만한 발언은 “의무 사항을 이행하면 경제 제재는 더는 없다”고 밝힌 유엔 안보리 결의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었다. 미국의 축복과 저주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는데 사담 후세인이 국제 사회가 원하는 만큼 기꺼이 양보해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미국은 자신에게 반대하는 세력들을 “악마”, “불량 국가”로 낙인 찍었다. 그러나 누가 “불량 국가”인지는 미국 지배자들만이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자신들은 지구를 몇 번이나 파괴할 핵탄두와 장거리 미사일을 갖고 있으면서 (미국이 용인하지 않는) 다른 나라는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 등 중동의 친미 국가들은 제재를 받기는커녕 미국의 전폭적인 후원 속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마음껏 짓밟았다.

사실 1980년대만 해도 사담 후세인도 이란을 견제해 줄 미국의 동맹이자, 중동의 골목대장이었다. 미국은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때부터 사담 후세인에게 전쟁 자금과 화학 무기를 지원했다. 미국이 이라크를 “불량 국가”로 몰기 위해 자주 언급했던 1988년 이라크 할라브자의 쿠르드족 학살 때 독가스를 제공해 준 것은 다름아닌 미국과 서방 국가들이었다!

그러나 쿠웨이트 침공을 계기로 미국은 이제 ‘오만하게’ 날뛰는 이라크를 벌하기로 결정했다. 더 큰 그림에서 미국은 1980년대 말 냉전이 해체되기 시작하자 이라크를 공격해 중동에서의 석유 지배력을 다시 공고히 하고 군사적으로 막강한 미국의 힘을 전 세계에 천명하려 했다.

물론 사담 후세인은 민중의 적이었다. 북한의 김정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미국 제국주의의 위선적인 제재와 개입은 평범한 민중의 삶을 더한층 파괴하기만 한다.

1990년대 미국은 사담 후세인의 위협을 부풀리면서 중동을 지배하고 그 능력을 과시해 궁극적으로 다른 열강을 통제하려 했다. 그리고 지금 동아시아에서도 북한의 위협을 부풀리면서 중국을 견제하고 동아시아의 군사적 동맹을 강화하려고 한다. 대북 제재 강화는 호전적 조처를 더욱 자극하는 수단일 뿐, 그 과정에서 북한 민중은 볼모가 돼 고통으로 내몰릴 것이다.

예컨대 미국과 유엔이 가하는 많은 대북 제재 조처 중에도 “이중 용도 물품” 제재가 있다. 핵무기 개발에 이용될 수 있다는 의심만으로 “민수용” 물품의 북한 반입이 금지되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은 홍수 피해로 고통받는데, 박근혜는 제재 강화를 위해 인도적 지원을 거부한다. ⓒ사진 출처 국제적십자사

북한에서 7년간 제약회사를 경영했던 스위스 사업가 펠릭스 아브트는 이런 제재가 북한 민중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평양 상하수도 시설을 복구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그것은 프로젝트 실행에 필요한 일부 소프트웨어가 미국의 대북한 제재 항목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 [그리고] 2008년 유엔의 대북 제재로 … [제약회사] 약품 실험에 필요한 특정 화학물질을 더 이상 수입할 수 없었다. 이 약품 실험은 농촌마을 주민들의 보건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계획된 것이었다.”(《평양자본주의》, 펠릭스 아브트, HUiNE, 2015.)

진정한 사회주의자라면 북한 민중이 자신의 힘으로 독재자의 지배와 제국주의의 개입에 반대해 일어서기를 바라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라도 위선적이고 파괴적인 대북 제재에 단호하게 반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