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전선체'의 계급연합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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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 4월 23일 한국사회포럼의 한 워크숍인 '사회 변화를 위한 운동의 전략 - 단일 전선체 논의를 중심으로'에서 김하영 '다함께' 운영위원이 한 발제이다.
오늘 우리가 사회 변화를 위한 운동의 전략에 대해 논하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1999년 시애틀에서 반자본주의 시위가 벌어진 지 6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 동안 전쟁과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은 세계적 규모로 성장해 왔다. 가장 앞서 나가는 곳이 베네수엘라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이고, 이라크는 제국주의에 맞선 투쟁에서 가장 중요한 전선을 형성하고 있으며, 150만 시위를 벌인 프랑스의 학생·노동자들은 1968년 반란의 재등장을 선언하고 있다.
이 운동은 성장의 고비마다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를 둘러싼 핵심적인 전략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세계적 반전 반자본주의 운동의 일부로서 남한 운동도 이 운동의 방향을 표현할 수 있는 정치적 대안이 무엇인지를 논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문제는 지난 20여 년 동안의 국내 정치 상황의 전개와도 맞물려 있다. 1987년 이래 남한 사회는 정치 체제의 자유화가 이뤄지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 이 동력은 노동운동이 제공했다. 그런데 김대중과 노무현이라는 “개혁 정권”은 노동계급과 피억압 대중에게 개혁을, 진정한 개혁을 선사하기는커녕 신자유주의 추진으로 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켰고, 그 결과 대중적 환멸을 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운동을 한층 발전시키고 결국에는 궁극적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 운동 세력은 여기에 답할 필요가 있다.
이런 물음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 바로 단일전선체 건설 논의로 표현되는 계급연합 전략이다. 계급연합 전략을 통한 자주적 또는 진보적 민주주의 정권 수립이 전쟁과 신자유주의 시대 우리의 대안이라는 것이다. 단일전선체는 “사안별 공동투쟁체와는 달리 전략적 지위”1)
친미 보수우파의 준동에 대항해 중간계급과
지금 단일전선체 건설을 주장하는 동지들은 대강 세 가지 차원에서 노동계급만으로는 안 되고 계급연합 전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첫째,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노동계급만이 아니라 민중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에 노동계급만이 아니라 농민·중소상인·중소기업·민족자본가도 단결해야 한다는 것이다.3)
둘째, 한반도가 냉전적 남북대결구조에서 평화 구조로 진전되는 것을 가로막으려는 냉전 수구 반통일 세력에 맞서 개혁·진보세력이 연합해야 한다는 것이다.6)
셋째, 2006년부터 2008년에 이르는 기간에 지방선거, 대선, 총선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이 한국사회가 계속 민주개혁 흐름을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한나라당 재집권으로 후퇴할 것인가를 가르는 중요한 시기라는 것이다.9)
많은 사람들은 ‘단결하면 좋은 거 아니냐’는 소박한 심정에서 단일전선체를 지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껏 내가 얘기했듯이, 단일전선체 건설 논의로 표현되는 “대동단결” 요구는 실제로는 계급연합 전략, 곧 인민전선
민중전선은 ‘단결해서 더 큰 힘을 내면 좋은 것 아니냐’는 기본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결과를 낳는다는 점에서 매우 파괴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다. 노동계급과 자본가 정치세력의 정치연합은 기본 이해관계가 정반대인 두 계급 사이의 동맹이기 때문에 노동운동 세력을 마비시키는 데 이바지한다. 정치 동맹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려 한다면 두 힘은 합쳐져 더 커지기는커녕 기껏해야 제로가 되거나 아니면 노동계급에게 마이너스로 작용한다.
역사적 사례를 보면 민중전선은 그 지지자들의 활동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강령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1930년대 프랑스 민중전선 정부 등장 이후 노동자 파업 물결이 거세지자 급진당
6.15 공동선언 이후 자민통 계열 동지들과 민족화합적 자유주의 세력 사이에
계급협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민족적’ 또는 자유주의적 자본가들과 적대적이 되지 않도록 노동자 투쟁을 어느 수준에서 억눌러야 했다. 조덕원 21세기코리아연구소 소장의 표현을 빌면, “이북정권과 친미보수정권 간에 상층 민족통일전선이 형성된 조건에서 반미진보세력은 친미보수정권을 퇴진시키는 전략적 타격투쟁
노동자 투쟁이 효과적으로 억제되면 계급세력 관계는 자본가 계급에게, 특히 우파에게 유리하게 된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억제당하는 이와 같은 조건에서는 우파가 여세를 몰아 반동 공세에 나선다 해도 대처하기가 어려워진다. 이처럼 부르주아 정당과 동맹하는 정책의 문제점은 노동계급이 반동에 저항하지 못하게 마비시켜 버린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일이 1973년 칠레에서 벌어졌다.
아옌데가 이끄는 칠레 민중전선 정부가 개혁을 추진하고 이에 우익이 저항하자, 노동계급이 매우 전투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대규모 시위와 파업이 벌어졌다. 기업주들은 아옌데에 반대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공장 가동을 멈췄다. 그러자 노동자들은 공장을 장악했고, 노동자 평의회 비슷한 조직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잠재적으로 혁명적 상황으로 발전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민중전선 정부는 노동자들이 너무 멀리 나아가지 못하도록 뜯어말렸다. 노동계급은 동원을 그만뒀다. 그러자 피노체트 장군의 군대가 1973년 9월에 쿠데타를 일으키고 노동자 조직들을 파괴했다.
계급연합 전략을 반대한다고 해서 노동계급 혼자 싸우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무릇 모든 변혁운동이 그렇듯이, 노동계급은 승리하기 위해 농촌과 도시의 중간계급들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겨야 한다. 농민과 도시 중간계급이 노동계급과 척을 지고 대자본가 계급 쪽으로 간다면 노동계급은 분열해 성공을 거둘 수 없다. 많은 노동자들이 농민의 자식이고, 도시 중간계급의 자식이나 형제자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떻게 농민과 도시 중간계급의 지지를 얻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우선 중간계급에 대해 잘 이해해야 한다. 계급연합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중간계급을 하나의 단일한 계급으로 여긴다. 하지만 중간계급은 온갖 잡다한 계층들로 구성돼 있고, 서로 단일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지 않다. 상층 중간계급은 대자본과 연결돼 있는 반면 하층 중간계급은 노동계급과 가깝다. 파산에 직면한 하층 중간계급은 결코 자기 계급의 상층에 대해 동질감을 갖지 않는다. 동질적이지 않기는 농민도 마찬가지다. 부농과 빈농의 이해관계는 다르다.
노동운동이 부르주아지와 이해관계의 최소공배수를 도출해 그것에 복무하려고 한다면, 중간계급은 자신을 위기에 빠뜨린 정책의 재탕을 하려 한다는 것을 깨닫고 노동계급을 대안세력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노동계급이 독립적인 투쟁으로 전쟁과 빈곤으로 얼룩진 세계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자신의 힘을 내보여야만 농민과 도시 중간계급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하층 중간계급은 여러 어려움에 처해 있고, 자신을 도탄에 빠뜨리고 있는 열린우리당에게 환멸을 가지고 있다. 열린우리당에 대한 분노는 가벼이 볼 수준이 아니다. 바로 이런 점에서 반한나라당 친열우당개혁파 전선은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만약 열린우리당의 일부 세력
민중전선 전략의 또 다른 폐해는 독립적인 노동계급 투쟁을 억제한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독립적인 투쟁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것은 “돈키호테식 모험”11)
노동자들 자신의 고유한 요구를 제출하는 투쟁을 마치 이기주의적인 것처럼 백안시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사기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노무현 집권 내내 ‘대기업 노동자 이기주의’ 같은 이데올로기 공격 때문에 가장 잘 조직된 부위의 노동자들이 기를 펴지 못하는 상황에서 운동 내부에서마저 이런 목소리가 나온다면 노동자들은 더욱 위축될 것이다.
그러나 한국 노동운동을 돌아보더라도, 자기 계급의 이익을 주저없이 내놓았던 노동자 투쟁이 사회 전체의 진일보를 가져오거나 민중의 삶을 방어한 경우가 적지 않다. 1998년 현대차 노동자들의 공장 점거 투쟁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투쟁은 비록 노조 지도자의 양보로 비기는 데 그쳤지만,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어느 정도 방어하고, 동시에 김대중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대폭 수정하도록 하는 데 결정적 구실을 했다. 1998년 당시 세계은행 부총재였던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한국이 IMF의 정책을 충실히 따르지 않은 덕분에 경제 공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나중에 지적했다
물론 노동자 운동은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투쟁할 수 있어야 하지만, 거꾸로 노동자들 자신의 요구가 억눌려서는 안 된다. 노동자는 자기 자신의 해방을 위해 싸울 때만 승리를 확신할 수 있다.
민중전선이 광범한 단결을 이루고 우리 운동의 힘을 강화시키는 방법이 아니라면, 과연 어떻게 연대와 단결을 이루고 운동을 한층 전진시킬 수 있을까?
코민테른 3~4차 대회에서 제안된 공동전선
단일전선체가 갖는 공통의 정치강령은 노동계급의 행동을 제약할 뿐 아니라 더 큰 연대의 가능성도 제약할 것이다. 서로 강령에 동의하지 않는 세력들도 특정 쟁점을 둘러싸고는 함께 큰 운동을 건설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세계적 운동은 서로 다른 강령과 전략을 갖는 다양한 세력들의 연대 속에서 성장해 왔다. 이 속에서 각 정치 세력들은 자기 주장의 올바름을 입증받으려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연대를 위해서 독자적 강령을 유보하라고 상대방에게 요구한다면 단결을 이룰 수 없다. 예컨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반대 운동에는 여러 세력이 모일 수 있지만, 이 운동이 민족 자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훨씬 더 적은 세력만이 모일 수 있을 것이다. 분석과 대안을 둘러싼 차이들은 공동전선 안에서 자유롭게 토론돼야 한다. 공동전선 안에는 비판할 자유, 간행물을 만들고 선전할 자유, 필요하다면 독자적으로 행동할 자유가 있어야 한다. 공동전선이 특정한 쟁점을 둘러싸고 결성돼야 하는 이유는 조직의 독립성과 정치적 명확성을 유지할 필요에서 나온다.
만약 지금 계획대로 단일전선체가 추진된다면 그것은 사실상 하나의 정치 조직 성격을 띄게 될 수 있다. 제2의 전국연합처럼 말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 조직의 이름이 어떻게 됐든 조직의 성격으로 무엇을 표방하든 관계없이, 그 조직 밖에서 진정한 연대전선의 필요성은 다시 제기될 것이다.
운동의 지향과 방법들을 표현할 수 있는 정치적 대안이 무엇인지는 중요한 문제다. 유럽과 브라질 등에서는 “사회적 자유주의”와 단절하고 대안을 건설하기 위해 노력하는 새로운 급진좌파 정치조직이 등장하고 있다. 현재 남한 상황에서 정치적 대안으로 여겨질 수 있는 세력은 민주노동당이다. 좌파들은 선거에서 자본가 정당들에 반대해 민주노동당을 지지할 필요가 있다. 민주노동당이 전쟁과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세계적 운동의 흐름을 더 잘 반영할 수 있도록 요구하면서 말이다.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이 더는 자유주의 자본가 정당에 정치적 의탁을 하지 않고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추구한 결과 등장한 당이다. 민주노동당이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정치적 표현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을지라도 자본가 계급으로부터의 독립은 진일보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을 계급연합 정당으로 바꾸자거나13)
단일전선체론자들은 단일전선체와 민주노동당의 관계를 대중 투쟁과 원내 활동의 관계로 그럴 듯하게 설명하려 들지만, 그들에게 핵심은 민주노동당만으로는 집권할 수 없다는 것이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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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3)
4)
“사회양극화의 본질과 원인을 정확히 폭로함으로써 … 반미투쟁의 방향으로 이끌어야 나가야 한다.”
5)
“반제반봉건민주주의 혁명의 대상은 제국주의자들과 지주, 예속자본가, 반동관료배로 되며 이 혁명의 동력은 노동계급을 비롯한 광범한 근로인민대중으로 된다. … 여기에는 양심적인 민족자본가와 종교인도 혁명의 동력으로 참가할 수 있다.
“자본주의 발전의 정상적 길을 거치지 못한 것으로 하여 계급구성이 복잡한 식민지·반식민지 나라에서는 노동자, 농민 외에도 혁명에 이해관계를 가지는 모든 계급과 계층을 혁명의 편에 인입하지 않는다면 반혁명세력에 대한 혁명역량의 압도적 우세를 보장할 수 없다.”
6)
“최근 반통일 보수세력들은 집요하고 치밀하게 남북 화해협력 흐름, 개혁 진보흐름을 뒤집고, 반북대결구조를 되살리려고 혈안이 되어 날뛰고 있다. … 이들의 움직임을 차단하지 않는 한 6.15 공동선언 이행은 물거품으로 될 것이다. 현 정세는 반통일·보수세력과 개혁·진보세력의 대결전의 시기
7)
8)
“진보진영의 단일연대연합체 건설은 통일운동을 밀고나가는 추동력을 갖추는 사업이다. … 진보진영의 단일연대연합체가 건설되어 이 조직이 6.15민족공동위에 조직적으로 참여
9)
10)
11)
12)
13)
14)
“단일연대연합체 중심으로 결집하여 통일적인 전략과 노선을 갖고 통일적인 정치투쟁방침 아래에서 일사분란한 정치활동과 정치투쟁을 펼쳐나가야 한다.”
15)
“단순히 의회활동, 진보정당의 독자적 활동만으로 불가능하다. 사회적 개혁과 진보를 지향하는 모든 대중단체와 정치세력, 개별인사들이 하나의 정치전선에 총 단결하여 대중정치투쟁전선을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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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비지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