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위원회는 5월말 6월초의 정세가 남북정삼회담의 촛점이 될 것이라는 판단 하에 국보철 켐페인을 제기하고 이를 조직하려고 했다. 물론 당시에도 민주노총의 5월 말 총파업이 예고돼 있었으나 남북정삼회담 정국 속에서 형식적인 하루 파업 정도로 그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러나 학생위원회의 예상을 넘어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는 총파업 투쟁은 정세의 초점을 형성하고 있었다.

총파업 1주일 전부터 각종 신문과 뉴스에서는 총파업을 다루고 신문에서는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국민여론 조사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지지 여론은 총선시민연대에 대한 지지율 80퍼센트에 육박할 정도로 높고 뜨거웠다. 노동자들의 요구에 대한 이런 뜨거운 지지는 예상을 넘어서는 정말이지 놀랄 만한 것이다. 각 단위노조에서 임·단협투쟁과 맞물려 노동시간 단축 총파업이 제기됐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비롯한 고용안정의 요구가 높았다.

학생위원회 집행국은 신속하게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는 판단하에 총파업이 시작되기 5일 전 긴급하게 노동시간 단축 투쟁에 개입할 것을 호소하는 글을 쓰고 조직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그 뜨거운 여름 거리, 투쟁하는 노동자의 대오 속에서 학생위원회의 깃발이 휘날리는 감동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집행국의 좀더 치밀한 정세판단의 부족으로 학생당원들이 혼란을 겪었음에도 동지들의 헌신과 열정으로 신속하게 개입했고 훌륭한 성과를 낼 수 있었다. 동지들에게 신뢰의 인사를 보낸다.

개입을 강화하기 위하여

학생위원회는 급격한 무게 중심의 이동이었지만 효과적으로 개입하기 위해 긴급한 토론을 조직했다. 충분한 토론을 할 만한 시간적 여유는 부족했다. 그 결과 고대 학생위원회에서는 "급박한 일정으로 인해 주변의 사람들과 충분한 토론과 설득을 결합시키지 못해 같이 할 수도 있었던 더욱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지 못한 것이 아쉽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한성대 학생위원회도 "이번 캠페인을 통해 가장 많이 배운 것이 있다면 대중적으로 확대하기 위해서 주변을 설득하고 그날 그날에 있었던 활동들에 대한 정치적 평가를 꼼꼼이 수행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는 점이다. 새내기들에게 정치적 설득과 토론을 통해 적극적으로 결합시켰다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자신감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서명은 왜하는지, 어디에 쓰여지는지, 무슨 효과가 있는지 등의 토론은 꼭 필요한 것이었다."는 평가를 하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토론을 조직했던 것은 개입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진 결정적 이유였다.

개입의 방식

이데올로기적 개입

 켐페인 기간 동안 학생위원회는 노사정위에서 노동시간 단축을 논의하자는 정부의 주장을 폭로했다. 학생위원회는 그 기간의 노사정위의 진행 과정을 폭로하며 계속 투쟁을 지속할 것을 주장했다. 또한 정부의 '임금삭감·휴가축소' 등을 전제로 한 노동시간 단축에 대해서도 정부의 근거들을 비판하며 조건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했다. 특히 이런 이데올로기적 개입은 이후 금융노조의 총파업 기간에 정부의 주장을 비판하는 호외를 발행하면서 효과적인 노학연대 투쟁의 전형을 만들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의 토대가 되었다.

 서명운동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21170명의 서명을 받았고 5월 28일에는 1만여 명이 모인 전국 교사대회에서 2명당 1명 꼴인 4753명의 서명을 받기도 했다. 5월 31일 민주노총 파업 집회에서도 3시간 동안 3701명의 서명을 받았다. 서명 운동이 대중의 행동을 촉발하는 출발점이라고 볼 때 아직 노동자와 학생들 속에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민주노동당이 대중에게 다가가기에 서명운동은 아주 적절한 운동이었다. 각 학교에서도 1∼2시간씩의 서명운동을 통해 8973명의 서명을 받아내면서 노동시간 단축의 정당성을 설명하고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를 알려냈다. 특히 당시 당원이 세 명밖에 되지 않던 성신여대 학생 당원들이 강의실·휴게실·지하철을 돌며 1000여 명의 서명을 받았다는 소식은 학생위원회 전체를 고무하는 계기가 됐다. 다만 아쉬운 점은 서명을 받으며 우리의 주장을 조금더 자세하게 이해시킬수 있는 인쇄 매체가 없었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기관지에는 "학생위, 노동시간 단축투쟁 일주일 동안 2만 2천 명 서명"이라는 제목의 박스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집회참여

5월 28일 전국교사대회·31일 민주노총 파업집회·6월 3일 민주노총 종묘집회·4일 노동자대회· 8일 민중대회까지 짧은 기간동안의 집중 집회 속에서 학생위원회는 독자적인 대열로 선전 선동을 하며 거리행진을 조직했다. 처음으로 단일한 대오로 집중하는 것이기에 처음엔 얼마나 결집할 수 있을지에 대한 망설임은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켐페인 기간 내내 150여 명의 동지들이 우리의 대열에 함께 하면서 독자적인 선전전과 효과적인 선동을 진행할 수 있었다. 초반에는 학생회 대열이 아닌 학생위원회 대열로 결집하는 것에 대해 정치적 우려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켐페인이 진행되면서 동지들은 독자대열속에서의 선전과 선동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학생위원회 독자집회

총파업의 한 국면이 정리가 되던 6월 4일 학생위원회는 현재의 투쟁을 평가하고 이후의 투쟁 전망을 대중적으로 논의하고 결의해야 한다는 판단 속에서 학생위원회 주체의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청년학생결의대회'를 주최했다. 200명이 넘는 동지들이 그 집회에 참가해 현재까지의 투쟁의 성과들을 평가하고 이후 투쟁의 결의를 다졌다. 뒤에서 다시 다루겠지만 이후 투쟁의 방향성과 관련된 연사의 발언은 다소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됐다. 학생위원회는 이 날 독자집회를 처음 조직하면서 자신감을 느꼈고 집회 조직의 경험들을 쌓을 수 있었다.  조금 더 많은 동지들과 함께 하기 위한 기획이 부족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지만 최초의 조직적 개입을 감안하면 당시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이 날의 집회는 진보넷을 통해 동영상이 방영되기도 했다.

단위노조 지지방문

총파업 기간 동안 집중 집회 이외에도 당시 파업중이던 경희의료원, 동명기술공단, 통인가게의 파업 지지 방문을 조직했다. 당시 파업의 촛점을 형성하던 경희의료원 문화제 지지 방문은 학생 당원들이 파업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의 정서와 분위기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계급에 뿌리내리기

근본적 변혁을 만들어가는 진보정당의 성패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노동자계급 속에 얼마나 단단히 뿌리박았는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기에 투쟁의 성과도 계급에 뿌리내리기라는 측면에서 일차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물론 그러한 성과는 그 조직의 규모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학생위원회가 120여 명 정도의 규모로 계급에 뿌리내리기를 효과적으로 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하지만 규모 이상의 선전을 했다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노동자들은 학생위원회에 좋은 인상을 보내 주었다. 한 금속 노동자는 "어제 집회에서 여러분들의 투쟁하는 모습에 크게 감동했습니다. 실제로 보지는 않았지만 고립된 민택동지들을 민노당 당원들과 민노당 학생들이 선봉에서 힘차게 투쟁해서 구출했다는 얘기를 듣고 민노당이 많이 바뀌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통신 노조의 한 노동자는 학생위원회 소속 학생 당원에게 "혹시 한총련 학생들이냐"하고 물었다.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라는 대답에 노동자들은 "한총련도 좋지만 민주노동당은 더 좋다."고 말하면서 식사비를 대신 내 주기도 했다.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참 열심히 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들 속에서 볼 수 있듯이 학생위원회는 이번 투쟁을 통해 계급과 학생들 속에서 민주노동당을 투쟁하는 진보 정당으로 각인시키는 성과를 낳았다.

당 속에서 분명한 실체로 각인됨

민주노동당은 진보정당운동 역사상 최초로 노동자 대중 운동에 기반해 건설되고 있는 진보정당이다. 최초의 시도이기에 정치적 방향성에 대한 토론과 논쟁들이 활성화되어야 하고 다양한 정치적실천과 모색들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기에 민주노동당은 아직은 하나의 정치적 방향성을 가진 당이라기 보다는 다양한 의견들이 공존하는 당이라고 볼 수 있다. 당연히 학생위원회도 이러한 정치적 논쟁과 실천의 일주체로서 당당히 자리를 잡아야 한다. 당 내에서 이러한 일주체로 자신의 첫발을 내딛기 시작한 계기는 바로 노동시간 단축투쟁부터였다.

다음은 지구당 소속 당원들의 말이다.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동지들의 열정적 활동에 동지적 찬사를 보냅니다. 이번 노동시간 단축 서명을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2만 여명이 넘게 받으셨다는 소식을 듣고 동대문 중랑 지부 당원들은 무척 고무받았습니다." "어제 합동/정당연설회 그리고 저녁 유세에 혼신을 다해 함께해준 동지들께 감사와 수고의 말을 전합니다. 동지들께서 보여준 뜨거운 연대에 다시금 감사드리며 이후 많은 투쟁속에서 함께할 것을 약속드리며 계속 투쟁하였으면 합니다."(서대문 은평마포지부). 기관지에서는 "학생위원회가 노동시간단축 투쟁에 있어 민주노동당의 첨병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4·13총선에서 원내 진출 실패, 지난 달 20일 당대회 무산으로 자칫 침체될 수 있는 당의 분위기를 학생위원회가 앞장 서서 생동감있는 당의 모습을 대내외에 보여주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이 외에도 많은 당원 동지들과 지부 그리고 당 지도부에서 "이번 노동시간 단축 켐페인을 통해 학생위원회가 어떤 조직인가를 느낄 수 있었다."는 격려를 보내주셨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학생위원회는 노동자 중심성이라는 입장과 실천을 당내에서 부각할 수 있었으며 학생위원회를 단순한 후배 활동가들의 모임이 아니라 당을 만들어가는 동등한 동지로써 바라보아야 한다는 문제제기를 하는 첫출발이었다.

우리 자신이 얻은 것

이번 투쟁은 학생위원회가 최초로 독자적 대오로 켐페인을 조직한 것이었다. 노동자 중심성과 사회변혁을 주장하는 우리의 입장을 실천으로 연결시키며, 우리가 강조했던 토론과 논쟁이 결코 현실의 투쟁과 괴리되는 것이 아님을 입증하는 투쟁이기도 했다.

독자적인 켐페인 속에서 학생 당원들과 우리 주위의 사람들은 일체감을 확인하고 정치적 자신감이 고무되었다. 경희대 당원은 "그 동안 총학생회의 대오속에서 외치고 싶었던 구호와 선전을 못했었는데 독자적인 대오속에서 우리의 주장을 마음껏 알리고 외칠 수 있어 좋았다."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하였다. 또한 공동의 경험이 부재한 운동 초기의 학생위원회가 하나의 운동을 벌여 나감으로써 공동의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돼 학생위원회로의 동질감, 소속감을 한층 높여낼 수 있었다. 인하대에서는 "우리 자신에게는 소규모이지만 실질적인 행동을 어떻게 조직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고민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고 평가를 했다. 우리는 거리 선동과 선전을 진행하고 피켓·베너 등의 선전물을 제작하고 단독 집회도 개최하면서 각 학교 학생 당원들의 전문 역량을 확인하고, 각 활동속에서 뛰어난 활동가들을 발굴할 수 있었다. 또한 우리 자신이 경험해 보지 못한 거리선동·대열지도· 연설 등의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또한 켐페인 기간 동안 한시적인 지도부로 집행국과 대표자들의 자원으로 '노동시간 단축 특별팀'을 구성하여 켐페인 진행과 관련한 계획들과 역할분담을 통해 효과적인 켐페인을 조직했다는 것은 역량의 집중과 책임의 분산을 경험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이러한 성과들은 이후 민주노총의 롯데호텔·사회보험노조 경찰력침탈 항의 투쟁과 금융노조 총파업에서 효과적인 개입을 가능케한 동력이 되었다.

개입속에서 제기된 정치적 쟁점들 

이러한 효과적인 투쟁속에서도 몇가지의 정치적 논쟁점이 있었다. 깊이 있게 다루지는 못하겠지만 각 쟁점에 대해서 간략하게 나마 정리해보고자 한다.

일상과 개입의 조율

학생위원회는 4월 총선 이후 등투에서 총선으로 이어지던 시기의 효과를 분명히 정리하기 위해 교육 선전 강화를 지침으로 하는 일상을 강조했다. 이것을 바탕으로 각 학교에서는 총선 이후 조직 정비와 세미나·정기모임· 토론회 등의 일상을 복원하는 쪽으로 신속히 무게중심을 옮겼다. 하지만 5월말 노동자들의 총파업 투쟁이 시작되면서 다시 학생위원회는 조직적 개입으로 강조점을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몇 개 학교에서의 혼란이 있었고 특히 집중 집회의 시기에 미리잡혀 있던 당원 MT를 강행하고자 하는 모학교 학위와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논쟁들은 개입의 시기에 주위의 압력에 의해 불가피하게 발생하곤 한다. 노동시간 단축 켐페인 이후 6월말 시작된 민주노총의 롯데호텔·사회보험노조 폭력진압에 대한 항의 투쟁이 한달이 넘게 진행돼 학생위원회가 규모와 능력을 다소 넘어서는 초개입주의로 진행되면서 요즘도 이러한 논쟁들이 다시 새롭게 제기되고 있다.

우리 중 누구도 일상의 중요성을 부인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의 규모는 너무나도 작기에 우리의 치열한 의지에서 비롯된 개입만으로 객관적 조건을 뛰어넘어 정세를 만들어 갈 수 없다. 그 때문에 일상은 우리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활동이다. 하지만 우리가 변혁을 위해 계급의 일부가 되기를 자처한다면 우리는 계급의 움직임에 따라 전진하고 후퇴하여야 한다. 따라서 계급투쟁이 우리 조직의 규모, 즉 활동 능력을 뛰어 넘어 훨씬 멀리 나아갈 때 우리도 그에 맞게 막대기를 구부려 조직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다. 흔히 개입의 시기에 문제제기를 하는 동지들은 "주변 지지자들을 효과적으로 조직하기 위하여"라는 명분하에 "교육과 선전·정기적 미팅약속"을 진행해야 되는 것 아니겠냐는 어려움을 호소한다. 물론 개입으로 인해서 기본 일상조차 진행하지 못하는 것에서 비롯하는 불안감은 충분히 이해될 만한 것이지만 개입은 특별한 시기에만 가능한 특별한 경험이라는 것에 데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들이 영구적으로 파업 투쟁을 진행할 수 없듯이 우리 또한 계속 개입을 할 수는 없을 것이고 1년을 세미나를 해도 노동자 중심성을 깨닫지 못하는 동지들이 단 하루의 투쟁으로도 느낄 수 있는 생생한 정치학교의 장이 바로 개입이기 때문이다.

개입의 시기에 개입으로부터 다소 후퇴해야 한다는 주위의 압력에 굴복하는 것은 조직적 경험을 통해 조직적 교훈을 얻는 것이 개입의 효과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기간의 성과조차 날려버리거나 오히려 조직적인 재앙을 가져오기까지 한다. 가장 먼저 개입한 자들이 가장 늦게 전장을 떠나야 한다는 개입의 원칙을 다시 떠올릴 필요가 있다. 개입으로부터 후퇴를 주장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고도 진지한 투사라면, 개입을 하며 개입의 외곽에 존재하는 주위의 대중이 떠나갈까봐 고민하는 조급성, 수동성을 버리고 주변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설득해 조직적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개입으로 최대한 끌어들일 것인가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적극성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개입한 이상 최대한의 집중으로 최대의 성과를 내는 것이야말로 조직이 변혁 운동 속에서 성장할 수 있는 비결이다.

정치선동과 경제선동의 결합

마르크스가 지적했듯이 국가는 "생산을 지배하는 계급이 경제적으로 필요로 하는 바들을 응집된 형태로 반영하는 것"이다. 곧 정치는 응집된 경제이다. 로자룩셈부르크도 대중파업론에서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은 결합된다고 이야기했다. 레닌은 1897년말에 쓴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의 임무》에서 "사회민주주의자는 당면한 경제적 요구에 관한 노동자 속에서의 선동작업을 함과 동시에 그것과 노동자 계급의 당면한 정치적인 요구나 필요, 곤란에 관계되는 선동을 불가분하게 결합시킨다.… 경제적 선동과 정치적 선동은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자각의 발전을 위해서 똑같이 필요한 것이며, 또 모든 계급투쟁은 정치투쟁이기 때문에 경제적 선동과 정치적 선동은 러시아 노동자의 계급투쟁을 이끌기 위해 똑같이 필요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노동자들은 아무리 작은 투쟁일지라도 투쟁 속에서 의식을 변화시킨다. 왜냐하면 대중은 자기들 자신의 경험에서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투쟁 속에서 노동자들은 경제와 정치가 결합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경제적 투쟁 속에서도 대중 행동은 경찰의 폭력이나 정부를 통해 조직된 언론의 이데올로기적 공격들에 직면하게 되고 기존 사회와 정부에 대한 의식의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또한 노동자들은 투쟁 속에서 제기되는 많은 주장들에 대해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투쟁의 기간 동안 경제적 쟁점만을 외칠것 아니라 당시 초점을 형성하던 매향리를 비롯한 남북정상회담과 관련된 정치적 쟁점에 대한 선동도 결합해야 했다.

이러한 평가는 6월 7일 반미 쟁점을 지지하자는 학생위원회 집행국의 호소문에서도 담겨 있다.

"지난 주 동안 우리 주장의 골간은 노동자 계급이 일단 승리를 거두었고, 이 승리를 확정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지금 투쟁하는 것이며 앞으로도 투쟁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어야 했다. 이렇게 봤을 때, 6월 4일 학생위원회 사전 집회에서 한 학생 당원 동지가 연단에서 민주노총 일부 지도자들이 파업을 중단시키려 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라며 무기한 파업이어야 한다고 말한 것은 부적절한 주장이었다. 오히려 그는 정치적 쟁점을 제기하고 그것에 대해 얘기했어야 했다. 그래야만 경제적 요구와 정치적 요구가 결합되면서 협력·상승 작용이 일어날 수 있기를 기대할 수 있다.

"지난 주에 벌어지고 있던 파업 투쟁들은 파업 작업장들이 각기 자신의 요구를 제기하고 벌이고 있던 이른바 경제 투쟁들로, 그 전반적인 양상은 대단히 불균등했다. 이러한 불균등성 때문에 투쟁의 동력은 제한돼 있었다. 따라서 밑으로부터의 압력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착 상태를 해소하는 열쇠는 매향리 문제, 이한동 총리서리 임명으로 드러난 자민련과의 동맹 문제, 각종 개혁 조처의 후퇴 문제 등 현안의 정치적 쟁점들과 직면하는 것이었다. 계속해서 경제 투쟁에 박차를 가할 것을 촉구하는 것은 올바른 방침이 아니었다.

"이번 주에도 민주노총 지도자들은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는 그 투쟁을 지지한다. 하지만 지지하는 방식은 단순히 노동 시간 단축 문제만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 문제도 제기해 정치 투쟁과 경제 투쟁이 결합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교훈은 이후 6월말부터 시작한 민주노총의 경찰력 침탈에 대한 항의투쟁에 개입하면서 아주 잘 적용됐다. 당시 학생위원회는 노동자들의 요구인 비정규직 정규직화·고용안정·유니온 샆 인정에 대해서 외쳤지만 동시에 주한 미군 철수·박정희 기념관 건립사업 반대·자민련 교섭단체 만들어 주기를 위한 국회 날치기 처리 규탄·공공요금 인상 반대·국가보안법 철폐 등을 주장했다.

일부 학생 활동가들의 기권

노동시간 단축 총파업이나 사회보험과 롯데호텔 경찰력 침투 항의 집회 등에서 정치 좌파의 기권 내지 실질적인 방기는 심각한 문제였다. 이 문제는 그들의 갖가지 주장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요구하기 떄문에 이번 글에서는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노동시간 단축 총파업에 대해서 일부 학생 활동가들은 이번 투쟁이 각 단위사업장의 임·단투에 시기만 끼워 맞춘 관료적 파업이며 핵심 투쟁 방향은 신자유주의 저지·구조조정 분쇄를 반영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는 총파업에 대해서는 실질적인 기권을 했다. 이러한 활동가들의 태도는 총파업 이후 6월말부터 시작된 민주노총의 롯데호텔·사회보험노조 경찰력 침탈 항의투쟁에도 기권하는 것으로 이어졌으며,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하반기의 노동시간 단축 투쟁에 대한 기권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우리도 이번 노동시간 단축 총파업에서 임·단투를 중심으로 각기 자신의 요구를 제기하고 벌이고 있던 사업장들의 투쟁 동력은 제한돼 있었고 밑으로부터의 압력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는 점은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하고 있었던 부분은 노동시간 단축의 요구가 국민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으며 정세의 초점을 형성했다는 것과 노동자 대중은 아무리 개량적이고 제한적인 것일지라도 투쟁을 통해서 의식을 발전시킨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이제 첫발을 띠고 있다. 노동자 대중 운동에 기반한 민주노동당의 건설·노동자를 위한 근본적 변혁·관성을 뛰어넘는 새로운 학생운동 …. 그 첫발을 가볍고 상쾌하게 만들어 준 것이 노동시간단축 총파업에 조직적으로 개입한 활동이었다는 점은 한치의 의심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