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버스’로 대표되는 아래로부터 저항의 발전이 54일 동안 도망다니던 조남호를 국회 청문회로 불러들였다. 사회적 지탄을 받은 조남호는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그러나 “정리해고 철회는 없다”는 조남호의 눈물은 ‘악어의 눈물’을 넘어 ‘악마의 눈물’처럼 보일 지경이며, 가증스럽기 짝이 없다. 그래서 조남호와 냉혈하고 철면피한 재벌 총수들에 대한 반감은 더 커지고 있다. 

2차 ‘희망의 버스’에서 행진하는 쌍용차 노동자들  노동자 단결 투쟁이 정리해고 철회를 가능케 한다.

조남호는 온 국민이 보는 앞에서 모욕을 당하고 비난 세례를 받아 마땅하다. ‘살인 해고’라는 만행은 결코 용납돼선 안 될 중대한 범죄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3년 뒤에나 해고자들을 복직시킬 수도 있다’는 조남호와 ‘김진숙도 그만 내려와 청문회에 나오라’는 한나라당은 끝까지 정리해고 방침을 고수하려 한다.

이것은 더 강력한 투쟁이 뒷받침돼야 조남호를 무릎 꿇릴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청문회에만 매달리며 중재·타협에 힘쏟는 민주당은 자본가 정당의 한계를 보여 주고 있다. 손학규는 여전히 ‘장외 집회 신중론’을 펴고 있고, “노·사·정 협의를 통한 순환 휴직이나 일자리 나누기 등”(원내대표 김진표)을 들먹이고 있다.

일부에서 정리해고 불가피성이 제기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은 사회주의에서나 가능하다”며 운동에 찬물을 끼얹는 방송대 김기원 교수는 노무현을 “불굴의 투사”이자 “정의파”로 치켜세우거나 “김대중이 신자유주의를 수용했다는 것은 오해”라고 말해 온 친민주당 지식인이다. 그는 민주당을 측면 지원하며 운동에 온건화 압력을 넣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노총·진보정당 등의 개혁주의 지도자들이 민주당·참여당과의 ‘야권연대’에 매여 투쟁 건설에 분명한 중심을 두지 않는 것은 유감이다. 물론, 민주노총 지도부가 8월 20일 수만 명의 노동자가 참여하는 ‘희망 시국대회’를 건설하는 것은 잘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런 투쟁마저 ‘야권연대’의 틀 속에 종속시키고 제한하려는 것은 우려스럽다. 

예컨대 민주노총 지도부는 민주당의 눈치를 보느라 8월 20일 집회 슬로건도 ‘정리해고 철회’가 아니라 ‘한진중공업 사태 평화적 해결’로 결정했다. 금속노조 지도부는 노동자들을 배신한 채길용과 함께 교섭에 참가해 “무급 순환휴직 방안도 고려”하는 양보안을 꺼내들고 있다.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도 “해고자 94명을 위한 프로그램 마련”을 제시하며 ‘정리해고 철회’라는 요구에서 후퇴하고 있다.

야권연대

돌이켜보면, 개혁주의 지도자들의 이런 태도는 최근 몇 년간 반복돼 온 패턴이다.

투쟁 가능성이 솟구치면 민주노총·금속노조 지도부가 연대 투쟁을 건설하기보다 양보 교섭을 종용하며 운동의 김을 뺐고, 이어서 어김없이 민주당을 포함한 야5당의 중재로 투쟁이 마무리되곤 했다. KEC 파업 때도,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 때도, 최근 유성기업 투쟁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졌다.

이 속에서 연대 투쟁 가능성을 확신하지 못한 노동자들은 “점거파업은 고립을 자초하는 길”이라는 생각에 갇혔다. 채길용 같은 자는 이런 ‘쌍용차 트라우마’를 부추기며 강력한 투쟁을 회피했다. 일부 좌파 노조 지도자들도 비슷한 한계를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희망의 버스’가 솟구쳐 오른 것이다.

그런데 금속노조 박유기 위원장은 “‘조직된 노동자들의 파업’에서 자율적이고 창발적인 시위로 발전하는 건 노동 의제가 사회적으로 확장되는 현상”이라며 자신의 투쟁 건설 회피를 정당화했다.

8월 20일 전국노동자대회와 8월 27일 4차 ‘희망의 버스’가 따로 열리게 된 것은 이런 상층 지도자들의 미덥지 못한 태도에서 기인했다.

‘희망의 버스’ 기획단의 다수는 개혁주의 지도자들과 그들이 추구하는 ‘야권연대’에 대한 불신 때문에 투쟁을 결합시키기보다 별도의 집회를 고집했다. 일부에선 “재벌이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것은 소비자[와] 시민 들의 자발적 참여”라는 말까지 나왔다.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의 집단적 투쟁의 힘과 그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채길용 집행부와 독립적인 한진중공업 노동자들 스스로의 투쟁에 대한 강조와 주장은 거의 나오지 않고 있다.

민주노총 지도부도 애초부터 ‘희망의 버스’ 기획단 측에 별개의 집회를 하자고 했고, 기껏해야 일부 프로그램 참가를 제안했다. ‘희망의 버스’가 가하는 아래로부터 압력이 부담스럽기 때문일 것이고, 무엇보다 8월 20일 집회를 ‘야권연대’의 계기로 삼을 생각이 더 크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희망의 버스’ 주요 활동가들의 심정과 태도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최선이라고 볼 수는 없다.

‘희망의 버스’가 성공하려면 강력한 조직 노동자들의 힘을 끌어당겨야 한다. 민주노총이 가진 조직적 힘과 ‘희망의 버스’의 열정·자발성이 분리되는 것은 조남호와 이명박만 안도하게 만들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 ‘희망의 버스’ 기획단의 주요 활동가들이 가진 건강한 문제 의식 ― 야권연대가 아니라 연대 투쟁이 대안이라는 ― 을 관철하려면, 운동을 일정한 방향으로 이끌려는 정치적 주장과 대안이 중요하다. ‘희망의 버스’ 주요 조직자들이 이런 문제를 공백으로 놔두면 그 공백을 자유주의 정치인들이 메우는 역설적 효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3차 ‘희망의 버스’ 때 주요 연설자로 민주당 정치인들이 나섰던 게 사례다.

대중의 자신감을 고무하고 투쟁을 통한 승리를 확신시키려면, 좌파적 정치와 대안을 제시하며 투쟁을 이끌어 오른쪽의 압력에 대항해야 한다.

따라서 ‘희망의 버스’ 기획단은 적극적으로 8월 20일 집회 참가를 호소하고, 이 속에서 ‘투쟁 확대·강화로 정리해고 철회가 가능하다’는 주장을 강력히 펼쳐야 한다. 조직 노동자들의 집단적 행동을 호소하고 선동해야 한다. 이것은 4차 ‘희망의 버스’를 효과적으로 조직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활동가들도 기층 노동자·학생 들 속에서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이 아니라 진보진영과 노동계급의 단결과 투쟁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치며 투쟁을 건설해 나가야 한다.

운동 속의 논쟁

희망과 투쟁을 버리는 게 대안이라고?

최근 김기원 교수와 사회디자인연구소 김대호 소장 등이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은 비현실적 구호”라고 주장해 논쟁을 촉발했다. 이들은 경제 위기 속에서 “해고는 불가피”하다며 ‘희망의 버스’가 무리한 요구로 억지를 쓰고 있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살인 해고’로 고통받는 동안, 한진중공업 사측은 경영진에게 1백70억 원의 주식을 배당했고, 올해 초에도 임원 봉급을 무려 50퍼센트나 인상하는 등 돈잔치를 벌였다. 경영진만 배를 불리며 노동 유연성·비정규직 천국을 만들어 민주노조를 파괴하려 한 것이다.

만약 김기원 교수의 말처럼 조선업 위기가 그토록 심각했다면, 어떻게 지난해 국내 조선업계 수주 실적이 3백51퍼센트나 늘어날 수 있었을까. 더구나 절묘하게도 채길용 집행부의 ‘파업 철회’ 선언이 있자마자 선박 여섯 척을 수주할 수 있었을까.

사실 지난해 한진중공업의 적자는 거의 전적으로 필리핀 수빅 등에 무리한 투자를 지속하면서 생긴 차입금 때문에 발생했다(지난 2년간 이자 비용으로 지출한 금액만 3천7백21억 원에 이른다).

조남호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노동자들의 피땀으로 부를 독식해 왔고, 이 돈으로 수빅조선소도 설립할 수 있었다. 도대체 왜 이 모든 부를 조남호가 독차지하고 노동자들은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

김대호 소장은 “정리해고가 그렇게 큰 악덕인가” 하고 묻는다. 이것은 정말 섬뜩한 말이다. 정리해고의 고통 속에 쌍용차 노동자와 가족 15명이 줄줄이 사망한 것을 벌써 잊었는가. 정리해고는 노동자들의 삶을 송두리째 짓밟는 만행이고 범죄다.

그런데도 “정리해고가 신규 고용[을] 창출”(김대호 소장)한다거나 “고용 경직성이 비정규직을 늘린다”(김기원 교수)는 이들은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눈먼 사람들이다.

고용 경직성

‘해고가 쉬워져야 일자리가 늘고 비정규직이 준다’는 논리는 이미 거짓으로 드러났다. IMF 대규모 구조조정 이후 수많은 이들이 실업과 비정규직화로 내몰렸던 것을 떠올려 보라. ‘고용 경직성’은 더 강화되고 확대돼야 할 소중한 가치다.

김기원 교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정리해고가 없을 수 없”으니 이를 거스르지 말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한다. 이것은 실상 싸우지 말라는 강력한 메시지다. 아니나 다를까, 이들은 “강경 투쟁”은 “절망”이고, “희망 버스”는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런 말을 들으면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반자본주의적 성격의 강령을 폐기한 것이 왜 문제였는지 새삼 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호황일 때는 물론이고 위기일 때마저 투쟁을 통해 정리해고를 막고 비정규직을 철폐할 수 있다.

현대차 노동자들은 1998년 36일간의 점거파업으로 대량해고를 막아냈고, 최근의 경제 위기에서도 대우버스 노동자들이 공장 점거로 5백7명 정리해고를 철회시켰다. 2004년엔 금호타이어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연대 투쟁을 통해 사내하청 비정규직 전원을 정규직화시키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최근 이집트 혁명과 노동자들의 파업은 진정으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혁명의 물결 속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40만 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됐고, 최저임금은 무려 두 배 이상 올랐다.

이것이 바로 투쟁의 힘이다. 물론 김기원과 김대호의 주장에 일말의 진실이 있다면, ‘자본주의에서 노동자의 고통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는 점일 것이다. 해고와 비정규직을 영구적으로 없애는 것이 “사회주의에서나 가능하다”면, 우리가 궁극으로 그런 사회를 위해 투쟁을 발전시키지 말아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