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런던의 소요를 두고 생각 없이 저지르는 파괴적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선〉 지[영국 대표적 황색 언론]는 “군중 폭력의 난장판”이라고 악을 썼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진실은 사람들이 날마다 당하는 억압, 빈곤, 소외에서 생기는 폭력에 답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경찰 총에 맞아 숨진 마크 더건 사건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경찰서로 행진했다. 

정권은 이번 소요를 소수 집단이 벌인 폭력 행위로 깎아내리려 한다. 정권이 이러는 이유는 빈곤 증대, 계속되는 경찰 폭력 같은 문제에 맞서 대중 저항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평등에서 비롯한 분노는 누군가 불씨만 던져 주길 기다리는 불쏘시개처럼 켜켜이 쌓였다.

평생 동안 무시받아 온 보통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주목을 받았다. 

소요가 보여 준 ‘폭력’은 체제가 매일매일 자행하는 폭력, 다시 말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몬 아프리카의 기아와 무수한 사람을 대량 학살한 전쟁 같은 것에 대면 가볍다.

소요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정권이 우리의 권리를 탄압하는 빌미가 될 뿐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소요로 중요한 성과를 얻어 낼 수 있다.

1980년대에 영국에서 일어난 소요들로 정부는 강경한 치안 정책에서 물러서야 했다. 정부는 도심 주거지의 환경 개선에 돈을 써야만 했다. 그리고 이러한 소요에서 흑인과 백인 젊은이들이 힘을 합쳐 싸운 덕에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분위기도 강해졌다.

1991년 맨체스터의 스트레인지웨이 교도소에서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래 끈 소요가 일어났다. 그 뒤 교도소는 다시 지어졌고 특히 수감자들에게 모멸감을 줬던 관행들도 단계적으로 폐지됐다. 

더욱이 우리는 지배자들이 “용납할 수 있다”고 여기는 행동만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우리가 진정한 변화를 가져올 싸움에 나서지 못하게끔 만든다. 남아프리카에서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 싸운 흑인들이 만약 체제의 경계에  갇혀 꼼짝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인종주의적인 아파르트헤이트 제도가 지금도 남아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슬

소요는 흔히 더 광범한 저항의 일부분으로 일어난다. 이를 테면 지난해 스페인에서 총파업이 벌어졌을 때 경찰이 파업 노동자들의 피켓팅을 막으려 하자 소요가 번졌다.

소요는 사람들이 힘을 합쳐 집단적으로 저항에 나서게 할 수 있고, 변화를 바라는 더 커다란 운동으로 성장해서 사람들이 잠깐이나마 자기 힘을 자각하게 한다. 소요는 1969년 북아일랜드 더비에서처럼 주민들이 지역 전체를 통제하는 도시 봉기로 커지기도 한다.  

그러나 결과는 저마다 다를 수 있다. 1970년대에 런던 노팅힐 폭동에 참가했던 한 사람은 이렇게 기억했다. “그때는 기가 막히게 자유로웠지요. 경찰을 피해 달아날 필요가 없었죠. 사람들이 웬만치 모이면 경찰이 달아나곤 했으니까요. 그러나 문제는 그런 자신감을 가지고 무얼 할 것인가였지요.”

집단적 조직의 수준이 낮고, 개인들이 더 광범위한 운동과 결합하지 않은 곳에서 소요는 급격한 부침을 겪을 수 있다. 

처음 터져 나온 힘을 유지하기 어렵고, 정부와의 소모적 싸움에 말려들 수 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소요만으로는 억압과 착취를 없애지 못한다. 소요는 지배자들을 불안하게 하지만, 그들을 진짜로 겁먹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가 말했듯이, “자본주의의 사슬을 만드는 곳, 바로 그곳에서 그 사슬을 끊어야 한다.”

작업장에서의 집단적 힘이야말로 운동의 진로를 민주적이고 집단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제아무리 자유로울지라도 소요의 와중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소요와 그 외 다른 형태의 저항을 부자연스럽게 파업과 대립시키는 것은 실수일 것이다. 중요한 문제는 사람들의 분노, 에너지, 반항을 어떻게 정치 의식과 집단 행동의 전략에 결합시킬 것인가다. 

소요는 사람들이 불평등한 체제에서 느끼는 분노를 표현한다. 사회주의자는 편을 들고 나서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저항하는 모든 사람을 지지한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썼듯이 소요는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던 사람들의 절규다.”

출처: 영국의 혁명적 좌파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