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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차 금속노힘:
‘노동자의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

기아차 노조의 좌파 집행부가 임기를 마무리하는 지금, 이 집행부를 배출한 현장 조직 금속노힘(금속노동자의 힘)이 내부 논쟁에 휩싸였다. 일부 활동가들은 올바르게도 “우리의 초심, 정체성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하고 제기한다.

2년 전 금속노힘이 노조 지도권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기층에서 투쟁을 조직해 신뢰를 쌓아 왔기 때문이다. 금속노힘은 사측의 현장 통제에 맞서 싸우고 비정규직 투쟁에 헌신적으로 연대했으며, 미군기지·한미FTA·전쟁과 파병 등에 반대하는 정치 투쟁에서도 인상적인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노조 지도부가 된 이후, 김성락 집행부와 금속노힘의 모습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금속노힘의 일부 활동가들은 ‘김성락 집행부가 정부와 사측의 타임오프 공격을 막아내고 민주노조를 사수했다’고 말한다. 이것은 일정 사실이다.

그러나 타임오프제의 본질이 노조의 전투성과 정치성을 제거하는 것에 있다는 점을 보면, 이들의 행보는 우려스럽기 짝이 없다.

김성락 집행부는 2년간 무쟁의로 투쟁을 회피했다. 현장 노동자들에서 멀어져 사측과의 협상에만 주력한 것이다. 그래서 올해 임단협 1차 잠정합의안이 부결되기도 했다. 김성락 집행부는 노조 조합원 수첩을 없애는 대신 “사측의 사훈과 경영 방침”이 담긴 사원 수첩을 배포했고, 심지어 지부장이 사측 소식지에 인터뷰까지 했다. 실용주의가 고개를 든 것이다.

무엇보다 기아차지부가 금속노조와 전체 노동운동에서 중요한 지위를 점하고 있는데다, 김성락 집행부가 대표적인 좌파 지도부였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은 더하다.

김성락 집행부는 자기 작업장의 담벼락 안에만 갇혀 연대 투쟁에도 소홀했다. 이들은 지난해 동희오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기아차 본사 앞에서 힘겨운 투쟁을 이어갈 때 실질적인 연대를 조직하지 않았다. 현대차 비정규직 점거파업 때도, 유성기업 투쟁 때도, 세 달 가까이 이어진 ‘희망의 버스’에서도 제 구실을 하지 못했다.

이것은 금속노조나 민주노총 지도부가 연대 투쟁을 회피하는 핑계를 제공했다. 금속노조 박유기 위원장은 현대·기아차 노조의 투쟁 회피를 이유로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점거 농성 해제를 종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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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락 집행부는 또 비정치적 조합주의에 갇혀 있었다. 민주노조운동의 전투성을 약화시킬 ‘참여당과의 통합 추진 반대 캠페인’에서도 별 구실도 하지 않았다.

이런 모든 문제에서 금속노힘은 김성락 집행부와 한 몸처럼 움직이며 독립적인 실천을 하지 못했다. 일부 활동가들은 김성락 집행부를 방어하기에 급급했고, 지금도 반성적 평가 없이 선거 논의에만 주력하고 있다. 그 일부에 다함께 회원이 포함돼 있다는 점은 정말이지 뼈아프고 애통한 일이다.

좌파 현장 조직이 이런 문제에 걸려 넘어진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현대차에선 이런 일이 반복돼 현장 조직에 대한 조합원들의 신뢰가 크게 떨어졌다.

그러나 이것은 필연적인 결과는 아니다. 노동조합의 한계 속에서도 좌파 활동가는 노조에 개입해 운동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물론 노조 지도권 장악에만 매몰돼 노조의 부문주의·조합주의에 타협하는 게 아니라, 현장 조합원들 사이에서 투쟁을 건설하며 정치적 노조 운동을 건설할 때 그것이 가능할 것이다.

과거 금속노힘 활동의 중심에도 이런 활동가들이 있었다. 이들은 노조 지도부가 투쟁을 회피하면 독자적인 행동을 건설했고, 전체 계급 세력관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투쟁에 헌신적으로 연대했다.

당시 다함께 회원(김우용 동지)은 이런 활동을 주도해 동료들로부터 신임을 얻었고, 그가 구속됐을 때 바로 이 동료들이 비공인 파업까지 벌이며 그의 석방을 기원했다.

그가 자기 정당화가 아니라 이런 자랑스런 과거의 경험을 되새기며 자기 비판적으로 활동을 재평가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2003년에 기아차의 한 다함께 회원은 “노동자들이 투쟁하도록 토론하고 조직하는 모든 과정이 바로 우리 노동자의 정치”라고 말한 바 있다. 지금 금속노힘 활동가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노동자의 정치”를 복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