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점령자’들 “부자에게 과세하라”

세계 자본주의가 더블딥으로 빠져들고 지배자들이 긴축정책으로 고통을 전가하려 하면서, 전세계 곳곳에서 저항이 커져가고 있다. 1968년 같은 전 세계적 반란 물결의 초입부가 아닌지 하는 기대도 제기된다. 

월가 ‘점령’ 시위대가 탐욕스러운 자본주의를 풍자하는 좀비 분장을 하고 행진하고 있다.

특히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미국 월가의 ‘점령’ 운동이 전 세계 보통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월가 점령’ 운동은 9월 17일 수백 명으로 시작됐다. 그 뒤로 이 운동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늘었고 미국 주류 언론에도 보도됐다.  

9월 24일 뉴욕 경찰이 잔인하게 진압을 시도하면서 더 많은 사람의 관심이 맨하탄에서 진행중인 놀라운 모습에 쏠리게 됐다. 이제 비슷한 투쟁이 미국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뉴욕 학생인 매리 클린턴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지금 노동 연대 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위원회의 목표는 월가 점령과 조직 노동자들을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수요일(10월 5일)에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노동 조직과 지역 사회 모임 들과 조우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월가 점령 운동이 강력해지려면 노조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처음에 노동운동은 우리에게 호기심을 보였고 신중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월가 점령 운동이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을 가치가 있는 운동이란 것을 알릴 수 있었습니다.” 

10월 5일 수천명의 노동자들이 참가한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
10월 5일 수천명의 노동자들이 참가한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

월가 점거 참가자들은 많은 행진과 집회 프로그램을 조직해 자신의 행동을 대중에게 알리려 노력했다. 

클린턴은 뉴욕 경찰이 이런 시위에 강력히 대처했지만, 그것은 참가자들의 투지를 강화시켰을 뿐이라고 말했다. “뉴욕 경찰은 폭력적으로 나왔습니다. 닥치는 대로 참가자들을 연행하고 최루가스를 뿌렸습니다.

반란을 촉발하는 월스트리트 점령

“많은 미국인은 자기 나라에서 이런 잔인한 폭력이 자행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의견을 표명할 자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경찰이 닥치는 대로 연행하는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10월 1일에는 7백 명이 연행됐습니다. 우리는 이날 중요한 경험을 했습니다. 우리는 연행자들을 위해 의료진을 모으고, 식량과 물을 전달했습니다. 그것은 연대 정신을 더 강화했습니다.” 

시위에 나온 참전 군인  “나는 두 번이나 내 조국을 위해 싸웠지만, 내 적을 알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월가 점거는 맨하탄의 민간인 소유 공원인 주코티 공원을 중심으로 진행 중이다. 그러나 점거 참가자들은 이집트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을 떠올리며(‘타흐리르’는 자유를 뜻한다) 이 공원의 옛 이름 — 자유 광장 — 을 사용한다. 

자유

점령은 여전히 발전하고 있다. 클린턴은 이렇게 말했다. “월가 점령은 위계를 거부합니다. 사람들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서로 모여 워킹 그룹을 꾸릴 수 있습니다. 

“워킹 그룹은 총회에 보고합니다. 월가 점령의 운영 방식은 자발적이면서 조직돼 있습니다.” 

점거 참가자들은 원래 인터넷과 대안 미디어를 활용해 주류 언론들의 무시를 극복했다. “모든 사람이 카메라가 장착된 핸드폰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주류 언론에 의존하지 않고도 우리 얘기를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토요일 〈뉴욕 타임스〉는 일면에 우리 기사를 실었고 그것은 우리를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미국 전역의 70개 넘는 도시들에서 비슷한 행동이 계획 중이거나 조직 중이다. 

“그런 소식은 우리에게 큰 힘을 줍니다. 얼마 전 ‘아랍의 봄’이 발생했죠. 이제 ‘미국의 가을’(Fall)이 벌어질 차례입니다. 미국 제국의 몰락(fall)을 가져올 가을 말이죠.”

“긴축이 우리에게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올해 초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공화당이 요구한 ‘재정균형’을 달성하기 위해 복지 서비스를 대폭 삭감하겠다고 발표했다. 

클린턴은 이것이 평범한 미국인들의 삶과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월가 점령은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사회서비스와 교육 예산이 줄어들면서 많은 사람이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99퍼센트에 속하고 현 정부를 좌우하는 금융과 부동산업이 1퍼센트가 되는지에 관해 말합니다. 

“사람들은 모기지를 내지 못하고 집을 잃었지만 월가와 은행들은 정부 지원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그들로부터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는 정서가 광범하게 퍼져 있습니다.

“사회서비스에 의존하는 노동계급부터 자기 집을 잃을 위기에 처한 중간계급까지 우리가 모두 긴축 정책의 피해자입니다. 

“학생들은 큰 빚을 져야 합니다. 학생 빚 문제는 신용카드 문제보다 심각합니다. 흔히 대학에 가야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지금 그런 일자리는 눈 씻고 찾아도 없습니다.  

“부자가 이 위기에 책임을 지게 하지 않고, 대신에 노동계급과 중간계급이 대가를 치르게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부유세는 확대되지 않았습니다. 주식 양도세도 확대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모든 사람이 의존하는 서비스인 학교와 소방서 예산은 줄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점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반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클린턴은 올해 초 벌어진 위스콘신 투쟁에서 큰 힘을 받았다고 말했다. 당시 노동자들은 노동권을 지키려고 파업을 벌이고 주의회 의사당 건물을 점거했다. 

“이전에 사람들은 많은 문제가 있지만 우리가 어찌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위스콘신 투쟁은 그런 자포자기 심정에 도전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무언가 할 수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그런 투쟁은 월가 점거가 처음 시작한 것도 아니고 이것이 마지막 투쟁도 아닐 것입니다. 월가 점거는 미국 전역의 사람들에게 감명을 줬습니다. 나 자신보다 훨씬 큰 것의 일부가 되는 것은 감동적인 일입니다. 

“아무도 혁명의 순간을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이 투쟁이 어디로 향할지 미리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길을 발견할 생각입니다.”

  비행사 노조 조합원 7백 명이 노동계약 조건 악화에 항의하며 월가로 행진했다. 대중교통 노조, 교사와 서비스 노조는 10월 5일 시위를 지지하고 나섰다. 

출처: 영국의 혁명적 좌파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