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한다. 인재는 향후 1백 년을 바라보고 길러야 한다는 말이다. 조금 확장해서 해석하면, 좋은 교육이 인재를 살리고, 인재가 살아야 국가가 흥한다는 말도 되겠다. 그런데 최근 벌어지고 있는 역사교과서 논쟁은 교육 백년대계보다는 어쩐지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한 퍼포먼스로 보인다.

이번 역사교과서 개정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뉴라이트 역사학계의 대표주자인 한국현대사학회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치고 있다. ① 일제 강점 당시 일본에 쌀을 ‘수탈’당한 것이 아니라 ‘수출’했고 ② 일제강점기 당시 상공업자 수가 증가하는 등 경제가 급성장했으며 ③ 취학률이 늘어나는 등 생활 수준이 개선되었고 ④ 대한민국은 공산세력에 맞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노력해왔을 뿐만 아니라 ⑤ 이승만과 박정희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노력했으므로 그 공을 재평가해야한다. 이 외에도 한국현대사학회는 여러 가지 주장을 펼치고 있다. 대표적으로, 60~70년대 당시 행해진 반공 정책의 시대적 필요성 및 정당성과 긍정적인 측면을 기술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니, 자유민주주의니 하는 구체적 단어 선정에 대한 논쟁은 논외로 치더라도, 적어도 반공정책을 정당화하는 기술은 수용하기 어렵다. 과거의 국제정세를 돌아본다면 우리나라가 시행했던 반공주의가 얼마나 한심하고 광적이며 숭배적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60년대 당시 반공주의가 극성을 부리던 때에, 전 세계가 반기를 들고 반대하며 성토했던, 미국의 탐욕적 이익에 기반한 베트남 전쟁을 우리는 ‘반공 성전’ 따위로 미화하고 있었다. 당시에 미국은 영국 등 우방국에 지원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지만 미국의 최우방국으로 간주되었던 영국조차 의장대 6명만을 보냈을 정도로, 세계는 베트남 전쟁을 매우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또한 우리가 반공주의를 들여왔던 미국 내에서도 그러한 광적인 매카시즘은 적어도 특수한 현상으로 취급되었다. 반공주의를 반대하며 비판하는 세력은 늘 항시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에 대한 탄압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진보매체인 〈뉴 리퍼블릭〉 등에서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고 반공주의를 성토하는 등의 행위는 용인되었던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일절 반대의 목소리를 허용하지 않았다. 베트남 전쟁 당시 박정희 정부는 기자단을 베트남으로 초청하여 접대하곤 했는데, 그 말인 즉, ‘베트남 전쟁을 우호적으로 써달라’라는 요청의 표시였다. 게다가 국내에서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으면 곧바로 반공법을 들씌워 체포하곤 했다. 당시 국내에서 유일하게 베트남 전쟁을 비판적으로 바라본 신문은 〈조선일보〉가 유일했을 정도로, 국내 신문들은 철저히 권력에 아첨하고 있었다.

그 당시 횡행한 반공주의의 역사는 지금까지도 연장된다. 여전히, 몇몇 매체에서는 좌익=빨갱이=종북세력이라는 위험한 공식을 대입하고 있다. 심지어 한미FTA에 대한 반대론자들을 용공분자로 몰아가는 행태도 서슴지 않고 있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외치는 사람들 대부분, 아니 어쩌면 전부가 자신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의 수호자’를 자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권력에 의해 강제된, 그리고 주입된 매카시즘이 현재까지도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지만 그 세력은 점차 약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반공정책과 그것을 이용한 공포분위기 조성 및 반대세력 탄압 등의 행위는 기득권을 유지하는 아주 중요한 수단으로서 자리매김해왔다. 이제는 시민들의 의식이 성숙해감에 따라 반공주의의 허구성을 깨닫는 사람이 늘어가고 있다.

그런데 갈수록, 각종 매체에서는 색깔론을 예전보다 더욱 많이 터트리는 것 같다. 이제는 ‘안보관’이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한 채 ‘사상검증’을 하는 일도 심심찮게 보인다.

이번에 한국현대사학회 등 뉴라이트가 제안한 역사교과서 개정안은, 특히 그 안에 포함된 반공정책의 정당화에 관한 내용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몸부림으로 보이는 것은 착각에 불과한 것일까? 반공정책을 ‘올바른’ 것으로 알고 자란 후배들이 사회에 진출할 경우엔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물론 그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교과서 내용을 곧이곧대로 믿는 경우는 생기지 않겠지만, 반공정책을 올바른 것으로, 합리적인 것으로,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나아가 당연했던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나올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는 없다. 반공주의라는 논리 자체가 매우 배타적이고 비합리적이며 폭력적인 논리임이 명백한데 ‘소통’을 중시하고 ‘다원화’를 중시하는 현대사회에 반공정책의 정당화를 역설한다면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 아닐까?

교육은 백년대계다. 백번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러한 ‘숭고한’ 교육의 가치를 기득권 유지를 위해 ‘정치도구’로 전락시키는 짓은 이제 그만두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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