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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저항의 축제

세계적 저항의 축제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제4차 세계사회포럼이 운동을 고무하고 있다고 말한다

뭄바이에서 런던으로 돌아오는 것은 컬러 TV를 보다가 흑백 TV를 보는 것 같았다. 제4차 세계사회포럼에서 표현된 인도 운동들의 다양성과 에너지―그리고 인도 시위대의 소리와 빛깔―는 피억압자들의 축제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것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었다.

뭄바이 세계사회포럼을 그렇게 성공적으로 만든 것은 인도 운동들의 풍부함만은 아니었다. 다른 아시아 지역에서도 사람들이 대거 참가했다. 티벳 승려들, 남한 사회주의자들, 네팔의 달릿(불가촉 천민)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행진하며 세계사회포럼 현장의 먼지투성이 길을 누비고 다녔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클린턴의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이었으며 세계은행 수석경제학자 출신의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뭄바이에 와서 좌파 지식인들 및 사회주의자 활동가들과 함께 연단에 서서 연설했다. 전 미국 고위 관리가 논쟁하러 왔다는 것은 반자본주의 운동의 힘에 대한 진정한 찬사다.

뭄바이 포럼은 반자본주의 운동의 발전에 어떤 조명을 했는가? 사회운동과 정당의 관계를 둘러싼 오랜 논쟁이 있다. 정당은 사회포럼 참가가 금지돼 있다. 그러나 인도에는 세계 최대의 공산주의 운동이 있다. 유사(類似) 마오주의 인도공산당(마르크스주의파)와 인도공산당(옛 소련 시절 친소련파였던) 등 대규모 의회주의 정당이 둘이나 있다. 게다가 인도 전국 각지에서 흔히 대규모 전투적 운동들을 주도하는 다양한 마르크스-레닌주의(M-L) 조직들이 존재한다.

이 대규모 공산당들의 지원이 없었다면 세계사회포럼은 인도에서 열릴 수 없었을 것이다. 공산당원들은 (정당 소속이 아닌 활동가들이나 지식인들과 함께) 인도조직위원회에 참여해 신중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구실을 했다.

이것은 역사상 다른 대중 조직을 좌지우지해 온 정당들이 반자본주의 운동을 향해 중요한 발걸음을 뗐음을 의미한다.

논란이 많았던 쟁점 하나는 비정부기구들(NGOs)의 세계사회포럼 참가 문제였다. 인도 좌파는 서구의 비정부기구들이 핵심 활동가들을 보수 좋은 관료적 업무들로 빼돌리고, 자신들이 지원하는 운동들을 비교적 협소한 쟁점들에 국한시키고 있다고 예리하게 비판했다.

이런 비판은―그리고 세계사회포럼이 무장투쟁 조직들을 배제한 것(인도의 일부 M-L 조직들은 일부 농촌 지역에서 아직도 게릴라 투쟁을 하고 있다)도―세계사회포럼과 경쟁하는 또 다른 포럼(뭄바이 저항 2004)의 동시 개최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됐다.

세계사회포럼에 12만 명이 몰린 데 비해 2∼3천 명만을 끌어들인 ‘뭄바이 저항 2004’는 실패작이었다. 이것은 혁명적 순수성 자체를 위한 혁명적 순수성을 고취하는 것은 생동하는 운동으로부터 스스로 고립되는 것일 뿐임을 입증한다.

이번 포럼의 가장 인상적인 점은 인도 사회에서 가장 차별받는 집단들― 달릿(불가촉천민)과 하층 카스트―이 대거 참가한 것이다. 인도 좌파가 이런 운동들과 거의 연계가 없는 듯한 것은 인도 좌파의 실패를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나 카스트 정치는 결코 단순하지 않고, 이 운동들을 낭만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잘못이다. 일부 달릿-하층 카스트 연합체들은 서구 비정부기구들이 재정 지원하면서 통제하고 있다. 운동 지도자의 이름이나 심지어 그 사진을 눈에 띄게 부각시킨 배너들을 흔히 보면서, 피억압자들을 조직하는 것이 욕심 많고 야심 많은 중간계급 정치인들의 출세 수단이 될 수도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 동안 달릿과 하층 카스트들의 운동들은 부패하고 파편화한 인도 정치체제에 흔히 통합되곤 했다.

세계사회포럼이 성공한 덕분에 인도 좌파에게는 막대한 기회가 주어졌다. 이런 성공이 가능했던 것은 좌파 정당들과 비정부기구들이 건설적으로 협력한 덕분인데, 또한 이 협력 덕분에 대중적 인도 반자본주의 운동을 위한 토대도 마련될 수 있었다.

이로써 BJP 힌두교 배타주의 정부의 종단주의적·신자유주의적 정책들에 도전할 수 있다.

그러나 뭄바이의 효과는 인도를 훨씬 벗어나 발휘될 것이다. 이전 세계사회포럼이나 유럽사회포럼에서처럼 반전활동가 회의와 사회운동가 회의가 열려 행동을 호소했다. 이 회의들은 논쟁적이었다.

브라질에서 온 치코 휘태커와 프랑스 금융거래과세 시민연합(ATTAC)의 베르나르 카쌍과 같은 반자본주의 운동 우파는 사회포럼들이 토론과 교육의 장(場)으로 제한돼야 하고, 따라서 사회운동들과 거리를 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견해는 이미 역사가 반박해 왔다. 2002년 11월 피렌체에서 열린 제1차 유럽사회포럼에서 사회운동회의는 2003년 2월 15일을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항의 시위의 날로 만들자고 호소했다. 이듬해 1월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반전 회의와 활동가 회의는 그 호소를 세계적 호소로 발전시켰다. 우리는 그 결과를 안다. 그것은 바로 사상 최대의 국제 시위였다. 그러자 〈뉴욕 타임스〉조차 “제2의 수퍼파워”가 등장했다고 인정했다.

토론과 교육은 중요하다. 하지만 대중 동원에 조언과 정보를 제공하고 또 대중 동원으로부터 배울 때만 중요하다.

뭄바이에서도 반전 회의와 활동가 회의는 [대중] 동원에 유용한 도구임이 입증됐다. 특히 남반구초점, 국제 농민 조직인 비아 캄페시나, 영국 전쟁저지연합 덕분에 반전 회의와 활동가 회의는 3월 20일 이라크 점령 반대 행동을 호소할 수 있었다.

나는 뭄베이 세계사회포럼이 엄청난 성공이었음을 다시 강조하고 싶다. 그것은 자신이 이룩한 성과를 이용해야 한다는 커다란 과제를 다른 포럼들에 던졌고, 그래서 우리가 목표로 삼아야 하는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