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다함께 회원 이재권 씨가 보내 온 고(故) 조성민 동지의 추모사다.


최근 집안 사정으로 고향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어제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마음이 더더욱 무겁습니다. 언제나 따뜻하고 유쾌했던, 무엇보다 혁명적 열정과 박식한 이론으로 많은 영감을 줬던 조성민 동지와의 길지 않았던 인연을 회고하며 조사를 남깁니다.

제가 사회주의자가 되기 한참 전인 2003년 3월, 저는 사회과학 써클에서 함께 활동하던 선배 한 명을 불의의 사고로 잃었습니다. 당시의 충격과 슬픔은 여전히 제 마음 속 한 켠에 자리잡고 있고, 매년 기일이 되면 따뜻했던 선배의 얼굴과 그와의 추억을 되새기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 학생 운동에 회의를 느끼고 군입대를 앞두었던 저는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온갖 비관과 냉소, 낙담에 빠지게 됐습니다. 고인의 못 다 이룬 꿈과 그로부터 배운 인생의 슬기에 대해선 차마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허무와 실의에만 빠져 지냈습니다. 영원할 것 같던 그 슬픔도 잠시. 이내 저와 주변 사람들은 평정을 되찾았지만, 아픈 기억을 빨리 지우려는 본능 때문인지 오히려 그 선배가 미처 남기지 못한 마음속의 많은 메세지마저도 기억에서 지워버렸습니다. 참으로 후회스럽습니다.

이 때문인지 어제 갑작스레 조성민 동지를 잃고 나서는 생각을 달리하게 됐습니다. 비록 동지와 제가 본격적으로 얼굴을 맞대고 동부지구 협력간사로 활동한지 채 몇 개월이 되지 않지만, 그가 마음속으로 우리들에게 남기고 싶었을 메세지를 떠올려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그가 학생 운동 입문 후 20년이 넘게 지켜왔던 “사회의 근본적 변혁과 모든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신념”일 것입니다. 전 조성민 동지의 실제 나이를 알지 못했습니다. 이건 그가 나이 어린 활동가들과 대화할 때 권위주의적이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어제 동지의 실제 나이를 듣고 난 후, 그리고 미처 몰랐던 그의 운동 이력까지 접하고 난 후, 그동안 자본주의 체제가 가하는 많은 압력에 얼마나 많이 시달렸을지, 그 나이 대 활동가들의 변절과 타협을 지켜보면서 얼마나 많이 흔들렸을지 잘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건 그는 여전히 사회주의자로서 변혁 활동에 인생의 대부분을 쏟는 활동가였다는 사실이고, 그의 경험을 후배 활동가들에게 “한 때는 좋았지”라며 푸념을 늘어놓거나 하지 않고 언제나 서로 배우는 자세로 지도하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그의 메세지를 머릿속에 되뇌여도 현실이 믿기지 않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 공허함과 슬픔은 꽤나 오래 우리들 마음 속에서 공명을 일으킬 것입니다. 살아남은 자들이 정신을 차리고, 그가 못 다 이룬 꿈을 위해서라도 빨리 일어설 수 밖에 없겠습니다.

외대 동지들과의 인연이 깊지 않아 항상 아쉬워하던 조 동지의 모습, 그럼에도 항상 격려와 지도를 아끼지 않았던 조 동지의 모습, 최근 외대 회원들에게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조 동지의 모습,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조 동지가 해오던 일이 워낙 많아 당장 남아 있는 우리들이 얼마나 대신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 없는 책임감과 열정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가시는 길, 무엇을 해야 제 맘이 편해질지 모르겠습니다. 나중에 친해지면 꼭 형동생 하며 지내고 싶었는데, 너무 아쉽습니다. 언제나 동지가 즐겨했던 소주잔 기울일 때 당신을 생각하겠습니다.

성민이형! 부디 편안한 곳에 가세요.

열심히 투쟁하겠습니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형과 최근에 만나지도 못하고, 특히 형의 마지막 투쟁 현장에 함께 하지 못해 너무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