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중순 민주통합당 지도부 경선에서 한명숙과 문성근이 각각 1, 2위를 한 것을 계기로 친노는 명실공히 기성 정치의 중심부로 재입성했다. 최근 한 여론조사(리서치뷰)에서 문재인은 안철수를 제쳤다. 

이명박 당선에 대한 열패감으로 안희정이 자신을 포함한 친노 세력을 폐족(廢族.조상이 큰 죄를 지어 벼슬을 할 수 없게 된 자손)으로 묘사한 지 5년 만이다.

친노 부활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2006년 경기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를 만들려고 군대를 투입해 민간인을 진압하도록 지시한 한명숙은 반성도 사과도 없다.

가장 기저에 있는 요소는 현 정부에 대한 대중들의 사무치는 분노다. 현재 민주통합당이 반사이익의 수혜자가 됐고, 주된 혜택을 친노가 누리고 있다. 

사실 민주당 집권기의 환멸감이 뿌리 깊어서 민주당의 반사이익 누리기는 그 동안 충분치 못했다.

이 때문에 지난해 말 민주당은 옷을 갈아입고 당명을 민주통합당으로 바꿨다. 

특히 박원순의 서울시장 당선 이후 NGO 지도자들이 민주당으로 들어가면서 진보적 대중 사이에서 민주당을 고쳐 쓸 수 있겠다는 기대가 커졌다.

민주당 바깥에서 세를 확장할 수 있었던 문재인, 문성근 등 친노 세력들은 구태의연한 기존  민주당 지도부를 불신하는 대중들의 불만을 흡수하며 민주당의 새 옷이 되기를 자처했다. 

노무현의 후계자들은 지난 몇 년 동안 정치적 부활을 준비했다. 그 계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이었다. 이명박 정부 아래서 고통 받은 대중들은 마치 ‘순교자’처럼 된 노무현에 동질감을 느끼며 감정이입을 했다.

이후 노풍이 불었고, 노무현의 왼팔과 오른팔로 불린 안희정과 이광재가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각각 충남과 강원에서 도지사로 당선했다.

‘순교자’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이 결렬되면서 민주당 왼쪽에서 대안이 마련되지 못한 것도 친노에게 유리한 조건을 조성했다.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참여당을 ‘진보’로 포장해 주며 통합을 추진한 것도 친노의 몸값을 높여 줬다. 

그러나 부활한 친노의 앞길이 계속 탄탄할지는 속단할 수 없다.

친노 세력이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와 그들의 주장을 검토하면, 여전히 그들이 노무현 정부 때의 실패를 되풀이할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문재인은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에서 자신이 정무수석일 때 노동자 파업에 경찰력을 투입해서 강제 해산 시킨 일을 정당화하며 노동계의 ‘과욕’을 탓한다. 또 ‘전교조 때문에 교육 개혁을 못했다’는 식으로 말한다. 박연차 게이트, 노건평 스캔들 같은 비리 혐의 사건에 대해서는 완전히 침묵한다.

또, 신자유주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문재인은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된 한미FTA에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 논리가 과장돼 있다”며 한미FTA 반대 운동을 평가절하 하기도 했다.

한명숙은 참여정부 총리 시절 평택 미군기지 확장 이전 반대 운동에 군부대를 투입해 강제 진압한 사실을 사과한 적이 없다.

투자자국가소송제(ISD)를 포함해 한미FTA를 지지한 충남도지사 안희정은 4대강 사업을 두고도 “보 설치와 대규모 준설을 빼면 수용할 것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유성기업 투쟁 때도 “파업도 노동자의 권리이지만 직장폐쇄도 사업주의 권리”라며 사측의 노조 탄압을 방관했다.

한때 노무현의 ‘경제 가정교사’로 불렸던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는 이런 참여정부 인사들에게 느낀 염증을 토로했다. “5·31 지방선거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처음 나온 얘기라는 게 ‘부동산세’ 완화였다. … [그들은] ‘상류사회’에서 놀고 거기서 듣는 얘기로 판단한다.”

친노가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 ─ 기업, 보수 정당, 국가 관료 ─ 가 이들의 정치와 정책에 영향을 미친다. 

상류사회

라미드 그룹(옛 썬앤문 그룹) 회장 문병욱에서 이 관계를 얼핏 볼 수 있다. 노무현의 ‘후원자’로 불린 문병욱이 최근 한나라당 박희태 캠프에 돈 봉투를 전달한 혐의로 수사 받는 걸 보면 이 삼자가 대변하는 사회 세력의 끈끈한 연결망을 알 수 있다. 

2005년 노무현이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하면서 “두 당이 실제로는 정책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고 한 배경에는 이런 물질적 기초가 있다. 

친노가 삼성과 맺은 끈은 더 단단하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작성한 《국정과제와 국가 운영에 관한 어젠다》는 노무현 정부 출범 직전에 제출되어 참여정부 정책의 핵심 과제 형성에 기여했다. 참여정부 시절 “삼성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국정이 굴러간다”는 얘기가 나왔을 정도다. 

이처럼 친노가 주도하는 민주통합당도 한나라당과 마찬가지로 기업의 탄탄한 후원에 의존해 운영되는 정당이라는 점에서 그 핵심 기반은 같다.

그래서 친노 주도의 민주통합당도 입으로는 진보 개혁의 제스처를 취하지만 행동에서는 돈 봉투 전당대회 합법화, 석패율제 도입 등에서 한나라당과 야합하는 것이다. 문재인과 문성근도 석패율제에 반대하는 척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건부 찬성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과거 민주당도 이런 식으로 당선 전에는 대중의 기대를 먹고 살다가 당선 후에는 대중의 체념을 먹고 사는 일을 반복했다. 

1월 29일 민주통합당이 총선을 겨냥해 발표한 재벌세 신설도 마찬가지다. 민주통합당의 재벌세는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의 비판처럼 4대 핵심 재벌에게는 전혀 부담되지 않는 수준이다. 

그마저 재계와 기획재정부가 반대하고 나서자 이틀 만에 재벌세 용어를 폐기하겠다고 물러섰다. 

국가 관료들과 기업들의 압력이 다소 약한 야당일 때도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것을 보면 그들이 국회 다수석을 차지하거나 집권할 때 더 분명히 한계를 드러내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