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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와 금융의 관계

사람들은 흔히 자본주의 자체보다는 통제되지 않은 금융과 투기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가 안고 있는 문제는 훨씬 더 심각하다고 영국의 사회주의자 데이브 세웰이 주장한다. 

1980년대에 미국·영국 정부 등은 금융 시장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그 후 주식시장 투기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이른바 “실물경제”는 복잡한 주식, 채권, 파생 상품 시장에 압도돼 갔다.

이러한 시장들은 2007년에 붕괴하기 시작했고, 지금의 경제 위기를 촉발했다.

오늘날 은행이 어떻게 그렇게 강력해졌는지, 그리고 금융 시장이 나머지 경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진다.

금융이 자본주의를 ‘접수하기’ 이전 시절을 돌이켜 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러한 일이 언제 벌어졌는지에 관해서는 일치된 의견이 없는 듯하다.

무엇이 체제를 바꿨는가? 1980년대의 주식시장 규제 완화 때문이었는가? 1971년 브레턴우즈 협정이 와해된 탓인가? 아니면 1931년에 ‘금본위제’가 끝장났기 때문인가?

금융 부문의 혼돈은 사실 이것들보다 훨씬 오랜 역사가 있다. 1873년 오스트리아 빈 증시의 공황은 20년간 장기 불황을 촉발했다.

금융 호황과 붕괴 과정을 묘사하려고 “거품”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것은 1700년대 초의 광란적 투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자본주의의 성장은 항상 왕성한 금융 부문의 창출과 긴밀히 연관됐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금융에 대한 의존성 증대야말로 자본주의 체제의 불가피한 특징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금융이 취하는 이윤은 다른 곳에서 생산된 부에서 나온다. 금융은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없어서는 안 될 것이지만 동시에 그것에 기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은 체제가 금융에 의존해 성장할 때 문제를 낳는다.

마르크스는 개별 자본가들의 이윤은 늘 수 있지만, 투자 대비 총 이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낮아지는 경향(이윤율 저하 경향)이 있음을 보여 줬다.

오늘날 많은 대기업들은 이윤을 축적해 어마어마한 자금을 보유하고 있지만, 자본주의 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탓에 그 자금을 수익성 있는 곳에 투자하지 못하고 있다.

이윤율을 회복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노동자들을 더 쥐어짜서 더 많은 몫의 부를 자본가들의 이윤으로 돌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위험하다. 노동자들이 반격할 수도 있고, 노동자들이 너무 허약해져서 일을 제대로 못하게 되면 이윤 창출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금융이 바로 이러한 문제를 회피하는 데 도움을 준다. 신용카드, 서브프라임 모기지, 각종 대출 확대가 완충 작용을 한 덕분에 자본가들은 노동자 임금 상승 억제, 공공 주택 매각, 학비 보조금 삭감을 좀더 수월하게 추진할 수 있었다.

기업들은 대출과 금융 활동에 더 직접적으로 의존해서 주요 사업에서 줄어든 수익을 벌충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자동차 제조사인 제너럴모터스(GM)는 35억 달러의 금융 자산을 굴리는 전문적 금융회사인 GM파이낸셜을 가지고 있다.

2007년에 이르자 가치가 의문시되는 곳에 투자된 ‘독성’ 채무의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커졌다. 이것이 ‘신용 경색’과 이후의 세계적 위기를 촉발했다.

그러나 이러한 부채는 자본주의 전체의 수익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쌓인 것이었다.

신자유주의적 금융화가 위기를 촉발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금융 부문의 성장은 언제나 자본주의를 위기로 몰아가는 근본적인 문제들의 결과였지 원인이 아니었다.

개혁주의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은행가들을 제거하거나 그들의 “책임을 묻는 것”으로는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 전체를 뿌리부터 도려내야 한다.

개혁주의 정치인들은 금융은 생산과 별개이므로 자본주의를 전복하지 않고도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대안적 경제 모델들이 인기를 끌 수도 있다. 그러나 금융 시스템이 어떻게 자본주의에서 자라났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러한 모델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유토피아를 실현할 논리 정연한 전략을 제시할 수 없다.

또, ‘국제 금융 자본주의’와 좀더 생산적인 ‘국민’ 자본주의가 서로 충돌한다는 생각은 인종차별주의를 부추기는 데 이용되기도 했다. 그 최악의 사례가 유럽의 반유대주의였다.

자본주의의 온갖 문제들은 생산 영역, 즉 작업장 — 우리가 부를 창출하고 사장이 그 부를 우리한테서 가져가는 곳 — 에서 유래한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체제에 근본적으로 도전해서 부를 되찾을 잠재력이 있다. 1918∼19년 독일 혁명 때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는 이렇게 선언했다. “자본주의의 쇠사슬은 그것이 벼려지는 곳에서 끊겨야 한다.”

출처: 영국의 혁명적 좌파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 228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