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번 사건을 빌미로 안 그래도 이명박을 비판한다는 이유로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를 눈엣가시로 여기던 보수 언론과 우파들이 나꼼수를 공격하는 것에 반대한다. 정권 옹호 방송으로 전락해 대중의 지탄을 받는 MBC가 한 여성 기자의 비키니 사진을 문제 삼아 경위서를 요구한 것에도 반대한다. 그들의 목적은 이명박 비판에 흠집을 내는 것일 뿐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나꼼수를 공격할 자격이 없다. 조중동 웹사이트에 한 번만 가 보라. 여성의 벗은 사진과 성적 대상화하는 광고와 기사들이 널려 있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성적 보수주의를 설파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성 상품화의 첨병 노릇을 한다. 무엇보다 그들은 자본주의 체제의 필요를 위해 여성 억압을 합리화하는 장본인이다. 여성의 낙태권, 동일임금을 받을 권리, 보육의 사회적 책임 강화,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에 반대하는 집단이다.

그럼에도 나꼼수를 방어할 순 없다. 여성 청취자들을 정봉주 씨의 성욕을 돋우는 대상쯤으로 치부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나꼼수에 대한 비판이 불거진 후에도 김어준 씨는 비키니 응원 여성을 두고 ‘생물학적 완성도에 감탄했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그가 여성을 몸매로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줬다.

나꼼수에 대한 비판을 성적 엄숙주의 정도로 치부하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것과 성 개방적 태도는 완전히 다르다. 전자는 명백한 여성차별적 태도다.

성적 대상화

나꼼수가 비키니 여성 뒤에 숨으려 하는 것도 비겁하다. 나꼼수 처지에선 ‘우리를 응원한 그 여성을 욕하지 말라’고 할 수는 있다. 그러나 비키니 여성을 방어하는 것과 무관하게 자신들이 여성차별적 발언을 한 것은 사과해야 한다.

나꼼수는 “비키니 발언이 성희롱이 되려면 권력 관계[가] … 있어야 하는데, 청취자와 우리 사이에는 그런 게 없다”고 말했다. 물론, 나꼼수가 여성 억압에서 이익을 얻고 여성 억압을 낳는 우리 사회의 권력자는 아니다. 그러나 노동계급이나 진보진영 내 사람들도 여성차별적 편견에 찬 언행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고, 이런 분위기에 도전해야만 단결이 가능하다. 같은 진보진영 안에서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면 어떻게 동지 의식이 생길 수 있겠는가.

한편, 비키니 사진을 올린 여성들은 부당하게 수감 생활을 하는 정봉주 씨를 응원하고 싶은 정당한 마음에서 그런 행동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섹시한 몸매를 드러내는 것이 곧 여성의 자부심인 양 여겨지는 여성차별적 문화를 수용하는 방식으로 한 행동이라는 점에서 효과적이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슬럿워크(‘여성의 야한 옷차림이 성폭력을 유발한다’는 캐나다 경찰관의 발언에 항의해 ‘무슨 옷을 입든 성폭력이 정당화되는 건 아니다’ 하는 뜻으로 벌인 시위) 등과 이번 시위는 다르다. 정봉주 응원 사진들은 섹시한 몸매를 드러내 눈길을 끄는 방식이었다면, 슬럿워크는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것에 항의하는 행동이었다. 

그럼에도 비키니 여성의 응원 자체보다는 그것을 정봉주 씨의 성욕을 돋우는 수단쯤으로 치부하고, 여성의 가슴 크기를 품평한 나꼼수의 태도가 핵심적인 문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