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스무살, 한창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슬슬 뛰어들 준비를 하는 나이. 이 나이가 되어 필자가 처음으로 관심을 가진 것은 노동문제였다. 아직도 새파랗게 어리지만, 필자의 한참 어릴 적 경험과 궁금증을 토대로 노동 문제에 대해 알아보고 취재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앉자마자 뉴스와 함께 트위터, 페이스북을 켜는 필자의 컴퓨터에 뜨는 숫자는 가히 경이롭다. 재능교육 노동자 투쟁 1500일, 고려대 시간강사 농성 1600일, 고려대 청소노동자 파업, 유성기업 파업, MBC노조 총파업, KBS 새조노 총파업, 쌍용차 노조 투쟁 1000일…. 이들은 무엇을 위해 이토록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일까. 무엇을 위해 그토록 추위와 배고픔을 참아가며 서로 어깨를 부딪히고 노래를 부르는 걸까.

이들에 대한 세간의 시선은 매우 싸늘하다. 고려대 시간강사 천막 농성에 대해 고려대생들이 보인 반응은 분노를 넘어 허탈함을 주기까지 한다. “떼쓴다”, “막장으로 간다” 등은 약과다. 시간강사 농성에 반대하는 배경이 입학, 졸업시즌과 겹치기 때문이라는 주장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생존권을 쟁취하기 위해 풍찬노숙하며 투쟁하는 것인데 자신들이 졸업사진이 흉물스럽게 나온다고 반대라니?

노동자들의 요구는 매우 간단하다. ‘먹고 살게 해달라’가 그 핵심이다. 일하고 싶어도 일을 못하고, 일을 열심히 했어도 강제로 내쫓는 기업. 노동자들이 살아가기에는 매우 척박한 환경이다. 그런 곳에서 그들은 먹고 살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오는 건 회사의 냉대와, 사회의 냉소적 시선이다.

부당한 회사의 공격에 항의해서 연대하여 파업을 일으키면 기업은 불법직장폐쇄(유성기업 사태), 공권력 투입(쌍용차 사태), 고소· 고발(MBC노조 투쟁), 책임 회피(홍익대 청소노동자 투쟁 당시) 등으로 일관한다. 대기업일수록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수단은 더욱 더 교묘해진다. 백 번 천 번 양보해서, 그러한 기업의 공격까지는 견뎌낸다 치자. 그들을 향한 사회적 시선은 그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투쟁하면 ‘밥그릇 싸움이다’, ‘돈독이 올랐다’라며 욕하고, 비정규직 철폐 등을 요구하면 근로조건 향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바로 불법 딱지를 붙인다.”【김두식님(@kdoosik) 트위터 인용】

이뿐인가! 다른 노동자들을 위해 연대투쟁하면 그들을 향해서는 ‘남의 집 싸움에 왜 간섭하느냐’, ‘전문시위꾼이다’라고 욕한다. 도무지 이 땅의 노동자들은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한다.

우리는 어째서 노동자들에게 연대해야 하는가. 우리는 어째서 노동자들을 지지해야 하는가?

지금이야 많이 누그러진 편이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은 노동자가 아니다’라고 생각하곤 한다. 노동자라고 하면 ‘더럽고 불결한 공장에서’ ‘산소 대신 매연을 흡입하고’ ‘기름밥 먹으며’ 일하는 것이 ‘노동자’라고 생각하는 구시대적 프레임 때문인 듯 하다. 그러나 ‘노동자’는 다른 게 아니다. 마르크스는 노동자를 ‘생존을 위해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노동력을 상품으로 판매하고 임금을 받는’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으로 정의했다. 생산수단을 보유하지 못한 모두가 노동자인 셈이다. 지금 필자의 글을 읽는 당신 또한 노동자일 수 있다.

다른 게 아니다. 당신이 ‘노동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들을 지지할 이유는 충분하다. A라는 기업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하고, 근로조건을 악화시켰다고 가정했을 때, 당신이 다니는 B기업에서는 그러한 노동조건 공격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가? 기본적으로 ‘경쟁’이라는 구도가 형성된 이상 어느 한 쪽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공격받게 되면 다른 곳에서도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마련이다. 기업은 어떻게 해서든 착취율을 높여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노동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다른 노동자들에게 연대하고 관심을 가져주며 지지하는 것은 ‘노동자로서’ 당연한 것이다. 지지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최소한 같은 ‘노동자로서’ 비난은 접어두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생존권을 위해, 그야말로 ‘먹고 살기 위해’ 투쟁하는 그들을 비난할 자격이 당신들에게 있는가?

탈북자 인권 운운하는 우파의 위선

최근 중국이 탈북자들을 ‘불법 월경자’로 취급하여 북송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여러 보수단체와 차인표 등 연예인,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 등이 가세하여 점점 항의 목소리를 키워가고 있다. 탈북자들 역시 노동자다. 북한이라는 자본 독점적 독재권력 앞에 무수히 착취 당했을 것이다. 필자는(아직 노동자는 아니지만 곧 노동자가 될 사람으로서) 탈북자들의 북송에 대해 반대하는 것을 미리 밝혀둔다.

북송 저지 투쟁까지는 좋다. 그러나 보수 단체에서 들고 나오는 논리 중 해괴한 것이 있다. ‘좌파들은 탈북자 북송에 대해 관심이 없다. 그들이 외치는 인권은 누구를 위한 인권인가?’, 혹은 ‘탈북자 인권에 대해 침묵하는 좌파는 스스로 종북이라 자인하는 꼴’ 등….

필자는 묻고 싶다. 탈북자 인권을 외치는 당신들에게 과연 진정성이 있는가?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한 투쟁 현장에서 늘 비난을 쏟아내던 이들이 바로 당신들이 아니었던가? ‘불법 시위 척결’ 등의 구호를 들고 나와 노동자들을 향해 비수를 들이밀던 것은 당신들이 아니었던가? ‘불법 시위’라고 한다면 무조건 ‘악’으로 취급하던 것이 바로 당신들 아니었던가?

불법 시위는 대개 조작되는 경우가 많다. 사측 임원, 혹은 어용노조 측이 정보를 입수하고 미리 집회 신고를 내어놓고 현장에 나가지 않으면, 해당 현장에서 투쟁하기 위해 나온 노조원들은 ‘불법 시위자’가 된다. 당신들은 이들을 향해 ‘사회혼란을 조장하지 말라’며 맹비난을 퍼붓는다.

트위터의 흔한 ‘애국보수’들을 보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수호하자’, ‘불법행위 척결’,‘북한인권법’ 등을 프로필에 소개한다. 좌우를 떠나서 당신들이 진정한 ‘인권과 자유의 수호자’라고 칭한다면 적어도 생존권을 위해 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을 향해 비난을 퍼붓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생존권 또한 인권의 한 부분이요, 인간의 자유와 직결된 부분 아니던가? 생존권이 보장되지 않은 환경에서 어떻게 자유를 누리는가?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이렇다. ‘북한 인권’을 외치며, ‘탈북자 북송 저지’를 외치며 마치 자신이 ‘자유와 인권의 수호자’라고 칭하지만 정작 노동자들의 투쟁을 폄하하고 비난하며 ‘불법’으로 일축하여 척결하자고 외치는 당신들은 위선자에 불과하다고. 당신들이 ‘진정성’을 지녔다면 최소한 그들에 대한 비난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자신을 한 번 돌아보길 바란다. ‘북한 인권’을 외치며 정작 가까운 이웃 노동자들의 힘겨운 투쟁에 침을 뱉지는 않았는지? 당장 자신의 앞길이 막힐까봐, 또는 사회적 시선이 두려워 동료들의 지지 요청을 눈감지는 않았는지?

탈북자들의 북송을 저지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들은 당장 생명이 경각에 달려있는 문제이니까. 그러나 진정으로 ‘인권’을 수호하고 ‘자유’를 지키고 싶다면, 당신 주변을 돌아보길 바란다. 어디선가 자본의 횡포에 상처 입은 노동자들이 당신의 ‘힘내세요!’ 한마디를 그리워하고 있을테니까!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은 탈북자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도 있음을 명심하자. 그리고 그들을 지지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비난하지는 말자. 그럴 수 있을 때에, 당신은 진정한 ‘작은 인권 수호천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