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부당해고에 맞서 60일 넘게 싸우고 있는 한일병원의 한 중년 여성 노동자가 2월 29일 삭발을 앞두고 쓴 글이다.


잔업을 마치자마자 하루 동안 혼자 있었을 딸을 생각해 걸음을 재촉하며 집으로 향합니다.

하루 종일 물을 만진 제 손은 퉁퉁 부어 있습니다. 갈라진 손끝에는 반창고를 칭칭 감아놓아 감각이 없습니다. 병원 지하 식당에서 일하니 한 계단만 올라가면 치료를 받을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채찍을 들고 무섭게 쏘아보는 상사의 눈치를 보며 감히 ‘치료받고 오겠다’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하루 종일 문을 굳게 잠그고 혼자 있는 영희는 엄마를 기다리면서 그림을 그립니다. 아빠와 엄마의 손을 잡고 공원에서 즐겁게 놀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러다 아이는 잠이 듭니다.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들어가지만 잠에서 깬 영희는 ‘왜 이렇게 늦게 왔냐’며 와락 안깁니다. 하지만 영희를 따뜻하게 안아줄 새도 없이 굶고 있었을 아이를 위해 저녁을 준비합니다. 영희는 그림을 봐 달라며 매달립니다. 하지만 몸도 피곤하고 집안일도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 급한 마음에 영희에게 화를 냅니다.

영희는 엄마가 밉다며 울기 시작합니다. 영희의 눈물을 보고서야 엄마가 잘못했다고, 영희의 눈물을 닦으며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시간이 흘러 영희가 대학을 졸업합니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반듯하게 성장한 영희가 대견스럽고 기특합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지난 세월이 스치듯 떠오릅니다.

하지만 제게는 과거의 고통보다 딸아이의 졸업식에 함께하지 못하는 지금의 상황이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졸업식 전날, 영희와 얼굴을 마주보고 앉았습니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습니다. 영희가 저의 붓고 갈라진 손을 곱게 감싸고 머리를 숙여 뜨거운 눈물을 한없이 쏟아 냅니다. 그렇게 우리 모녀는 서로를 안고 울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엄마는 더는 혼자가 아니다. 엄마도 대한민국의 당당한 노동자다. 엄마는 이제부터 밟아도 꿈틀대지 않는 무지렁이가 아니라, 나의 소중한 권리와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세상의 주인으로 살아가겠다.”

부은 손

저는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영희가 먹을 밥을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걸어서 5시까지 병원으로 출근합니다. 세상이 하도 어수선한 요즘, 영희를 혼자를 두고 나오는 제 마음은 무겁습니다. 하지만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과 직원들의 식사를 걱정하며 수십 년 동안 이른 출근길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청춘을 병원에서 보낸 저는 열심히 일하면 일한 만큼 대접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구에게 기대지 않아도 부족하거나 넘침 없이 인생의 노년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 한국 경제에 큰 위기가 찾아왔다고 세상이 떠들썩합니다. 지하 식당에서 일하는 저로서는 그게 무엇인지, 내 자신과 상관이 있는지 없는지 고민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뒤 병원에도 위기의 바람은 불어 왔습니다. 병원은 경제가 위기에 빠져 있는 만큼 병원 운영 정상화를 위해 모든 직원이 고통분담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1999년 12월 1일, 직접 운영하던 식당과 관리하던 직원들을 외주 용역업체에 맡겨 버렸습니다. 병원 책임자는 ‘용역업체에 소속되더라도 종전대로 일을 한다. 어머님들은 예전처럼 계속 일을 하는 것이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용역업체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바뀐 사람도 없고 병원의 작업 지시를 받으니 별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2007년 (주)아워홈이라는 국내 1위 푸드 업체가 들어오기 전까지 두 차례 업체가 바뀌었습니다.

업체가 바뀔 때마다 계약서를 써야 했습니다. 급여도 예전과 달리 최저 인건비에 달하는 쥐꼬리만 했습니다. 난리 통에 아무런 고민 없이 덜썩 병원 말만 믿고 용역업체로 변경한 스스로를 탓해 보지만, 이미 늦었다고 생각해 버렸습니다.

그러면서 ‘누가 꼬부랑 할머니처럼 보이는 나에게 일을 시키겠냐’며 조금이라도 일을 더하자고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업체가 들어 온 뒤 상황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매주 수십 시간의 잔업이 사람을 질리게 했습니다. 새로운 업체는 잔업수당도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작업에 필요한 물건도 제공하지 않고 직접 구입해서 쓰게 했습니다. 일을 시작한 첫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밥을 서서 먹어야 하는 상황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고된 노동으로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유난히 멀게 느껴집니다.

밤에 잠을 자려 누워도 잠이 오지 않습니다. 밥을 먹어도 모래알을 씹는 느낌입니다. 얼마 전부터 속이 더부룩하고 머리가 아파서 병원을 찾았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신경성 소화 장애와 두통이니, 약을 복용하는 것보다는 고민이나 문제를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풀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병을 치료하려 병원을 찾았지만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머리가 더 아파 옵니다.

어느날, 열심히 일만 하던 저와 동료들은 같은 고민으로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일만 실컷 부려먹고 우리들의 피와 땀으로 살찌운 용역업체가 병원에서 나간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입니다. 저를 비롯해 동료들은 병원 측과 용역업체에 밀린 잔업수당 지급과 근무 조건 개선을 요구했지만, 그 누구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피가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 속에서 모임을 진행하고 대책을 연구해 봤지만, 뾰족한 수를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뉴스에서 파업하는 여성 노동자들을 봤습니다. 하루아침에 거리에 쫓겨난 여성 가장들이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환갑을 앞둔 눈물의 삭발’ 29일 오후 서울 강북 쌍문동 한일병원 앞에서 열린 한일병원 식당노동자 부당해고 철회와 고용승계쟁취를 위한 투쟁선포식에 참석한 한일병원 식당노동자가 삭발투쟁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생존권

저는 망설였습니다. 노동조합이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두려웠습니다. 지금까지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료들은 새로운 길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앉아서 당하느니 당당하게 요구하고 권리를 되찾겠다며 2011년 7월에 한일병원 분회를 결성했습니다.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무슨 일 있냐’는 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는 더는 혼자가 아니다. 엄마도 대한민국의 당당한 노동자다. 엄마는 이제부터 밟아도 꿈틀대지 않는 무지렁이가 아니라, 나의 소중한 권리와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세상의 주인으로 살아가겠다.”

저는 힘줘 말했습니다. 어제는 고통과 슬픔의 눈물을 흘리던 제가 오늘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 말입니다.

나이든 여성이라고 무시하고 얕잡아 봤던 병원과 용역업체는 노동조합을 결성한 우리의 모습에 굉장히 당황해 했습니다. 우리는 노동조합 결성에 멈추지 않고, 노동청과 노무사를 찾아다녔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한 푼도 받지 못한 밀린 잔업수당도 받아냈습니다. 시키는 일만 열심히 할 줄 알았던 저와 동료들은 처음으로 서로를 부둥켜 안고 만세의 함성을 질렀습니다. 그날 밤 기쁨에 겨워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쁨도 잠시, 용역업체가 나가고 새로운 업체가 들어오던 날 저와 동료들은 더는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2012년 1월 1일에 우리는 모두 해고자가 됐습니다. 해고 소식을 전혀 모른 채 마지막 날까지 잔업을 했던 저와 동료들은 다음날 굳게 닫혀 있는 지하 식당 앞에서 망연자실해졌습니다.

수십 년간 병원에 청춘을 바쳤는데, 병원 사측은 입을 닫고 답변 하나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도리어 개인 사물함까지 모두 뒤져 물건들을 바닥에 내팽개쳐 버렸습니다. 그렇게 저와 동료들은 사용 기한이 지난 폐기물 취급을 당했습니다.

찬바람이 불던 새해 첫날부터 60여 일이 다 되도록, 저와 동료들의 활동은 멈춤 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환자들도 직원들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도봉 강북의 유일한 종합병원인 한일병원 사측의 만행에 수많은 주민들이 서명과 지지 방문으로 힘을 실어 주고 있습니다.

2월 29일엔 해고된 지 60일이 됐습니다. 서로를 다독이며 흔들림 없이 싸워나가고 있는 중년의 여성 노동자들이 결심을 높이고자 소중한 머리카락을 자르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삭발이 맞냐? 그건 아니지 않냐?’ 묻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왜 환갑을 눈 앞에 둔 제가 삭발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가 중요합니다.

정치인, 시민사회단체, 노동조합, 개인 등 우리의 투쟁에 연대하고 눈물 흘려 줄 수 있는 분들이라면 기쁘게 모시겠습니다. 부당해고 철회, 고용승계 보장을 요구하는 우리의 투쟁에 함께해 주십시오.

한일병원 정문 앞에서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