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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독감 - 인류를 위협하는 자본주의의 그림자

조류독감이 여러 아시아 나라들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의 바이러스 학자인 클라우스 스퇴르는 “역사적으로 이렇게 광범한 지역에 고병원성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한꺼번에 발생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급기야 지난 1월 베트남에서 조류독감이 사람에게 감염된 사실이 보고됐다. 지금까지 베트남에서만 이 병으로 적어도 6명이 죽었고 사람에서 사람으로 감염됐을 가능성도 보고됐다.

중국과 인도네시아 정부는 조류독감 발생 사실을 몇 달 동안이나 숨겨 왔고 덕분에 사태는 더한층 악화됐다.

타이 국회의원 니룬 피타콰차라는 타이에서 사람이 조류독감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 확인됐지만 “모든 연구원과 전문가들은 정치적 압력 때문에 입다물고 있어야 했다”고 말했다. 타이는 세계 4위의 닭고기 수출국이다.

바이러스

1990년대 중반까지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인간에게 감염된 적이 없다.

그러나 오리나 닭을 키우는 농장의 규모가 커지고, 적은 투자로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더 비위생적인 곳에서 사람과 가축이 함께 지내야 했다.

축사소독은 하루 한 번에서 이틀에 한 번으로 줄어들고, 각종 전염병 검사 횟수도 줄어들었다. 병든 닭이나 오리가 있어도 일찍 격리하기보다는 더 오래 지켜보게 됐다.

사람들은 더 오래 축사 안에서 일했고, 닭과 오리의 배설물이 섞인 공기를 들이마셨다. 한 축사에서 다른 축사로 옮길 때 소독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닭과 오리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전염되기 시작했다.

사람의 몸은 처음 보는 병원체에 대해 완전히 무방비 상태였고, 병에 걸린 사람들 중 3분의 1 정도가 곧 죽었다.

1997년 홍콩에서 이런 일이 처음으로 벌어졌고, 이 질병은 2003년 겨울에 광범하게 확산됐다.

전문가들이 예상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인간)독감에 걸린 사람이 조류독감 바이러스에 감염되거나 아니면 그 반대 경우다.

사람들 사이에서 아주 쉽게 전염될 수 있는 인간독감 바이러스와 사람에게 매우 치명적인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한 사람의 몸 안에 동시에 공존하면 이 두 바이러스는 매우 쉽게 서로 능력을 주고받는다.

그러면 전혀 다른 ― 강한 전염성과 독성을 두루 갖춘 ― 바이러스가 탄생한다.

만약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사상 초유의 치명적인 유행성 독감이 퍼질 것이고, 그 희생자 수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

제1차세계대전이 낳은 황폐화 뒤에 찾아온 1918년의 유행성 독감은 전 세계에서 불과 6개월 만에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중세의 흑사병조차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그렇게 빨리 죽이지는 못했다.

그 해 봄 첫번째 대유행 때부터 이 독감은 노인과 병자가 아니라 건강한 젊은이와 임산부의 목숨을 빼앗았다. 북반구의 겨울이 지나고 남반구의 겨울이 찾아왔을 때 두번째 유행이 시작됐고, 군대와 화물선이 이 바이러스를 전 세계에 퍼뜨렸다. 그래서 독감은 열대 지방에서 툰드라 지역에 이르는 지구상의 모든 나라를 덮쳤다. 미국에서만 55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조류독감은 아직까지 사람들 사이에서는 쉽게 전염되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지난 달 베트남에서 한 가족이 모두 조류독감에 걸린 사건은 이런 일이 이미 일어났거나 아니면 조만간 일어날 수도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지난 1997년 홍콩에서 처음으로 조류독감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이 생겼을 때도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염되는 경우가 몇 건 있었고, 2003년 네덜란드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불길하게도, 조류독감이 기승을 부리는 지금 북베트남은 인간독감이 유행하는 시기다.

세계보건기구는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조류독감 바이러스와 인간독감 바이러스가 동시에 감염되는 상황을 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려면 당장 사람들이 인간독감에 걸리지 않도록 이미 만들어져 있는 인간독감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

세계보건기구는 조류독감에 걸린 오리와 닭을 도살하는 사람들에게 인간독감백신을 우선 접종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그리고 제약회사들에게 이 백신을 대량 생산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제약회사 ― 인간보다 이윤이 우선

북반구의 겨울이 지나고 나면 남반구에 겨울이 찾아온다. 이 때 남반구에 찾아올 인간독감을 예방할 수 있는 기회는 이번 2월뿐이다. 그러나 현재 전 세계적으로 생산되는 인간독감 백신의 대부분을 생산하는 회사인 솔베이와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은 〈뉴사이언티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오스트레일리아처럼 미리 계약된 나라들에 먼저 백신을 공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트남 같은 나라를 위해 남겨둔 것은 없다.

우리는 1918년이 아니라 2004년에 살고 있고, 이제 몇 주 또는 몇 달 안에 조류독감을 막을 수 있는 새로운 백신도 만들어 낼 기술을 갖고 있다.

1997년 이래로 조류독감 백신 연구가 이뤄졌고, 이제 두 개의 연구소, 즉 영국 국립생물학표준및통제연구소와 테네시 주 멤피스의 성주드 아동병원이 홍콩 조류독감에 대한 백신의 대량 생산을 준비하고 있다. 베트남에서 발견된 독감에 효과가 있는지 사람에게 실험해 보지는 못했지만, 두 가지 모두 같은 바이러스에 대해 동물들의 독감을 예방할 수 있다.

그러나 조류독감 백신 생산에 필요한 기술에 대한 특허는 메릴랜드 게티스버그의 생명공학 회사인 메디뮨이 쥐고 있다. 그리고 그 기술에 꼭 필요한 몇몇 연관 기술들은 또 다른 몇몇 회사가 쥐고 있다.

특허를 쥐고 있는 이 회사들은 최악의 상황이 올 때까지는 특허권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메디뮨 사는 “만약 범유행성 상황으로 발전한다면” 특허권을 포기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특허를 쥐고 있는 회사들도 그럴지는 알 수 없다.

이 회사들은 충분한 이익이 예상되는 시점까지는 조류독감 백신을 생산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조류독감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이 사용되기도 전 조류독감 바이러스와 인간독감 바이러스가 결합된 유행성독감이 확산되면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간다. 이 백신은 하나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고 우리는 머릿속으로 그려 본 대참사를 실제로 겪게 될 수도 있다.

제1차세계대전 직후에 그랬던 것처럼 빈곤과 비위생적인 환경은 이럴 때 마치 불에 휘발유를 쏟아 붓는 것과 같은 효과를 만든다.

지금 조류독감이 확산되고 있는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는 이런 환경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 7년 동안 IMF에 의해 강요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이 나라들의 빈곤을 증가시켰다. 물 사유화로 사람들은 깨끗한 식수를 충분히 공급받지 못하고 있고, 공적 의료 체계의 붕괴로 각종 질병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각국 정부와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연출을 맡고 있는 이 끔찍한 비극이 무대에 오르기 전에 중단시켜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더 나은 세계를 원하고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을 지키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