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이 글은 지난 1월 중순 인도 뭄바이에서 열린 제4차 세계사회포럼의 한 워크숍인 “21세기의 혁명”이라는 제하의 토론회에서 크리스 하먼이 한 연설을 녹취·번역한 것이다. 크리스 하먼은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주간신문 〈소셜리스트 워커〉의 편집자이다. 같은 연단에서 〈다함께〉 최일붕 동지도 연설했다.


먼저, 혁명이 왜 필요합니까? 우리가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지 살펴보면 답이 나올 것입니다. 포럼 기간 중에 열린 토론회나 책방에 한 번이라도 가 보신 분은 사람들이 지금의 체제 하에서 수많은 방식으로 고통받고 있음을 실감했을 것입니다. 이 세계의 수많은 지역에서 사람들은 비참하게 살고 있습니다. 특히 아프리카 대륙 전체와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지역에서 그렇습니다. 경제 성장은 주로 중국과 아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기업들이 성장하고 있는 곳에서는 오래된 산업부문의 일자리 축소와 대량해고가 감행되고 있으며 빈곤의 증대와 함께 빈부격차가 급격히 커지고 있습니다. 혁명이 필요한 가장 분명한 첫째 이유는 이것입니다.

둘째 이유는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평화적인 개혁을 통해 현존 체제를 바꾸려 했으나 실패한 일입니다. 영국 정부가 그 일례입니다. 1백 년 전에 영국에서는 평화적인 개혁으로 사회를 바꾸기 위한 정당인 노동당이 결성됐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 노동당 정부는 이라크 국민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고, 대학교 수업료를 인상해 노동계급 청년들의 대학 진학을 어렵게 하고 있으며, [신용불량자로 만들어] 노동자들에게 대출을 제한하는 등 모든 분야에서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하락시키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도 18개월 전까지 집권하던 소위 “복수 좌파” 정부가 했던 일도 비슷합니다. 스페인·포르투갈 등 전 세계에서 비슷한 사례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인도의 경우 서부 벵골과 께랄라 주에 좌파 정부들이 집권하고 있는데, 이들은 한때 개혁을 시행했지만 지금은 시장의 힘에 저항할 수 없다며 사유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국회의원들을 교체해도 경제 권력의 주체는 바뀌지 않기 때문입니다. 도장 찍힌 투표용지가 쌓인다고 해서 경찰과 군대가 해체되거나 그 기구들을 장악하고 있는 지배계급이 물러나지는 않습니다. 진정한 변화를 원한다면 단지 국회의원 몇 명을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 권력에 도전해야 하고 국가 전체를 뒤집어엎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꼭대기에 있는 소수 지배계급이 아니라 다수 민중이 통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많은 사람들은 혁명이 불가능하다고 대답합니다. “우리 주위의 상황을 보라. 그 동안 혁명 조직들도 있었고, 혁명이 일어난 적도 있었지만 자본주의는 여전히 살아 있지 않느냐.” 또는 이렇게도 말합니다. “소련·중국·베트남처럼 모종의 혁명이 일어났던 곳의 사례를 보라. 오늘날 이 나라들은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시장의 압력에 굴복하고 있지 않느냐.” 등등.

이 모든 것에 일일이 답변하기에는 시간이 모자라지만 몇 가지는 말해야 합니다. 옛 소련에 관해 말하자면, 1917년에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그 혁명은 외부의 침략으로 교살당했습니다. 전 세계의 군대가 혁명을 분쇄하려고 러시아에 쳐들어왔습니다. 그렇게 러시아 혁명은 살해당했습니다. 그들은 러시아 민중의 생계수단을 파괴했고, 외세의 침략과 내전으로 기아와 질병이 만연했습니다. 내전에 관해 쓴 어느 기자는 이렇게 보도했습니다. “17개 나라의 군대가 [러시아 혁명의] 목을 조르자 그것은 죽어 버렸고 안색이 이상하게 변하면서 혀가 튀어나오는 끔찍한 형상을 하게 됐다. 누구도 [러시아 혁명이] 그 지경이 된 것을 [혁명] 탓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러시아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책임을 혁명에 물을 수는 없습니다. 스탈린주의가 등장한 배경에는 혁명의 완전한 고립과 해체가 있었습니다. 그 뒤에 일어난 일들은 끔찍했습니다.

하지만 1917년의 위대한 투쟁이 예기치 못하게 패배했다는 이유만으로 체제의 참상에 맞선 오늘의 투쟁을 중단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또 이렇게 주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싸움이 없지 않았느냐. 혁명적 투쟁이 근래에 없었다. 정세는 우울해 보인다.” 이는 분명 사실입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라틴아메리카의 경우 칠레·아르헨티나·중앙아메리카에서 투쟁이 패배를 겪었습니다. 특히 중앙아메리카에서는 혁명적 투쟁이 분쇄당했습니다.

유럽의 경우 그만큼 유혈낭자하지는 않았지만 노동자 운동이 약해졌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1980년대에 피아트 노동자들이 대량으로 해고당했습니다.

패배

영국에서는 1984년에 광부 파업이 있었습니다. 18만 명의 광부들이 1년 동안 파업했지만 결국 패배했고 운동은 약화됐습니다.

여기 인도에서는 1983년에 아마도 세계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 지속된 파업이 일어났습니다. 뭄바이 시에서 1백만 명에 가까운 섬유 노동자들이 1년 동안 파업했습니다. 결과는 패배였습니다.

그 후로 사람들은 싸울 기력과 자신감을 잃었습니다. 무려 한 세대 이상의 사람들이, 여러분의 부모 세대와 일부 조부모 세대까지 포괄하는 사람들이 투쟁에 참가해 싸우다 패배했습니다. 유럽에서 그러한 패배는 많은 경우 실업과 보복해고로 이어졌습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학살이 뒤따랐습니다. 인도에서도 패배한 투쟁의 지도자들이 살해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뭄바이 섬유 노동자 파업의 지도자도 결국 살해당했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상황입니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다시는 싸우지 못할 정도로 사기를 잃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변한 것이 있습니다. 세 가지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첫째, 4년 전의 시애틀 시위 이후로 지금 이 자리에도 계시는 새 세대 사람들이 더 못 참겠다며 다시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세계사회포럼에서 볼 수 있는 갖가지 개별 운동에 참가하고 있는 사람들, 예컨대 달릿[불가촉천민: 인도의 최하층 카스트] 권리, 무토지 농업노동자, 수자원, 환경 파괴, 노동조합 권리 등 수많은 쟁점을 가지고 운동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점차 자신들이 공통의 적과 싸우고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로, 지난 4년 동안 잇따라 일어난 시위들의 규모가 점점 커졌습니다.

유럽에서는 시애틀 시위로부터 18개월 뒤에 이탈리아 정부가 제노바의 거리에서 시위대를 쫓아내고 시위 참가자 카를로 줄리아니를 살해함으로써 이 운동을 파괴하려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에 굴복하기는커녕 그 다음 날 수십만 명의 노동자들이 이탈리아 전역에서 제노바로 몰려와 패배로 끝날 수도 있었던 운동을 위대한 승리로 바꿔 놓았습니다. 비록 카를로 줄리아니 동지를 잃는 비극을 겪었지만, 그것은 위대한 승리였습니다.

그러다가 전쟁이 터졌습니다. 혹자는 전쟁이 운동에 패배를 안겨줬다고 말했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전혀 예상 못한 거대한 시위들이 터져나왔습니다. 2월 15일에는 1천5백만 명의 반전 시위대가 거리를 메웠습니다. 이는 단 한 번도 선례가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운동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두 달 전에 조지 부시가 런던에 왔을 때는 30만 명의 시위대가 그를 맞이했습니다. 우리는 그를 자택 감금시켰습니다. 그는 버킹엄 궁전과 총리실을 벗어나면 런던 어디에도 발붙일 수 없었습니다. 세계 최강의 군대를 거느린 미 국무장관 콜린 파월조차 런던대학에서 강연을 하려다 학생들에게 쫓겨났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현재 진행중인 완전히 새로운 상황 전개의 한 요소일 뿐입니다.

둘째, 요소는 노동시간 연장, 고용불안, 해고 등 신자유주의의 공세로 고통받고 있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이 때문에 유럽에서는 오랜 침묵 끝에 처음으로 작은 반란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스페인·포르투갈·벨기에·이탈리아의 하루 총파업이 그 예입니다. 하루 총파업이 체제에 맞선 총파업과 같을 수는 없지만 어쨌든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5월과 6월에 프랑스에서는 1968년의 영웅적 투쟁 이후로 최대 규모의 파업 물결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운동의 시작입니다.

새로운 운동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는 이 점을 더욱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라틴아메리카가 그렇습니다. 런던에서 우리는 3년 반 전에 라틴아메리카에 관한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 온 한 여성이 우리더러 라틴아메리카에서 좌파가 패배한 마당에 어떻게 라틴아메리카의 좌파를 얘기할 수 있느냐고 말했습니다. 그 분이 그렇게 얘기하고 9개월 뒤에 아르헨티나에서는 봉기가 일어나 대통령이 헬기에 탄 채 궁전을 탈출해야 했습니다. 그보다 얼마 전에 에콰도르에서도 봉기가 일어나 역시 대통령이 헬기로 탈출했습니다. 불과 두 달 전에도 볼리비아에서 봉기가 일어나 농민 시위대가 각목과 다이너마이트로 무장한 광부들과 함께 행진했습니다. 이번에도 대통령이 헬기 타고 달아났습니다. 저는 볼리비아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제가 어제 읽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온 이메일에 따르면, 광부 지도자들이 “이번에는 단지 대통령 한 사람을 교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볼리비아에서 노동자와 농민의 권력 장악을 위해 싸우겠다”고 말한다고 합니다. 그것이 성공할지는 잘 모릅니다. 모든 것이 원하는 대로만 되지는 않기에 어쩌면 그들의 지나친 낙관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위기가 그 정도로 변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습니다.

노동자·농민의 권력

그래도 여전히 사람들은 혁명이 불가능하다고 말하곤 합니다. 저는 5주 전에 파키스탄에서 토론회에 참석했습니다. 부두 노동자, 섬유 노동자, 분재 노동자들이 참석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해고할 수 있고 군대도 손에 쥐고 있다. 우리는 싸울 수 없다”고들 했습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도 4년 전에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인도에서도 사람들은 운동이 후퇴하고 있고 힌두교 배타주의와 파시스트 세력들이 다음 선거에서 승리해 집권 세력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싸울 수 없다고 말하지만 오히려 나머지 세계의 분위기는 변하고 있습니다.

셋째, 요소로서,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예측하기 어려운 체제입니다. 이 체제는 때때로 사람들에게 약간의 임금 인상과 약간의 의료 보장과 약간의 복지 혜택과 약간의 노조결성권과 약간의 유급 휴가를 허용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잘 나갈 때는 그렇지만 자본주의는 계획되지 않는 경제 체제이기에 당연히 위기가 찾아옵니다. 위기에 빠진 체제는 사람들이 누리는 그 약간의 혜택마저 빼앗아갑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처음에는 혼란스러워하고 어쩔 줄 모르지만 견디기 힘들 정도로 고통이 심해지면 그들은 결국 반격에 나섭니다. 청년들 사이에서 반자본주의 운동이 성장하고 있듯이 전 세계의 작업장, 농경지, 광산, 항구에서는 그러한 반격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일들이 계속 되풀이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2백년이 조금 넘는 산업 자본주의의 역사에는 거대한 반격들이 있어 왔고 그만큼 심각한 패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패배를 겪은 사람들이 사기 저하되고 싸움을 포기했다 싶으면 곧이어 다음 세대가 공장과 광산과 사무실에 들어옵니다. 새로운 세대는 굴종을 거부하고 싸웁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현상입니다. 어느 곳에서나 이런 과정이 되풀이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일이면 모든 나라의 상황이 볼리비아처럼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많은 곳에서 이런 과정은 우리가 새로운 세력을 규합하는 것과 함께 일어날 것입니다.

체제의 근본 특성을 살펴봅시다. 이 체제는 혼란스럽고 무질서합니다. 비록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세계 체제의 많은 부분이 확장됐고 경제가 성장했으며 생활수준이 향상됐지만, 새로운 단계의 경제 위기가 시작된 지난 30년 동안에는 생활수준 향상이 잠시 더 지속된 이후로 모든 것이 나락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단지 노동자들의 삶이 악화된 것뿐 아니라 지배계급도 위기에 대처할 방법을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르헨티나에서 그것을 목격했습니다. 에콰도르에서 그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볼리비아에서 그것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두 가지 일이 일어납니다. 아래로부터 분노가 터져나오면서 보통 때는 민중을 억누르는 데에 손발이 잘 맞았던 지배계급이 약화되기 시작합니다. 이는 매우 재미있는 현상입니다. 레닌은 혁명이 일어나기 위한 세 가지 조건을 언급했습니다. 첫째, 민중이 더 참을 수 없을 때. 이 조건은 세계 곳곳에서 충족되고 있습니다. 둘째, 지배계급이 경제 위기, 인플레, 디플레, 전쟁 등의 재앙적 위기에 빠져 있을 때. 이 때는 지배계급 자신도 어떻게 대처할 바를 몰라 자기들끼리 싸우게 됩니다. 그러다가 놀라운 돌파구가 열립니다. 바로 이것이 라틴아메리카에서 일어났고 유럽에서도 일어날 조짐이 보이는 일입니다. 그것은 체제 전복입니다. 온갖 종류의 국가들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인도는 노동조건 악화를 겪고 있는 노동자, 무토지 농업노동자들은 안중에도 없는, 중간계급과 상층 계급을 위한 국가입니다. 하지만 이 조건들은 모두 한국·타이·인도네시아에서 그랬듯이 역전될 수 있습니다. 언젠가 오게 될 그 순간이 오면 민중에게는 새로운 돌파구를 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레닌은 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가 레닌을 인용하는 것은 그가 신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틀리게 주장한 것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에 관해서만큼은 그가 확실히 옳았습니다.

그는 진정한 혁명을 위한 셋째 전제 조건을 얘기했습니다. 대중이 행동에 나서고 사회 변혁의 첫 걸음을 내디딜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대중의 머리 속에는 여전히 그들 자신을 분열시키는 인종차별 사상, 힌두교 배타주의, 남성 우월주의, 동성애 혐오증 같은 사상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 사상이 계속 남아 있다면 그들은 사회변혁에 실패할 것입니다. 대중의 머리 속에는 그보다 더 해로운 사상도 남아 있습니다. 즉, 어떤 사람들은 통치자가 될 운명인 반면, 다른 사람들은 묵묵히 복종할 운명을 타고났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모든 혁명은 노동자, 농민, 빈민 들의 자생적 행동으로 시작하지만 나중에 가면 옛 지도자들이 나타나고 사람들은 “이 분은 착한 사람입니다. 이 분을 새 지도자로 모십시다.” 하게 됩니다. 볼리비아에서 정확히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볼리비아 민중은 스페인어가 서투른, 대중의 생활수준을 공격한 신자유주의자 대통령을 쫓아내고 그 자리에 스페인어에 능숙한, 대중의 생활수준을 공격하는 신자유주의자를 신임 대통령으로 앉혔습니다. 반격에 나서는 대중의 의식은 언제나 불균등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싸우는 법을 이해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낡은 사상에 얽매여 있습니다. 인종차별, 힌두교 배타주의, 민족주의 사상들이 그들의 뇌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진정한 사회변혁을 위한 셋째 조건이 충족돼야 합니다. 즉, 사회 변혁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것을 향한 길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들은 대격변이 발생하기 전부터 조직돼 있어야 합니다.

적들은 언제나 배타주의, 민족주의 사상 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우리의 반대편으로 조직하려 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 편도 조직돼 있어야 합니다. 영국에서 적들은 〈썬〉 같은 추악한 일간지를 동원해 그런 사람들을 조직하려 합니다. 한국이나 타이에도 그런 신문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런 신문은 1면에 누드 사진 따위를 싣는 방식으로 중요한 쟁점으로부터 주위를 딴 데로 돌립니다. 영국에서 그런 신문들은 이주자들과 무슬림들을 공격하고 그들의 지도자들을 분열시킵니다. 이렇듯 적들은 이미 사람들을 조직하고 있습니다. 우리 또한 사람들을 우리 편으로 조직해야 합니다.

우리 국제사회주의 경향이 현재를 새로운 시대로 규정하는 것은 이러한 격변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새로운 운동의 일부분이 돼야 합니다. 새 운동이 쏟아 내는 사상들은 멋집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경험을 통해 배우고 있고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제 인도 좌파의 대부분은 달릿 문제를 이해합니다. 영국에서는 ‘불가촉 천민’으로 불렀던 달릿들이 이제 행동에 나섬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쟁점에 대해 배워야 하게끔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모든 투쟁에서 단결을 이뤄야 합니다. 운동이 전진할 길을 볼 수 있는 사람들, 우리의 역할을 설명할 수 있고 과거를 명쾌하게 이해하는 사람들은 조직으로 뭉쳐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투쟁으로부터 교훈을 배울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인종차별, 배타주의, 민족주의 등 모든 왜곡된 사상을 쓸어 냅시다.

무엇보다 혁명이란 한 무리의 지배자들을 다른 무리의 지배자들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당하는 사람들, 밑에서 억눌려 온 사람들, [특히] 노동계급이 지배계급으로 변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조직을 건설합시다. 인도, 중국, 타이, 어디에서든 노동계급과 농민 들이 지배계급이 돼야 합니다. 옛 지배계급은 우리에게 평화롭게 투항해 스스로 노동자와 농민이 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우리에게 총부리를 겨눈다면 우리는 최선을 다해 그들을 무장 해제시킬 것입니다. 우리는 다양한 방법을 사용할 것입니다. 우리는 병사들에게 호소할 것입니다. 그들 역시 우리의 형제, 아들들이며 때로는 자매들이기도 합니다. 필요하다면 우리도 똑같이 무력을 사용해서 혁명을 파괴하려는 지배 관료들을 무장 해제시킬 것입니다.

우리 국제사회주의 경향은 바로 이런 목표를 위해 활동하고 있으며 각국에서 투쟁하고 있는 새로운 세대의 사람들도 누구나 동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성공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운동에서 최상의 투사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사람들의 네트워크는 필요합니다. 정세를 이해하고, 싸우는 방법을 알고, 투쟁을 지도할 수 있으며, 또한 우리의 입장을 효과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사람들의 네트워크 말입니다. 노동계급과 농민은 기회가 있는 곳은 어느 곳에서나 지배계급이 될 수 있습니다.

정리 발언

많은 질문이 제기됐는데 모두 답변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몇 가지 질문에만 답변하겠습니다. 두 가지 유형의 질문들이 있는데, 공산당 전통에 속한 분들의 질문과 그렇지 않은, 공산당 전통을 불신하는 분들의 질문이 있습니다. 전자에 관해 먼저 답변하겠습니다.

저희는 공산당에서 활동한 사람이라면 모두 형편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20세기의 수많은 투쟁들, 예컨대 미국에서 매카시즘에 맞선 투쟁, 영국에 맞선 인도 해방 투쟁, 1947년의 수병 반란 등등을 보면 공산당 전통에 속한 사람들이 이러한 투쟁에서 결정적 구실을 했습니다. 또한 최상의 노조 활동가들, 작가들, 그리고 다수의 훌륭한 예술가들도 공산주의에 경도됐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모순이 존재했습니다. 그들은 일생을 바쳐, 종종 목숨까지 희생하면서 공산주의의 대의에 헌신했으나 스탈린의 승리 이후 그들에게 하달된 정책들은 종종 그들로 하여금 끔찍한 실수를 범하게 만들었습니다. 인도 공산당이 1942년에 영국군 철수 운동에 반대한 것은 끔찍한 실수였습니다. 그 덕분에 영국은 한결 쉽게 운동을 분쇄할 수 있었으며 인도의 우익들은 마치 자신들이 해방 세력인 양 행세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1945년과 1946년에 ‘두 국가’론을 지지함으로써 인도의 분단에 힘을 실어 준 것도 끔찍한 실수였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 비록 인도의 분단을 원하지는 않았을지언정 길을 열어 준 것은 사실입니다.

인도 공산당 동지들이 1962년에 중국을 상대로 한 전쟁을 지지한 것도 치명적 실수였습니다. 정말 끔찍한 실수였죠. 그분들이 후회하고 있길 바랍니다.

끔찍한 실수

또한 오늘날에도 서부 벵골 같은 곳에서 문제가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서부 벵골의 공산당 정부는 집권 초기에는 진정한 개혁을 이뤘습니다. 인도에서 가장 철저한 토지 개혁이 이뤄졌고, 노동자들에게도 일부 혜택이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서부 벵골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들은 께랄라 주의 공산당 마르크스주의파 당원들 사이에서 이런 반응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시장과 세계화를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가? 서부 벵골에서는 하고 있는데 우리라고 하지 말라는 법 있는가?” 저는 께랄라에 있는 동안 공산당 마르크스주의파 내 여러 분파들 간의 이런 논쟁이 신문 지면상에서 벌어지는 것을 보고 아연실색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영국에서 공산주의 운동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과 이런 논쟁을 벌이는 동시에 그들과 함께 일해 왔습니다. 영국의 전쟁저지연합은 SWP(사회주의노동자당)만의 단체가 아닙니다. 전쟁저지연합 소집자인 린지 저먼은 SWP 당원이지만 의장[앤드류 머레이]은 영국공산당원입니다. 저희는 그런 동지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없이 기쁩니다.

하지만 과거와 현재에 관해 우리가 논쟁해야 할 것들이 있으며, 그러한 논쟁은 이뤄지고 있습니다. 저는 토요일에 인도의 양대 공산당이 함께 주최한 토론회에 갔는데, 거기서 세계 곳곳의 여러 공산당원들이 완전히 상이한 주장들을 펴는 것을 봤습니다. 그리스에서 온 어떤 동지들은 스탈린을 옹호한 반면, 이탈리아 재건공산당 지도자는 스탈린을 비판했습니다. 브라질 공산당원들은 룰라 정부를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다른 사람들은 개량주의를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논쟁들은 이미 벌어지고 있으며 그것은 정말 좋은 현상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에게는 진정한 대중 운동이 있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투쟁을 건설하는 일에 헌신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세계사회포럼을 준비하는 일의 많은 부분은 인도 공산당과 인도 공산당 마르크스주의 파 지도부 사람들이 담당했는데, 마오주의 파 공산당원들은 세계사회포럼에 대립하는 자신들만의 행사를 따로 준비했고 그들 가운데 일부는 여기 와서 황당한 주장을 펴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이 모든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토론과 논쟁

하지만 이런 일은 특수한 상황에서 실현될 수 있는 일입니다. 이처럼 다양한 토론과 논쟁은 이전에는 공산당 운동 내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전통입니다. 레닌이 살아 있던 시대, 특히 러시아에서 내전이 절정에 달했던 1919년과 1920년에는 신문 지면에서 레닌, 부하린, 트로츠키,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등이 각각 다른 주장을 폈습니다. 그 당시에는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토론하고 논쟁하며 투표했습니다. 하지만 인도 공산당의 태도는 이와 사뭇 달랐습니다. 여러 해 동안 인도 공산당 총서기를 지낸 조시가 자리에서 쫓겨나면서 그의 이름마저 공산당 공식 기록에서 지워졌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저는 어안이 벙벙해졌습니다. 그것은 결코 사상을 토론하고 발전시키는 좋은 방식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산당 전통의 동지들에게 이렇게 말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들은 공산당 전통의 최상의 부분으로서 제국주의와 부르주아 계급에 대한 격렬한 증오를 품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증오에 덧붙여 과거를 이해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과거를 이해하려면 다시 한 번 뒤로 돌아가서 레닌의 저작들을 읽어야 합니다. 예컨대 《국가와 혁명》을 읽어 봐야 합니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저작들도 읽어 봐야 하고, 부하린의 가장 훌륭한 [일부] 글들, 그리고 그람시의 글도 읽어야 합니다. 또 한 사람이 매우 중요한데, 세계사회포럼에 차려진 책방에서는 이 사람의 책을 단 한 권도 보지 못해서 안타깝습니다. 그는 바로 레온 트로츠키입니다. 많은 부분에서 그의 입장이 옳았던 반면, 틀렸던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글을 읽고 이해한 다음 그의 사상을 레닌, 부하린, 그람시 등과 비교해 볼 준비가 안 돼 있다면 지난 세기를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여러 쟁점들도 이해하기 힘들 것입니다.

한편, 공산당과는 다른 전통에 속한 사람들은 ‘우리는 공산주의가 어떤 것인지 이미 목격했고 우리는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에 적극 공감합니다. 그것은 분명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와는 다른 조직 방식이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조직하는 것도 필요 없다. 운동이 모든 일을 해결하게 내버려 두자.’ 사흘 전에 ‘저항의 세계화’에서 준비한 워크숍에 조지 몽비오가 연사로 나왔는데, 그는 “단지 달릿 운동에서 배우자”고 말했습니다.

달릿 운동에서 배우는 것은 환영입니다. 달릿에 관한 제 개인적인 감정은 각별합니다. 인도에 오신 유럽 사람들 대부분에게 가장 충격적인 것은 빈곤이 아니라 청소하는 사람들이 겪는 끔찍한 학대일 것입니다. 저에게는 특별히 더 그러한데, 왜냐하면 제 어머니가 부자들의 바닥을 청소하는 일을 하셨고 아버지는 배관공으로서 부자들의 화장실을 수리했기 때문입니다. 제 부모님 같은 사람들이 집주인의 얼굴도 쳐다보지 못하면서 바닥을 기고, 인도의 중간계급이 ‘더러운 일’ 하는 사람들을 대할 때처럼 집주인들이 고함을 지르면 대꾸도 못하고 복종해야 한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굴욕입니다.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저항하고 있는 것은 정말이지 멋들어진 일입니다.

그러나 달릿 단체들 사이에서도 어떤 사람들은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투쟁을 자제하고 BJP와 협상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노동조합원들이 달릿를 존중하게 만들어서 노조와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오직 달릿 스스로의 힘으로만 싸워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대해 또 다른 사람들은 달릿이 인도 인구의 15퍼센트밖에 안 되므로 혼자서는 승리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달릿 운동 안에서도 많은 논쟁이 오가고 있습니다.

달릿

따라서 우리는 저항하는 달릿들로부터 배우는 동시에 그들의 저항으로부터 교훈, 효과적인 투쟁 방법 등을 추출해 일반화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개방적인 토론이 보장되는 정당이 필요합니다. 이런 면에서 SWP나 국제사회주의 경향이 완벽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저희가 준비한 토론회에서는 다른 어떤 토론회보다 많은 토론이 오고 갔으며, 다른 대규모 포럼들에 비해 청중의 참여도 두드러졌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저희가 준비한 토론회에서는 연사가 두 시간 50분 동안 발언하고 토론시간은 5분만 할애하는 일은 결코 없었습니다. 이것은 저희가 마음씨 좋은 사람들이어서가 아니라, 우리 계급인 노동자, 농민, 빈민 들이 세계를 바꾸기 위해서는 공개적 토론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와 동시에, 기존 사회를 거부하는 사람들, 부자들을 싫어하는 사람들, 신자유주의의 거짓말들을 이해하는 사람들, 가장 명확한 시야를 지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조직화해야만 계속해서 제기되는 쟁점들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고 우리편 세력들을 조직할 수 있으며 우리를 기존 사회의 틀 속에 가둬 두려는 자들에 맞서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을 주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질문들도 있는데 제가 대답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인도 사회와 관련된 세부 쟁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쟁점들 가운데 일부는 과거에도 제기됐었습니다. 1930년대 미국 공산주의 운동 내에서는 흑인 문제와 관련해서 수많은 논쟁이 오갔습니다. 당시 미국 흑인들의 처우는 오늘날 달릿들의 처우와 매우 유사합니다. 트리니다드 토바고 출신의 유명한 마르크스주의자인 C L R 제임스는 흑인 문제에 관해 많은 글을 남겼습니다. 레온 트로츠키는 제임스와 오랫동안 논쟁을 주고받았고 의견이 일치하는 부분만큼 의견 차이도 많았습니다. 그들의 논쟁을 읽어 본다면 이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 관한 힌트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곧 정답을 제공하지는 않더라도 비슷한 쟁점이 과거에 어떻게 다뤄졌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농민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트로츠키가 농민들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했는데, 트로츠키 자신이 농민 가족 출신이었다는 점에 비춰 볼 때 이런 주장은 저로서는 이해하기 힘듭니다. 게다가 트로츠키는 1926년에 중국 혁명의 특정 단계에서 스탈린이 농민 운동의 발전을 가로막았다며 스탈린을 비판한 사람입니다.

트로츠키가 어떤 문제에선 옳았을 수도 있고 다른 문제에선 틀렸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의 분석을 읽어 보고 지금 이 순간 인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과 대비해 봐야 합니다.

오늘날엔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공산당들이 오랫동안 기정사실화된 “진실”들에 의문을 던지기 시작한 것은 매우 좋은 일입니다. 이탈리아의 재건공산당에서 온 동지 한 사람이 “우리는 옛 공산당과는 다르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재건공산당 동지들은 옛 공산당과 다릅니다. 재건공산당 내에서는 이런 쟁점들에 관해 민주적 토론이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의견 차이도 많습니다. 저 또한 그 동지들이 하는 일 모두에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인도 공산당과 공산당 마르크스주의 파가 이탈리아 재건공산당처럼 토론을 장려하고 더 좋게는 반자본주의 운동과 관계 있는 더 광범한 연합체로 뭉쳐서 종단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맞서 진지하게 싸우려고 한다면 그것은 멋들어진 일보전진일 것입니다. 저는 인도에서 싸우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러한 조직에 합류하기를 희망합니다.

조직

마무리짓겠습니다. 인도의 상황은 매우 독특합니다. 이 많은 눈부신 운동들이 있는 한편, 종단주의가 세를 확장하고 있고,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선거에서 BJP가 승리할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내다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좌파들은 자신들이 수세에 몰려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도에서는 또한 진정한 마르크스주의 조직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 존재합니다. 운동들로부터 교훈을 배울 수 있는, 또한 그렇게 배운 교훈을 역으로 운동에 되돌려줄 수 있는, 그렇게 해서 운동에 방향성을 제시하고 그것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진정한 마르크스주의 조직이 탄생할 수 있는 여건이 존재합니다.

저희가 영국에서 하려는 것도 이런 조직을 만드는 일입니다. 그것은 또한 남한, 타이, 호주, 그리스, 아일랜드, 가나, 남아공의 우리 동지들이 하고 있는 일입니다. 우리 국제사회주의 경향은 대중적인 조직은 아닙니다. 대개의 나라에서 우리는 극소수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거대한 운동이 새롭게 성장하고 있는 환경 속에서 극소수입니다.

누군가는 이 운동에서 주도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단지 시위뿐 아니라 혁명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함께 모여서 조직 건설을 논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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