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노조와 철도 노조의 파업이 철회되면서 정부와 사장들은 이제 동투는 물건너갔다며 환호했다. 하지만 한국통신 노동자들은 12월 18일부터 5일간의 파업 투쟁을 통해서 정부와 사장들이 샴페인을 터뜨린 것이 성급한 행동이었음을 보여 주었다. 22일 아침 노동자들은 다소 부족한 점이 있기는 했지만 정부의 양보를 얻어낼 수 있었다. 회사측은 3천 43명을 강제 퇴직시키려던 계획을 유보했다. 노조는 명예퇴직 위로금 모금도 철회시켰다. 노동자들은 회사측을 멈칫거리게 한 것이다.

이 투쟁에 우리 학생 그룹 동지들은 뜨거운 열정을 갖고 헌신적으로 개입했다. 우리는 이 파업을 우리 자신의 투쟁으로 여기며 파업의 순간순간마다 승리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뜨거웠던 5일간의 투쟁 속에서 학생 그룹의 개입

 

이번 한국통신 파업은 정말이지 아무도 예상치 못한 투쟁이었다. 한국통신 노동자들조차도 노조 지도부가 파업을 호소할 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주된 이유는 61퍼센트라는 낮은 파업 찬성률과 우파 노조 지도부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17일 저녁 명동성당으로 모여드는 대오가 계속 늘어나고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들이 총회에서 연대 투쟁을 호소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우리는 조합원 총회에 참여해 파업 돌입을 호소하고 계약직 노동자들과 함께 연대 투쟁의 필요성을 선동하는 것이 올바르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재빨리 이주노동자 대회가 끝난 뒤 귀가하던 동지들에게 연락해 명동 성당으로 집결할 것을 호소했다. 우리는 한국통신 투쟁을 지지하고 민영화에 반대하는 내용의 팻말을 제작해 팻말 시위를 하며 대열지어 총회에 참가했다.

문화제에서 계약직 노동조합 위원장이 연대 호소 발언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한국통신 노조지도부에게 요청했다. 우리 자신도 연단에 올라가 한국통신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고 18일 반드시 파업에 들어가야 한다고 호소해 노동자들로부터 많은 박수를 받았다. 우리는 맨바닥에 앉아 추위에 떨면서도 파업에 들어가기를 기대하며 밤을 새웠다.

18일 오전 10시 이동걸 쟁의대책 위원장이 파업을 선언했다. 우리는 노동자들과 함께 환호하며 모든 학생 당원들과 지지자들에게 명동성당으로 집결할 것을 호소했다. 한국통신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가면서 우리도 파업 대오의 일부가 돼기 위해 질서있게 대열을 지어 참가했고 파업 규율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총 199명의 동지들이 한통 파업에 참여했다.  

파업 기간 내내 우리가 함께 노숙 투쟁을 하는 것을 보던 노동자들은 "학생들이 우리의 문제에 함께 해 주니 무척 고맙다"며 연대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했다. 한국통신 부산 지부 노동자들은 직접 우리가 앉을 자리에 비닐도 쳐주고 먹을 것도 가져다 주며 식사 시간마다 우리가 밥을 먹었는지 신경써 주었다. 지나가던 한 여성 노동자는 "학생들이 덮을 비닐을 찾아 보았는데 없어서 미안하다. 이거라도 덮고 있으라"며 은박롤 깔개를 가져다 주기도 했다. 배너를 들고 있을 때 커피를 권하는 노동자들도 있었다. 우리가 "커피 마실 손이 없으니, 괜찮다"고 했더니 커피 마실 동안 배너를 대신 들어주기까지 했다. 파업이 진행될수록 조합원들이 많아져서 명동성당은 무척 좁았지만 노동자들은 우리를 걱정하고 챙겨주며 좁고 불편해도 함께 있으려고 했다.

파업이 진행되면서 우리는 피켓팅과 홍보전을 통해서 파업이 승리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구체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했다. "신사적인 파업이 아니라 핵심 요원들까지 파업이 확대돼야 한다." "계약직 노동자들의 파업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의 승리와 연결돼 있다."

19일 밤, 우리는 이런 주장들을 노동자들 속에서 조금 더 효과적인 방법으로 선동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긴급 토론을 했다. 학생 당원들의 열띤 주장과 제안 속에서 노동자들이 있는 천막을 직접 방문하자는 것과 우리의 주장을 담은 대자보를 곳곳에 부착하자는 결의를 모아냈다.

20일부터 우리는 천막을 방문해 《열린 주장과 대안》 7호를 판매하며 노동자들과 토론하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은 파업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대자보를 눈여겨 보았다. 천막 방문을 하면서 우리는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들의 분위기와 정서를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천막 방문을 하자 노동자들이 먹을 것을 챙겨주는 등 호응이 좋았으며, 부산지부 천막에서는 우리가 들어가자 자는 사람을 다 깨워서 우리 얘기를 듣고 자신들 얘기를 해 주기도 했다.

노동자들은 대부분 파업 확대 주장에 동의했지만 전면 파업에 들어가서 통신 대란이 일어나면 정부에 탄압의 빌미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제기하는 노동자들도 있었다. 또 노동자들은 이번 파업에 대한 언론 보도를 보면서 언론에 대한 불만을 터트렸고, 연대가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달았다며 금융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한국통신 파업이 당시 정세에서 끼치는 중요성에 대해 말하는 노동자도 있었다. 성수 지부의 한 노동자는 "우리가 무너지면 노동자들이 무너지는 거다. 특히 당면한 금융 파업에 영향을 미칠 거다. 은행하고 우리하고 겹치면 정부는 엄청 부담일 거다. 우리가 동투의 핵심이다. 이제 다른 부문의 노동자들이 우리를 뒷받침해야 할 시점이다. 우리가 죽으면, 노동계급이 죽고 후퇴하는 거다."하고 주장했다. 우리는 천막 방문을 통해 《열린 주장과 대안》 7호를 344부 팔았고 노동자들과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21일에는 파업 확대와 계약직 노동자들과의 연대의 중요성을 주장한 한 면짜리 호외가 나왔다. 파업 4일이 되도록 기성 언론이 한통 파업에 대해 거의 보도하지 않았고, 다른 운동 단체에서도 한국통신 파업에 대한 그 어떤 유인물도 내지 않아서, 노동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의 파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상당히 궁금해 하고 있었다. 이때, 우리가 호외를 들고 "한국통신의 파업을 지지하는 호외가 나왔습니다."라고 하자 노동자들이 여기저기에서 호외를 달라고 했다. 한 번에 10부씩 20부씩 사가는 통에 호외 5호 1천3백부가 30분만에 모두 동이 났다. 호외에 대한 노동자들의 열화와 같은 호응에 우리들도 모두 놀랐고 우리는 재판을 찍어 다시 판매했다. 재판 1천7백부 역시 순식간에 다 팔렸다. 21일 저녁 우리는 금융파업 전야제에 가기 위해서 호외를 판매하고 대열을 유지할 10여 명만 명성에 남겨놓고 다소 아쉽지만 발걸음을 일산으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