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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반긴축 투쟁 ― 분석과 전망

영국 노동자들은 5월 10일에 정부의 긴축 정책에 맞선 50만 파업을 준비 중이다. 긴축에 맞선 영국 노동자들의 투쟁은 지난해 세 차례 위력적 파업으로 발전한 바 있다. 이 투쟁은 지난해 11월 30일 파업 이래로 다소 가라앉는 듯 했지만 지금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중앙위원인 마틴 스미스가 이 투쟁이 왜 벽에 부딪혔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다시 반격이 시작되고 있는지 살펴본다. 경제 위기 고통전가에 맞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싸울 수 있을지 고민하는 한국 노동자와 활동가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3월 28일에 전국교사노조(NUT)와 전국대학노조(UCU) 소속 교사와 교수·강사 등 교직원 7만여 명이 런던에서 파업에 나섰다.

이것은 지난 아홉달 사이에 벌어진 세번째 연금 [삭감 반대] 동맹 파업이다. 이 운동은 지난해 3월 50만 명이 참가한 영국노총(TUC) 집회로 시작했다. 6월 30일에는(6·30) 70만 명이 참가하는 강력한 파업이 벌어졌고 11월 30일에는(11·30) 2백60만 명이 파업에 나섰다. 이 투쟁은 단지 연금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았고, 정부의 내핍 정책에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도 끌어들였다. 그래서 학생들, 점거하라 운동, 장애인 활동가, 연금생활자들이 모두 노동자 파업을 지지하며 결집했던 것이다.

문제는 지난 몇 달 동안 이 운동이 안타깝게도 하향 곡선을 그려 왔다는 점이다. 3·28은 그동안의 파업과 견주면 가장 소규모였다. 그러나 몇 가지 이유에서 이 파업은 중요했다. 첫째, 비록 온갖 약점이 있기는 했지만 3·28 파업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지난 1년 동안 영국의 정치 지형을 좌우해 온 연금 투쟁은 완전히 끝장났을 것이다.

약점을 감지한

둘째, 우리편의 약점을 감지한 정부는 내핍 정책을 더 밀어붙일 태세였다. 노골적으로 계급 편향적인 [긴축] 예산안을 보며 수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고 분노했다. 여론조사에서 노동당 지지율이 치솟았다. [그러나 긴축] 예산은 공격의 일부였을 뿐이다. NHS 개악안 통과, 도로·우체국 민영화 발표, 공공 부문 요금 인상 계획은 정부가 미친 듯이 설치고 있다는 증거였다. 3·28은 이 결정적 순간에 정부에 맞선 저항을 표현하는 유일한 행동이었다.

반드시 대답해야 하는 분명한 물음이 하나 있다. 넉 달 전에 2백만여 명이 참가한 파업이 어떻게 고작 두 개 노조 7만 명이 참가한 런던 시 규모의 파업으로 축소됐는가 하는 것이다.

6·30에는 4개 노조(교사·강사 노조(ATL), 전국교사노조(NUT), 공무원노조(PCS), 전국대학노조(UCU))가 참여했다. 이 노조들은 노동당에 가맹하지 않은 노조들이고 ATL을 제외하면 모두 좌파가 이끄는 노조였다. 흥미롭게도 이 점은 그리스, 스페인, 프랑스, 포르투갈에서 벌어진 대중 파업의 발전 양상과 비슷하다. 이 나라들에서도 모두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당과 연계가 없는 소형 노조들이 파업을 시작했다.

6·30은 대성공이었다. 이 파업은 다른 노조의 노동자들을 고무했고 세 대형 노조(영국일반노조(GMB), 공공서비스노조(UNISON), 운수일반노동조합과 통합기계공전자노조의 통합노조(UNITE)) 지도자들이 다음번 공동 파업을 지원하도록 압박했다. 그래서 11월 30일 총 28개 노조가 파업에 참가했고, 전국에서 약 1백만 명이 거리로 나왔다. 다시 말해 좌파가 이끄는 노조들이 산업과 정치 의제를 주도한 것이다.

그러나 연금 운동에 참가한 노조들의 동맹이 광범하다는 사실 자체가 약점이기도 했다. 노동쟁의의 속도가 가장 소심한 노조의 보폭에 맞춰졌기 때문이다. 6월 30일 파업부터 11월 30일 파업까지 다섯 달의 공백이 있었고, 다시 3월 28일까지 네 달의 공백이 있었다. 이 때문에 결정적 시기에 운동이 추진력을 잃고 저항의 분위기기 지속될 수 없었다. 더 위험한 것은 11월 30일 이후 TUC 사무총장인 브렌든 바버, GMB 사무총장 폴 케니, UNISON 사무총장 데이브 프렌티스 같은 일부 노조 지도자들이 더는 행동을 원치 않았다는 사실이다.

전진과 후퇴

11·30이 영국 노동계급의 역사적 전진이었다면 12월 19일 월요일은 배신의 날이었다. 이날 지방정부의 GMB, UNISON, UNITE 노조 지도자들은 정부의 연금 삭감안을 승인했다.(UNITE는 그 뒤에 지지를 철회했다.) 마크 서워트카와 PCS가 주도한 끈질긴 저항 덕분에 겨우 완전한 패배를 막을 수 있었다. 프렌티스 일당의 배신에 활동가들은 기겁했다.

이제 우파 노조 지도자들이 의제를 주도하면서 좌파 노조들을 끌어당겼다. 노조들이 하나씩 투쟁에서 이탈했다. 그동안 여러 차례 보수당에 반대하고 노동당의 지도력 부재를 비판해 온 UNITE 사무총장 렌 매클러스키도 자기 노조를 다시 행동에 나서게 하려는 시도를 좌절시켰다.

이는 명백히 심각한 후퇴였고, 그런 상황에서 좌파 노조 지도자들은 위기를 막고 3·28을 밀어붙여야 했다. 그랬다면 투쟁에서 꽁무니를 빼는 노조들에게 압력이 됐을 것이고 훗날 더 광범한 행동으로 나아가기도 쉬워졌을 것이다. 그러나 NUT와 PCS 지도부는 압력에 굴복했고 후퇴했다.

NUT 사무총장 크리스틴 블로어와 NUT 집행위원회가 3·28 전국 행동에 반대하기로 결정하면서 후퇴가 시작됐다. 직전의 조합원 투표에서 압도 다수인 95퍼센트가 정부의 ‘최종안’을 거부했고 75퍼센트가 파업을 지지했는데도 말이다. 블로어는 파업 참가자 수가 적을까 봐 걱정이 됐고 다른 교사 노조들이 투쟁에서 이탈했기 때문에 [그렇게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NUT는 런던 조합원들만 파업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은 여전히 전국 파업 계획을 고수하던 노조들에게 결정타였다. 다음 날 상황은 조금 나아졌는데, UCU 회의에서 PCS가 참가하는 한 전국 파업을 지지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PCS가 파업을 철회하면 UCU는 런던에서만 파업을 벌인다는 결정도 했다.)

그러나 사태를 역전시키기엔 역부족이었고, 그 후 완전한 실패가 뒤따랐다. 스코틀랜드 교사노조(EIS)는 NUT의 결정을 핑계로 3·28 파업을 취소했다. 그 다음엔 마크 서워트카와 다수의 PCS 전국집행위원들이 NUT의 결정을 거론하며 3·28 전국 파업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고, 그 대신 4월 말에 다른 노조들과 함께 행동을 시도하겠다고 말했다. PCS 조합원들이 10여 년 만에 가장 높은 찬성률로 3·28 행동을 지지했는데도 말이다. 그 다음에는 북아일랜드 공공노조(NIPSA)가 PCS의 결정을 근거로 파업을 취소했다.

남은 것은 NUT와 UCU 조합원들의 런던 지역 파업뿐이었다. 전국 곳곳에서 열린 노조 회합 보고를 보면 조합원들은 혼란스러워했고 사기저하됐고 노조 지도자들에게 분노했다.(예컨대http://pcseuston.org.uk/video-m28-branch-debate-with-hector-wesley/를 보라.) 조합원들은 특히 마크 서워트카에게 실망했는데, 그동안 마크가 연금 투쟁에서 매우 뛰어난 구실을 했기 때문이다.

SWP는 마크와 크리스틴이 자기 노조 집행위원들로 하여금 전국 행동을 취소하도록 부추긴 것이 잘못이었다고 생각한다. EIS, NUT, PCS, UCU의 중앙 기구들에는 SWP 지지자들이 있고 모든 곳에서 우리 당원들은 전국 파업을 고수하자고 주장하고 표결했다. 불행히도 다른 사람들은 그러지 않았다. 사회당 동지들은 NUT에서는 옳게도 전국 행동을 고수하는 데 찬성표를 던졌다. 그러나 아쉽게도 자신들이 최대 다수파인 PCS에서는 그러지 않았다. 그들은 3·28 계획을 고수하는 데 반대표를 던졌다.

왜 대다수 노조 지도자들이 11월 30일 파업 이후 전국 행동 계획에서 후퇴했는지 이해하려면 강력한 세 세력, 즉 정부, 노조 관료, 현장조합원들의 상호 관계를 살펴봐야 한다.

스캔들

대다수 유럽 나라들에서처럼 영국의 노동자들도 엄청난 공격에 직면해 있다. 캐머런과 클레그 정부는 역겨운 자들이고, 마거릿 대처조차 꿈만 꿨을 제도들을 도입해서 영국 자본주의를 구조조정하려 한다. 그러나 분명히 강력한 정부는 아니다. 최근 몇 주 사이에 이 정부는 부패 스캔들에 휘말려 자신들이 추진하던 워크페어 정책[노동 연계 복지 – 신자유주의적 복지 삭감 정책]도 후퇴시켜야 했다. 그러나 이들은 긴축 정책을 끝까지 밀어붙이려 한다. 그렇다고 해서 저항이 필연적으로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계급의 분노는 확실히 더 강력해질 것이다.

많은 유럽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영국에서도 대중 파업이 귀환하고 있다. 이 파업들은 대륙을 휩쓰는 지독한 긴축 드라이브에 맞서 벌어졌다. 우리는 긴축에 맞선 전 세계적 저항의 일부다. 투쟁의 성격은 나라마다 다르다. 지난 1년 동안 우리는 혁명과 봉기가 잇따른 아랍의 봄,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에서 벌어진 총파업, 위스콘신에서 등장한 대중 운동과 ‘점거하라’ 운동의 부상을 목격했다.

영국에서는 노동조합의 바깥에서 벌어진 세 가지 운동이 노동계급의 일부를 급진화하고 노조 지도자들에게 싸우도록 압박하는 데서 핵심 구실을 했다. 첫째는 한두 해 전에 전국 곳곳에서 생겨난 수많은 삭감 반대 그룹들이다. 둘째는 2010년 겨울에 분출한 학생들의 저항과 점거 투쟁이다. 이들은 정부의 긴축 정책이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착각을 깨뜨렸다. 셋째, 지난해 여름 여러 도시 한복판에서 분출한 소요는 광범한 청년층 사이에 만연한 분노를 뚜렷이 보여 줬다.

정부의 계속되는 공격, 거리의 반대, 노조 관료의 상당 부분이 모종의 저항에 참가하기로 결심했다는 사실 때문에 노동조합은 반격에 나서기 시작했다. 지난 25년 동안의 영국 노동조합 운동을 돌아보면 이는 환영할 만한 중대한 발전이다.

그러나 노동조합 운동 내 일부는 투쟁에 참가하려 하지 않거나 우리 편이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오랜 패배와 노조의 영향력 약화가 깊은 상처를 남긴 것이다.

모순

이런 상황에서 노조 관료들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모순에 빠졌다. 마크 서워트카는 지난해 12월 〈모닝 스타〉에 실린 글에서 핵심 문제 하나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운동의 일부 지도자들에게는 뿌리깊은 숙명론이 있다. 그들은 우리가 결코 승리할 수 없다고 말한다. 산업 투쟁은, 심지어 11·30 규모의 산업 투쟁도 정부를 물리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노조의 평가처럼 ‘피해를 최소화하기’가 실현 가능한 최상의 목표라는 것이다.”

지난달에 봤듯이, 이런 자신감 부족은 최상의 노조 지도자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친다. 3·28 전국 행동이 취소된 이유를 달리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둘째 요인은 노조와 노동당의 관계다. 노조 지도자들은 대부분 노동조합은 경제 문제를 다루고 노동당은 정치 문제를 다룬다는 식의 생각을 받아들인다. 문제는 사소한 변화라도 가져올 수 있는 희망은 오직 노동당 정부뿐이라고 생각한다면 그에 맞게 전략도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논리적 귀결은 노동당 정부를 흔들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파업이 노동당 정부를 흔들 수 있다? 멈춰라. 노동당이 장악한 의회가 삭감안을 통과시켰다? 도전하지 말라. 그랬다가는 보수당이 의회를 차지할 것이다. 이렇게 악순환이 생긴다. 노동당과의 긴밀한 연결은 노조의 투지를 무디게 한다.

그러나 노조 관료는 동질적인 집단이 아니다. 그리고 지금 같은 시기에 노조 관료는 진정한 압력을 받는다. 노조 관료는 한편으로는 내재적 보수성이 있지만, 그와 동시에 그들은 행동을 요구하는 조합원들과 대면해야 하고 공공 부문 노조를 파괴하려 드는 정부에 시달려야 하고 노조 선거에서 다시 선출돼야 한다는 등의 압력도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관료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나고 노동자들이 반격할 수 있는 여지도 생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노동계급의 자신감에 관한 것이다. 지금 노동자들이 무척 화가 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업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 과거의 패배가 남긴 상처도 있다. 현장 조직이 약하다는 점 때문에 이 문제는 더 악화한다. 많은 현장에 두려움과 분노의 미묘한 균형이 존재한다.

안타깝게도 최근의 파업들 덕분에 생겨난 자신감은 UNISON과 GMB가 12월에 투쟁을 철회하지 못하도록 막을 만큼 강력하지는 않았다. 전력 노동자들의 쟁의행위 기간에 현장 조직이나 현장 조합원들의 저항이 UNITE 노조 상근 간부들을 저지한 바 있는데, 그와 비슷한 현장 조직이나 현장 조합원들의 저항이 대다수 작업장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상황을 완전히 암울하게만 묘사해서는 안 된다.

여전히 분노가 크기 때문에 노조들이 쟁의를 완전히 끝낼 수는 없었다. 노동자들은 거듭거듭 연금 개악안에 반대표를 던졌고 3·28 파업이 증명했듯이 그동안 발전시킨 전략이 쓸모없어지고 아무도 지도하지 않는 상황에서조차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노조의 호소와 파업을 지지했다.

연금 투쟁은 끝났는가? 영국 전역의 노조 회합에서 지금 제기되는 질문이다. 한마디로 대답하면 ‘아니오’다. 그러나 다시 행동에 나서려면 무척 힘든 투쟁을 벌여야 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4월 행동

지금 UCU 지도부는 4월 하순의 전국적 행동을 지지하는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PCS도 마찬가지다. UNITE 집행위원회도 공공 부문 연금 개악안이 적용되는 부문을 이끌고 4월에 파업을 벌이는 데 동의했다. 부활절 휴가 기간에 열리는 NUT 대의원대회가 분기점이 될 것이다. 대의원들이 전국 행동을 재개하기로 표결한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우리는 평범한 노동자들이 연금 삭감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과연 노조 지도자들은 진지한가? 일부는 그렇다. 그동안의 전력을 보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핵심 요인은 현장조합원들이 지도자들에게 압력을 넣어 다시 행동에 나서게 할 수 있느냐다. 향후 과제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지만, 연금 투쟁이 결코 끝나지 않았다는 것은 여전히 사실이다.

출처: 영국의 혁명적 좌파 월간지 《소셜리스트 리뷰》 2012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