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선거 부정과 중앙위 폭력 사태는 많은 선진 노동자들에게 환멸감을 느끼게 했다. 많은 사람들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벌어졌는지 갑갑해 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틈타 우파와 지배계급은 현 사태를 ‘종북’ 마녀사냥으로 뒤틀어버리면서 진보진영 전체가 부패하고 비민주적인 집단인 양 매도한다. 

그러나 부패와 비민주성은 우파와 지배자들의 전유물이고 진보진영은 오히려 이에 맞서 단결 투쟁해 온 전통을 갖고 있다.  

따라서 진보진영은 지배계급의 마녀사냥에 단호히 맞서면서 스스로 민주적인 토론과 논쟁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그러려면 이 문제의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현재 이번 선거 부정·부실 사태에는 통합진보당 내의 자주파 경향 활동가들이 많이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 있다. 스탈린주의 경향의 활동가들이 의회 진출과 선거 승리라는 목적을 이루려고 합법적 대중 정당 안에서 정의롭지 못한 일을 저지른 것이다.   

스탈린주의는 옛 소련 체제나 소련이 군대를 동원해 동유럽과 북한 등에 이식한 체제를 ‘사회주의’로 여기고, 이런 체제를 대안으로 지지하는 사상과 이데올로기다. 

그러나 스탈린은 1920년대 중반에 1917년 혁명의 유산을 철저히 파괴하는 ‘반혁명’을 통해 관료적 국가자본주의 체제를 세웠다. 소련 군대가 동유럽과 북한 등에 이 체제를 이식하는 과정에서도 아래로부터 노동자들의 자주적 행동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스탈린주의는 이런 나라들에서 관료 지배계급의 지배 이데올로기였다. 

반면 남한의 스탈린주의 활동가들은 제국주의와 군부 독재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저항 이데올로기로서 스탈린주의를 채택했다. 

남한의 스탈린주의 활동가들은 국가의 탄압을 받으면서도 평등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건설하려고 투쟁해 온 투사들이다.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도 1930년대에 “소련의 깡패들은 실제 깡패지만, 서방의 기층 스탈린주의자들은 스스로 혁명가라고 생각한다” 하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스탈린주의는 설사 기층 민중의 저항 이데올로기로 채택됐을 때마저도 심각한 문제와 결함을 나타낼 수밖에 없다. 

위로부터

스탈린주의는 “당이 계급을 대표”한다고 본다. 당의 결정이 곧 계급의 결정이고, 당이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곧 계급이 권력에 이르는 것을 뜻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계급을 대표하는 당이 국가를 장악해 옛 소련이나 북한식 모델을 만들면 그것이 사회주의 완성의 길이라고 믿는다. 이때 사회주의는 당이 노동계급에게 ‘위로부터’ 선사하는 것이 된다.  

위로부터 노동계급에게 사회주의를 선사하는 것은 소련 군대나 관료일 수도, 소수 게릴라일 수도, 사회주의 국회의원일 수도 있다. 

이런 과정에서 노동계급의 대중 행동과 민주주의는 무시되는 것이다. 당이 국가 권력에 좀더 가까워진다는 목표 하에 모든 수단과 방법이 종속된다. 그 목적을 성취하려고 기성정당에서나 만연해 있는 여론조사 ‘조작’까지 범하게 된 것이고, 심지어 선거 부정과 폭력 행위까지도 큰 문제가 아닌 것으로 취급하게 된 것이다.  

스탈린주의는 권력 획득을 위해 부르주아 세력과 실용주의적으로 무원칙하게 손잡는 것까지 정당화한다. 스탈린주의자들이 참여당과 통합을 밀어부치고, 민주통합당과 같은 노골적인 부르주아 세력과 ‘묻지마’ 야권연대와 향후 ‘연립정부’까지 추진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혁명의 결과와 혁명의 과정(과 수단) — 자본주의 착취에 도전하는 의식적·집단적 저항 — 을 결코 분리하지 않았다. 

이때 혁명을 이끄는 당은 계급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부이고, 구분되는 일부다. 마르크스가 1871년에 파리의 노동자들한테 배운 것처럼, 당은 과거의 모든 경험에 기초해 노동계급을 지도하고 계급에게서 배워야 한다. 

마르크스는 1864년 제1인터내셔널 규약에서 “노동계급의 해방은 노동계급 자신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주의는 ‘위로부터’ 선사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아래로부터’ 노동계급의 대중적 행동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 민주주의가 필수불가결하다. 

따라서 사회 변혁 활동가들은 지배계급의 탄압을 받는 동지들을 분명히 방어하면서도, 동시에 진보진영의 ‘정의’와 ‘민주주의’를 바로세우기 위해서 스탈린주의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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