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서 파업 중인 광부들이 3주 동안 행진을 벌여 7월 10일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 도착했다. 파업 광부 마르체르 호세 루이스 페르난데스 로세스가 자신들에 대한 열광적인 환영 집회에 대해 말한다.


마드리드로 행진해 들어갈 때 우리는 이렇게 놀라운 환대를 받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엄청난 환영 시위 인파로 우리는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일종의 경호를 받고서야 앞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마드리드 소방대가 인파를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소방대원들도 1년 동안 임금과 수당을 둘러싸고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광부들과 소방대원들의 연대는 멋진 일입니다.

마드리드의 평범한 사람들이 거대한 군중을 이뤄 우리를 환영했다는 사실에 나는 감격했습니다. 그 엄청난 규모의 행진을 묘사하기란 어렵습니다.

공무원, 간호사, 교사 등이 함께했습니다. 많은 노동조합원들이 참가했습니다. 나의 노동조합인 아스투리아스 광부노조가 소속된 노동자총동맹(UGT)도 참가했고 다른 총연맹인 노동자위원회(CCOO)도 참가했습니다.

통합좌파당(UI)부터 노동당(POSE)까지 다른 단체들 또한 참여했습니다. 보수파 마드리드 시장까지 자기 정당에 반대해 우리에 대한 지지를 보여 주기 위해 나타났고 광산촌 지역 시장들 몇 명도 있었습니다. ‘분노한 사람들’도 우리와 함께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광부들을 자랑스러워 한다는 것을 보여 줬습니다.

분노한 사람들

광부 80명이 아스투리아스에서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마드리드로 향하는 도중 레온과 아라곤에서 온 두 광부 단체가 합류했습니다. 행진은 길고 힘들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진정한 우애가 생겨났습니다. 매우 더웠고 기온이 40도에 이를 때도 있었습니다. 화상을 입기도 했고 끊임없이 열사병 위험을 느꼈습니다. 육체적으로 아주 힘들었습니다. 행진 도중 온갖 종류의 잔부상들이 계속됐습니다. 그런데 지역 주민들이 우리를 도왔습니다. 음식을 마련해 주고 약품을 제공하고 정말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했습니다.

두 순간이 특히 선명합니다. 첫째는 우리가 레온과 아라곤에서 행진해 온 광부들과 만났을 때입니다. 모두 서로를 껴안았습니다. 그 동지애는 대단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7월 1일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유로2012 결승전이 벌어졌을 때입니다. 우리는 모다 델 마르케스라는 마을에 있었습니다. 지역주민들은 우리를 위해 큰 잔치를 벌였습니다. 마을 전체가 우리를 지지하기 위해 음식을 나누고 대형 스크린으로 경기를 함께 봤습니다. 그들이 보여 준 환대는 정말 환상적이었습니다.

정부는 여전히 긴축 정책을 추진하려고 합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투쟁을 계속해야 합니다. 아스투리아스에서 광부 7명이 오늘로 46일째 지하갱도를 점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의지가 어떤지 보여 줍니다. 우리는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불꽃이 될 수 있습니다. 1962년 광부들이 광범한 세력들에게 확산됐던 운동을 이끌 때도 그랬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이 긴축이 야만적이고 항상 일하는 사람만 공격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은행들이 만들어낸 경제 위기의 결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은행이 문제지만 은행들은 어떤 대가도 치르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에겐 투쟁 말고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긴축은 파괴적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삶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습니다. 승리할 때까지 투쟁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재앙만 있을 뿐입니다.

지배자들의 광기 어린 공격

국민당 정부는 탄광 보조금 63퍼센트 삭감과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을 진행하고 있다. 스페인 정부에게 더 많은 긴축을 지시하라는 유럽금융안정기금의 메모가 유출된 뒤 5백억 파운드 긴축 계획이 발표됐다.

이 액수는 스페인 정부가 문제가 된 은행들을 지원하기 위해 유럽연합에게 요청한 금액과 거의 일치한다. 그런데 지원은 스페인 정부가 긴축을 추진할 때만 지급된다.

끔찍한 긴축 정책이 추진된 뒤 50만 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었고 스페인은 두 번째 경기후퇴에 빠졌다.

공공부채와 적자 증가는 스페인 정부가 시장에서 돈을 빌리기 어렵게 만들어 그리스식 “구제안”이 불가피하다. 광부들과 공공부문 노동자 투쟁은 이 터무니없는 시장의 광기를 막을 기회가 될 것이다.

바르셀로나에서 루크 스토바트

아스투리아스 광부 투쟁의 역사

스페인 북서부 아스투리아스 지역 광산 노동자들은 1934년과 1962년에도 거대한 투쟁을 벌였다.

1934년 10월 파시스트 우익자치동맹(CEDA)이 정부에 입각하자 혁명적 총파업이 선포됐다. 아스투리아스에서는 전면적인 봉기가 발생했다. 광부들이 이 운동의 중심에 섰다.

스페인의 다른 지역과 달리 아스투리아스 노동자위원회에는 강력한 아나키스트 노동조합 CNT와 사회주의 노동조합총동맹(UGT) 그리고 공산주의자들과 혁명적 사회주의자들 모두 참가했다.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 광부들은 이 지역을 통제했다. 노동자들이 민병대, 교통, 식량 배급, 혁명적 사법체계를 조직했다. 노동조합들과 노동자 정당 대표로 구성된 혁명위원회가 이 지역에 사회주의공화국을 선포했다.

다이너마이트와 새총으로 무장한 노동자들은 압도적인 군사력에 맞서 2주간 저항했지만 결국 패배했다. 프랑코 지휘를 받아 군대는 특히 광산촌에 끔찍한 보복을 진행했다. 2천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살해됐고 더 많은 노동자들이 투옥되고 고문당했다. 그러나 아스투리아스 코뮌의 경험은 스페인 전체 노동자들을 고무했다.

1962년

1962년 한 광산 노동자들이 7명의 해고에 반대해 파업을 벌였다. 이 파업은 곧 다른 광산으로까지 확산됐고 프랑코 독재정부는 체포와 탄압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광부들의 투쟁은 다른 노동자 투쟁을 점화하는 불꽃이 됐다. 임금동결에 맞선 투쟁이 확산돼 스페인 전역에서 50만 명 이상이 동참했다.

5월 24일 정부는 광부들의 요구를 수용했고 6월 5일에 전 산업과 농업에서의 임금 인상을 쟁취하고서야 광부들은 파업을 끝냈다. 광부들의 승리는 프랑코 정부를 상대로 승리한 최초의 거대한 노동자 운동이었다. 아스투리아스 광부 파업은 스페인에서 파시즘을 패배시킬 수 있다는 희망과 계기를 마련했고 운동을 강화시켰다.

오늘날 광산 점거, 바리케이드, 경찰 폭력에 맞선 폭발물과 새총 사용 등은 1934년과 1962년 전투를 연상시킨다. 광부들의 투쟁이 긴축 정책에 맞선 투쟁을 고무하고 있다. 광부들은 자신들의 삶과 노동조건이 공격당하고 있는 수백만 명의 상징이 됐다. 그들은 서로 다른 저항들을 결합시킬 수 있는 상징이다.

사회당 계열의 노동조합총동맹(UGT)이나 옛 공산당 계열 노동자위원회(CCOO) 같은 주요 노동조합의 지도부는 다른 나라 노동조합 관료들처럼 온건하고 신뢰할 수 없다. 그러나 광부들은 스페인에서 노동조합으로 가장 잘 조직된 노동자들로 대부분이 노동조합총동맹이나 노동자위원회 소속이다. 그리스에서처럼 노동조합 지도부들이 투쟁하도록 내몰리고 있다.

광부들의 승리는 유럽을 휩쓸고 있는 긴축 물결에 대한 커다란 반격이 될 것이다.

앤디 두간

출처: 영국의 혁명적 좌파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 23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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