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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계의 힉스 입자 발견:
왜 질량이 중요한가

과학자들이 힉스 입자를 발견한 것에 왜 주목해야 하는지 앨리스 리빙스턴 붐라가 설명한다.

최근 과학자들은 새로운 소립자를 발견했는데, 그동안 과학자들의 애를 태운 힉스 입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난 60년 동안 과학자들은, 이른바 입자 물리학의 ‘표준 모형’을 검증하려고 노력해 왔다. 힉스 입자는 표준 모형이 옳다면 존재할 것으로 예견된 입자들 중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은 유일한 입자로 퍼즐의 마지막 조각과 같은 소립자였다.

힉스 입자는 ‘신의 입자’라는, 오해의 여지가 많은 별명으로도 알려져 있다. [물질의 기원에 관한 기존의 모든 이론들을 통합해 줄] ‘대통일이론’을 완성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그런 별명이 붙은 것인데, 일부 과학자들은 ‘대통일이론’에 신학적 의미까지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소립자의 발견은 단순히 표준 모형을 입증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그 모순을 들춰내고 새로운 이론의 탄생을 촉발할 수도 있다.

표준 모형이 인정받으려면 원자보다도 작은, 매우 많은 종류의 소립자들이 존재해야 하는데, 그것들 중 소수만이 일상적인 물질로서 관측된다. 그 밖의 소립자들은, 거대한 입자 가속기 안에서 아주 높은 에너지로 충돌을 일으킴으로써 얻어진 ‘소립자 잡탕’으로 관측된다.

다른 소립자들에게 질량을 부여한다고 알려진 힉스 입자만이 2000년 이후 관측되지 않은 소립자로 남아있었다. 힉스 입자를 관측하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은 과제였는데, 왜냐하면 이론적으로 힉스 입자의 소멸 속도가 너무 빨라서 직접 관측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대신 힉스 입자가 소멸하면서 생겨나는 다른 소립자를 관측했다.

과학자들은 힉스 입자가 짧게나마 존재했을 것이라고 예상되는 소립자들과, 힉스 입자가 처음부터 없었을 것이라고 예상되는 경우를 대조했다. 그 결과 새로운 소립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소립자는, 예견됐던 힉스 입자를 매우 닮았다. 그러나 힉스 입자와 꼭 들어맞지 않는 일부 특성들도 새로운 소립자에게는 있는 듯 하다.

이번 발견은 새로운 이론의 필요성과 과제를 과학자들에게 던져 준다. 예를 들어, [표준 모형을 지지하는] ‘초대칭 이론’에 따르면 자연에 존재하는 다섯 종류의 힉스 입자들 중 우리는 겨우 한 가지만을 발견했을 뿐이다. 올 연말 수리를 위해 2년 동안 가동이 중단되기 전까지 유럽원자핵연구소의 대형강입자충돌기(LHC)가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과학은 모순과 혁명의 과정을 통해 앞으로 나아간다. 새로운 과학적 발견과 아이디어 들은 언제나 이전까지 널리 받아들여지던 이론의 모순들을 들춰낸다. 이런 모순들은 기존의 이론을 뒤집고, 더 잘 부합하는 새로운 이론으로 과학자들은 안내한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다가 결국 새로운 과학혁명이 일어나서 다시 또 그 이론을 뛰어 넘게 된다. ‘표준 모형’ 자체가 20세기 물리학의 근원적인 모순, 즉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양자역학의 관측 결과와 불편한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해결하려는 시도였다.

과학자들은 두 개의 함정 중 한 가지에 빠지기가 쉽다. 첫번째는 연구비를 확보하기 위해 자신의 연구의 실용적 가치를 과장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신비주의인데 [저명한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이, 제대로 된 이론만 있다면 과학자들이 “신의 마음”까지도 알 수 있다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과학은 혁명이 한창일 때, 그 자신이 혁명적인 방법으로 발전해 왔다”고 주장했다. 갈릴레오와 뉴턴 같은 이들의 위대한 과학적 발견은, 자본주의 부르주아지들이 낡은 봉건 질서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등장했다. 새로운 사회 세력와 생산력은 새로운 주장들을 양산했다. 그래서 엥겔스는 “(비록) 대량생산이 과학에 일부 빚을 지기도 했지만, 과학이 대량생산에 진 빚이 무한히 더 크다”고 했다.

오늘날 우리는 자본주의가 과학을 어떻게 일그러뜨리고, 그 전진을 방해하는지도 볼 수 있다. 과학자와 국가 들은 서로 경쟁하느라 상대방이 이미 한 수고와 노력을 자기 진영에서 똑같이 반복하며 자원을 낭비한다. 과학자들은 대학 연구비를 타내려고 이윤이 보장되는 분야나 유행하는 이론을 따르는 분야에 관심을 기울일 수 밖에 없다.

이번 과학적 발견을 축하하면서도, 사람의 필요에 맞게 협력적으로 운영되는 사회에서 가능해질 과학혁명도 기대해야 한다.

출처: 영국의 혁명적 좌파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 23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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