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 주민과 제주 해군기지 반대 운동가들은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우근민이 “1만 명이 모여야 해군기지 반대”를 선언할 수 있다며, 강정마을 주민과 활동가들을 조롱하자 7월 30일 강정마을에서 출발해 각자 동서로 행진해서 8월 4일 제주시에서 “1만 명”이 모이는 강정평화대행진을 개최했다.

나는 노동자연대다함께가 주최한 ‘4일간의 대토론회’ 맑시즘이 7월 29일에 끝났기에 하루 쉬고 31일에 제주도 모슬포에 모여 있던 강정평화대행진단 서진과 합류하면서 4박 5일의 행진에 참가했다.

강정평화대행진은 말 그대로 평상시에는 버스나 택시로 움직였을 제주도의 땅을 직접 걷는 행사였다.

그만큼 힘든 것이기에 참가하기 전에 맑시즘 2012가 끝나고, 휴가를 집에서 보내면서 책을 보거나, 다른 곳을 여행하거나 아니면, 8월 4일에 있을 대학원 세미나를 가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언제 제주도의 한쪽을 걷고 강정마을만이 아닌 제주도 곳곳에서 해군기지 반대 정서를 알리면서 동시에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싶어서 참가했다.

끝이 보이지 않을 듯한 길을 계속 걷고, 휴대폰 건전지와 충전기를 가게에 놓고 오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행복한 행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진에 참가한 사람들의 구성은 정말 다양했다. 일단 내가 함께한 임보라 목사님을 비롯한 향린교회 신자들과 모처럼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와 그 밖에 통합진보당 사태, 대선, 맑시즘 2012 등 여러 사회 문제에 대해서 솔직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또한, 페이스북에서 주로 만나고, 강정마을에서도 잘 이야기 나누지 못했던 강정마을 활동가들과도 이야기 나누고, 맑시즘 2012 참가자들도 만날 수 있었다. 소식이 끊긴 지인과 제주도에 귀농한 노동자연대다함께 회원들도 만났다.

이렇듯, 노사모 회원, 학생, 가족과 함께 참가한 어린이들과 대안학교 학생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가했다. 심지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밖에 없다”며, 두 다리가 없지만, 목발과 의족에 의지해 행진에 참가해서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시민도 있었고 김정우 지부장 등 쌍용차 노동자들과 용산 철거민, 오키나와 등 해외의 평화활동가와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와 김재연 의원, 권영길 전 의원 등 누적 인원 7천 명이 이번 행진에 참가했다. “해적 기지” 발언으로 우익과 해군의 공격을 받았던 김지윤 씨도 이번 강정평화콘서트에 참가했다.

제주시까지 행진을 하면서 만난 어르신부터 어린이, 심지어 외국인을 포함한 여행객들로부터 “힘내세요!”라는 격려와 환호성을 받고, 제주소방소의 소방대원들이 더위와 습기에 지쳐 있을 행진 대열을 향해 물을 쏴주기도 했다. 이를 통해, 강정마을을 시작으로 ‘평화의 섬’ 제주도를 일제시대 때와 4.3 학살과 같은 비극이 반복될 ‘전쟁의 섬’으로 변화시키려는 이명박 정부와 건설자본에 대한 반대 여론이 광범하다는 것을 느꼈다.

반대 여론

또한, 행진하면서 느낀 점은 제주시에 들어가기 전까지 본 제주도의 여러 식당과 상점이 생각보다 한산하다는 것이었다. 푸른 하늘과 바다가 펼쳐진 천혜의 관광지에 정작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지 않은 것을 보면, 세계경제 위기의 여파가 제주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 때문인지, “뼈 속까지 반환경적”이고, “비민주적”인 이명박 정부와 강정마을 주민들의 마음에서는 “이미” 탄핵당한 “우물쭈물” 도지사 우근민이 해군기지 반대 여론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그래도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제주도민 ‘일부의 기대’와 낮은 자신감을 활용해 해군기지를 밀어붙일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 같았다.

더불어, 제주도 좌파 운동이 비교적 취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제주시 탑동 광장에서 김미화가 사회를 보고, 안치환, 들국화, 킹스턴 루디스카 등 다양한 예술가들이 무료로 공연한 강정평화콘서트에는 분명히 많은 제주도민들이 참가했지만, 정작 제주도의 조직된 진보 운동 단체는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제주지부와 제주 민권연대와 제주도의 몇몇 여성농민회, 한살림 등과 진보신당, 통합진보당 제주도당 등이 전부였다. 현재 제주 진보운동과 제주 해군기지 반대 운동이 겪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만난 몇몇 강정마을 활동가들은 “우리가 행진하는 도중에 강정마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걱정하거나, 나에게 “행진 후에 잠시라도 강정마을에 머물러 달라”고 부탁하는 등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실제로 행진 도중에 강정마을 구럼비 발파와 집회 불허 속에서 합법적으로 대중이 모일 수 있는 미사와 예배조차 방해 당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그럼에도 해군기지 반대 운동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연행을 당하고, 벌금과 재판으로 고통받고 있는 ‘강정마을지킴이’ 향린교회 임보라 목사조차 “나는 한번도 절망을 느껴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상황에서 제주 해군기지 반대 운동의 ‘절망’적 상황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마치 모든 사람들이 포기했을 때 한 노인이 “혼자서라도 산을 없애서 길을 만들 것”이라고 말한 것을 본 ‘산’이 무서워서 스스로 이동했다는 “우공이산”의 일화처럼, 제주 해군기지 반대 운동은 많은 사람들에게 해군기지 자체의 비민주성과 더불어 “구럼비 발파” 비극을 통해 환경파괴와 동아시아 국가들의 군사 경쟁으로 자신들도 ‘강정마을 주민’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고 생각한다.

우공이산

즉, ‘강정마을지킴이’ 조약골이 ‘맑시즘 2012’의 ‘제주 해군기지 – 안보를 위해 평화는 파괴되도 되는가’ 토론에서 지적한 것처럼, 이윤 추구를 위해서라면 “민주주의” 같은 겉치레조차 버릴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맨얼굴”을 보여 줬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에 분노한 많은 사람들이 소극적으로는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있는 글과 웹자보를 리트윗하고 공유하거나, 총선에서 제주 해군기지 반대 입장을 가진 후보나 정당에 투표하거나, 이번처럼 직접 제주도에 내려오면서 강정마을 주민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연대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총선에서도 “해군기지 재검토”를 주장한 민주당 의원들이 대거 당선한 것이고, 우근민 도지사도 이번 행진 이후에 또다시 “빈 말”이긴 해도 “해군기지 반대”란 말을 해야 했다.

그 점에서 강정마을을 지키는 기존의 활동과 더불어 이런 해군기지 반대 정서를 잘 모을 수 있는 방법으로 교통이 덜 불편하고, 오키나와 등 강정마을에 연대하고자 하는 해외 활동가들도 쉽게 입국할 수 있는 서울 등에서의 집회와 쌍용차, 용산참사 등 여러 의제를 합한 대규모 거리집회에 대해 좀더 고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 것 아닌가 싶다. 이를 위해서라면, ‘제주 해군기지’ 자체는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민주통합당과는 독립적인 운동을 건설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강정평화콘서트”에서 나온 “강정평화대행진” 총정리 영상에서 나온 ‘전국대행진에서 만나요’란 문구가 이런 운동의 한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 역시도 행진했을 때, “강정동 부녀회”와 “대정동 여성농민회” 분들이 준 식사를 행복하게 참가자들과 함께하면서 느꼈던 “연대”의 정을 잊지 말고, 해군기지 반대 운동과 더불어 여러 사회운동에서도 잘 활동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