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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진진했던 세계사회포럼 워크숍:
세계화와 제국주의

먼저 우리가 신제국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예전에는 유럽 제국들이 전 세계에 산재해 있던 옛 제국주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 시대는 19세기 말부터 1950년대나 1960년대까지 계속됐습니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로 옛 식민 제국들은 사라졌습니다. 이 시기에 미국은 베트남 전쟁을 통해 군사적으로 주도권을 강화하려 했으나 베트남의 게릴라 투쟁, 미국과 서방 내부의 커다란 긴장, 계급 분열, 흑인 운동, 반전 운동 등의 요인이 결합돼 결국 패배했습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미국에서 레이건 같은 강경 우파 정부가 집권했는데도 주요 서방 강대국들이 직접적인 군사 개입을 거의 하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 동안 미국은 아프리카의 앙골라나 모잠비크 같은 곳에서 싸우고 있는 군대에 무기를 지원했고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국가인 그레나다를 침공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동안 직접적인 군사적 충돌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1989년 말에 미국은 파나마를 침공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1991년] 미국 주도 하에 영국·프랑스·독일·일본 등이 이라크를 공격했습니다. 그 뒤 [1993년] 미국은 소말리아에 개입했고, 그 다음으로 [1990년대 중엽] 세르비아를 폭격했고, 다음으로 [1999년]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이 세르비아와 전쟁을 벌였고, 다음으로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치렀으며, 마침내 미국과 영국이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1990년대에는 이처럼 여러 차례 전쟁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미국은 테러에 맞서 끝없는 전쟁에 돌입했다고 스스로 엄포를 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지도적인 집단으로서 스스로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라고 명명하는 집단이 추구하는 노선은 사실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미국의 세계적 패권에 도전하는 경쟁 국가들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자본주의 체제가 겪고 있는 변화를 이해해야 합니다. 우선, 유럽 열강이 식민지에서 퇴각한 것은 단지 식민지 민중의 영웅적인 투쟁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그런 투쟁이 매우 중요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자체의 변화도 한 가지 요인이었습니다. 자본 투자가 주로 자본의 모국들 사이에서 이뤄지는 경향이 나타난 것입니다. 미국 자본은 대부분 미국 내에서 투자하고, 영국 자본은 대부분 영국 내에서, 일본 자본은 대부분 일본 내에서 투자하는 경향 말입니다. 20세기 초에는 영국 자본 투자의 적잖은 부분이 인도에서 이뤄졌지만, 1950년대에는 그 비중이 매우 작아졌습니다. 영국 자본가들의 활동 범위는 인도나 아시아가 아닌 유럽에 한정됐습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국경을 가로지르는 자본의 흐름이 엄청나게 확장됐습니다. 이러한 국제적 자본 흐름의 폭발적 증대를 세계화라고 합니다. 그것은 자본주의 기업들이 점점 더 국제적으로 사업을 벌인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한 자본주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이 다른 모든 나라의 자본에 영향을 미치고, 그 나라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중요해집니다. 신자유주의를 변호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자유 무역 덕분에 자본가들이 돈벌이에만 전념하고 국가의 일은 관심 없어 하므로 전쟁도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또한 좌파의 일부 사람들도 세계화 때문에 이제 국가는 중요하지 않으며 자본을 통제할 힘도 없다고 말합니다. 오직 다국적기업들만이 실세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매우 다릅니다. 자본가들은 해외에 투자를 많이 할수록 자기 나라 바깥의 세계를 통제할 수단이 필요해집니다. 그들은 자기 국가말고 다른 국가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본가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자기 국가의 권력을 무기로 다른 국가들과 협상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계화의 결과로서 자본주의 국가들은 국경 밖으로 더 멀리 영향력을 미쳐야 하는 처지에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미국의 상황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여전히 미국의 경제력은 세계 최강이지만 50년 전보다는 그 입지가 훨씬 약해졌습니다. 제2차세계대전 종전 직후에는 미국이 세계 총생산의 절반 정도를 차지했습니다. 세계 경제의 절반이 미국 경제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그 비중은 세계 총생산의 20~25퍼센트로 떨어졌습니다. 오늘날 유럽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과 비슷합니다. 가장 빨리 성장하고 있는 경제는 중국이며, 미국에서 어떤 사람들은 20∼30년이면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 내다보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과장인 듯한데 아무튼 그들은 그렇게 말합니다.

이런 상황에 직면한 미국 지배자들은 자기들이 그래도 한 가지 측면에서는 다른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보다 유리하다는 것에 주목했습니다. 그들의 군사력은 세계의 나머지보다 훨씬 우세합니다. 유럽 경제는 미국 경제와 규모가 대략 같은데, 미국 군사력은 유럽 전체의 군사력보다 4배나 강력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은 세계 어느 지역이든 군사적으로 지배할 수 있음을 보여 줌으로써 다른 자본가들에게 미국의 의지를 관철시키려 합니다. 다른 자본가들만이 아니라 전 세계 민중을 더욱 쥐어짜려는 것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한 지배력을 통해 미국은 IMF를, 세계은행을, WTO를 지배하려 합니다. 이는 미국 자본이 유럽 자본을 희생시켜 득을 보는 것뿐 아니라, 제3세계 국가들과 민중으로부터 마지막 한 푼의 이자까지 쥐어짜는 것도 뜻합니다. 미국은 지금도 미국 자본가들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이윤을 얻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압력을 가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자신이 다른 자본주의 강대국들보다 더 강력하게 보이도록 행동함으로써 다른 국가들이 자기 뜻을 받아들이게 만들고자 합니다. 또한 자신이 전체 자본주의 질서를 수호하는 경찰 노릇을 함으로써 미국 내에서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자들을 꺾으려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제국주의 시대의 본질입니다.

이 신제국주의 시대는 세 가지 반작용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세계 곳곳에서 점차 성장하고 있는 대중의 저항입니다. 지난 2년 동안 매우 중요한 사태 전개는 바로 반전 운동의 성장이었는데, 이 운동은 다시 시애틀 시위 이후로 성장했던 그 운동에 힘을 불어넣었습니다. “반세계화 운동”이라고도 불리지만, 더 정확하게는 “기업 세계화 반대 운동”, 더더욱 정확하게는 “반자본주의 운동”으로 불리는 그 운동 말입니다.

주로 청년들로 이뤄진 이 새로운 급진화 물결에 힘입어 시애틀 이후로 북미에서는 커다란 시위들이 벌어졌고 뒤이어 유럽에서도 30만 명이 참가한 제노바 시위, 50만 명이 참가한 바르셀로나 시위 등 베트남 전쟁 이후로 유럽에서 결코 본 적이 없는 거대한 급진화 물결이 일었습니다. 바로 이 운동이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으로 융합되고 변모했습니다. 유럽에서 열린 반전 시위의 규모는 익히 아실 것입니다. 2월 15일에 영국에서는 2백만 명이 거리로 나왔습니다. 스페인에서는 4백만 명이 나왔습니다. 이탈리아는 3백만 명 이상이었습니다. 이들 시위는 35년 전 베트남전쟁 반대 시위보다 훨씬 더 컸습니다. 새로운 정치의식을 반영하는 훨씬 큰 시위들이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신자유주의와 제국주의에 맞선 반란이 새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거리 대중 시위로 인해 에콰도르 정부와 아르헨티나 정부가 차례로 타도됐고, 최근에는 볼리비아 정부가 농민 시위대와 다이너마이트로 무장한 광부들이 합류한 투쟁으로 타도됐습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대중 운동들이 서로 융합하고 있고, 미국의 반자본주의 운동과 유럽의 거대한 반전운동도 결합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신제국주의에 대한 첫째이자 가장 중요한 반작용입니다.

그 반작용의 핵심은 단지 전쟁 또는 세계화뿐 아니라 자본주의에도 맞서 싸우는, 기업들만이 아니라 기업들의 이익을 지켜 주는 자본주의 국가에도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정치의식입니다.

둘째 중요한 반작용은 제3세계 지배자들의 대응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제3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제국주의의 이 새로운 국면도 옛 식민주의와 다를 바 없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지배계급이 제국주의에 저항해 주기를 기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기에 이것은 어리석은 기대입니다. 제3세계 자본가들 또한 서방 자본가들 못지않게 세계화를 두 손 들고 반겨 왔기 때문입니다. 영국 통치 시절의 인도에서도 간디는 비를라 가문의 집에 살았습니다. 오늘날 비를라는 인도 최대의 자본가입니다. 오늘날 비를라, 타타, 아쇽 같은 인도 기업들은 모두 다국적기업들과 합작 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오늘날 영국 최대의 철강 기업은 인도 자본가가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도 다국적기업입니다. 인도 지배계급 자신이 자본주의의 수호자들이므로 그런 사람들에게 자본주의에 저항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미친 짓입니다.

물론 미국 국가는 단지 가난한 사람들을 지배하는 것뿐 아니라 자기 이익을 다른 나라 자본가들에게 관철시키려고 하기에 다른 나라 지배계급과 갈등을 빚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1991년의]2차 걸프전 때는 흔쾌히 참전했던 프랑스도 이번 이라크 전쟁에는 반대했습니다. 이라크에 이미 프랑스 석유기업들이 진출해 있었기 때문에 미국이 이라크를 장악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일단 미국이 승리하자 프랑스는 재빨리 이라크 점령을 지지한다고 말했습니다. 독일과 여타의 국가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인도 자본주의를 봐도 사정은 같습니다. 인도 국가는 파키스탄 자본을 장악해서 중앙아시아와 중동 시장으로 진출하는 통로를 열기 원했기 때문에 파키스탄과 전쟁을 벌이겠다고 큰소리쳤습니다. 그래서 2년 전에 인도 정부는 파키스탄을 혼내 주겠다고 위협했고, 파키스탄을 인도 자본 앞에 무릎 꿇리려 했습니다. 그 때 파키스탄 자본은 인도를 상대로 단기전을 벌이면 이길 수도 있겠다고 판단했으나 지금은 인도 자본과 화해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것은 50년 전, 아시아·아프리카 등지의 유럽 제국들에서 현지 자본가들이 이따금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제스쳐를 취하곤 하던 상황과 많이 다른 상황입니다. 오늘날 현지 자본가들은 미국 자본이나 유럽 자본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이익을 위해서 제국주의의 협력자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것은, 제3세계 전역에서 유럽 제국들에 의한 식민 통치의 기억이 여전히 대중의 의식 속에 살아 있기 때문에 외세의 압력에 대한 반감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식은 두 가지 방향으로 표출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세계 곳곳의 노동자들이 농민과 도시 빈민, 실업자, 피억압 계층의 투쟁에 합류하는 새로운 운동의 일부가 되는 것으로 표출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반제국주의적 자본가들, 인도 정치권의 한 분파, 또는 민족의 이익을 위해 싸웠다는 조직들과 손잡아야 한다고 믿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 방향으로 간다면 과거에 그랬듯이 결국은 다른 자본주의 국가에 맞서 자국의 자본주의 국가를 지지하게 됩니다. 인도 좌파의 일부가 1961년과 1962년에 중국에 맞서 인도를 지지했고 1970년에는 파키스탄에 맞서 인도를 지지했듯이 말입니다. 2∼3년 전에 그들 가운데 일부는 인도 파키스탄 분쟁에서 다시 인도를 편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민족 자본가들은 그들 나름의 이해관계가 있습니다. 제국주의에 맞서 효과적으로 싸울 수 있는 방법은 거대한 대중 행동을 건설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려면, 민족주의 운동이 아닌 국제주의적 반제국주의 운동이 필요합니다.

정리

인도가 (신)식민지인가? 인도는 식민지가 아닙니다. 인도가 식민지라면 우리는 미국 제국주의에 반대해 무장 투쟁을 벌이는 인도 부르주아지를 지지할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은 식민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점령에 반대해 투쟁하는 팔레스타인 부르주아지를 지지합니다. 단지 점령지에서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그렇습니다.

또한 이라크는 군사 점령 상태입니다. 우리는 이라크에서 미국에 맞서 무장 투쟁을 벌이는 사람은 누구든지 지지합니다. 우리는 그가 시아파인지, 수니파인지, 전에 바트당원이었는지, 스탈린주의자인지 묻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가 무력을 사용해 미군을 자기 나라에서 쫓아낼 권리를 지지합니다.

우리가 이라크인이라면 우리는 이라크 노동자들을 지지할 것입니다. 영국·미국·인도·한국에 사는 우리가 맨 먼저 말해야 할 것은 모든 이라크인들에게는 미국에 맞서 싸울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인도에서 누군가가 인도 부르주아지는 진보적이라고 말한다면 저는 그에게 1980∼81년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2년 전 인도 아(亞)대륙에서 핵전쟁이 벌어질 뻔했을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인도 좌파의 역사를 알고 있습니다. 인도의 주요 공산당인 인도공산당은 1962년에 인도가 [중국의] 공격을 받고 있으므로 자신들은 중국에 맞서 인도 국민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1980년과 1981년에 두 공산당들은 모두 인도가 파키스탄과 대립하고 있으며 파키스탄은 미국 제국주의를 대리하므로 자신들은 인도가 파키스탄을 상대로 벌이는 전쟁을 지지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식의 민족주의를 방어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완전히 잘못됐습니다.

인도는 아류(亞流) 제국주의입니다. 인도는 파키스탄과도 대립했고, 아프가니스탄과도 대립했으며, 스리랑카와도 대립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인도가 식민지가 아니라고 말해야 합니다. 인도는 다른 자본주의 강대국보다는 약한 자본주의 강대국입니다.

물론 세계 질서의 수준에서 보면 미국이 단연 최대 자본주의 강대국입니다. 그 밑에 유럽 열강과 일본이 있고, 그 밑에 이른바 중급 강대국들, 즉 남아공·브라질·중국·인도 등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충돌합니다. 영국이나 미국에 사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런 충돌이 벌어졌을 때 우리 나라가 패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도나 브라질 사람들은 착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미안하지만, 브라질에서 문제는 미국 제국주의만이 아닙니다. 브라질의 자본 투자 중 절반은 유럽에서 옵니다. 유럽의 대자본가들이 브라질의 폴크스바겐 공장을 사러 옵니다. 네슬레는 물을 샀고, 프랑스 기업들도 물을 삽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브라질 자본가들도 미국 자본가들만큼이나 룰라를 통제하고 싶어한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지배를 원하고 자신들의 뜻대로 하고 싶어합니다. 상황이 그런데도 단지 외국 자본만이 문제라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브라질에서 으뜸가는 투쟁은 브라질 국가에 대항하는 투쟁이지 미국 군대에 맞서는 투쟁이 아닙니다. 브라질에는 소규모 미군 부대가 있을지 모르지만 중요한 투쟁은 브라질 국가에 대항하는 투쟁입니다.

인도에서 여러분이 맞서 싸워야 하는 가장 중요한 투쟁 상대는 인도 국가입니다. 여러분이 맞서 싸워야 하는 가장 중요한 정치 세력은 힌두교 애국주의자들입니다. 그들과 나란히 옛 국민회의당 민족주의자들도 있습니다.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오늘날 세계에서 어떻게 싸워야 할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째, 마지막 [청중석]발언자의 주장에 약간 이견이 있습니다. 세계무역기구(WTO) 안에[선진국과 제3세계 사이에] 충돌이 존재한다는 그녀의 말에는 약간 모순이 있습니다. 분명히 인도 산업 자본가들은 WTO에 불만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를 이용해 WTO를 개혁할 수 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영국과 유럽연합의 어떤 사람들은 지난 WTO 회담에서 유럽과 미국이 패배하는 것을 보고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당시 저항을 주도한 남아공·중국·인도·브라질 네 강국을 조금 자세히 살펴보려 합니다. 이 네 나라 대표단들이 어떤 자들인지 생각해 봅시다.

남아공에서는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를 유지했던 백인 엘리트들이 여전히 산업을 지배합니다. 그리고 브라질에서는 농민들의 땅을 사탕수수와 콩 경작지로 둔갑시킨 농업 수출 자본들이 지배적 세력입니다. 인도에 사는 사람들은 비를라·타타 가문, 그리고 다른 인도 산업가들과 캘커타에 직물공장을 소유한 자본가들이 대중의 이익을 위해 공장을 운영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중국 대표단은 국유기업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사기업으로 돈을 쏟아붓는 자들과 사적 자본가들을 대표합니다.

이들은 각각 자기 나라 자본주의의 이익을 대표합니다. 그리고 WTO는 바로 그것을 위한 기구입니다. WTO는 각국 자본주의들이 모여서 논의하는 장소이고 우리는 바로 그것에 반대합니다.

우리는 국제통화기금에 반대하는 것처럼 세계 자본주의의 대표 기구인 WTO에 반대합니다. 나는 유엔에도 반대하는데, 유엔은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이 모여서 협상하고 서로 더러운 거래를 하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진정한 국제 자본가들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이 나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난 30년 간 이러한 자본가들의 성장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생산과 금융이 국경을 넘나들고, 상품 교환이 국경을 초월해 엄청나게 팽창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로 누가 이 기업들을 운영하고, 더 중요하게는 누가 소유하고 통제하는지 본다면, 이들 기업이 여전히 압도적으로 국민국가, 특히 선진국들 내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를 봅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세계적 기업입니다. 전 세계 개인용 컴퓨터 사용자의 90퍼센트가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까지 ‘마이크로소프트’ 경영자들은 죄다 미국인들이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제 막 외국인 경영자들을 영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마이크로소프트’는 미국 회사입니다. 엑손을 봅시다. 내가 알기론, 엑손의 외국인 경영자는 스페인 출신 한 명뿐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미국인입니다.

지금까지는 미국 기업만 예로 들었습니다. 영국에서는 경영자가 10여 명이라면 한두 명이 외국인인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거의 모든 경영자가 독일인입니다. 이처럼 기업 지배권은 국가별로 조직돼 있습니다. 국가별로 조직되는 이유는 자본주의가 국가를 통해서 작동하고, 국가를 이용해 그 이해관계를 관철하며, 국가를 이용해 다른 곳에서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라크 전쟁의 한 요인은 미국 자본가들이 이라크의 석유 자원을 지배하고 싶어했기 때문입니다. 원래 러시아와 프랑스 자본들이 이라크에서 영향력이 있었던 점도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요인은 미국 자본의 세계 경제 지배력이 50년 전보다 약해진 것입니다. 사실, 라틴아메리카에 투자한 외국 자본 중 절반은 유럽 자본이지 미국 자본이 아닙니다. 미국 자본은 [경제적으로는] 약해졌지만 군사적으로는 다른 어느 때보다 강력하기 때문에 이러한 이점을 이용해 자신의 경제적 협상력을 강화시키려 합니다.

‘미국의 새로운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를 보면 미국 자본은 실제로 새로운 미국의 세기, 미국의 헤게모니가 전 세계에서 지속적으로 관철되는 21세기를 원함을 알 수 있습니다. 저들은 단지 전 세계 빈민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 자본가들도 노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들은 프랑스를 모욕한 것입니다. 저들은 프랑스를 “치즈를 먹는 원숭이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저들은 그래서 ‘프렌치 프라이’를 ‘프리덤 프라이’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미국 제국주의 외에 다른 제국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막상 아프리카에 가면 강력한 프랑스 제국주의를 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 군대는 아이보리 코스트를 점령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전에 프랑스 화폐 프랑을 사용했고 지금은 유로화를 사용합니다. 이를 통해 그 지역 경제는 프랑스 경제와 연결돼 있습니다.

영국도 마찬가지입니다. 10년 전에 영국은 미국과 함께 전쟁[1991년 걸프전]에 참전해서 이겼습니다. 영국은 [1982년] 포클랜드 또는 말비나스라고 부르는 섬을 둘러싸고 [아르헨티나와] 전쟁을 벌였습니다. 마거릿 쌔처는 아르헨티나가 이 섬을 장악한 것을 영국이 세계 일부분에서 행사하고 있는 제한적 헤게모니에 대한 도전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영국은 당시 전쟁을 시작한 후에야 비로소 미국이 자기편에 서도록 설득했습니다. 따라서 영국은 고유한 제국주의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예들이 있습니다.

어떤 인도 사람들은 중소 규모의 자본주의 국가들을 제국주의라고 부를 수 없다고 말합니다. 미안하지만, 레닌은 제국주의를 “자본주의 최고 단계”라고 말했지, “거대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나 “한 국가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본주의의 전체 논리가 국민국가의 국경을 초월하기 때문에, 이들이 국경을 넘어서 침략과 점령과 군사 개입을 하게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인도는 바로 지금 군사적 모험을 감행중입니다.

왜 인도는 카슈미르를 점령하고 카슈미르 민중이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도록 위협할까요? 만약 카슈미르 민중이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고 인도로부터 독립한다면 뭄바이나 캘커타의 노동자들이나 오리사와 우따르 쁘레데쉬의 농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만약 카슈미르 민중이 독립하면 인도 농민들이 피해를 입을까요?

인도 자본가들은 해를 입을 것입니다. 그들의 이익이 커다란 타격을 입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도 자본주의와 인도의 전략적 힘을 약화시키겠지만 인도 노동자들에게 해를 주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인도의 진지한 사회주의자들은 모두 카슈미르 민중의 자결권을 지지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카슈미르 민중이 파키스탄에 합류하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발루치스탄 민중처럼 억압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정권은 인도 정부가 아니라 카슈미르 민중에게 있습니다. 이것이 기본 원칙입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인도가 카슈미르를 억압한다면 인도는 제국주의라고 불릴 만합니다. 만약 인도가 파키스탄과 전쟁을 벌인다면 그것은 제국주의 전쟁일 것입니다. 미국처럼 강력한 제국주의는 아니겠지만 작은[아류] 제국주의는 될 것입니다.

이것은 1980년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경우와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그들이 핵무기나 핵 프로그램을 갖고 있었다면 어쩌면 서로 사용했을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바로 제국주의의 예입니다. 작지만 제국주의는 제국주의입니다.

또, 중국이 서부의 무슬림 인구를 지배하면 그것도 제국주의라고 불러야 합니다. 미국 제국주의보다는 작을지라도 말입니다.

우리는 미국 제국주의가 주된 적이라고 말합니다. 미국은 다른 지역에서 경찰 행세를 하고 싶어합니다. 미국은 경찰 노릇을 하고 그 대가를 원합니다. 이것은 마피아가 제공하는 보호와 비슷합니다. 따라서 누구든 보호를 받아들이면 그와 동시에 착취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단호히 미국 제국주의에 반대하며, 지금 이라크 점령과 팔레스타인 점령에 반대하는 투쟁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 점에 관한 한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이 투쟁 속에서 우리[노동계급]의 동맹 상대는 전 세계 농민이지 국민국가의 지배계급이 아닙니다. 우리는 협소한 민족주의에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민중은 민족 해방 투쟁 당시 많은 약속이 제시됐다가 나중에 자기 지배계급이 이 약속을 배신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그 중 일부는 민족주의적 구호를 계속 사용합니다. 우리는 그들[피억압 민족들]과 관계를 끊어서는 안 되지만 우리 자신이 그런 구호를 사용해서도 안 됩니다. 반자본주의자들은 국제주의적이고, 우리는 국제적으로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우리가 세계화에 저항하는 전 세계적 운동을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사실, 시애틀 시위 이후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하고 말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용두사미가 될 것이라고 말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프라하 시위 이후 이제 반세계화 운동은 끝났다고 말한 사람들이 생각납니다. 그런데 제노바 거리에서 30만 명이 시위를 벌였습니다. 당시 청년들이나 학생들만 시위에 참가한 것이 아닙니다. 제노바에서는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원들도 싸웠고 경찰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 뒤 바르셀로나 거리에서는 50만 명이 시위를 벌였고 2월 15일에는 1천5백만 명이 시위를 벌였습니다.

조지 부시가 런던에 왔을 때 우리는 런던의 절반을 마비시켰고, 그래서 부시는 런던 시내를 돌아다닐 수 없었습니다. 그는 겨우 여왕의 궁전이나 총리의 집무실에만 갈 수 있었습니다. 노동조합원들, 학생들, 청년들, 노인들 등등 모두 시위에 참가했습니다.

1960년대처럼 우리는 새로운 운동의 탄생을 보고 있고, 우리는 모두 이 새로운 운동의 일부가 돼야 합니다. 그 운동 안에서 우리가 토론하고 논쟁하는 것이 중요하며, 따라서 세계사회포럼은 중요합니다.

체제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 이 속에서 서로 토론하고 논쟁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세계사회포럼 같은 곳이 중요합니다.

나는 이번 세계사회포럼이 전보다 훨씬 다양했다고 생각합니다. 달릿 권리 옹호 단체, 여성 권리 옹호 단체, 비조직 노동자, 외채 문제에 관심있는 사람들, 전쟁을 걱정하는 사람들 등 온갖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어떤 조직들은 활동가들로 구성돼 있고, 일부 비정부기구(NGO)들은 목적이 불투명합니다. 한 자리에 모이는 가운데 사람들은 자신들이 더는 고립돼 있지 않고 하나의 투쟁 대의에 헌신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가올 총선에서 힌두교 애국주의 정당인 BJP가 승리할 것이라고 모두 예상하고 있는 인도에서 다양한 운동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애국주의와 종단주의를 거부하고 진정한 사회주의 사회를 추구하는 세력들이 존재한다고 느낄 것이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