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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3일 ‘이주노동자 투쟁의 날’:
“고향에서 우리는 가난했지만 노예는 아니었다”

지난 9월 23일 오후 2시 서울역에서 ‘전국 이주노동자 투쟁의 날’ 집회가 열렸다. 서울, 수원, 안산, 인천, 대전, 아산, 청주, 김해, 대구, 경주, 부산, 양산 등지에서 1천여 명이 모였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작업장을 옮길 이주노동자의 자유를 박탈한 것이 전국에서 이들을 불러 모았다. 지난 3개월 동안 전국에서 이 지침 철회를 요구하는 항의 운동이 벌어졌음에도, 정부는 꿈쩍도 안 하기 때문이다. 베트남, 캄보디아, 네팔,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필리핀, 중국, 버마 등 다양한 국적의 이주노동자들이 참가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반감이 매우 광범하다.

9월 23일 오후 서울역 앞에서 열린 ‘사업장 변경지침 철회! 사업장 이동 자유 보장! 고용허가제 폐지! 노동기본권 쟁취! 전국 이주노동자 투쟁의 날’ 집회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우리는 사람입니다! 기계가 아닙니다" 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현옥

“이주노동자의 목소리를 들어라!”라는 이날 집회 제목처럼, 연단에 오른 이주노동자 연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그동안 쌓여 온 불만들을 쏟아내며, 한국 정부의 위선과 차별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베트남 이주노동자는 “이번 지침이 브로커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번 지침은 우리 노동자들이 사업장을 옮기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이 오래 근무할 수 있는 근무 환경을 만드는 데 노동부가 노력이나 해봤냐” 하고 따졌다.

수원이주민센터 캄보디아 노동자 대표는 “회사를 자주 옮기는 것이 문제인가요? 한 사업장에서 월급을 제대로 주고, 사고 나지 않는 작업 환경 만들어 주고, 식사 시간과 쉬는 시간 보장하고, 차별하지 않으면 여러분들은 그 회사 떠나고 싶겠어요? 회사를 옮기는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라며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폭로했다.

방글라데시 노동자의 생생하고 통렬한 발언은 많은 지지와 박수를 받았다.

“한국에 오기 전에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라 들었다. 그런데 민주주의는 개뿔이었다. 우리 아빠는 친구도 5년 사귀면 가족이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 들어온지 20년인데 아직도 노예다. 고향에서 나는 가난했지만 노예는 아니었다.

“노동부 장관은 일 하나 안하고 회식자리서 술마시면서 노동정책 정하는데, 그런 사람말고 여기있는 우리 노동자 중에 한 명을 장관시키면 훨씬 잘 할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이런 나쁜 정책들을 우리 이주노동자에게 먼저 시험해보고, 그 다음에는 분명 한국 노동자들에게도 적용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 노동자들이 우리와 함께 해야 한다.”

한 캄보디아 여성 이주노동자는 부당한 차별과 처우를 규탕하는 연설 도중에 울분을 참지 못해서 울먹거리기도 했다. 그녀는 한국에서 이주노동자의 목소리가 없는 것을 표현하고 싶어서 수화를 배웠다며 발언 중간에 수화를 하기도 했다. 수화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도 그녀의 몸짓에서 느껴지는 절절함과 분노가 피부로 느껴질 정도였다.

23일 오후 서울역 앞에서 열린 ‘전국 이주노동자 투쟁의 날’ 집회에서 한 이주노동자가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 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이윤선

이주노동자들은 “우리는 동물이 아니다”,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자신들이 당하는 학대와 차별, 모욕적 대우에 대해 자신들도 감정이 있는 인간이고, 상처받고 고통을 느끼는 인간이라고 외쳤다.

정작 한국 사회가 이주노동자들을 필요로 하면서도, “피부색이 다르다고,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고 차별”하는 것은 지독한 위선이다. 버마 노동자의 말처럼 “우리는 한국 경제 발전을 위해 일하고 있다. 그런데 그만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이유가 뭔가.”

필리핀 이주민은 “우리가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노예처럼 일하는 것은 체제가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 체제는 바로 자본주의이다. 노동자들은 건물을 짓고 일을 하지만, 결국엔 거지가 될 수 밖에 없다. 이 나쁜 체제에 맞서 한국인과 이주 노동자들이 단결해서 싸우자!”라며 부조리한 체제가 원인임을 강조했다.

이주노동자들이 이렇게 분노한 이면에는 이명박 집권 기간 내내 후퇴해 온 이주노동자 정책에 대한 반감이 있다.

이명박 정부는 고용허가제를 사용주들의 편의와 이익만을 따라 개악해 왔다. 직장 이동을 가로막고 계약 기간을 3년으로 연장해 사실상 강제 노동을 강요하고, 임금을 삭감했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이 퍼뜨리는 범죄와 질병을 차단해야 한다며 이주노동자들의 입국과 체류 자격을 더 강화하고 인종차별적 인식을 앞장서 조장해 왔다.

이런 불만이 지금 이주노동자들의 저항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우다야 이주노조 비대위원장의 말처럼 “오래 일하면 우리를 인정해 줄 것이라는 기대는 꺾였다.” 기대가 실망과 분노로 바뀐 이주노동자들은 이제 “스스로 나서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운동에 막 새롭게 합류한 새로운 참가자들이 이주노동자 운동에 커다란 활력과 투지를 불어넣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노동부의 지침을 반드시 폐기시켜야 한다는 투지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두 시간이 넘도록 연단에서 분노를 쏟아냈고, 집회 참가자들은 이 발언에 귀를 기울였다. 뜨거운 햇빛 아래 긴 시간 진행했지만 참가자들은 생기가 넘쳤고, 서울역에서 명동까지 이주노동자들과 한국인들이 섞여 함께 구호를 외치며 벌인 도심 행진은 집회 참가자들의 사기를 북돋았다.

"직장 이동 자유 보장하라!" 9월 23일 오후 서울역 앞에서 열린 ‘전국 이주노동자 투쟁의 날’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명동 성당까지 구호를 외치며 가두행진을 하고 있다. ⓒ김현옥

이주노조 비대위 위원장 우다야 동지를 비롯한 여러 이주노동자 운동 리더들은 더 많은 이주노동자를 조직하고, 스스로 투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들의 헌신과 새로운 이주노동자들이 보여 준 활력이 이주노동자 운동, 그리고 이주노동자와 연대하는 한국인들에게도 영감을 주고 있다. 이런 상호 간의 상승 작용이 자신감을 고무하고 연대를 더욱 확대하는 좋은 발판이 될 수 있다.

이번 집회는 연대가 더 확대됐다는 점에서도 매우 고무적이다. 지난 8월 19일 집회보다 많은 30여 단체와 노조들이 이 집회에 참가해 연대했다. 민주노총의 여러 지역본부들, 공무원 노조 서울본부, 건설노조 활동가들 외 여러 노동자들부터 동성애자인권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조계종 노동위원회 등이 참가했다.

집회에 오지는 못했지만 많은 노조들과 단체들이 이 집회 기금 모금에 동참했다. 집회 당일 모금만 1백30여만 원이 걷혔다. ‘노동자연대다함께’ 회원들도 이 집회 건설에 적극 동참해 회원과 지지자 1백여 명이 참가했고, 거리와 모임 등에서 25만 원을 모금을 전달했다.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은 연설에서 “민주노총은 이주노조를 엄호하고 지지하면서 함께 투쟁하겠다”고 했다. 이제 막 다시 전진을 시작한 이주노동자 운동에 민주노총의 실질적인 연대는 커다란 힘이 될 것이다.

계속되는 이주노동자들의 저항과 투쟁에 연대와 지지를 이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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