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우리 자신과 후세를 위해 지속가능한 미래를 원한다. 일자리, 빈곤 탈출, 질 좋은 교육, 건강보험, 주택을 원한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위기에 빠진 지금, 이 체제가 이런 것들을 제공할 수 있을까? 존 몰리뉴가 이 물음에 답한다.

존 몰리뉴는 아일랜드 마르크스주의 이론지 〈아이리시 맑시스트 리뷰〉의 편집자이자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은 무엇인가?》(책갈피), 《사회주의란 무엇인가?》(책갈피)의 저자다.


오늘날 위기는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인가?

전 세계가 경제 위기에 발목 잡힌 지도 어느새 4년이 넘었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는 이번 경제 위기는 회복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최근 세계경제에서 가장 괄목할 성장세를 보인 중국조차 경기 후퇴를 겪고 있다.

따라서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을 낮추려는 공격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혁명가 칼 마르크스가 주장했듯, 불안정성은 자본주의의 근본 속성 중 하나다. 자본주의 체제는 호황과 불황, 즉 경제의 팽창과 수축을 반복한다.

그러나 이번 경제 위기의 근원은 수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후 호황이 끝날 즈음 기업의 이윤율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지난 수년 동안 자본가들은 거대한 신용 거품으로 이런 수익성 하락을 감춰 왔다. 직접 투자보다 금융 체계를 활용한 기금 대출이 더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런 신용 거품이 언제까지나 계속 확장할 순 없었다. 2008년에 금융 거품이 꺼지자, 전 세계 금융 체계는 마비됐다. 그 뒤로 거듭거듭 구제 금융이 투입됐지만 이미 망가진 금융 체계는 개선되지 않았다. 

멕시코 벽화 운동의 거장 디에고 리베라의 1934년 작품 “십자로의 남자” 전 세계적 자본주의 위기는 우리에게 근본적 변혁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부적합한 인물이 경제를 운영하는 게 문제 아닌가?

물론 오늘날 경제를 주무르는 인사들이 부적합한 인물들인 것은 맞다. 탐욕스럽고 노동자를 경멸하는 이 정치인·관료 들은 빈부 격차를 늘리는 데 여념이 없다.

정말 꼴 보기 싫고 하루빨리 사라져야 할 존재이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이 문제의 근원은 아니다.

세계경제 위기는 보수당 집권 전인 2010년에 시작됐고, 그 출발이 미국 월스트리트였다.

당시 미국은 그 끔찍한 조지 부시와 공화당이 집권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뒤 조지 부시를 버락 오바마로 교체해도 위기가 해결되거나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사태가 전개되지 않았다.

프랑스에서는 프랑수아 올랑드가 좌파의 희망으로 떠오르며 수백만 표를 획득해 대통령에 당선했지만 긴축 정책을 중단하지 않았다.

사악하기 짝이 없는 우파 정부를 끌어내리는 것은 훌륭한 성과겠지만, 그 자체로 바뀌는 것은 별로 없을 것이다.

만약 전 세계 정부들이 신자유주의적 긴축 정책을 철회하면 어떨까?

많은 좌파가 사민주의 정당을 비롯한 전 세계 정당들이 신자유주의로 표현되는 일련의 전망과 정책들을 수용한 것이 문제라고 본다.

신자유주의란 사회의 모든 영역이 시장, 즉 이윤과 자본주의 경쟁 논리에 복속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상 체계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시장을 가만히 내버려 둘 때 경제적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나서 사람들을 도우면 문제만 악화할 뿐이라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부자들의 소유를 늘려서 자본주의의 수익성 위기를 돌파하려고 고안된 지배계급의 프로젝트였다.

신자유주의 반대 진영은 신자유주의가 불평등과 빈곤을 증대시킨다고 비판한다. 또 긴축 정책은 평범한 사람들의 소비력을 떨어뜨려 위기를 악화시킬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모두 옳은 지적이다. 그러나 종종 케인스주의 정책을 해결책으로 제시하는데, 이 정책으로는 결코 경제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정부 지출을 늘려서 위기에서 벗어날 순 없을까?

정부 지출을 늘려 불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바로 케인스주의다. 케인스는 1930년대 대공황에서 벗어나려면 대규모 공공 지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영국 귀족학교 이튼스쿨 출신의 케인스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노동계급에게 적대적인 속물이었지만, 오늘날 케인스주의 옹호자들은 대체로 좌파에 속한다. 

사회주의자로서 우리는 경제 성장을 위해 정부 투자를 바라는 사람들과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학교, 병원, 주택 공급을 위한 대규모 투자 프로젝트를 요구하는데, 우리도 이런 계획을 지지한다. 다만 우리는 이런 투자가 자본주의 체제의 이윤을 회복시킬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우리는 노동계급이 일자리를 갖길 바란다. 또 평범한 사람들에게 유용한 건물을 짓는 것도 찬성한다.

그러나 경제적 수요를 진작시켜 위기를 해결한다는 케인스의 주장은 자본주의 체제의 문법으로 보더라도 설득력이 없다. 자본주의의 위기는 수요가 아니라 생산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체제의 회복을 위해 평범한 사람들에게 위기의 고통을 전가하는 법만을 안다. 우리가 이 썩은 체제를 타도하는 데 케인스는 도움이 못 된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유일한 대안이 아닌가?

세계사를 살펴보면 다양한 경제 체제를 발견할 수 있다. 그중 자본주의는 분명 이전 봉건제보다 강력한 체제다.

그러나 동시에 자본주의는 엄청난 비극을 일으킨다. 청년 실업자들은 ‘잉여’ 취급을 받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약 10억 명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어처구니없는 불평등이다. 세계은행의 통계를 보면, 전 세계 상위 1퍼센트가 소유한 부는 하위 57퍼센트의 부를 모두 합친 것만큼 많다. 또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세 사람이 소유한 부가 가장 가난한 47개 나라가 생산하는 부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크다.

자본주의가 가하는 위협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경제 위기는 경쟁을 부추기고, 경쟁이 첨예해질수록 인종주의와 파시즘, 나아가 전쟁의 가능성도 커진다.

기후변화는 또 어떤가? 이 또한 자본주의가 단기적 이익을 좇아 지구의 자원을 체계적으로 약탈한 결과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자본주의를 전복해야 한다.

자본주의를 타도하는 것이 가능할까?

자본주의 타도가 허황된 목표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장구한 인류의 역사에서 자본주의가 등장한 것은 겨우 몇 세기 전일 뿐이다. 또 자본주의가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할 이유도 없다. 이 자본주의를 타도할 힘을 갖고 있는 것은 바로 노동자다.

노동자의 노동은 사장의 이윤을 포함해 자본주의에서 모든 것을 생산한다. 근무지가 공장이든 사무실이든 상점이든 사장이 아니라면 노동계급의 일부로 봐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는 결국 노동자의 노동에 의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경험은 이와 사뭇 다르다. 노동자들은 흔히 탄압 또는 괴롭힘의 대상이 된다. 그러다 보면 사회에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는 것처럼 느끼기 쉽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 체제가 우리에게 가하는 압력이다.

그러나 투쟁에 나서면서 우리는 주변 상황이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더 중요한 사실은 노동자들이 파업할 때마다 우리가 그 힘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노동의 제공을 거부해 일터를 마비시키는 파업은 결국 우리가 없다면 사장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해 준다. 파업은 노동자들이 어떻게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킬 수 있을지 보여 주는 단초가 된다.

사회주의가 가능할까?

1917년 러시아 혁명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건 중 하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혁명은 다른 나라로 확산되지 못했고, 특권을 가진 관료 엘리트가 출현해 혁명의 성과를 가로채 갔다.

러시아 사회는 노동자들의 통제에서 벗어나 국가자본주의 사회로 변모했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사회주의”는 국가자본주의 러시아와는 전혀 다른 사회다. 사회주의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또 노동자들이 이윤을 좇지 않고 인간의 필요에 기초해 민주적으로 생산과 분배를 계획하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대중 혁명이 독재자를 끌어내리는 것을 목격한 바 있다. 튀니지와 이집트 민중의 투쟁은 혁명이 결코 백일몽이 아니란 사실을 잘 보여 준다.

식량, 주택 등 전 세계 인구가 풍족한 삶을 누리는 데 필요한 모든 것들은 이미 갖춰져 있다. 우리는 충분히 풍요로운 세계에 살고 있다. 문제는 이 모든 부를 부자들이 통제한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필요를 충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사회야말로 진정 우리 모두가 꿈꾸는 미래다.

출처: 영국의 혁명적 좌파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 23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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