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시대에 민주주의는 뜨거운 쟁점 중 하나다. 일각에서는 꽤 오래전부터 ‘민주 대 반민주 구도는 철 지났다’면서 정치적 민주화가 이미 완료된 과제인 것처럼 오도하는 경향이 있었다. 반대로 일각에서는 우파 집권이 곧 군사독재로의 회귀를 뜻하기라도 하는 듯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양 극단의 오류를 피하면서 사태를 냉철하게 파악하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갖는 속성을 역사적·이론적으로 조명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에 친화적이라는 생각이 어느 정도는 상식처럼 퍼져 있다. 실제로 근대 민주주의의 발전은 자본주의의 발전과 어느 정도 역사적 관련성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둘 사이의 연결고리는 흔히 알려진 것보다 훨씬 약하다. 

봉건제 하에서 부르주아지는 봉건 귀족에게 종속돼 있었다. 당시에 부르주아지는 이미 다른 계급을 착취하는 위치에 있었지만 수적으로는 소수였다. 그래서 봉건 귀족에 맞선 자신들의 투쟁에 다른 사회 세력들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부르주아지는 자신들이 봉건 귀족을 제외한 사회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세력인 것처럼 행세했다. 그들은 착취하는 계급과 착취 당하는 계급 사이의 이해관계 갈등을 은폐하려고 “자유, 평등, 박애” 같은 추상적이고 보편 타당해 보이는 수사들을 동원했다.  

이렇게 해서 하층 계급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인 부르주아지가 결국 승리했다. 그러나 부르주아지가 약속했던 인간의 “보편적” 권리들은 실제로는 전혀 보편적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의 독립 선언문이 규정한 “생명과 자유, 그리고 행복을 추구할 천부적 권리”가 흑인과 원주민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은 것이 단적인 예다.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에 해당하는 보통선거권도 마찬가지였다.

전 세계 부르주아지들은 적어도 19세기까지는 보통선거권을 고려할 가치조차 없는 요구로 치부했다. 도둑이 제 발 저리듯, 그들은 가진 것 없는 대다수 인민이 투표권을 얻게 된다면 결국 쪽수를 앞세워 사유재산을 철폐할 것이라며 지레 겁을 먹었다. 19세기 영국 휘그당의 역사가였던 맥컬리는 “보통선거권은 문명의 존립과 결단코 양립 불가능하다”고 했다. 

결국 보통선거권을 쟁취하는 일은 노동계급의 몫으로 남겨졌다. 그것은 실로 기나긴 투쟁이었다. 1838~59년의 차티스트 운동, 1848년 유럽을 휩쓴 혁명, 1871년 파리 코뮌, 20세기 초의 여성 참정권 운동, 1950~60년대 미국 공민권 운동, 그리고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아랍 혁명에 이르기까지….

1900년까지도 주요 자본주의 국가 17곳 가운데 온전한 의미의 보통선거권이 도입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결정적으로 독일(1919년), 영국(1918년) 등지에서 성인 남녀 모두에게 참정권이 부여된 것은 러시아 혁명을 필두로 1차 세계대전 말기에 유럽을 뒤흔든 반란의 물결 덕분이었다.

언론과 출판의 자유, 집회·시위·결사의 자유, 노동3권 등 보통선거권과 한묶음을 이루는 현대 민주주의의 여타 요소들도 마찬가지로 오랜 세월 진퇴를 거듭해 온 살벌한 전투를 거쳐 달성됐고,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는 달성되고 있거나 빼앗기고 있다.

이렇게 보면 현대 민주주의는 부르주아지에 맞선 무산계급의 투쟁으로 얻어낸 값진 성과물이다. 그러나 부르주아지가 당장 눈앞의 노동계급 투쟁에 떠밀려서만 민주주의를 ‘양보’한 것은 아니다. 예컨대 영국에서 유권자 층을 본격적으로 확대한 2·3차 선거법 개정은 차티스트 운동이 패배하고 한참이 지난 1867년과 1884년에 이루어졌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부르주아지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초 우려와는 달리 민주주의가 지배자들의 기득권을 크게 위협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많은 경우에 민주주의는 반체제 세력들을 온건하게 길들이고 불평등한 사회 질서에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함으로써 부르주아지의 지배를 더욱 공고화 해주는 효과마저 있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그것은 바로 현대 민주주의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즉 부르주아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라는 용어 자체는 인민(demos)의 지배(kratia)를 뜻한다. 그러나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그것이 가장 발달된 곳에서조차 인민의 지배를 결코 실현하지 못한다. 마르크스의 표현처럼, 현실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언제나 “부르주아지의 독재”였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가장 민주적으로 선출된 의회나 정부조차도 사회의 부를 생산하는 주요 수단을 소유하거나 통제하지는 못한다. 그러한 부의 생산수단은 대부분 선출되지 않은 자본가들의 손에 남아 있으며 자본주의적 경쟁의 법칙에 따라 운영된다. 그런 까닭에 대부분의 선출된 정부들은 자본가 계급의 집단적 이익을 침해하는 정책을 감히 시도하지 않는다. 설령 시도하는 정부가 있다고 해도 자본가들은 투자 중단, 폐업, 자본 도피, 환투기 공격 등으로 해당 정부를 손쉽게 무릎꿇릴 수 있다. 프랑수아 미테랑, 빌 클린턴, 우고 차베스, 노무현 모두 이런 공격의 표적이 된 바 있다. 오직 차베스만이 어느 정도 굴복하지 않고 버텼다. 

둘째, 선출된 의회는 선출되지 않은 군부, 경찰, 검찰, 법원, 경제 부처 등과 나란히 공존한다. 이 국가 기관들은 온갖 사회·경제·이데올로기적 끈으로 부르주아지와 연결돼 있다. 사실 국가 관료들의 이해관계는 자기 국가의 대내외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있는데, 이를 달성하기 위한 물질적 기초는 결정적으로 자국 기업들의 덩치와 경쟁력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국가 관료들의 이해관계와 자본가들의 이해관계는 근본에서 겹친다. 이 국가 관료들은 정부 정책의 실행뿐 아니라 방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최악의 경우 군부가 나서서 선출된 정부를 제거할 수도 있다.

셋째,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한 사회의 지배적인 사상은 지배계급의 사상이다. 언론과 교육 시스템은 경제 성장 논리, 국가 안보 논리 등 지배계급에게 유리한 이데올로기를 끊임없이 대중에게 주입하며, 정치 무대에서도 이런 이데올로기가 ‘책임 있는’ 정치 세력이라면 당연히 수용해야 할 전제로 여겨진다. 따라서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도전하는 노동계급 정치 세력은 선거를 포함한 정치 과정 전반에서 처음부터 압도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안고 시작할 수밖에 없다.

과소대표

넷째, 자본주의에서의 삶이 워낙 고되고 삭막한 탓에 일상적 시기에 노동계급과 빈민 대중의 상당수는 정치에 관심을 가질 여유조차 없다. 부유층보다 빈곤층의 투표율이 훨씬 낮은 것도 그 때문이다. 즉 1인 1표 시스템하에서도 사실상 노동계급의 표는 과소대표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선거 제도는 하나같이 유권자들의 수동적 역할에 의존한다. 유권자들은 몇 년에 한 번씩 고립된 개인으로서 투표할 수 있을 뿐, 일단 선출된 대표들에게 책임을 묻거나 그들을 집단적으로 통제할 방법이 없다. 반면 선출된 대표들(국회의원, 시장, 도지사 등)은 평범한 유권자들과는 확연히 다른 사회·경제적 특권을 누린다. 따라서 이들은 너무나 쉽게 기득권에 포섭(그들이 이미 기득권층이 아니라면)돼 노동계급 유권자들을 배신하게 된다. 

이 모든 이유 때문에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부르주아지의 지배를 은폐하는 장막 구실을 한다. 그러나 부르주아지는 이런 장막조차도 때로 거추장스러워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는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부르주아지의 지배를 결코 위협하지는 않지만 그것에 일정한 제약을 가하고 노동계급과 기타 피억압 민중에게 부르주아지에 맞선 저항을 조직할 수단을 제공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사회의 지배자들은 섣불리 민주주의의 장막을 찢어발기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동의에 의한 지배’의 이점을 잘 알고 있으며 노골적인 독재를 전면에 내세우려다가는 자칫 거대한 반란을 부를 수 있다는 점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부르주아지는 심각한 경제 위기와 정치 위기가 결합된 상황에서, 노동계급의 저항을 분쇄할 자신이 있는 경우에는 노골적인 독재를 선택할 수 있다. 경제 위기의 대가를 노동계급에게 전가할 필요성이 절박해질수록 이에 대한 일체의 불만 표출을 단속할 필요도 더 커지기 때문이다. 

18대 대선에서 한국의 지배계급이 박근혜를 중심으로 전례없이 대동단결한 것은 이처럼 깊어지는 경제 위기 속에서 전보다 상대적으로 권위주의적인 통치 방식의 필요성이 크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그런 점에서 경제 위기가 가장 첨예한 곳인 유럽의 상황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2011~12년 그리스와 이탈리아에서는 민주적으로 선출되지 않은 이른바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 정부가 집권한 바 있다. 유로존 붕괴를 막기 위해 취해야 할 가혹한 긴축 정책들을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는 도저히 수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황금새벽당, 프랑스의 국민전선 등 파시즘 세력이 부상하고 있는 것도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이처럼 경제 위기의 시대에 필연적으로 들어올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에 맞서 최선두에서 싸워야 한다. 민주당 같은 믿지 못할 자유주의 부르주아 세력과도 때때로 함께 싸우되 그들과 독립적으로, 특히 노동계급의 주도적 행동을 독려하며 싸워야 한다. 노동계급의 투쟁이야말로 역사적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확대·심화돼 온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부르주아 민주주의보다 훨씬 고차원적인 민주주의인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를 지향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