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잡탕 정당’은 개혁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다

 

지난 4·15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 됐다. 50퍼센트가 넘는 유권자들이 투표의 기준으로 탄핵 사건을 꼽을 만큼 총선 직전 터진 탄핵 사건이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탄핵 사건이 아니었다면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지난 1년 반 동안 경험했던 노무현 정부의 배신 때문에 대중은 열린우리당에게 큰 기대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들이 뭘 잘해서 표가 쏠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막상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 되자, 개혁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한겨레〉, 〈오마이뉴스〉 등은 ‘개혁세력’의 다수의석 확보가 개혁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발목 잡기

 

이러한 기대감은 그 동안 노무현 정부의 개혁 부진을 우파 야당의 발목 잡기 탓으로 돌려 왔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16대 국회에서 우파 야당의 다수 의석 확보가 개혁의 걸림돌이었기 때문에, 다수당의 교체는 본격적인 개혁 추진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 동안 우파 야당의 발목잡기가 개혁을 가로막았던 것은 부분적으로 사실이다. 가령 열린우리당 김희선이 발의한 친일관계법안은 우파들의 압력에 휘둘려 완전히 누더기가 됐다. 역사를 왜곡한 식민사학자들은 조사대상에서 완전히 배제됐고, 박정희를 조사 대상에서 제외하기 위해 중좌(현 중령) 이상의 군인들만 조사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모든 개혁입법이 우파 야당들의 발목잡기 때문에 좌절된 것은 아니다. 가령 〈오마이뉴스〉가 선정한 10대 개혁과제를 살펴보자. 부패방지법 제정, 호주제 폐지, 국가보안법 개폐, 이라크 파병 철회, 비정규직 차별 철폐, 선거권 연령 인하, 집시법 개정, 정기간행물법 개정, 국민소환제 실시, 친일진상규명법 개정. 이 중 절반 이상은 열린우리당의 반개혁적 태도 때문에 진척되지 못했던 것이기도 하다.

국가보안법 개폐, 정기간행물법 개정, 부패방지법 제정 등의 과제에 대해서는 한나라당뿐 아니라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 또한 개혁 의지가 없었다.

노무현은 당선 후에 국가보안법을 개정하겠다고 말했지만, 개정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게다가 한총련 학생들을 여전히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고 있다. 신문 개혁의 중요 쟁점인 정기간행물법에 대해서는 “언론 개혁은 언론사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면서 개혁 시도를 회피했다. 또한 자신들도 부패 사슬에 얽혀 있기 때문에 부패방지법 제정에도 열의가 없었다.

한편, 10대 개혁 과제 중 파병, 비정규직, 집시법 등은 모두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들이다.

파병안 통과에 대해서는 노무현 정부와 그 “정신적 여당” 열린우리당의 책임이 가장 크다. 한나라당 또한 파병안 통과에 열의를 보이고 있었지만, 대중의 반발이 두려워 함부로 행동에 나서지 못하고 있을 때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이 파병안 통과에 앞장섰다.

비정규직은 김대중 정부 들어 매우 급속히 늘었다. 기업주들은 노동자들을 경제 위기의 속죄양으로 삼았고, 김대중 정부는 법과 경찰력으로 보장해 주었다. 노무현 정부의 등장으로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기대했지만, 기대는 곧 배신감으로 바뀌었다. 노동자들의 잇따른 분신 자살은 배신감에 대한 절망의 극단적 표현이었다.

 

“잡탕”

 

다수당이 된 열린우리당은 벌써부터 반개혁적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당선자 워크숍에서 열린우리당 의원 다수가 국가보안법 폐지, 언론개혁 문제 등에 대해 “정쟁이 될 소지”를 핑계로 아예 거론조차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의견을 모았다. 이라크 파병 결정에 대해서는 “국가간 합의사항이고, 국회의 결정사항인 만큼 존중돼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그들이 말하는 “대화와 상생의 정치”는 한나라당과의 ‘상생’이요, “실용 정당”은 ‘일관성 없음’이요, “개혁주의”는 ‘개혁 없는 개혁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열린우리당의 구성 자체가 “잡탕”이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열린우리당에는 전대협을 비롯한 운동 지도부 출신도 있지만, CEO 출신의 시장주의자들도 여럿 있다. 한편에서는 왼쪽의 급진화로부터 압력을 받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대기업들과 그들이 지지하는 우파 정치의 압력을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개혁에 대한 논의만 무성하고, 정작 행동에 대해서는 당 내에서조차 합의가 쉽지 않을 게 뻔하다. 그리 된다면 이전처럼 개혁 과제를 질질 끌다가 없었던 일로 하고 은근슬쩍 넘어가는 상황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열린우리당은 시장주의 정책과 전쟁 지원을 계속할 것이다. 물론 당 내에서 이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두 쟁점에 관해서는 당 내의 대세가 정해져 있다. “상황에 따라 성장과 분배가 조율되는 시대”라고 하지만, “‘기업하기 좋은 나라’에 대해서는 이론을 제기해선 안 된다”는 것이 그들의 본심이다.

결국 열린우리당에 진정한 개혁 과제의 성취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열린우리당에 개혁을 기대한다면 그 대가는 탄핵 사건 직전까지 경험했던 ‘배신의 나날들’의 반복일 공산이 크다.

전쟁과 신자유주의가 낳는 경제적 정치적 양극화의 심화 때문에 중도파의 입지는 좁을 수밖에 없다. 양극화 시기에 중도적 대안으로는 대자본가와 우파들을 만족시킬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노동 대중을 만족시킬 수도 없다.

이 때문에 기성 정치 내에서는 우파들의 입지가 강화되는 반면, 기성 정치 밖에서는 더욱 급진화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급진화는 이번 총선에 민주노동당의 급부상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앞으로는 이러한 경향이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개혁에 대한 기대감의 좌절과 시장주의 정책은 급속히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을 떨어뜨리고 당의 내분을 가속화하여, 열린우리당을 이번 총선에서 몰락한 민주당과 같은 처지로 만들 수도 있다.

이러한 유약한 자유주의 정당에 기대를 걸기보다는 개혁을 쟁취하기 위해 독립적으로 투쟁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개혁을 열망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열린우리당에게 실망할 때, 더 왼쪽의 좌파적 대안으로 결집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병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