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다양한 투쟁이 벌어진다는 것은 더는 뉴스거리가 아니다. 2011년과 2012년에만 각각 10만 건 이상의 집단 행동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광둥성 선전부가 신년 사설을 자의적으로 교체한 것에 항의해 발생한 〈남방주말〉 사건은 특히 주목을 끌었다. 

〈남방주말〉 경제부가 파업에 돌입하고 수백 명이 지지 시위를 벌일 때 세간의 관심사는 ‘시진핑의 입장은 무엇인가?’였다. 

시진핑은 이번 사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논평하지 않았다. 그러나 〈남방주말〉 사건은 시진핑이 앞으로 지배해야 할 중국의 모습을 잘 보여 줬다. 오늘날 중국은 사회의 모순에 맞서 싸울 각오가 돼 있는 수많은 평범한 중국인 - 노동자, 농민, 학생, 언론인 등 - 들로 가득하다. 

중국에서 온갖 사회 모순이 산적한 상태에서 새 지도부가 들어선 것은 처음이 아니다. 10년 전 후진타오와 원자바오가 집권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1990년대 급격한 시장화 과정을 거친 후 계급 간·지역 간 소득 격차는 사상 최대였다. 1990년대 중반부터 진행된 국영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최대 6천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농민들은 지방 관리들이 부과하는 과중한 세금에 고통받았다  

이 중 어떤 것도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보였고, 일부 공산당 고위 관리들은 일당 통치에 종말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10년 뒤 중국 국영기업들은 〈포천〉 5백대 기업에 속하는 세계적 기업으로 재탄생했다. 중국은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했고 세계 모든 나라 지배자들이 쌍수를 들고 중국 지배자들의 방문을 환영한다. 

따라서 시진핑은 당시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집권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점에서 시진핑 정부는 10년 전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불안한 경제 전망

첫째, 경제 여건이 다르다. 2003년 세계경제는 미국 연준의 과감한 조처와 함께 호황의 문턱에 있었다. 또, 중국 경제는 1990년대 혹독한 국영기업 구조조정을 통해 부채 문제를 많이 해결한 상태였다. 

그러나 현재 세계경제는 대공황 이후 최악의 불황을 겪고 있다. 2012년 중국의 성장률은 7.8퍼센트인데, 이는 2000년대 중반보다 3분의 1가량 낮은 것이다. 이것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중앙정부가 새로운 사회기반시설 공사를 허가하고 자금을 푸는 등 경기부양 정책을 편 덕분이다. 경착륙 가능성을 배제하고 낙관적인 전망만 봐도, 2013년 성장률은 2012년보다 약간 높은 8퍼센트대 초반 정도다.  

더구나 정부는 2008년 시작한 대대적 경기부양 정책이 낳은 부작용 ― 부동산 거품, 비효율적 투자와 악성 부채 문제 ― 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정확한 규모를 알 수 없지만, 중국 총부채 규모는 국내총생산의 1백80퍼센트가 넘으며 총부채 중 최소 25퍼센트가 부실 대출인 것으로 추산된다. 

물론 미국과 유럽, 일본에서 총대출이 거의 4백 퍼센트에 육박하는 것을 감안하면 중국 지배자들은 상대적으로 더 많은 ‘탄약’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예전보다 일자리도 적게 창출되고, 임금 상승률도 낮아지며, 경기부양의 규모도 적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은 명백하다. 

투쟁의 성장

둘째, 노동자·농민의 투쟁과 의식 수준이 크게 상승했다. 어떤 측면에서는 경기 전망보다 이 점이 더 중요하다. 1930년대 스탈린은 러시아 경제가 엉망진창인 상태에서도 노동자·농민에게 혹독한 자본 축적 과정을 강요할 수 있었다. 

사실 얼마 전까지는 중국에서도 그랬다. 예컨대, 2005년 광둥성 둥저우 마을에서 토지 강제 수용에 항의하는 농민 투쟁이 터졌을 때, 경찰은 주민들을 향해 발포했다. 20여 명이 죽고 50명이 다쳤다. 주민들의 요구는 철저히 무시됐다.

그러나 6년 뒤 2011년 역시 광둥성 우칸 마을에서 똑같은 문제가 터졌을 때 경찰은 감히 발포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우칸 지지단을 꾸려 경찰의 포위망을 뚫고 마을을 방문했다. 결국 광둥성 정부는 민주적 촌위원회 선거를 약속하고 불법적으로 토지가 매각됐으면 반환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노동자 운동의 경우, 2000년대 초반까지 진행된 국영기업 구조조정 반대 투쟁은 대부분 고립돼 패배했다. 또, 당시 민간 기업에 고용된 민공(民工)들은 작업장에서 투쟁하기보다는 직장을 옮기는 형태로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에 소극적으로 항의했다.

그러나 2010년 혼다 파업은 노동자들, 특히 신세대 민공들이 훨씬 조직적으로 투쟁을 벌일 자신감과 능력이 있음을 증명했다. 최소한 대규모 수출공업단지에서는 사장들이 더는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예전처럼 막 대할 수 없다. 

예컨대, 올해 1월 상하이신메이전자의 경영진이 화장실을 2분 이상 사용하는 노동자들에게서 월급의 10퍼센트를 제하는 조처를 포함해 노동조건 악화 정책을 발표하자, 노동자 1천 명이 도로를 점거하고 경영진 18명을 건물에 가두었다.  

경영진들은 경찰에 의해 구조됐다. 그들은 노동자들에게 사과하면서 발표한 조처를 철회할 뿐 아니라 임금을 올려 주겠다고 약속했다! 

국영기업 노동자들의 투쟁은 상대적으로 좀더 완만하게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파견근로자를 포함해 각종 비정규직 비율이 빠른 속도로 늘면서 노동자들의 불만도 커졌다.  

물론, 투쟁을 벌여 승리한 노동자·농민은 아직 소수다. 강제 토지 수용 문제는 대부분 해결되지 않았고, 투쟁으로 임금 상승을 성취한 경우에도 노동생산성 성장률과 물가 상승 폭보다 낮은 경우가 대다수다. 

오늘날 중국 계급투쟁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수없이 많은 투쟁이 벌어짐에도 아직 국가한테서 독립적인 조직이 건설되지 못한 것이다. 

특히 호구제도 때문에 도시 정착이 불가능한 민공의 경우, 만약 미래에 경기가 급랭해 대량해고가 발생한다면 도시에 남을 것인지, 고향에 돌아갈 것인지의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될 것이다. 독립적 계급 조직이 없는 상태에서 그들은 집단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고향으로 대거 돌아갈 수도 있다. 

실제로 2008년 하반기 서방 국가의 경기 급랭으로 중국 성장률이 6퍼센트 대로 추락하고 임금체불이 급증하고 수출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했을 때, 연안 수출 공업단지에서 민공 2천5백만 명이 귀향했다.

그러나 2010년 혼다 투쟁이 잘 보여 줬고, 이후 각종 여론조사가 입증했듯이 현 민공의 과반인 신세대 민공은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호구상 고향인 농촌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그들 중 대다수는 도시에 남을 것이고 일자리를 놓고 싸울 것이다.

지배자들의 분열

셋째, 중국 자본주의의 모순과 성장률 저하, 기층 투쟁의 압력으로 현 지배 방식을 유지할 수 없다는 회의감이 체제 내부 인사로까지 확산되면서 분열이 심화하고 있다. 

지난해 보시라이 사태는 그것의 극단적 표현이었다. 중국 공산당 지배자들은 개혁파와 보수파, 혹은 공산주의청년단과 태자당에 따라 노선이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그러나 쟁점에 따른 분열은 분명히 존재하며 그것이 기층 행동에 힘을 실어 주기도 한다.  

최근에 시진핑은 정부 출범을 앞두고 반부패, 내실 있는 성장, 노동교화소 폐지 등 온갖 개혁 언사를 남발했다. 이것은 최소한 당내 일각에서 사법부 독립, 민주화 인사 석방과 같은 개혁을 요구하는 입장을 발표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남방주말〉 사태도 이런 분위기와 연관된 것이다. 〈남방주말〉은 폭스콘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폭로하는 등 진보적 논조로 유명한 주간지지만 엄연히 광둥성 정부가 소유하는 국유기업 소속이다. 

지난해 11월 시진핑은 중국에서 헌법 정신에 일치하는 통치가 더 강화돼야 한다고 발언했는데 〈남방주말〉 편집인과 기자 들은 이것을 강화된 통제에 항의하는 근거로 활용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당내 보수파에 맞서 개혁파를 강화하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더 중요한 효과는 광범한 지지 여론과 행동을 자극한 것이었다. 

체제 내 개혁 요구들은 특정 상황에서는 커다란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 중국은 여전히 정치권력과 경제가 철저히 융합된 권위주의적인 국가자본주의 체제이기 때문에 이런 정치적 개혁 요구가 노동자·농민의 사회적 투쟁들과 결합될 가능성을 높게 만든다. 

비슷한 사례로, 2000년대 이집트에서는 선거 제도 개혁을 요구하는 키파야 투쟁이나 그것의 자극으로 탄생한 판사들의 사법부 개혁 투쟁이 전국적 정치적 초점이 돼 노동자와 기타 민중 투쟁의 발전을 촉진했다. 이것이 2011년 어떤 결실을 맺었는지 우리는 이미 아주 잘 알고 있다. 

물론, 오늘날 중국 국가는 시장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과거보다 훨씬 분권화됐다. 따라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목격하는 정치 권력과 자본의 결합 문제는 주로 지방 수준의 문제로 보인다. 

덕분에 중앙정부는 전통 시대 황제들처럼 자신이 지방 권력을 통제하는 청렴한 중재자인 것처럼 행세해 왔다.

그러나 이런 눈속임은 오래가지 못할 수 있다. 지난해 〈뉴욕타임스〉와 〈블룸버그 통신〉 보도가 잘 보여 줬듯이, 원자바오와 시진핑 가족들을 포함해 중앙정부 핵심 인사와 그 일가 친척들이 중국 자본주의의 알짜배기 기업들(국영과 민간 모두)을 통제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이 보도에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그것이 가져올 정치적 폭발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시진핑이 지금 반부패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최고위 인사와 그 가족들이 엄청난 이익을 얻는 현 상황에서 반부패는 결코 일관될 수 없다.

이런 커다란 도전들을 잘 해결하지 못하면 시진핑 정부가 마지막 공산당 정부가 될 수 있다는 경고가 공산당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중요한 것은 다른 집단이 아니라 중국 노동계급과 민중이 그 과정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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