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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효자동 이발사

김하영

효자동 이발소 주인 성한모[송강호 분]는 특별한 정견은 없지만 그저 나라가 잘 돼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고개 숙여 국가에 봉사하는 어리숙한 인물이고 아들을 끔찍이 사랑하는 평범한 아버지다.

그런 그가 청와대 근처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한국 정치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급기야 대통령 이발사가 되면서 여러 사건들에 확실히 엮이는 ‘수난’이 시작된다.

“성실장”으로서 그가 “모시게”되는 박정희는 기분이 좋을 때 일본말을 내뱉고, 정권에 비판적인 의사 20명 “처치”하는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닌 무자비한 인물로 묘사된다.

실제로,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사를 나와 만주군 소위로서 제5군관구 예하의 만군 보병 8단에 근무한 친일 경력의 소유자다. 조선인들이 모두 거리로 나와 해방을 기쁨으로 맞이할 때, 박정희는 사범학교 5년, 만주군관학교 2년, 일본육사 2년의 “긴 칼 차고 싶[은]” 꿈이 모두 날아가는 절망을 맛봐야 했다.

박정희는 처조카사위인 김종필과 함께 1961년 쿠데타로 드디어 꿈을 이뤘다. 1961년 쿠데타와 함께 정치인 2천 명 이상이 체포됐고 4천3백67명이 정치활동을 금지당했다. 또, 서울에 있는 신문사 64개 가운데 49개가 문을 닫았고, ‘깡패’라는 포괄적 범주 아래 1만 4천 명이 체포됐다.

박정희가 독재자로 군림한 18년 동안 무수한 사람들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고 그 가운데는 죽임을 당한 사람들도 많았다.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성한모의 대사 한 마디, “각하도 참 오래하십니다”는 장기 독재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숨길 수 없었던 심정을 코믹하게 잘 그리고 있다.

이 영화는 군사 독재의 공포 정치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잘 보여 준다.

어느날 설사를 하는 사람들을 모두 남파 간첩과 접촉한 것으로 간주해 잡아들이겠다는 발표가 난다. 붙잡힌 남파 간첩들이 설사병에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 황당한 발표는 순간 효자동을 공포로 밀어넣는다. 밤 말은 쥐가 듣고 낮 말은 새가 듣는다며 말 한 마디 속 시원히 하기가 두려웠던 그 시절, 이제는 똥마저 비밀에 부쳐야 할 판이 된 것이다.

동네 사람들끼리 거듭된 밀고와 중앙정보부의 고문과 조작으로 효자동 일대를 거점으로 하는 일명 “고스톱 간첩단”이 탄생한다. 그리고 성한모가 끔찍이 아끼는 어린 아들 낙안이는 이 사건에 연루돼 전기 고문으로 불구가 된다.

박정희 시대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것을 말도 안 되는 얘기로 치부할지 모른다. 하지만 황당한 이야기가 사람들을 집단적 공포로 몰아넣고 어처구니없이 삶을 파괴한 것이 바로 박정희 시대였다.

설사

박정희 시대 때는 “고스톱 간첩단” 같은 사건과 고문과 죽음에 대한 소문이 무성했다. 박정희의 여성 편력에 대해 얘기했다가 붙잡혀가 신문을 당한 이야기나, 박정희를 배신했다가 파리에서 실종된 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의 죽음에 대한 풍문이 그런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박정희는 김형욱을 청와대로 납치해 와 지하실에서 고문하고 살해한 뒤, 시체조차 녹여 없앴다고 한다. 이런 소문이 떠도는 것은 사람들이 마피아 영화를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이 아니라 박정희가 그만큼 소름끼치고 폭력적인 독재자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 영화는 박정희 시대의 여러 면을 다 보여 주지는 못한다. 예컨대 박정희 시대의 또 다른 상징인 급속한 산업화의 빛과 그늘 같은 것 말이다.

또, 영화 속에서 중앙정보부장과 경호실장이 왜 심각한 갈등을 빚는지도 드러나지 않는다. 1979년 YH무역 젊은 여성 노동자들의 파업 농성과 마산·부산의 노동자와 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온 것이 박정희 정권의 붕괴를 재촉하고 있었다는 점을 이 영화는 말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도 언급되는 1979년 10월 26일 저녁 술자리의 실제 대화 주제는 바로 이 사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였다. 마산과 이리와 구로의 수출자유지역에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있었고, 마산과 부산의 학생들은 학교로 돌아가 더 큰 시위를 준비하고 있었다. 박정희와 경호실장의 죽음은 대응 방안에 대한 분열의 결과였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특히 박정희에 대한 향수가 고개를 드는 요즘, 한나라당 총재가 된 박근혜가 아버지 박정희를 공공연히 무덤에서 불러내고 있는 요즘, 장점이 많은 영화다.

박정희 향수에 대해 이 영화는 확실히 말한다. 그 시대는 권력에 머리 숙여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들조차 피해가지 못하는 공포와 횡포의 시대였다고. 어린 아들의 다리를 앗아가는 끔찍한 시대였다고.

서평

〈아부 알리, 죽지마〉

승녕

이 책은 민족문학작가회의 소속 작가이자 한국이라크반전평화팀 일원인 오수연 씨가 팔레스타인과 이라크에서 활동한 경험을 기록한 책이다.

저자가 본 팔레스타인은 고통과 죽음의 땅이다. 곳곳에 세워진 검문소를 통과하기 위해 밥까지 굶어가며 최소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운이 없으면 이스라엘 군인에게 잡혀 감옥에 갈 수도 있고, 심지어 죽을 수도 있다. 이스라엘군은 시시때때로 팔레스타인 마을을 침략해서 집들을 부수고 물건들을 빼앗아 간다.

데리야신 학살 때 가족을 잃은 누마의 증언은 너무 끔찍해 입에 담기조차 고통스럽다. “그들(이스라엘군)은 부인을 끌어내 가슴팍을 헤치고, 한쪽 유방을 칼로 잘라낸 다음 유방을 갓난애의 입에 쑤셔 넣고, 아이를 목 졸라 죽였지.…그 여자 앞에서 남편의 귀와 코를 잘라냈지.…그 여자는 한 군인의 총 끝에 달린 칼에 꿰뚫렸어. 이 모든 꼴을 다 본, 귀와 코를 잘리고도 아직 살아있던 남편을 그들은 벽에 세워놓고 총으로 갈겨버렸지.”

미국이 바그다드를 점령한 후 이라크의 모습은 미국의 약속과는 정반대였다. 어디에도 민주주의와 복지는 없다. 미군은 시도 때도 없이 시내에서 총을 난사했고, 수많은 이라크인들이 미군의 총에 맞아 죽었다. 이 죽음들은 미군 사상자가 없을 경우 대부분 집계되지 않는다.

오수연 씨는 끔찍한 후세인 독재정권에 반대했던 사람들이 지금 미군 점령에도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미군은 우리를 해방시켜 주겠다고 해놓고, 왜 우리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나? 그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어쩌면 우리들은 다시 그들과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비폭력 운동에 대한 강조나 ‘북핵 문제’에 대한 관점 등은 동의하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팔레스타인과 이라크의 현실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읽어 볼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