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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의 적’을 겨냥한 칼

한국의 지배계급은 국가보안법이 남북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필요하다고 말한다. 즉, “북한이 직접 또는 간접 등 온갖 방법으로 우리의 체제를 전복시키고자 시도할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2004년 대법원 판결)기 때문에 국가보안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와 냉전입법이라는 뿌리 때문에 북한과 연관이 있는 좌파나 활동가들이 국가보안법의 주된 피해자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의 3조 ‘간첩죄’로 처벌된 경우는 매우 드물다. 게다가 간첩사건들은 많은 경우 정치적 필요에 따라 온갖 협박과 고문을 통해 조작되거나 부풀려진 것이다.

더구나 1996년 4월 11일 총선을 앞두고 신한국당(새누리당의 옛 이름)이 선거에서 유리하도록 북한 측에 판문점 근처에서 총격을 해달라고 몰래 부탁한 ‘총풍’ 사건은, 남북한 지배자들이 때때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선 한통속이기도 하다는 걸 보여 준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을 단지 “남북이 정치적으로 연대하는 것을 가로막는” 냉전 악법으로만 보는 것은 부족하다. 지금까지 구속된 국가보안법 위반 사유의 약 90퍼센트를 차지하는 제7조는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한 자’를 처벌하게 돼 있다. 이 때문에 북한 체제에 비판적인 좌파들도 국가보안법으로 탄압을 받았다. 북한과 연관 있는 좌파도 그들이 이 나라 노동자·민중 운동의 일부이고 그 요구를 대변하기 때문에 탄압받는 것이다.

국가변란

지배자들이 진정으로 노리는 것은 북한을 핑계 삼아 노동자·민중 운동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것이다. 국가보안법 탄생과 65년 역사가 그것을 잘 보여 준다. 최근 국정원 전 원장 원세훈도 ‘종북 척결’을 내세우며 “북한과 싸우는 것보다 민노총, 전교조 등 국내 내부의 적과 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속내를 밝혔다.

아래로부터 투쟁 덕에 노동계급의 조직이 성장하고 민주화가 진척되면서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되는 수가 계속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말 한번 잘못해도 잡혀가는 ‘막걸리 국가보안법’ 성격이 짙었다면, 지금 국가보안법은 주로 친북 성향의 개인·단체나 혁명적 좌파를 겨냥한다.

그러나 이런 공격은 사회 분위기를 냉각시키고, 운동 전체를 분열·위축시킨다. 게다가 2008년 촛불 항쟁과 경제 위기 이후 국가보안법 사건이 증가했듯이(2007년 39명, 2009년 70명, 2010년 1백51명), 남북 관계가 악화되고 경제가 위기에 빠지면 언제든 지배자들은 이 더러운 칼을 휘두를 수 있다. 박근혜 시대에 국가보안법 공격은 특히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65년간 악명을 떨쳐 온 국가보안법은 완전히 폐지돼야 한다. 그 출발은 현재 국가보안법으로 탄압받는 단체와 개인들을 정견의 차이를 떠나 적극적으로 방어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유주의자들에게 기대지 말고 진보 진영과 노동운동이 독립적으로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